책 소개
『88만원 세대』의 경제학자 우석훈이 39번째 책을 펴냈다. 그런데 뜻밖의 제목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다크 히어로, 정치인 정세균의 책이다. 2005년에 첫 책을 낸 이래 가장 고심이 많았고, 가장 쓰기 어려웠던 책이었다고 고백할 만하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이 반대했다. 정치인 이야기를 왜 하느냐……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 아니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자신의 로망 때문이라고, 그 로망은 친구보다 더 친구 같은 정치인 정세균을 위해 충분히 바칠 수 있다고. 우석훈은 ‘우정’을 선택했다.
물론 시기적으로 하수상하다. 국민의 기대 속에 탄생했던 문재인 정부는 지리멸렬해졌고, 다시는 부활할 것 같지 않던 보수 야당은 세대교체를 이루었으며, 여야의 수많은 잠룡들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정치의 계절에 정치인의 책이라니…… 상투적이다. 여기에도 우석훈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기에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정치 지형도의 전후 관계를 참고하고 이해하도록 최선을 다했노라고. 『다크 히어로의 탄생』은 정세균이라는 유력한 대선주자를 리트머스 삼아 MB-박근혜-문재인의 시간을 한호흡으로 관통한다.
여느 정치인이 그렇듯이 정세균이 탄탄대로만을 달려온 것은 아니다. MB에 이어 박근혜의 두 번째 집권이 절정으로 치닫던 무렵, 민주당은 어수선하고 방향성이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민주당과 안철수의 새정치연합이 합당해 만들어진 어정쩡한 이름 그대로였다. 그때는 정세균이 국회의장을 할지, 총리를 할지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정세균은 우석훈과 함께 경제 자료를 보고, 토론하고, 또 보고, 또 토론하는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사람들은 우석훈에게 충고했다. 정세균 대신 문재인을 만나라고. 2012년 대선, 문재인은 패배했다. 박근혜의 시대가 도래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세월호는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세월호는 박근혜 정권만 흔든 게 아니라 민주당도 흔들었다. 당 지도부가 총사퇴하면서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은 세월호 유가족과의 갈등으로 사퇴했다. 민주당 지지율은 15퍼센트를 넘지 못했다. 그 정국에서 우석훈은 당내 추천으로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맡았다. 세월호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맡지 않았을 당직을 맡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되고 나서 우석훈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질퍽질퍽한 시간을 보내다가 당의 주요 지도부를 대상으로 경제 강의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석훈은 문재인을 만나고 이어서 정세균을 만났다. 하필 당대표에 도전하려고 했던 정세균이 출마를 내려놓은 날이었다. 경제 강의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정세균이 수첩을 뒤적거렸다. 잠시 후, 정세균의 한마디에 우석훈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 마침 그날 일정이 없네?”
2014년 봄, ‘유능한 경제정당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2014년 12월, ‘경제정책 심화과정’이라는 이름으로 민주당의 당대표급 인사들을 모아서 매주 수요일 오전 7시 30분에 우석훈의 경제 강의가 시작되었다. 당대표가 되기 전 초선의원 시절의 문재인, 언제 탈당을 선언할지 모르는 폭탄 같은 김한길, 그리고 정치 생활의 최대 위기를 맞은 정세균…… 그 거물들이 좁은 회의실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앉아 있었다.
문재인은 당대표가 되었다. 문재인이냐 안철수냐. 민주당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박근혜 3년 차, 보수 정권의 전성시대였다. 정세균은 ‘유능한 경제정당 위원회’ 공동위원장이라는 ‘한직’을 맡아 우석훈과 경제를 공부했다. 그때부터 2016년 4월 총선까지, 우석훈과 정세균은 미친 듯 달렸다. 그 하이라이트는 공공부문 청년 일자리 정책이었다. 정세균이 제안했다. “우리 아들이 말이에요. 취업을 못해요. 계속 미역국이야. 그렇다고 내가 뭘 해줄 수도 없고. 우리 진짜 청년 대책 한번 만들어봅시다.” 공공부문 청년 고용 공약은 2016년 총선의 당 대표 공약이 되었고, 대선에서 문재인을 상징하는 공약이 되었다.
정책 테크니션. 우석훈은 한국의 어떤 정치인 가운데서도 정세균의 선거용 공약을 만드는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정세균은 민주당 대표로 2010년 지방선거를 치르며 ‘의무교육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를 전면에 내세웠다. 정세균은 선거도 잘한다. 내리 여섯 번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겼고, 2010년 지방선거를 포함해서 수많은 선거를 지휘했다. 정세균이 오세훈을 꺾은 선거에서 민주당은 123석으로 새누리당을 한 석 차이로 제치고 제1당이 되었다. 그리고 정세균은 국회의장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 기자들이 정계를 은퇴할 거라고 했던 사람이 국회의장이 되었다. 그리고 2017년 3월 10일, 국회의장 정세균이 박근혜 탄핵을 선포하고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었다. 정세균은 대한민국의 총리가 되었다.
2021년 4월 보궐선거와 함께 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돌아왔다. 문재인 집권 초기, 세상이 변할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은 끝을 모르고 상승했다. 여기에 LH 사태가 터졌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제 서울의 청년들은 오세훈에게 투표한다. 그 흐름은 30대 야당 대표 이준석에게로 이어졌다.
우석훈은 말한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의 인기를 높이는 것 외에는 한 게 없다고. ‘K 방역’이 말해주듯이 정무와 홍보 기능이 너무 전면에 나왔다고 비판한다. ‘스토리가 있는 인물’ 중심의 인재발탁 전략은 어떤가. 전후좌우 맥락 없이 스토리 중심으로 인사를 하다가 문재인 정부는 망했다.
책의 말미, 우석훈의 관점으로 대선 후보를 논하는 부분은 이 책의 백미다. 1위 이재명이 나오고,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다가 역전을 허용한 이낙연이 출연하고, 싸움닭 박용진이 고개를 쳐든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정세균이 등장한다. 우석훈은 말한다. “정세균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지만 되면 가장 잘할 것 같은 사람”이라고.
책을 마무리하며 우석훈은 정세균이 아닌 친구 노회찬을 떠올린다. 노회찬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는 꿈을 털어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노회찬이 아닌 정세균 이야기를 내놓았다. 여권의 유력 후보이지만 대중의 인기가 부족한 정세균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지 않는 이유. 그것은 노회찬의 죽음 때문이었다. 꿈은 살아 있을 때 도전하고 이룰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석훈은 정세균과 함께했던 시간, 그리고 앞으로 그가 당도해야 할 시간을 정확하게 복기하고 예리하게 내다본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로망 때문이었을까. 그는 긴 잔소리를 멈추고 정세균을 묵묵히 지켜보는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희망한다. ‘다크 히어로의 탄생’, 그 순간을 보고 싶다고. 한국 사회 안에서 싸우는 인파이터 정치인, 통합과 혁신의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 선거에 임하면 ‘다크 히어로’로 돌변하는 사람,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정말 잘할 사람’, 정세균을 향한 굳은 믿음. 『다크 히어로의 탄생』이다.
작가 소개
우석훈
경제학자. 두 아이의 아빠. 성격은 못됐고 말은 까칠하다. 늘 명랑하고 싶어 하지만 그마저도 잘 안 된다. 욕심과 의무감 대신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보람으로 살아가는 경제를 기다린다. 성결대학교 교수. 저서로 『88만원 세대』 『당인리』 『팬데믹 제2국면』 등이 있다.
목 차
들어가는 말 4
1장. 나랑 세계 일주나 갑시다
1. 노회찬의 죽음 12
2. 나랑 세계 일주나 갑시다 19
3. 조국과의 식사 24
4. 신경 쓰지 마쇼, 우린 술이나 마실 테니 28
5. 어, 마침 일정이 없네 32
6. 정세균,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40
7. 안철수에서 김한길까지 47
2장. 정책 라인의 세계
1. 2010년의 1번 공약 60
2. 브랜드 공약 66
3. 경제정책 심화과정 72
4. 우리 매일 만나야겠네 77
5. 머리 숙이는 일 88
6. 한반도 신경제지도, 우연과 우연이 겹친 일 101
7. 공공부문 청년 일자리 - 정책의 진정성 112
8. 그 이야기는 선거나 이기고 하자고, 증세 문제 125
9. 그냥 파리에 가서 치즈나 사다주세요 133
3장. 다크 히어로의 탄생
1.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144
2. 양산 가는 날 149
3. 다크 히어로의 탄생 155
4. 국회의장이 되는 법 164
5. 촛불집회의 앞과 뒤 175
6. 대선이 끝나고 난 뒤 185
7. 국회의장 시절의 추억 191
8. 못 이기는 척하고, 그냥 총리 하세요! 202
9. 노회찬의 죽음, 내 인생관의 변화 209
4장. 좀 더 모던한 한국을 위한 잔소리
1. 오세훈이 돌아왔다 222
2. 대통령이 한가한 나라 232
3. 인사 실패, 스토리가 있는 인물이 망친 정권의 스토리 241
4. 충성심, 개나 줘버려! 250
5. 밀실 안의 정책과 정책 민주주의 262
6. 다크는 확실, 그러나 히어로도? 278
나가는 말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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