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한 번, 두 번, 다시 또 한 번
힘을 내어 힘껏 바퀴를 밀어!
햇살이 작은 방을 깨우는 아침,
늘보 씨가 서둘러 하루를 시작해요.
기대와 흥분이 가득한 얼굴로 휠체어에 앉아,
비탈길을 내려가고, 횡단보도를 건너,
지하철로 향하는 리프트에 오릅니다.
하지만 목적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늘보 씨가 탈 수 있는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고,
보도블록은 고르지 않아 늘보 씨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죠.
갑자기 내리는 비에 계속 가야 할까,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늘보 씨는 품위를 잃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힘을 내어 힘껏 바퀴를 굴립니다. 한 번, 두 번, 다시 또 한 번…
늘보 씨가 마침내 도착한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늘보 씨의 하루는 멋지게 마무리될 수 있을까요?
김준철 작가의 장애인을 위한 목소리
《늘보 씨, 집을 나서다》는 30년 넘게 신장장애로 투병 중인 김준철 작가가 3년여의 작업 끝에 내놓는 신작입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작가의 오랜 염원을 담은 이 책은, 느리지만 천천히 매일을 살아내는 지체장애인 늘보 씨의 하루를 통해 장애인을 대하는 비장애인들의 시선과 태도, 그리고 장애인이동권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휠체어를 탄 늘보 씨의 하루 이야기
늘보 씨의 하루는 도전처럼 시작됩니다. 지체장애를 가진 늘보 씨에게는 집밖으로의 외출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을 나서기 전, 늘보 씨는 도시락과 물, 구급약을 챙겨요. 오늘 가야 할 길을 떠올려 보며 다짐하듯 후드 재킷의 지퍼도 바짝 올리죠. 마침내 집을 나선 늘보 씨는 계획대로 차근차근 휠체어 속도를 조절하면서 비탈길을 내려가고, 신호가 끊길세라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너며, 지하철을 타기 위해 흔들리는 리프트에 몸을 맡깁니다.
하지만 늘보 씨의 하루는 생각대로 흘러가 주지 않습니다.
어렵게 도착한 버스정류장에서 탈것을 찾지 못해 쓸쓸히 돌아선 것도 잠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죠. 두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리느라 우산을 쓸 수 없는 데다, 빗길에 길이 잘 보이지 않는 탓에 늘보 씨는 크게 넘어지고 말아요.
늘보 씨의 이동을 가로막는 건 장애가 아닌 장애물
늘보 씨가 맞닥뜨린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용 리프트 사망 사고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역사 승강기 설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저상버스 보급률은 전국 30% 수준에 불과하며, 장애인 택시는 턱없는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것이 2021년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깨진 보도블록, 경사로가 설치되지 않은 출입구, 주차금지를 위해 여기저기 설치된 봉과 돌들, 수동 휠체어로는 진입조차 어려운 가파른 경사로들은 오늘도 여전히 장애인의 보행을 어렵게 하고 있어요.
더 높은 편견과 시선의 벽
집을 나선 늘보 씨를 힘겹게 하는 건 휠체어만이 아닙니다. 화살처럼 날아와 박히는 따가운 시선이 늘보 씨를 따라다니기 때문이에요. ‘괜찮아. 잘하고 있어! 나 스스로를 믿는 거야!’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워 보지만, 빗길에 넘어진 늘보 씨에게는 주문조차 소용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비와 우산을 핑계 삼아 모른 척 지나쳐 가는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 멈춰 서서 질문을 건넵니다.
“도와드릴까요?”
“네. 죄송하지만 휠체어만 좀 잡아 주시겠어요?”
존중과 배려가 담긴 질문에, 늘보 씨는 예의를 갖춰 대답합니다. 늘보 씨는 꼭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받고, 품위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또다시 길을 갑니다.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늘보 씨, 집을 나서다》는 동네 뒷산, 하천,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목적지를 오가는 평범한 일상이 도전일 수밖에 없는, 지체장애인의 현실 중 아주 작은 일부를 보여 줍니다.
한편으로 이 책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모른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외면하거나, 힐끔거리는 시선으로 부끄럽게 만들거나, 폭력과도 같은 어설픈 동정을 보이는 비장애인들의 시선과 태도에 질문을 던집니다.
수많은 불편과 불행에도, 가장 덤덤한 건 늘보 씨입니다. 늘보 씨는 별일 아니라는 듯,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온몸이 흠뻑 땀에 젖을 때까지 바퀴를 굴리고 또 굴려 마침내 도착한 곳에서, 늘보 씨는 환한 얼굴로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를 외치죠.
좀 더 많은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왔으면 합니다. -김준철
늘보 씨의 하루가 보다 평안할 수 있는 내일, 모든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당당하게 거리로 나올 수 있는 내일, 이 책은 그런 내일을 꿈꾸는 작가의 바람이자, 세상 모든 장애인들의 목소리입니다.
작가 소개
김준철
강원도에 살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주 오래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옛이야기 그림책 《메기의 꿈》에 그림을 그린 것을 시작으로, 《꼬리 달린 두꺼비, 껌벅이》, 《우리 동네 현식이 형》, 《나 따라 해 봐》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직접 쓰고 그린 책으로 《방귀차》, 《꿈틀》, 《2박 3일 지리산 여행》, 《늘보 씨, 집을 나서다》가 있습니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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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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