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긴 겨울의 끝에 마주하는 찬란한 봄!
백희나 작가가 《나는 개다》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은 우리 옛이야기 〈연이와 버들 도령〉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낸 그림책이다.
옛이야기 속에서 의붓딸 연이는 초인적인 조력자 버들 도령을 만나 계모가 던져 주는 시련을 극복하고 행복을 쟁취한다. 하지만 백희나 작가의 《연이와 버들 도령》은 등장인물의 관계 설정부터가 옛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옛이야기 속 계모를 ‘나이 든 여인’이라 지칭한 것부터가 그렇다. 옛이야기 속 계모든 ‘나이 든 여인’이라 불리면서 갱년기에 접어든 친모일 수도, 새로운 세대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기성세대일 수도, 그저 젊음을 시기하는 늙음일 수도 있게 되었다.
나이 든 여인의 지시에 더없이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던 연이가 달라지는 것은 버들 도령을 만나고서부터다. 버들 도령을 만나고 싶어 몰래 집을 빠져나오는 것은 이전의 연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연이와 버들 도령은 차림새만 다를 뿐 동일 인물로 보인다. 실제로 둘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버들 도령이 연이의 아니무스(여성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남성성)인 까닭이다. 작가는 연이와 버들 도령을 성별만 다른 동일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옛이야기에는 없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버들 도령이 온종일 춥고 배고팠을 연이를 위해 손수 따뜻한 밥상을 차려 내오는 온화한 소년인 점도 인상적이다. 버들잎을 흩뿌려 상추와 진달래꽃을 피워 내는 마법을 지닌 존재임에도 말이다.
연이라는 미성숙하고 수동적인 여성적 자아는 내면의 동굴에서 자신의 아니무스인 버들 도령을 만나고 나이 든 여인의 통제와 억압을 넘어서면서 보다 성숙하고 주체적인 자아로 거듭난다.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계모 설화 중 하나인 〈연이와 버들 도령〉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자아 통합과 성장의 과정으로 재해석해 낸 것이다.
나아가 이 이야기는 펜데믹이라는 긴 겨울을 지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 속에는 이 긴 겨울을 견디게 할 풍요로운 내면의 동굴이 있으며, 우리는 그 동굴에서 보다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나 새로운 봄을 열어 갈 것이라는…….
독보적인 3D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의 집대성
백희나 작가는 종이, 헝겊, 스컬피(sculpy) 같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캐릭터와 세트를 직접 만들고 촬영하는 3D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연이와 버들 도령》은 기법적인 면에서도 지금껏 작가가 선보였던 다양한 작업 방식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연이와 버들 도령, 나이 든 여인은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에서 섬세한 인물 표현으로 감탄을 자아냈던 닥종이 인형으로 제작했다. 주인공 연이의 얼굴은 닥종이로 만든 탓에 솜털이 보송보송 돋은 듯도, 추위에 튼 듯도 보인다. 때로는 손을 내밀어 감싸 주고 싶을 만큼 애달프고, 때로는 머리를 콩 쥐어박고 싶을 만큼 의뭉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작가 스스로도 말하듯 세월의 더께가 앉지 않은 어린이의 얼굴은 특징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연이와 버들 도령의 얼굴은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중병아리 같은 느낌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살아 있다. 나이 든 여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옴팡한 두 눈과 높이 솟은 광대, 큼지막한 주먹코, 깊이 팬 팔자주름이 갱년기를 지나는 중년 여성의 까칠한 면모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연이와 나이 든 여인이 사는 마을 주변 풍경은 《장수탕 선녀님》과 마찬가지로 인형을 실제 풍경 속에 두고 촬영했다. 연이와 나이 든 여인이 눈길을 오가는 장면들은 눈이 오는 날을 기다려 정선 가리왕산부터 서울의 남산과 백사실 계곡, 일산의 황룡산까지 두루 다니며 촬영한 것이다. 둘이 사는 집은 여러 작품에서 보여 주었듯 실제에 가까운 입체 세트를 손수 제작하여 촬영했다.
반면 도령이 사는 동굴은 한지에 한국화 기법으로 그린 오브제를 오리고 세워 연극 무대처럼 꾸몄다. JTBC 다큐멘터리에서 일부 공개 되었듯, 동굴 장면들은 빛이 은은히 비쳐 나오는 한지의 특성을 잘 활용한 탓에 그 환상성이 더욱 돋보인다. 이 또한 《꿈에서 맛본 똥파리》에서 라이트박스와 트레이싱지를 활용해 선보였던 기법이다.
버들 도령이 사는 동굴은 더없이 아름답고 풍요롭지만 계속해서 머무를 수는 없다. 자신의 아니무스인 도령을 살려내 자아 통합과 성장을 이룬 연이는 내면의 동굴에서 나와 더 높은 차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연이처럼 내면의 동굴 속에서 오래 칩거했던 작가도 마찬가지다. 백희나 작가가 이 아름답지만 연약한 세계를 딛고 또 어디로 나아갈지 자못 기대가 된다.
작가 소개
백희나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육공학을, 캘리포니아 예술 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2005년 《구름빵》으로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픽션 부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장수탕 선녀님》으로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과 ‘제3회 창원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일본판 《알사탕 あめだま》으로 ‘제11회 MOE 그림책서점대상과 ‘제24회 일본그림책대상’ 번역 그림책 부문· 독자상 부문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어린이책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그림책의 위상을 높였다. 그동안 쓰고 그린 작품으로 《연이와 버들 도령》, 《나는 개다》, 《이상한 손님》, 《알사탕》, 《이상한 엄마》, 《꿈에서 맛본 똥파리》, 《장수탕 선녀님》, 《삐약이 엄마》, 《어제저녁》, 《달 샤베트》, 《분홍줄》, 《북풍을 찾아간 소년》, 《구름빵》 들이 있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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