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극작가 최기우의 세 번째 희곡집이다. 전주시립극단과 함께 한 「누룩꽃 피는 날」(2010)과 극단 까치동과 호흡을 맞춘 「교동스캔들」(2013), 「은행나무꽃」(2014), 「수상한 편의점」(2015), 「조선의 여자」(2020) 다섯 편을 실었다. 인간 생활의 모순과 사회의 불합리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수상한 편의점」을 빼면 모두 전주(전북)의 역사ㆍ문화와 관계가 깊다.
표제작인 「은행나무꽃」은 전주한옥마을 ‘600년 은행나무’에서 비롯됐다.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알려진 최담(1346∼1434)과 그의 아들 최덕지(1384∼1455)의 삶과 인품, 집안 내력에 얽힌 이야기다. 작가는 최덕지와 은행나무를 소재로 「은행나무 연가」(2012), 「교동스캔들」(2013), 「은행나무꽃을 아시나요」(2014), 「은행나무꽃」(2014) 네 편의 희곡을 썼다.
‘은행나무’를 제목으로 한 세 작품의 배경은 성리학이 삶과 국가 통치 이념으로 굳어지며 권문세가와 사대부가 대립하던 1400년대 고려 말과 조선 초. 힘이 있으면 거짓도 참으로, 참도 거짓으로 만드는 세상이다. 세 작품 모두 최덕지와 그의 첫 번째 아내인 이이화(가상 인물)가 이야기를 이끈다. 마주 보며 사랑을 나누고 싶어 했던 남녀가 사랑을 틔우기도 전에 이별해야만 했던 사무치게 아름다운 사랑. 「은행나무 연가」는 두 사람의 사랑에 초점을 맞췄고, 「은행나무꽃을 아시나요」는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을 더 세밀하게 담고 전주의 지역성을 강화했다. 「은행나무꽃」은 시사성 있는 대사와 상황을 추가하며 성장하는 이이화와 최덕지, 민중의 모습을 넣었다. ‘벼꽃과 감자꽃이 펴야 백성의 삶이 평안하고 사대부의 시문보다 백성의 태평가가 나라를 더 강성하게 한다.’라고 믿는 이이화, 상하ㆍ존비ㆍ귀천의 명분과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방황하며 인화(人和)의 참뜻을 찾아가는 최덕지, 그리고 지난 왕조에 대한 미련과 새 왕조에 대한 기대 속에서 방황하는 민중이다. 백성들은 이이화와 최덕지가 들려준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에 감격하며 소박하게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이들의 마음과 마음은 오래 묵은 나무의 향을 닮았다. 이 작품은 제30회 전북연극제에서 최우수작품상ㆍ희곡상ㆍ연출상ㆍ최우수연기상을, 제32회 전국연극제에서 작품상(은상)과 희곡상을 받았다.
전주한옥마을을 배경으로 한 「교동스캔들」은 과거에 인연을 맺지 못한 남녀가 전주한옥마을에서 다시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인연을 잇는 내용이다. 은행나무가 늘 사람들 곁에서 자라듯이 여전히 은행나무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표면적으로는 두 남녀의 사랑과 이별과 해후를 그리지만, 그 속에 세상과 인간의 근본에 대한 물음이 깊게 배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한 ‘2013 공연예술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됐으며, 그해 언론사와 문화계에서 ‘가장 전주다운 연극’으로 평가받았다.
「수상한 편의점」은 작가의 첫 작품인 「귀싸대기를 쳐라」(2001)의 2015년 버전이다. 서민이 불행한 나라, 갑질에 주눅이 든 세상, ‘정말 먹고살기 힘들다!’ 하는 생각이 들 때, 가끔은 귀싸대기의 짜릿함을 느끼고 싶다. 그러나 소시민은 소심한 복수만 할 뿐이다. 2015년 봄날, 경찰서 앞 편의점. 이곳 주인인 경선과 호영 부부, 시간제 직원인 유정과 희찬, 단골손님인 성후는 우연히 가게에서 벌어진 바바리맨과의 촌극으로 귀싸대기 때리는 맛을 알게 된다. 이후 편의점을 찾은 무례한 손님들과 법망을 피해 가면서 나쁜 짓을 벌이는 사람들을 찾아가 몰래 귀싸대기를 때리는 황당한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 TV와 신문을 통해 들리는 세상사는 그 마음을 더 간절하게 한다. 이들은 더 큰 일탈을 꿈꾸지만, 현실은 쉽게 바뀔 수 없다는 듯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상한 편의점」은 제31회 전북연극제에서 희곡상을 받았다. 2016년에는 전라북도 대표 희곡을 영화화하는 전주영상위원회의 ‘전북 문화콘텐츠 융복합 사업’에 선정돼 도희ㆍ박효주 주연의 영화 <아지트>(감독 강경태)의 원작이 되었다.
「누룩꽃 피는 날」은 전주시립극단의 창단 25주년 기념공연이자 제88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극단이 전주의 자산을 소재로 한 연작을 무대에 올리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한(韓)스타일 세계화의 첫 시도였다. 값도 다르고 안주가 나오는 방식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른 전주의 막걸릿집들처럼 작품은 갖가지 이야기와 끊임없는 사건이 이어진다. 60ㆍ70년대 신석정 시인과 문학청년들, 극작가 박동화와 연극인들, 하반영ㆍ권경승 화백과 미술인들, 80년대 동문거리를 휘젓던 박봉우 시인, ‘정읍대학원’이라고 불렸던 <정읍집>과 <세종집>ㆍ<경원집>ㆍ<한성집>ㆍ<덕집>ㆍ<후문집>ㆍ<신후문집>ㆍ<원조 후문집> 등 주객의 발길을 붙잡았던 선술집과 학사주점, 막걸릿집보다 더 부산했던 백반집과 닭내장탕집들. 빈 주전자가 늘어날수록 더 근사한 안주들이 나오는 것처럼 작품 속 구수한 이야기를 따라가면 더 아련한 기억들이 꺼내진다. 두레와 새참의 정겨운 풍경, 양조장과 정미소, 심부름 길에 슬쩍 마시는 막걸리, 판소리 명창과 쑥대머리 한 대목, 정부의 막걸리 규제와 과보호, 치기 넘치는 대학생들의 목청 높은 논쟁, 탁자를 두드리며 불러 젖히는 민중가요, 움푹움푹 찌그러진 노란 양은주전자, 재빠른 주인장의 손놀림과 한정식 못지않은 푸짐한 상차림, 삼천동ㆍ평화동의 막걸리골목, 막쿠르트, 막걸리 마시기 대회…. 작품을 읽으며 여러 사람의 추임새가 더해지면 더 감칠맛 나는 작품이 될 것이다.
「조선의 여자」는 다 아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곁의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태평양전쟁과 위안부, 창씨개명, 신사참배, 미군정 등 1940년대 해방을 전후로 긴박하게 살았을 우리의 거친 가족사와 그 속에서 여전히 고통을 안고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 서글프게 담겨 있다. 소리를 좋아하는 열일곱 살 처녀 송동심. 그녀는 밝게 살고 싶지만, 그를 둘러싼 이들의 삶은 언제나 그를 옥죈다. 도박판을 전전하는 아버지 송막봉과 본처인 반월댁, 아들을 얻기 위해 들였지만, 자신을 낳고 식모처럼 사는 어머니 세내댁, 철없는 언니 순자, 횡령으로 직장을 잃은 형부 백건태, 일본에 충성을 다하는 남동생 종복… 이들은 한집안이라고 말하기에 너무나 불편한 가족이다. 아버지는 돈에 현혹돼 딸을 팔아넘기고, 반월댁은 아들 종복이 황군에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동심이 위안부로 가는 것을 허락하고, 형부 건태도 직장을 얻기 위해 처제를 넘긴다. 하지만 운명은 순자와 동심 자매 모두를 위안부로 끌려가게 한다. 작품은 일개 가족의 이야기로 그려지지만, 속내는 국가의 폭력이며, 시대의 아픔이다. 이 작품은 제36회 전북연극제에서 최우수작품상ㆍ희곡상ㆍ연출상ㆍ최우수연기상, 제38회 대한민국연극제 작품상(은상)ㆍ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짓뭉개진 오욕의 역사. 누르면 솟구치고, 썩히면 발효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여성이여, 노동자여, 소시민이여, 결단코 무익하게 부서지지 말라!
작가 소개
최기우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한 이후 연극·창극·뮤지컬·창작판소리 등 무대극에 집중하며 100여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특히, 전라북도의 인물과 설화, 역사와 언어, 민중의 삶과 유희, 흥과 콘텐츠를 소재로 한 집필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희곡집 <상봉>과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인문서 <꽃심 전주>와 <전주, 느리게 걷기>, <전북의 재발견> 등을 냈다. 현재 최명희문학관 관장.
목 차
_은행나무꽃ㆍ7
_조선의 여자ㆍ69
_수상한 편의점ㆍ127
_교동 스캔들ㆍ197
_누룩꽃 피는 날ㆍ255
_덧대는 글(작가의 글)ㆍ312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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