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1918년, 현대 과학은 유행병과 최초로 정면충돌했다
미국의 전염병 방어 체계 수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대작
2020년 빌 게이츠 추천 도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52주 연속 베스트셀러
2005년 미국 국립과학원 선정 올해의 과학책
“우리는 지금 미증유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에서
그 비교 대상을 찾고자 한다면 1918년 독감 팬데믹에서 가장 흡사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었던 유행병에 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1918년은 지금과 아주 다른 시대였지만,<그레이트 인플루엔자>는
우리가 많은 면에서 여전히 똑같은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훌륭한 책이다.”
-빌 게이츠
미국의 국가 전염병 방어 체계 수립에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인 대작
“이 주제에 관한 가장 완전하고, 가장 풍부하고, 가장 포괄적인 역사” - 뉴욕 타임스 북 리뷰
2020년 코로나 사태가 닥치기 전까지, 1918년 독감 팬데믹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에게 그건 역사책에나 나오는 옛날이야기였다. 그런데 2005년 미국의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믿음은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생겨났다.
2005년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보건장관 마이크 레빗이 건네준 1918년 독감 팬데믹을 주제로 한 신간 한 권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는 그 책을 다시 내려놓을 수 없었다. 워싱턴으로 돌아온 부시는 국가안보 담당 수석보좌관 프랜 타운센드를 대통령 집무실로 불러 역사가 존 배리가 쓴<그레이트 인플루엔자>를 읽어 보라며 건넸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100년마다 한 번씩 이런 일이 일어나. 국가적인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어.”
그렇게 해서 미국 역사상 가장 종합적인 팬데믹 대비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 계획에는 세계적인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 새롭고 빠른 백신 기술 개발을 위한 자금 지원, 마스크와 산소 호흡기 같은 긴급 보급품의 물량 비축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 부시가 이런 팬데믹 대비 구상을 말했을 때 보좌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건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테러와의 전쟁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 국가 안보와 관련한 현안도 산적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날 법하지 않은 많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비행기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탄저균이 우편으로 배달되고 있었다. 그러니 1918년과 같은 팬데믹이 다시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부시 행정부는 야심 차게 계획을 밀어붙였다.
2005년 11월 국립보건원에서 한 연설에서 부시는 이렇게 말했다. “팬데믹은 많은 면에서 산불과 닮았다. 조기에 진화하면 별다른 피해 없이 불을 끌 수 있다. 하지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빨리 발견하지 못하면, 불길이 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나 급속히 퍼지며 지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부시는 팬데믹이 다른 재난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재난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의료 인력과 적절한 장비 공급이 필수적이다. 팬데믹 사태가 터지면, 주사기에서 병원 침상, 인공 호흡기, 마스크, 보호 장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공급 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과학자들 앞에서 부시는 그러한 사태가 터지면 기록적인 시간 안에 백신을 개발해야 하고 팬데믹의 압력에 맞서기 위해 전 국민에게 백신 주사를 맞혀 면역력을 갖추게 할 수 있을 만큼 생산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가 팬데믹이 터지기만을 기다린다면, 그땐 이미 대비하기에 너무 늦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바로 행동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무수한 사람이 불필요하게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후 코로나 사태가 터져 부시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부시의 선견지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우왕좌왕하며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유행병에 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관점의 폭과 연구의 깊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작<그레이트 인플루엔자>는 2004년 출간 당시에도 주목을 받으며 곧바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2005년 미국 국립과학원이 지난 1년간 출간된 최고의 과학 및 의학책에 수여하는 케크 커뮤니케이션을 받았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출간 16년 만에 다시 언론의 재조명을 받으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1년 넘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머무르며 지금까지 45만 부 이상 팔렸다. 2020년 빌 게이츠는 이 책을 여름에 읽을 만한 다섯 권의 책 중 한 권으로 추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유행병에 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1918년에 일어난 일들에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책에 쏟아진 대중의 관심을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이 충격적인 사태에 직면해 자신들이 맞이한 현실을 적절히 설명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이 책은 놀라울 만큼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었다.<그레이트 인플루엔자>는 1918년에 일어난 전 세계적인 독감 대유행의 역사만이 아니라 과학, 특히 바이러스의 과학에 대해 깊이 설명하고 있었다. 배리는 바이러스란 무엇이며, 면역계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어떻게 작용해 그토록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이와 같은 유행병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1918년에 일어난 세계적인 독감 대유행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며 과거의 비극으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1918년 독감 팬데믹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배리는 “1918년이 남긴 한 가지 지배적인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정부가 위기 상황에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배리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대중의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왜곡해서는 안 되고, 거짓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키려 해서도 안 되며, 그 누구도 조종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배리가 제시한 교훈은 16년 후 매우 불행한 방식으로 옳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코로나 사태가 닥쳤을 때 미국의 지도자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진실”을 이해하거나 말하는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미국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데 참담할 정도로 실패했다. 배리의 책을 읽고 한 지도자는 팬데믹에 대비할 방어 체계를 만들 생각을 떠올렸지만, 막상 팬데믹이 터졌을 때 이 책이 제시하는 단 하나의 지배적인 교훈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미국의 지도자로 있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역학자의 말마따나 팬데믹 상황에서 트럼프가 미국의 지도자였다는 것은 “역사의 비극”이었다.
1918년 독감 팬데믹은 자연과 현대 과학이 전면적으로 충돌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레이트 인플루엔자>는 1918년에 일어난 전 세계적인 유행병의 원인과 결과를 의학사와 미국사,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추적하며 무수한 갈래의 이야기를 하나의 서사로 엮는다. 배리는 1918년 독감 팬데믹은 “파괴와 죽음, 황폐함에 관한 이야기, 또 다른 인류 사회와 전쟁을 벌이던 한 사회가 여기에 더해 자연과 전쟁을 벌여야 했던 사태에 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과학에 관한 이야기, 발견에 관한 이야기이자 …… 그 지독한 혼란의 와중에 침착하게 사태를 응시하며 탁상공론에 빠지지 않고 단호하고 굳건하게 대처하고자 애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배리에 따르면, 1918년 세계적인 독감 대유행은 “자연과 현대 과학이 전면적으로 충돌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배리는 사회와 문화, 정치 등 당대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자연과 현대 과학이 충돌해 가는 과정을 세밀화를 그리듯 집요하게 그려나간다.
결국 팬데믹이 종식될 때까지 과학자들은 이 질병의 원인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배리는 이렇게 말한다. “궁극적으로 그 독감의 세계적 대유행 사태에서 나온 과학 지식은 의학의 미래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곧바로 가리키고 있었다. 과학 지식이야말로 의학의 미래였으며,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과학이 중요했다. 의학은 과학이 되어야 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사태 해결의 열쇠는 궁극적으로 과학자들의 연구실에 놓여 있었다. 그들이 한 과학에 대한 이해 없이 1918년에 일어난 일들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올바로 이해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그레이트 인플루엔자>는 그러한 이해를 위해 독자들을 과학과 의학의 세계로 깊이 안내한다. 배리는 1918년 독감 팬데믹 사태에 직면한 당대 미국 의학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2000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의학에서 출발한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배리는 과학의 본성과 방법론을 논하고, 의학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아니 의학이 얼마나 오랫동안 발전 없이 정체 상태에 빠져 있었는지 설명하며 의학사와 과학사를 개관한다.
19세기 말까지 미국 의학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과 전혀 달랐다. 그 당시 미국 의학은 과학과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에서 거의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였다. 미국의 많은 의대는 입학 조건으로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실습도 실험도 없었다. 미국의 의학은 혁신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의학은 과학적이 될 필요가 있었다. 배리는 이처럼 형편없는 수준이었던 미국의 의학이 어떻게 세계 최고 수준의 의학으로 변모하게 되는지 설명한다. 1918년 독감 팬데믹이 터졌을 때, 미국의 의학, 특히 폐렴 연구는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하여 미국 의학을 혁신시킨 주역들과 그들이 길러낸 제자들은 사태 해결에 앞장서게 된다. 배리는 이 과학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려내며 과학을 한다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있게 보여준다. 그 안에는 비전과 성취만이 아니라 긴장과 흥분, 절망과 슬픔이 깊이 배어 있다.
특히 배리가 들려주는 인플루엔자균을 둘러싼 이야기는 과학의 세계에서 연구자로 일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독일의 저명한 과학자 리하르트 파이퍼는 독감에 걸린 사람에게서 끝이 둥근 막대 모양의 작고 가느다란 세균을 분리해 냈고, 이 균이 독감의 원인이라고 확신한 그는 이 세균에 인플루엔자균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과학자들은 이 세균을 파이퍼균이라고 부르며 거장의 발견에 찬사를 보냈다. 그의 발견을 의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18년 독감 팬데믹 당시 수많은 과학자가 독감 환자에게서 이 인플루엔자균을 찾으려 애썼다. 이 균을 찾지 못하면 과학자로서 실력이 부족한 것으로 의심받거나 이 병은 독감이 아니라고 진단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지듯이, 인플루엔자균은 독감의 원인이 아니었다. 독감의 원인이 바이러스라는 사실은 여러 해가 지난 뒤 밝혀진다. 하지만 거장의 발견을 의심하며 끝까지 독감의 원인을 규명하려 했던 한 과학자의 집요한 노력은 DNA가 유전암호를 지닌다는 사실을 밝히는 결정적인 연구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한 군 지휘관과 정치가들
제1차 세계대전이 정점에 달한 1918년 겨울,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독감 바이러스가 미국 캔자스주의 한 군 기지에서 발병해 미군 병력을 따라 동진해 갔다. 그러고 나서 전 세계적으로 폭발해 1억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단 24주 만에 24년간 에이즈로 죽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고, 1년 만에 한 세기 동안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이 질병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배리는 이 정체 모를 질병이 이동해 가며 사람들을 쓰러뜨리는 발자취를 좇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취를 따라가며 질병의 역학과 병리학, 병원체를 알아내려는 과학자들의 분투를 그린다. 이 책이 탐정 소설이나 과학 소설처럼 읽히는 이유다. 하지만 배리는 1918년 독감 대유행 사태를 병인론적이고 과학적으로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배리의 관심사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이 같은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응했으며, 무엇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고, 그로부터 어떤 교훈을 도출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개인과 사회, 국가가 이 사태에 보인 반응을 정밀하게 추적하며 배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사태를 이토록 키운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칭찬받아야 하고, 누가 비난받아야 하는가. 어떤 조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미래에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사태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전쟁에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자연이 독감 바이러스를 통해 인류를 공격할 훌륭한 터전을 마련했다. 참전을 결정한 미국은 신병 양성을 위해 한 곳에서만 수만 명씩 수용하는 거대한 군 기지들을 세웠고, 그렇게 급조한 군 기지 막사에 신병들을 수용 인원을 초과해 욱여넣었다. 그 안에서 독감 바이러스는 손쉽게 숙주를 찾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발병한 지 24시간 안에 감염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강력해졌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병력의 과밀 수용과 병력 이동, 군중이 모이는 공개 행사가 불러올 위험을 경고했지만, 군 지휘관과 정치가들은 이러한 경고를 대체로 무시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가혹한 대가를 치렀다.
전쟁이 터질 때 가장 먼저 죽는 것은 진실이다
배리가 반복해서 말하듯이, 이 병은 독감, 그저 독감일 뿐이었다. 하지만 독감 바이러스는 사람들이 방심할 때마다 그 틈을 파고들었다. 군 기지에서 발생한 독감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배리는 특히 한 기지에서 일어난 비극에 주목한다. 그랜트 기지의 사령관은 겨울이 다가오며 날씨가 추워지자 텐트를 치우고 막사에 신병들을 과밀 수용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자신이 이 질병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독감이 발생하자 온갖 조치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기하급수로 늘어나기만 했다. 게다가 기지에서 첫 사망자가 나온 바로 그날, 3,108명의 병력이 다른 기지로 가는 열차에 올라탔다.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열차에 탔던 병력의 4분이 1이 곧바로 기지 병원에 입원했고, 결국 2,000명에 이르는 병력이 입원하게 된다. 그중 143명이 사망한 뒤부터는 사망자 집계가 더는 불가능했다. 이동한 기지 병력과 합산해 사망자가 집계되었기 때문이다. 기지 사령관 해거던 대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혼으로 군과 장병들이 삶의 전부였던 그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병은 독감, 그저 독감일 뿐이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할 때마다 독감 바이러스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미국에서 최대의 비극은 필라델피아에서 벌어졌다. 필라델피아시 당국은 전시 공채 판매 촉진을 위한 시가행진을 계획하고 있었다. 수천 명이 시가행진하고 수십만 명이 이를 지켜볼 예정이었다. 일부 보건 책임자들과 의사들은 행사를 취소해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시 당국은 이를 무시하고 1918년 9월 28일 행사를 예정대로 강행했다. 시 당국과 언론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경고를 무시한 대가는 너무나 컸다. 시가행진이 있은 지 72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그 도시에 있는 31개 병원의 모든 병상이 꽉 찼다. 그리고 불과 열흘 만에 유행병은 하루에 수백 명이 감염되고 한두 명이 사망하던 수준에서 매일 수십만 명이 걸리고 수백 명이 사망하는 수준으로 폭발적으로 불어났다. 그 와중에도 시 당국과 신문들은 계속 위험을 축소해서 보도했다. 사망자가 매일 수백 명씩 발생하며 갈수록 늘어가는 상황에서 신문은 보건 당국의 말을 인용해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독감 유행이 정점에 다다랐다.” “유행병이 정점을 지났다고, 보건 당국은 확신한다.” 사망자가 두 배, 네 배로 늘어나는 순간에 필라델피아시의 공중보건 책임자는 여전히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과장된 보도에 겁먹거나 공황 상태에 빠지지 마십시오.” 거리에 시신이 쌓였고, 인부들은 무덤을 파기를 거부했고, 이내 관마저 부족해졌다.
1918년에 세계는 두 개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나는 한 인류 사회가 다른 사회와 벌여야 했던 전쟁 즉 제1차 세계대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연과 벌여야 했던 전쟁 즉 유행병과의 전쟁이었다. 참전을 선언한 미국은 국가 전체를 전시 체제로 바꾸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인간끼리의 전쟁에 이기는 데만 집중했고, 다른 전쟁은 도외시했다. 놀랍게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독감 대유행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모두 제거하려 했다.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반역이었다. 따라서 언론은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무수한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죽어 가는 상황에서도 언론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만 되뇌었다. 1917년 미국의 한 상원의원이 한 말은 당대의 이러한 현실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전쟁이 터질 때 가장 먼저 죽는 것은 진실이다.”
윌슨은 전후 처리를 위해 파리에서 열린 회담 중에 독감에 걸려 쓰러졌는데, 배리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가정을 한다. 그때까지 윌슨 대통령은 “승리 없는 평화”를 주장하며 프랑스 총리 클레망소가 독일에 부과하려는 가혹한 조항들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회담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병에서 회복한 뒤, 윌슨의 태도는 달라졌다. 그는 클레망소가 요구한 조건을 순순히 다 받아들였다. 배리는 윌슨의 병이 히틀러의 등장에 기여했다고 본다. “역사가들은 파기 강화 조약의 혹독한 조항들이 독일에 경제적 곤경과 국민적 반발, 정치적 혼란을 야기함으로써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을 촉진했다고 거의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1918년 독감 팬데믹이 남긴 단 하나의 교훈 ― 정부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퓰리처상을 두 차례 수상한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미국과 바이러스: 리더십의 거대한 실패」라는 글에서 왜 미국이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는 데 그토록 처참하게 실패했는가를 분석하며 그 원인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그 행정부의 무능을 지목한다. 그는 이 같은 일이 미국에서 벌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다며 이렇게 말한다. “사망진단서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죽음의 원인으로 기록할지 모르지만, 광의적인 의미에서 엄청나게 많은 미국인이 정부의 무능 탓에 사망했다.”
더욱 답답한 일은 2020년 10월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발표한 324페이지에 이르는 연구 보고서가 보여주고 있듯이 “불과 1년 전만 해도 미국은 특히 이러한 위기를 대처하는 데 잘 준비된 것으로 보였다는 사실”이다. 크리스토프는 그 공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돌아간다고 말한다. “그는 2005년 여름에 1918년 독감 팬데믹을 다룬<그레이트 인플루엔자>를 읽었다. 이 책을 읽고 충격을 받은 부시는 보좌관들에게 또 다른 팬데믹에 대비할 국가 전략을 세우라고 지시했고, 그 결과로 그와 같은 보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396페이지에 이르는 실행 매뉴얼이 탄생했다.” 부시가 준비했던 국가적인 전염병 방어 체계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업데이트되었고, 오바마의 보좌관들은 2016년 대통령직을 인계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에 국가 안보에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는 전염병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러한 경고를 무시했다. 코로나 사태가 닥치자 트럼프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유행성 독감 정도로 치부하며, 거짓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만 들었다. 2020년 2월 27일 트럼프는 “바이러스가 사라지는 중”이고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코넬 대학교가 수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대통령은 코로나19에 대한 잘못된 정보의 최대 전파자”였다. 트럼프는 정부에서 일하는 저명한 과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이들을 소외시키고 조롱했다. 그 대신 그는 폭스뉴스의 단골 초대 손님인 방사선과 전문의를 코로나19 자문역으로 앉히는 등 공중보건에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돌팔이들을 추어올렸다. 트럼프는 과학을 불신했다.
크리스토프는 이렇게 말한다. “트럼프는 거의 모든 일을 잘못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마스크를 쓰려는 의욕을 빼앗았다. 행정부는 접촉자 추적 조사를 하지 않았고, 감염자들을 격리할 기회를 놓쳐 그들을 노출시켰다. 양로원과 요양원 등에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문제들을 선명하게 하기보다는 혼란을 일으키는 조언을 했고, 아직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주와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겼다.” 트럼프가 바이러스에 낙관적인 태도로 일관한 이유는 분명했다. 바이러스로 인해 시장이 침체하지 않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재선을 위한 최선의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트럼프는 확진자 수를 줄여보겠다는 심산으로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반대하기까지 했는데, 크리스토프는 이러한 트럼프의 처신은 1980년대에 기대수명이 줄어들자 사망률 통계 발표를 금지한 소련 지도자들의 처신과 하등 다를 바 없다고 맹비난한다. 2020년 10월에도 트럼프는 여전히 “코로나를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트윗을 올리고 있었다. 배리는 분명 트럼프의 이러한 태도에 기시감을 느끼며 전율했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을 때, 알자지라와 한 인터뷰에서 배리는 “너무나 많은 나라에서 실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런 지도자들의 행태는 많은 시민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갈 것”이라고 개탄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코로나에 잘 대처해 온 것으로 보이고, K-방역은 세계적인 모범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백신 부작용과 백신 패스를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에 대해 좀 더 솔직한 태도로 진실을 말해 줄 필요가 있다. 배리는 두 가지 이유로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그래야 사람들은 두려움을 덜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미지의 것에 더욱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는 국민에게 신뢰감을 주어야 한다. 불신이 쌓이기 시작하면, 국민은 정부가 하는 말을 믿지 않으려 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 정책이 아무리 올바르더라도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뭔가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며 국민의 불신을 키우는 것은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리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은 관리하는 게 아니다. 진실은 말해져야 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존 M. 배리
툴레인 대학교 공중보건 및 열대 의학과 교수. 다수의 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1918년 세계적인 독감 대유행을 다룬 [그레이트 인플루엔자]로 2005년 미국 국립과학원이 그해 출간된 가장 우수한 과학책에 수여하는 케크KECK 커뮤니케이션상을, [밀물: 1917년 미시시피강 대홍수와 미국에 일어난 변화]로 미국역사가협회가 수여하는 프랜시스 파크맨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정교분리와 개인의 자유 문제를 다룬 최근작 [로저 윌리암스와 미국의 정신: 교회, 국가, 그리고 자유의 탄생]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그레이트 인플루엔자]는 1918년에 일어난 전 세계적인 유행병의 원인과 결과를 의학사와 미국사,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추적하며 무수한 갈래의 이야기를 하나의 서사로 엮은 대작이다. 또한 이 책은 미국의 국가적인 전염병 방어 체계 수립에 영향을 미친 책으로 유명하다. 2005년 여름 휴가지에서 이 책을 읽고 충격을 받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보좌관들에게 또 다른 전염병 대유행에 대비할 국가 전략을 세울 것을 지시했고, 그 결과 수백억 달러의 예산이 소요되는 전염병 대비 법안과 공중보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실행 계획이 탄생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업데이트해 트럼프 행정부에 넘기며 전염병이 국가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팬데믹에 가장 잘 대비하고 있던 나라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은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트럼프가 코로나19를 “단순한 감기”로 치부하며 거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0년 출간된 지 16년 만에 다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이 책은 불과 몇 달 사이에 3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빌 게이츠는 이 책을 여름 추천 도서 다섯 권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국가적 대재난을 다룬 두 권의 책을 쓴 배리는 홍수와 전염병 대유행에 관한 국가 정책 결정 과정에도 직접 참여했다. 그는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에서 독감 예방 및 대응 대책에 관한 자문을 했고, 유행병 완화를 위한 비약물적 개입 계획 수립에 관여했다. 수자원 문제와 물과 관련된 재난 대책, 위험 소통과 관련해서도 주정부와 연방정부, 세계보건기구와 같이 일했다. 배리는 허리케인 카타리나 이후 뉴올리언스 복구에 기여한 공로로 툴레인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른 책으로 [야망과 권력: 워싱턴 실화], 국립암연구소의 스티븐 로젠버그 박사와 공저한 [형질 전환 세포: 암의 미스터리를 풀다] 등이 있다.
옮긴이 : 이한음
서울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했고, 전문적인 과학 지식과 인문적 사유가 조화된 번역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 전문 번역가로 인정받고 있다. 케빈 켈리,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포티, 제임스 왓슨 등 저명한 과학자의 대표작이 그의 손을 거쳤다. 과학의 현재적 흐름을 발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과학 전문 저술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청소년 문학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바스커빌가의 개와 추리 좀 하는 친구들』, 『생명의 마법사 유전자』, 『청소년을 위한 지구 온난화 논쟁』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다윈의 진화 실험실』, 『북극곰과 친구 되기』, 『인간 본성에 대하여』, 『핀치의 부리』, 『DNA : 생명의 비밀』, 『조상 이야기』, 『매머드 사이언스』, 『창의성의 기원』, 『생명이란 무엇인가』, 『수술의 탄생』, 『제2의 기계 시대』,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동물 박물관』, 『식물 박물관』, 『인체 박물관』 등이 있다. 『만들어진 신』으로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목 차
들어가는 말
1부 전사들
2부 무리
3부 불씨
4부 시작
5부 폭발
6부 역병
7부 경주
8부 조종 소리
9부 여파
10부 결말
후기
감사의 말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옮긴이의 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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