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코로나19 팬데믹의 향방은
애그리비즈니스와 생태적 농업 간의
싸움에 달려 있다
2020년 국내에 번역된 전작『팬데믹의 현재적 기원』(원제: Big Farms Make Big Flu)에서 코로나 변종의 잠재적 치명성을 예고했던 진화생물학자이자 역학자 롭 월러스가 신작 『죽은 역학자들 Dead Epidemiologists』에서 지금 우리가 향후 몇 세대의 운명이 걸린 갈림길에 서 있다며 단순한 방역이나 백신만으로는 앞으로 계속해서 닥칠 글로벌 전염병들에 맞설 수 없다며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한다.
저자는 2002년 중국 광둥의 사스, 2013년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중국 우한의 코로나19 모두 종간 장벽을 넘어 인간에게 치명상을 가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람들은 박쥐 동굴을 이 질병의 시발점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 그곳은 기원 찾기의 종착점일 뿐이라 한다. 문제의 근원은 신자유주의 문명의 야생지역 파괴와 공장형 축산을 포함한 애그리비즈니스이고, 코로나19 팬데믹의 향방은 애그리비즈니스와 생태적 농업 간의 싸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작년 1월 자신의 코로나19 투병 경험을 시작으로 해서 7월까지 쓴 글과 인터뷰를 모은 것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원에서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부르고야 만 애그리비즈니스의 실체, 그리고 무기력할 뿐 아니라 나쁘기까지 한 역학자들의 실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놀랍게도 오늘날까지 세계가 겪었던 일을 미리 예측해 놓은 것 같이 정확하고 생생하다.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테이터가 쌓여 가면서 이 전염병을 조금씩 더 알게 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역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바이러스만 들여다볼 뿐 병원체가 등장하는 더 큰 인과관계를 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지난 10년 동안 그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알아내겠다면서도 조사해 보기 꺼렸던 것들이 무엇인지 그 핵심을 짚으며 진실에 접근한다. 맑스주의 역학자의 코로나19 팬데믹을 뚫기 위한 지도이다.
공장형 축산은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면역학적 ‘방화벽’을 걷어낸 것과 다름 없다
그런데 공장형 축산이 코로나19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롭 월러스가 이 책에서 내내 강조하는 것이 바이러스의 ‘이주’ 현상이다. 야생지역이 파괴된 결과 많은 야생종이 자취를 감췄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들도 있는데 박쥐, 거위, 천산갑, 쥐 등이 그런 사례다. 이들을 숙주로 삼은 병원균이 오랜 서식지를 넘어 야생동물에게서 가축과 인간의 세상으로 넘쳐난(스필오버) 결과 종간 감염이 빈번해지고 병원체가 다양해졌다. 그 뒤에는 거대 농축산업이 있다.
저자는 유전자 단계부터 사료 선정, 생장, 운반까지 단기간 안에 이윤을 극대화한 공장형 축산을 포함한 애그리비즈니스는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면역학적 ‘방화벽’을 걷어낸 것과 다름없을 뿐만 아니라 공장형 축산에서 가축을 키우는 방식이 향후 수십억 명의 목숨을 빼앗을 병원체를 선택하는 과정이 될 것임을 경고한다.
예를 들어, 칠면조 1만 5천마리 또는 산란계 25만 마리를 몰아넣고 키운다. 이처럼 유전적으로 비슷한 동물들을 한군데 몰아넣으면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유전적 방화벽을 없애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 상태에서는 병원체가 다양한 면역 체계들을 뚫어야 하는데 모든 닭이 면역 체계가 똑같으면 병원체는 그 하나만 뚫으면 된다. 게다가 그토록 많은 닭을 한군데 모아놓으면 사실상 가장 빠르게 전파되는 병원체가 선별되게 된다는 것이다. 공장형 축산이 아닌 상황에서는 어떠할까? 병원체가 너무 강력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다음 숙주를 마련하기 전에 숙주가 죽어버린다. 그래서 야생의 숲에서는 다양하고 복잡한 생물들이 있어 치명률이 일정 수준 이상 높아지기도 어렵고, 또 어쩌다 치명적인 병원체가 등장하더라도 연쇄적으로 숙주를 확보하는 데 곤란함이 있기에 숲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수많은 닭이나 돼지 등이 한곳에, 그것도 아주 높은 밀도로 모여 있으면 병원체 입장에서는 이런 점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음 숙주가 언제나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애그리비즈니스 농법은 자신을 방어할 자체적 수단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병원체가 종간 이동을 통해 동물과 사람에게 옮게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필드 기원설? 실험실 기원설?
“역학자들은 바이러스만 들여다볼 뿐 병원체가 등장하는 더 큰 인과관계를 보지 않는다”
지난 2년을 거치면서 코로나19의 기원에 관한 의문이 모두 해소되었을까? 저자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코로나19의 기원에 관한 현재 주류 과학계의 입장은 야생 박쥐를 숙주로 삼던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넘어 인간에게 전파됐다는 필드(야생) 기원설인데 월러스도 이 가설에 동의한다. 모든 정황을 고려했을 때 저자는 코로나19가 이미 수년 전부터 종간 장벽을 넘어 인간에게 전염됐고, 다만 우한에서 사람 간 감염이 가능하도록 변이했다는 것이다. 2002년 사스가 발생했을 때 역학자로 참여했던 저자는 당시 수집된 중국 남부와 중부의 박쥐 샘플들은 온갖 종류의 균주가 그곳에 돌고 있었고 역학자들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사람들 사이에 상당히 퍼졌다고 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코로나19는 유행할 조건이 이미 갖춰져 있었고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일찍부터 전파되고 있었으 수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코로나22, 24가 오고 있을 확률이 높은데 왜냐하면 종간 장벽을 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주류 과학계에서 이런 내용이 간과되었을까? 롭 월러스는 자본에 포섭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코로나19의 기원으로 야생먹거리 시장을 거론하는 것은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이다. 저자는 애그리비즈니스가 산업적 먹거리 생산은 물론 박쥐나 사향고양이 등 야생 식량 시장까지 지원해온 바로 그 자본에 의해 병원체의 종간 접촉면이 넓혀지며 새로운 전염병의 동학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발병 지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역학을 만들어낸 세계의 정치, 경제적 요인들 사이의 관계를 무시하는 것으로, 절대적 지리가 아닌 ‘관계적 지리’를 고려하면 감염병의 핫스팟은 뉴욕, 런던, 홍콩 등 세계 자본의 원천 같은 곳이라 역설한다.
한편 저자는 이른바 우한의‘실험실 기원설’도 주요하게 검토한다. 중국 혐오론과 숱한 음모론의 무대로 우한을 비롯한 중국 곳곳의 연구소가 거론되는데 정작 미국이 이 연구소들의 자금줄이었음은 공공연한 비밀임을 지적한다. 저자는 코로나19에 관한 역학조사가 아직 충분치 않다고 한다. 필드 기원설이든 실험실 기원설이든 오늘날 농축산업의 실태, 야생 지역을 침범하는 문제, 공장형 생산, 더 많은 사람을 죽일 균주를 사실상 선별하는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본을 위한 팬데믹 연구, 사람을 위한 팬데믹 연구
중국, 베트남, 뉴질랜드, 아이슬란드, 한국, 대만 등은 그나마 보건의료 시스템을 작동시키며 사람들을 보호하는 방향을 추구했지만 신자유주의 국가들은 공공재라는 개념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한다. 보호하기는커녕 공공재로 자기들의 부를 늘리고 있다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세계화라는 거대 농축산업의 현실을 직시해야지 앞으로 계속해서 닥쳐올 글로벌 전염병들에 근본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감염병 팬데믹에 맞서 현실적으로는 이웃끼리 도울 수 있는 모임을 조직하고, 세계의 모든 사람이 무상으로 백신과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항바이러스제와 의료품을 특허 없이 대량 생산할 수 있게 하고, 실업과 의료 급여 등 경제적 지원을 보장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나아가 자본에 의한 세계화가 아닌 반자본주의 진영의 국제주의이며, 기업을 위한 가축 전염병 연구가 아닌 ‘사람을 위한 팬데믹 연구’가 가야 할 방향임을 주창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진행 과정을 따라가며 생생히 밝히는
아무도 말하지 않은 감염병의 진짜 세계
롭 월러스가 이 책을 집필할 시점인 2020년 7월 당시는 백신이 출시되기 전 단계였다. 그 시점 저자는 백신의 효과에 많은 의문을 던진다. 아르트라제카는 3상 임상 실험을 일부 건너 뛰었고,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홍역 백신 같은 ‘살균면역’을 제공하는 백신이 아니라 감염되었을 때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수준의 면역력을 제공할 뿐으로 예상했다. 1년이 흐른 지금 저자의 분석은 정확하다.
지금도 병원체가 종간 장벽을 넘은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역사적 맥락에서 애그리비즈니스에 의한 전염병의 진화가 어떠한지 등의 근본적인 진단과 처방을 방기한 채 백신 개발로 자본의 이익을 도모하고 글로벌사우스 세계를 다시 종속하는 신자유주의 세계의 전략적 대응에서 백신이야말로 구조적 원인과 개입의 방향을 가리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그는 기업과 정부뿐 아니라 ‘좌파’ 지식인과 동료 학자, 심지어 대안적인 농업을 주장해 온 운동가 등을 향해서도 날선 비판의 칼을 전방위로 휘두른다.
2020년 1월에서 7월까지 쓴 이 책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지구 전체를 마비시켜 나가는 과정을 생생히 해설하는 가운데 단순 방역과 백신 처방 이외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은 감염병의 진짜 세계를 밝히는데 특별한 의의가 있다. 아직도 다가올 ‘팬데믹 X’에 맞서기 위한 노력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구체화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롭 월러스가 내놓은 근본적인 지적들은 축산이나 보건의료를 넘어 인류 모두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게 해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롭 월러스
진화생물학자이자 맑스주의 역학자. 그는 스스로를 공중보건 계통지리 학자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현재 미네소타 대학교 글로벌연구소 방문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빙햄튼 대학에서 생물학 석사를,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생물학 박사를 마쳤다. 2007~2010년까지 유엔 식량 농업기구(FAO)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농업생태학과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 H5N1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저서로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Big Farms Make Big Flu』, 공저로는 『Neoliberal Ebola: Modeling Disease Emergence from Finance to Forest and Farm』, 『Clear-Cutting Disease Control: Capital-Led Deforestation』 등이 있다.
옮긴이 : 구정은
신문 기자로 오래 일했다. 분쟁이나 재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강한 것보다는 힘없고 약한 것, 글이든 물건이든 쓰는 것보다는 안 쓰는 것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이 있고, 함께 지은 책으로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 『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 등이 있다.
옮긴이 : 이지선
18년간 신문사에서 일했고, 2021년부터는 스타트업 트레바리에서 일하고 있다. 말할 통로가 있는 이들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찾고, 듣고, 쓰고 싶다. 함께 지은 책으로 『디지털 네이티브 스토리』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 『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 등이 있다.
목 차
옮긴이 서문
서문
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기록
2 “애그리비즈니스가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갈 것”- 인터뷰
3 코로나19와 자본 회로
4 “국제주의로 세계화를 쓸어 내자”- 인터뷰
5 살육의 장
6 제곱근
7 한겨울-19
8 피를 뽑는 기계
9 거대 농업 병원균의 기원
10 사람을 위한 팬데믹 연구
11 밝은 전구
12 박쥐 동굴 속으로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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