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사랑은 왜 힘들까?
인간의 최대 관심사, 마르지 않는 예술적 모티프
사랑의 본질과 역사성에 관한 고찰
예술의 주된 모티프이자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불멸의 관심사이기도 한 ‘사랑’을 인문학적으로 고찰한 《사랑, 삶의 재발명》이 출간되었다. 문학평론가인 임지연 교수가 청춘을 뒤흔들지만, 삶의 황혼에 접어들어도 늘 힘들기만 한 사랑에 관한 통찰을 다양한 문학 작품과 영화 등을 곁들여 선보인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찬미하며 사랑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만 막상 사랑은 너무 어렵고 힘들다. 그 이유를 추적하기 위해 저자는 서구와 한국에서의 사랑의 역사를 소개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사랑은 시대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문학작품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학습해온 통념적인 사랑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베르테르와 같이 사랑 때문에 죽은 허구나 실제의 사례들을 보면 마치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타나토스를 수반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랑은 얼마든지 지금-여기에 발 디딘 채로 일궈낼 수 있다. 사랑을 양자의 완벽한 합일로 여기지 않고 두 주체의 개별성이 유지된 만남, ‘둘 됨’으로 생각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첫눈에 반했던 사랑의 열기를 평생에 걸쳐 동일하게 유지할 필요도 없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를 눈멀게 하는 낭만적 사랑의 미덕이 분명 있지만, 사랑이 근간이 되는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되듯 현재를 살아가는 각자에게는 저마다에게 맞는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고 상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봄으로써 삶을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 그렇듯이, 사랑 또한 우리의 삶과 ‘지금-여기’의 정신에 맞추어 끊임없이 재발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 안에 내재한 역설적인 요소들이 사랑을 불안하게 만들고
사랑에 관한 고루한 편견들에서 사랑의 난해함이 온다
사랑은 흔히 결혼이 이루어지는 청년기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연애감정은 기실 ‘전연령가’다. 위기철의 《아홉 살 인생》의 주인공 여민도, 문제적 영화 <죽어도 좋아>에 출연했던 노부부에게도 사랑은 동일하다. 에로스가 배제된 풋사랑, 멋모르는 감정의 요동침, 건강 증진의 일환에 불과한 성행위, 노년의 의탁할 곳 등 다양한 양태로 포장되곤 하지만 사실 사랑의 본질은 연령대를 초월하여 동일하다. 남편의 첫사랑이 오랜 부부관계에 파문을 일으키는 영화 <45년 후>에서 남편 제프와 아내 케이트의 불화는 그들이 나이가 들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결혼 이전부터 있었던 서로의 관점 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전 세대가 겪게 되는 이 사랑의 어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자는 이를 만남과 이별, 구속과 자유, 희생과 자기 보존 등 다양한 역설적 속성들을 내재하고 있는 사랑의 본질에서 찾기도 하고, 자본주의 아래 결혼 시장이 발달했듯이 사회적인 구조의 압력에서 찾기도 한다. 전자의 예로 20세기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의 사랑을 소개한다. 그의 작품인 <바람의 연인>에 묘사된 연인의 모습처럼, 연인은 순간을 몰아치는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지만 쾌락이 불타고 재만 남은 자리에서 유대감을 지속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코코슈카는 평생의 사랑 알마를 품 안에 붙잡아두고 싶어 했지만 그 구속은 연인 알마를 지치게 만들어 떠나가게 한다. 더 사랑하고자 한 집착에 사랑을 잃는 것은 코코슈카만이 아니다. 우리는 연애를 성취해내기 위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식의 이분법적인 진화 심리학이나 진화 생물학의 설명에 납득하려 노력하고 하다못해 상대의 본능적인 특성을 역으로 활용하라는 ‘연애 지침서’에 빠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상대를 개인이 아니라 한 종으로 이해하는 것은 간편할지언정 그 사람의 내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사랑에 목맨 베르테르가 필멸한 것처럼 에로스에는 타나토스가 수반된다. 지금 너무 사랑하지만 언제 사랑이 그칠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고, 불안함이 그치고 안정을 찾고 싶지만 안정에서 권태가 온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역설적인 것들로 가득 차 필연적으로 불안을 가져온다.
사랑은 시대와 역사의 산물이다
‘영원히, 단둘이서’의 낭만적 사랑의 신화가 사랑을 억압한다
우리는 사랑의 주체인 ‘나’는 어떤 사람인지, 또한 내가 사랑하는 상대는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야 한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주인공 우진의 외양이 매일 바뀌는 것이 은유하듯 내가 사랑하는 타자는 순간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이며, 한병철이 지적했듯 ‘부정(不定)’의 존재다. 이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정말 사랑이 온다. 알마를 꼭 닮은 인형을 만들어서라도 그녀를 소유해야 했던 코코슈카의 패착처럼 사랑은 상대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거나 그 사람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바로 ‘둘 됨’이다.
사실 사랑이 ‘영원히, 단둘이서’였던 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저자는 사랑의 역사를 소개하는 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서구에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랑은 기사 랜슬롯과 기네비어 사이에서와 같이 이념적으로 완벽을 추구했던 이상적 사랑, 결혼제도 바깥에서만 존재했던 열정적 사랑, 자살한 베르테르와 같이 사랑을 박제하고 완벽히 융합된 두 사람을 꾀하는 낭만적 사랑, 현대 결혼 시장의 형성으로 알 수 있는 자본주의에서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유구한 사랑의 역사를 보자면 사랑은 시대마다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20세기 초반 일본을 통해 ‘Love’의 번역어인 ‘연애’가 수입되면서 낭만적 사랑과 자본주의가 깃든 사랑이 단기간에 이식되었고, 이 과도기적 급진성 때문에 근대의 낭만적 사랑을 현대에 현현시키려다 보니 자본주의 결혼시장의 논리와 뒤엉키면서 사랑이 힘들어진다.
북유럽 신화 속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로테에게 반한 그 순간에 매달려 살아가던 베르테르도, 근대 식민지 조선에서 정사(情死)한 강명애와 장병천도 현실의 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죽었다. 그들의 사랑은 숨 쉬며 발 딛고 있는 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적인 것이었다. 사랑의 힘듦은 사랑을 유토피아, 곧 현재 세계에 도래하지 않는 것으로 두는 데서 온다. 저자는 여기서 미셸 푸코가 제안한 개념 ‘헤테로토피아’를 가져온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역설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지만, 그 요소들 중에서 이상적인 것들을 찾아 사랑을 현실에 발 딛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시대에 따라 삶이 달라지듯
지금-여기에 맞추어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의 시대와 사회에 맞춘, 그리고 저마다의 삶에 맞는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경구나 연애 지침서, 혹은 심리테스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어떤 일반화에도 현혹되지 않은 채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애쓸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회와 의식이 발전하면서 사랑은 더욱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다른 성별 간의 전유물도 아니고, 심지어는 폴리아모리에서 볼 수 있듯 두 사람 간에 일어나는 것에 한정되는 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부장적 시선의 한계를 보일지라도 폴리아모리 주인공이 등장하는 《아내가 결혼했다》와 같은 소설도 등장하였고, 동성애는 물론 무성애, 양성애 등 다양한 성적 지향에 관한 사회적 차원의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한 세대 이전에 익숙지 않았던 이러한 사랑의 양식들은 통념과 지속적으로 부딪히고 새로운 실험에 빠지게 되겠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그 어떤 것들도 사랑이 아니지는 않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주체와 타자가 오롯이 서로만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를 위한 이타심과 그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이기심이 충돌하면서 오는 불안을 인정하고, 하나 되기를 바라기보다 둘로서 공존하려 할 때에 온다. 낭만적 사랑의 융합적인 하나 됨과, 그 일심동체의 정신을 먹고 비대해진 가부장제에 시선을 고정할 때에 사랑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 사랑은 어느 다른 시대와 사회의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정신에 맞추어 재발명되어야 한다.
한번 읽으면 결코 배신하지 않는 반려인문학
은행나무출판사 〈배반인문학〉 시리즈 출간!
인문학의 효용은 궁극적으로 나에 대한 관심, 나다움에 대한 발견에 존재한다. 또한 인문학은 스스로 성숙한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근본의 힘을 제공한다. 〈배반인문학〉 시리즈는 이처럼 ‘나’를 향한 탐구,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질문과 그것을 둘러싼 사유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현대철학과 사회의 화두인 ‘몸’을 매개로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필진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키워드를 선정해, 일상 속 인문학적 사유를 쉽고 명료하게 펼쳐낸다.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배반인문학〉의 다채로운 사유의 항해에 몸을 실어보자.
작가 소개
임지연
건국대학교에서 현대시를 전공했다. 현재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5년부터 문학평론을 시작하였고, 시 전문지 《시작》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평론집 《미니마 모랄리아, 미니마 포에티카》, 《공동체 트러블》을 냈으며, 《인류세와 에코바디》, 《인공지능이 사회를 만나면》 등에 글을 실었다. 1950~70년대 한국의 지식장과 문학의 관계에 천착하고 있으며, 동시에 생태, 동물, 가이아, AI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사랑의 딜레마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막연한 사랑이 아니라 나의 삶 속에서 ‘어떤’ 사랑을 ‘잘’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탐색한다. 사랑을 긍정하는 것은 삶을 발명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목 차
들어가며 사랑에 대한 몇 가지 물음들 6
1장 바야흐로, 신 연애 시대
위험 사회와 사랑 14
죽어도 좋아 21
2장 사랑은 왜 어려운가?
사랑의 역설적 구조 32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구? 44
‘나’는 ‘누구’를 사랑하는가?-자기와 타자 57
3장 사랑의 개념은 변한다
서구의 사랑의 역사 74
한국의 사랑의 역사 91
4장 낭만적 사랑은 사랑을 억압한다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 113
너와 내가 일심동체라고? 120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125
삶의 테크닉으로서의 낭만적 사랑 132
5장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하나에서 둘로 138
환상에서 지상으로 143
삶의 발견, 사랑의 발명 152
나가며 사랑의 재발명 162
인명 설명 164
참고문헌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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