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그림 동화』는 공생에 관한 지혜의 보고다!
조실부모한 주인공들이 길을 떠나 찾는 지혜 ― 불확실한 마주침을 그 자체로 긍정하라!
“어떤 공주도 왕자와 결혼하기 위해 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낯선 이를 돕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사건은 [집이나 궁전이 아니라] 숲에서만 일어납니다.”
‘동화인류학자’를 자칭한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동화는 집을 떠나 왕국에 도착하는 이야기가 아니며, 권선징악의 이야기도 아니라고. 카오스인 숲에서 타인을 만나 어떻게 하면 이 곤란을 넘어가 삶을 이어 갈 수 있을지 ‘몸’으로 겪으며 깨달아 가는 이야기라고.
다양한 동식물종과 마녀, 요정이 인간과 동등한 자리에서 숲을 누리며 살아가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는 『그림 동화』. 이 동화 속 공주와 왕자는 너의 죽음이 나의 삶을 낳고, 나의 죽음이 너의 삶을 낳는다는 공생의 대칭적 윤리를 이해하기 위해 맨몸으로 숲 속을 돌아다닌다. 바로 여기에 탐구할 문제가 있다고 저자는 생각했고, 『그림 동화』 속 주인공들과 그들이 겪는 사건들, 그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인 숲을 살피며, 동화가 걷는 걸음은 바로 ‘연결되고 열린 삶을 향한’ 것임을 동화 속 웃음들과 함께 전한다.
『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 동화의 인류학』 지은이 인터뷰
1. ‘『그림 동화』의 인류학’이라니, 말 자체가 낯섭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인류학이란 무엇일까요? 자연의 한 종인 인류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철학, 문학, 생물학, 의학처럼 인간이 펼쳐내는 어떤 활동의 산물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활동을 하는 바로 그 존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요. 그래서 인류학자는 시간의 축을 따라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과 다른 생물종과의 관계를 연구하기도 하고요, 공간의 축을 따라 인류의 다양한 문화들을 살피며 인간적 삶의 근본원리를 살피기도 합니다. 인류학은 늘 한 인간이 놓여 있는 조건과 그 안에서 작동하는 관계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제가 『그림 동화』와 인류학을 연결시키게 된 것은 쌍둥이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였습니다. 사람이 나고 자라는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정말 신기한 장면을 많이 보게 되지요. 아무리 빨리 달리고 싶어도 뒤집고 기는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홀로 잘났다!’라는 독아적 주장을 하고 싶어도 무엇인가를 먹고 어딘가에서 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무엇을 먹일까, 어떻게 입힐까를 궁리하다가 엄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상상해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것은 온갖 어려움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지혜,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지혜이더라구요. 그때부터 밤마다 읽어주던 동화책이 다르게 보이지 시작했습니다.
『그림 동화』는 그 전체가 공생에 관한 지혜의 보고였습니다. 동화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지요. 백설공주도 빨간모자도 마녀와 난쟁이, 늑대 없이는 이야기 안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림 동화』는 다양한 동식물종과 마녀, 요정이 인간과 동등한 자리에서 숲을 누리며 살아가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공주와 왕자는 너의 죽음이 나의 삶을 낳고, 나의 죽음이 너의 삶을 낳는다는 공생의 대칭적 윤리를 이해하기 위해 맨몸으로 숲 속을 돌아다닙니다. 저는 여기에 탐구할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 흔히 동화는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하는’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 선생님은 동화가 선이나 악에 관심이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 동화에는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신데렐라의 의붓 언니들은 발뒤꿈치가 베이고, 탐욕스런 늑대는 배에 돌이 가득 찬 줄 모르고 강물에 빠져 죽습니다. 그런데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우리는 놀라운 진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화 속에는 그 어떤 악인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동화 속에는 친엄마를 배신하는 딸도 나옵니다. 동화는 가족이라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친구와는 절대로 싸우지 말아아야 한다! 등 선험적 도덕률이 작동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내 복에 산다!’주의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보면 동화 속 착한 사람들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낯선 이들을 돕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동화는 「개구리 왕자」입니다. 이 이야기에 동화의 본성이 잘 나와 있습니다. 개구리를 다시 사람으로 돌려놓았던 그 공주는 얼굴은 예뻤을지 모르지만 공놀이라는 자기 즐거움밖에 모르는 욕심쟁이였습니다. 공주는 자꾸만 결혼해달라는 개구리가 짜증스러워서 참지 못하고 녀석을 집어던지지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저주가 풀립니다. 개구리 왕자를 구한 것은 공주의 선의가 아니라 양서류를 싫어하는 그녀의 취향과 다혈질적인 성정인 것이죠. 이처럼 동화는 우리 각자의 구체적 욕망과 개성이 어떤 조건에서는 누군가의 저주를 풀 길 하나를 열기도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동화 속 주인공들은 주변의 지형지물을 살피고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구체적 관계 속에서 자기 살길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뿐이지요. 어떤 공주도 왕자와 결혼하기 위해 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3. 책에서 「개구리 왕자」를 여러 번 언급하고 계신데요, 『그림 동화』 속 이야기 중 선생님의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세 개를 꼽아 주시고 이유도 짤막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동화를 읽다 보면 어떤 법칙이 작동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동화 속 주인공이 되려면 일단 조실부모해야 한다든가, 사건사고는 모두 숲에서 일어난다든가, 시작도 끝도 없는 미션만 반복해서 펼쳐진다든가. 이 각각의 법칙이 어떤 공생의 원리를 품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제가 『그림 동화』를 읽을 때의 목표였습니다.
그럼 제 마음속 동화 순위를 말씀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개구리 왕자」는 공생의 기본 조건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라서 으뜸상을 주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결혼’이라고 하는 인류의 근원적 공생 관계를 다루지요. 즉 저주를 풀 계획을 감추고 공주에게 접근한 개구리와 탐욕스럽고 신경질 잘 부리는 공주의 결합입니다. 뭐 서로 첫눈에 반한 것은 절대 아니었고요. 「개구리 왕자」는 삶에서 필요한 것은 반드시 나 아닌 존재로부터 얻게 된다는 이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 동화』는 이 ‘나 아닌 존재’를 자연 전체의 수준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개구리를 등장시킨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 더! 개구리는 원래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떤 때에는 개구리의 모습으로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봄날의 개구리 울음 소리를 기쁘게 잘 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2등은 「백설공주」입니다. 동화 속 주인공이 되려면 조실부모해야 합니다. 그런데 백설공주는 제 발로 걸어나오지는 않았어요. 계모가 쫓아내준 바람에 고맙게도 숲속에 내버려지게 되었죠. 원래 이 계모가 친엄마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동화는 부모의 역할이란 아이를 숲으로 보내는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죠. 이렇게 혈혈단신으로 숲에 들어가고서야 비로소 공주는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일곱 난쟁이들을 위해 그림자 노동을 한 것인데요. 이처럼 숲에서 살아 남으려면 반드시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는 일을 해보아야 합니다.
3등은 「장화 신은 고양이」입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고양이는 ‘장화’를 신고 있습니다. 그림 동화에는 바느질쟁이들이 많이 나오지요. 실은 기본적으로 이것과 저것을 잇는 역할을 하지요. 그래서 물레 가까이에 있으면 하늘이나 지하에 갔다 올 기회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실을 잘 다루는 소녀가 까마귀나 백조로 변한 오빠를 구하게 되는 이유도 같은 이치지요.
물질의 성질을 바꾸고 만물을 연결하는 기술로서의 바느질은 『그림 동화』식 기술론입니다. 이 기술관을 확장한 작품이 「장화 신은 고양이」입니다. 여기서 고양이는 장화를 신고서 무능력한 시골 청년을 왕국의 주인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림 동화』에 나오는 ‘기술’을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존재를 더 복잡한 네트워크 속으로 밀어 넣고 더 많은 의무를 지게 하는 장치입니다.
4. 왜 동화 속 주인공은 소녀이거나 셋째아들일까요?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동화는 19세기 이후 근대소설의 주인공들이 대개 고아 소년들인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1835), 이광수의 『무정』(1917) 등. 산업화 시대 이후로 이야기 문학에 나오는 청년들은 아버지(구체제)를 부정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새시대를 개척해야 한다는 의무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고아 소년들은 자신들이 세울 새 왕국(근대 사회)에 관심이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들은 그 왕국에 어떤 인간이 필요한지를 고민합니다.
동화 속 소녀와 셋째들은 다릅니다. 그들도 부모를 떠나 숲을 헤매다가 결국 어떤 집이나 왕국으로 돌아가기는 합니다. 하지만 동화는 떠나온 집과 도착하는 왕국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건은 오직 숲에서만 일어납니다. 이야기의 재미는 소녀가 어떤 마녀를 만나느냐, 셋째가 어떤 엉뚱한 미션을 맞닥뜨리게 되는가에 있습니다.
왜 소녀와 셋째아들일까요? 딸과 셋째는 왕국을 바로 물려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존재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기댈 곳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남의 손을 빌려야 합니다. 소녀와 셋째는 그때그때 자신을 살리는 것을 ‘덕분’들을 보고 가고, 그 과정에서 가끔은 남의 저주를 풀어주기도 합니다. 여기서 운명이란 타고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의존한 모든 인연으로 말해집니다. 숲은 이 지혜를 온몸으로 겪게 하는 공간이 되고요, 소녀와 셋째는 이 과정에 기꺼이 몸을 던집니다.
5. 이 책을 읽는 독자분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늘 생각합니다. 동화는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일어나는 사건은 겁나는 일들뿐인데도 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엄마는 계모로 바뀌고 할머니는 늑대가 됩니다. 왕자는 이유도 모르는 저주에 걸려 개구리로 뛰고 있습니다. 공주는 내 부엌이 아니라 남의 부엌에서 땀 흘리며 콩을 고르지요. 운명은 내 힘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모두들 참으로 고생고생입니다.
저는 바로 여기에 어떤 지혜가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물은 연결되어 있고, 나는 다른 누구를 살릴 때에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요? 동화를 읽으면 작은 방 안에 혼자 있어도 봄날의 개구리, 가을의 귀뚜라미를 떠올리게 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두가 힘겨운 이 때, 우주가 펼쳐내는 인과의 사슬이 얼마나 촘촘한지를 느끼며 겸손하게 주어진 일을 다하고 싶습니다.
작가 소개
오선민
동화인류학자. ‘인문공간 세종’ 연구원. 대학원에서는 한국근대문학을 전공했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며 위대한 작가가 되려고 했으나 실패!^^ 모든 글은 시도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이치 하나를 얻고 근대문학의 산에서 하산했다. 그때부터 어딘가에 있을 훌륭한 진리를 찾아다니는 대신 발밑의 작은 것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인문공간 세종’에서 만난 친구들과 동화, 전설, 민담 등 옛이야기를 읽으며 밥하고 청소하기의 인류학을 한다. 쓴 책으로 『자유를 향한 여섯 번의 시도?: 카프카를 읽는 6개의 키워드』, 『카프카와 가족, 아버지의 집에서 낯선 자 되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찾은 시간 그리고 작가의 길』 등이 있다.
목 차
머리말
프롤로그
1. 동화에는 법칙이 있다
2. 야생의 사고, 공생의 지혜를 구하다
3. 만물을 웃기는 이야기의 힘
1부 우리는 모두 고아다
1. 작은 것들은 트랜스포머
소녀는 울지 않는다 : 「재투성이 아셴푸텔」
누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가??: 「숲속의 세 난쟁이」
2. 영웅, 죽음의 문턱을 넘어오는 자
왕관의 무게, 죽음의 무게 : 「길가메쉬 서사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 「배낭과 모자와 뿔피리」
3. 하인과 고양이의 양생술
하인은 충성한다, 자연의 법칙에 : 「충성스런 요하네스」
고양이 장화와 숲의 에티카?: 「철의 사나이 한스」, 「장화 신은 고양이」
4. 계모의 편집증과 백설 공주의 분열증
공주와 왕비의 정신병 : 「백설 공주」
유리구두 밑에서 한없이 뻗어나가는 인연
2부 미로의 시련
1. ‘갑자기’ 그리고 ‘어쩌다’의 세계
출발지도 없어, 목적지도 없지?: 「개구리 왕자」
황금보다 귀한 보물, 지금?: 「무서움을 배우려고 길을 떠난 젊은이 이야기」
2. 차이와 반복, 개구리의 영원회귀
끝도 없이 미션이 밀려오네 : 「황금 새」
목적은 없어, 생성만 있지 : 「엄지 동자」
3.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행복’, 뜬금없고 재미도 없는 이상한 상황 : 「라푼첼」
소유가 아니라 접속! 어디에도 붙들리지 않는 인연 : 「수수께끼」
3부 아이는 숲에서 자란다
1. 숲, 창발하는 생명터
조심해, 저곳에 식인 할머니가 있어 : 「빨간 모자」
내가 낳는 너, 네가 낳는 나 : 「헨젤과 그레텔」
2. 숲의 죽음을 넘보지 마라
언제나 당신 곁에는 죽음의 입김이 : 「노간주나무」
생과 사, 모순은 공존한다 : 「트루데 부인」,「푸른 수염」
세상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3. 숲은 노래한다
이언어(異言語)적 말하기의 지혜 : 「까마귀」,「굴뚝새」
주술의 메아리가 울려퍼지다 : 「도둑과 세 아들」
4부 동화의 네트워킹, 열린 삶을 향한 한 걸음
1. 증여의 언덕과 교환의 늪
선물만이 살길이다 : 「룸펠슈틸츠헨」①
숲의 상호부조론 : 「룸펠슈틸츠헨」②
2. 웃지 않는 공주와 그림자 노동
웃겨야 사는 남자 : 「지빠귀 부리 왕」
너의 손이 너를 구한다 : 「홀레 할머니」
세계는 공생터 224
3. 변신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의 피부는 너무 얇아서 : 「오누이」
한때 나는 곰이었어 : 「악마의 때꼽쟁이 동생」, 「곰가죽 사나이」
에필로그
1. 바느질, 매 순간 ‘연결’을 실험하는 이야기 기술
2. 동화, 장수의 철학
부록 : 그림 형제, 메르헨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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