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혐오와 분노가 감춘
떨림과 몸부림,
가장 위태로운 세대와 K-포퓰리즘
전작 《프로보커터》에서 주목과 관심이 돈이 되는 주목경제가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미디어, 나아가 정치를 어떻게 오염시키는지 경쾌하게 파헤친 문화연구자 김내훈. 그가 2020년대 한국사회의 한가운데를 휘젓고 있는 ‘20대 현상’을 통찰한 《급진의 20대》로 돌아왔다.
1992년생으로 20대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는 저자는 우리 시대의 20대 문제를 전 세계에 불어닥친 ‘포퓰리즘 물결’의 맥락에서 살핀다. 그에 따르면 20대 현상은 곧 ‘포퓰리즘 현상’이다. 온갖 부정적 이미지들이 덧씌운 편견과 달리 포퓰리즘(populism)은 사회의 지배체제―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지리멸렬할 때 자연스럽게 분출하는 ‘인민의 요구(demand)’다.
저자는 오늘날 기성세대의 불공정과 위선에 대해 청년들이 쏟아내는 ‘혐오와 분노’가, 실은 한국 현대사에서 그들의 부모보다 ‘가난할’ 최초의 세대가 호소하는 ‘떨림과 몸부림’임을 밝혀낸다. 이런 요구를, 진보·자유주의 진영은 못돼먹은 태도로 보고 훈계하는 반면 보수·우파 진영은 ‘청년 보수화’라며 쌍수로 부채질하고 있다.
이론에 따르면 포퓰리즘 현상은 흔히 구질서와 새질서의 헤게모니 전쟁으로 전개되고, 구질서로의 반동 또는 새질서로의 이행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K-포퓰리즘은, 저자에 따르면 ‘가장 위태로운 자들’인 한국의 청년세대는, 자신들의 요구를 일차원적 분노와 혐오로만 쏟아내는 ‘과격한 20대’에 머물까, 낡아빠진 체제의 한계를 깨고 새로운 대안을 선언하는 ‘급진의 20대’로 거듭날까? 또 한번의 큰 선거를 앞두고, 2020년대를 정초하는 질문과 모색이 이 책에 담겨 있다.
20대 현상은
포퓰리즘 현상이다
오늘의 20대는 (난민과 북한을 포함한) 약자·소수자 배려 정책을 ‘불공정’으로, 사회정의나 정치적 올바름(PC)에 근거한 처신을 ‘위선’으로 인식한다. 진보적 가치관에 반대하는 듯한 이런 태도는 ‘20대 보수화’론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저자는 지난 20년간의―홍세화에서 시작해 박권일·우석훈·오찬호·최종숙을 지나 임명묵에 이르는―세대 담론사를 회고하며, 한국의 20대는 그때그때의 처지와 인상에 따라 희망에서 환멸로, 보수에서 진보로, 혁신의 주체에서 계몽의 대상으로 조급하게 규정되어왔음을 지적한다. 현재 20대 보수화론 역시 이런 섣부른 인식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20대 현상을 제대로 응시하기 위한 렌즈로 ‘포퓰리즘’을 제안한다.
포퓰리즘은 지배체제의 고장을 알리는 ‘증상’이다. 오늘날 세계경제의 작동 원리인 신자유주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특히 일자리와 양극화 문제에서 무능을 드러냈고, 이 문제를 교정하겠다며 집권한 세력―예컨대 한국의 민주화 세력과 미국의 리버럴 세력―은 근본적 대안 마련에 실패한 채, 그들의 정체성(민주화와 정치적 올바름 등의 가치)만 내세우며 정치적 상상력(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 결과가 ‘부모보다 가난할 세대’의 출현이며, 위선을 혐오하고 불공정에 분노하는 20대의 등장이다. 저자는 이를 ‘포퓰리즘의 계기’로 바라보는 동시에, 분노한 청년세대와 이를 계몽하려 드는 정치권력의 갈등을 포퓰리즘의 최대 전략인 ‘우리와 그들의 싸움’ ‘인민 대 엘리트의 전쟁’으로 설명한다. 그렇게 ‘20대 현상’은 ‘포퓰리즘 현상’이 된다. 요컨대 K-포퓰리즘은 20대의 혐오와 분노(로 포장된 떨림과 몸부림)가 한국사회의 물길을 어디로 돌릴 것인지를 놓고 벌어지는 헤게모니의 전장이다.
한편 포퓰리즘의 렌즈는 20대의 ‘이대남 현상’으로 돌출되는 20대 내부의 젠더갈등에도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즉 이 문제는 페미니즘을 ‘불공정’이자 ‘내로남불’로 인식해 분노하는 20대 남성과 그렇지 않은 20대 여성 간의 국지적 갈등이라는 것이다. 많은 조사·연구에서 드러난 바, 페미니즘 이슈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안에서 20대 남녀가 비교적 공통된―공정과 반(反)위선 추구―성향을 보인다는 점 또한 이를 반증한다.
협소한 정치적 상상력의 한계
지지 없는 응징투표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스무 명 남짓한 20대 남녀와 인터뷰-대화를 진행했다. 저마다 다른 경제적·정치적 가치관의 소유자인 이들은 삶과 정치에 관한 솔직한 생각을 토로한다.
“나는 지난 정권이 뒤집히는 걸 보면서 희열을 느꼈어. 이명박 때는 무력감이 있었거든. 내가 정치에 관심을 둬봤자 바꿀 수 있는 게 없겠다라는.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엄청난 혐오도 생기고. 근데 그 사람이 내 눈앞에서 시민에 의해 끌어내려지고 새 정권이 등장했잖아. 그래도 뭐라도 하면 뭔가 바뀌는구나 했지. 그래서 새 정권이 잘 됐으면 했고, 지지했는데. 사람만 바뀌었지 정말 바뀌어야 할 것은… 너무 답답하기만 해.”
“청년세대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없어. 죄다 늙은 사람들밖에 없고, 나를 대변해주는 사람은 지금 정치판에는 없는 것 같아”
“일단 내가 본 것만 기억나는 것만 하더라도 지금 야당(국민의힘)은 박근혜 때 똥 싼 게 너무 크고 그 자체로 추락했고, 민주당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고, 욕먹는 게 맞는 것 같아. 북한만 바라보고 특히 부동산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나는 투표권은 없었지만 최근 재·보선에서 오세훈 지지했어.”
“박근혜가 잘못한 게 명확히 보였으니까 자한당은 배제했지. 그럼 안철수나 문재인 중 하난데 안철수가 될 리는 없고, 되더라도 기반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문재인 찍었어. 후회하고 있어, 홍준표 찍을 걸.”
“사실 나 같은 사람들은 놀 시간도 없이 연애도 못해보고 허리 빠지도록 공부하고 있는데, 비정규직으로 쉽게 취직해서 바로 정규직이 된다고 하면 배알이 꼴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안 한 사람도 있을 거란 말이야. 근데 그걸 전환을 해버리면 지원 안 한 사람은 바보 되는 거잖아. 정규직 채용이었으면 지원할 수도 있었던 사람은 자리가 없어지는 거야.”
“엄청 불안하지. 국민연금도 믿기 힘들고,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국가가 뭐라도 해줄 거란 기대도 없고. 이민 가고 싶은 생각도 있어. 우리 부모님이 나보다 특별히 잘났나? 그때는 그래도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지금 벌고 있는 푼돈을 모아봤자 부모님들만큼은 절대 안 모이겠지. 어디 투자라도 해야 할까 싶지만 사실상 사행성과 다름없고. 이제는 큰돈을 모을 희망이 없어.”
“무인 편의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무인 오락실이 계속 생기고, 가게마다 키오스크가 설치되고, 아파트 경비도 경비 업체로 넘어가면서 경비 아저씨들 다 잘리고…. 그게 다 누군가의 일자리였다고 생각하면 아찔할 수밖에 없어.”
“피할 수 없는 미래라고 생각은 하는데, 기계를 소유한 사람이 부를 다 가져가잖아. 이대로만 가면 빈부격차만 더 커질 거고. 인건비 줄인 만큼 물가가 더 내려가는 것도 아니고 부가 나눠지는 것도 아니고. 이건 좀 유토피아적인 생각 같기는 한데, 생각이 정리가 안 되지만 말을 해보자면 기계로 부를 창출해서 더 큰 부로 만들고 분배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생각하는 거야.”
“나는 미래 자동화 사회에서 그래도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지 않을까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편이야. 국가적으로 생각을 해본다면, 기본소득이라도 나눠줘야 하겠지. 언젠가는 그 얘기가 진지하게 나올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실현 가능 여부를 떠나서 찬성을 안 할 수가 없겠지.”
사태는 명확하다. 2019년 ‘조국 사태’를 규탄했던 20대의 다수는 불과 3년 전 박근혜 퇴진 요구가 울려 퍼진 전국의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다. 결국 변한 것은 20대가 아니라 한층 지리멸렬해진 세상이다. 이들이 아무렇게나 표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혐오와 분노는 취업과 연애에서부터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삶의 조건들까지 포기하고 단념하게 만든 체제가 가져온 불안과 우울이며, 그에 따른 떨림과 몸부림이다.
이 떨림과 몸부림이 사회변혁의 동력으로 전개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한국의 ‘협소한 정치적 상상력’을 지목한다. 한국은 ‘자유주의에서 극우까지’라는 이념의 박스권에 갇힌 사회다. 이 기형적 구조에서는 자유주의에서 한발만 왼쪽으로 나아가도 극좌파로 취급받는다. 진보·자유주의 진영은 (중도를 가장한) 우경화의 자장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안철수에서 유승민까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신선한 얼굴들’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렇듯 협애한 이념의 박스권에서 성장한 한국 청년들에겐 다른 세상을 꿈꿀 정치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결국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란 자유주의(민주당)와 극우(국민의힘) 세력 중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지만 둘을 번갈아 심판하는 ‘응징 투표’뿐이다.
“많으면 달라진다”
더 많은 ‘우리’를 위한 헤게모니 전쟁
희망은 있을까? 이 또한 저자와 20대들과의 인터뷰-대화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모임의 참여자들 모두는 한국사회가 지금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뾰족한 대안이 없기에 정권의 반대당을 응징할 뿐이다.
이에 저자는 자유주의에서 극우라는 ‘이념의 박스권’이 거꾸로 청년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장 온건한 정파를 가장 보수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착시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착안한 역발상을 제안한다. 이념의 박스권을 멀찍이 뛰어넘는 급진적 아이디어일수록 오히려 실현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모임의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자동화로 일자리가 소멸될 근미래의 대책으로 기본소득을 지지했다. 가장 극우적 성향의 참석자조차 가장 좌파적인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공감을 표했다. 이런 반응은 분노와 혐오라는 ‘일차원적 요구’를 변혁의 잠재력을 지닌 ‘거대한 요구’로, ‘소수의 우리’를 ‘다수의 우리’로 확대·결집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현재까지 ‘20대 현상’을 전유하는 것은 보수우파 세력이다. ‘분노’에 초점을 맞춘 이런 흐름은 20대를 ‘가장 분노한 세대’ ‘가장 과격한 자들’로 몰고 가고 있다. ‘이대남 현상’이 그것이다. 반면 분노 이면의 떨림과 몸부림에 주목한 저자는 20대를 ‘가장 위태로운 자들’로 명명한다. 그리고 ‘박근혜 탄핵’이라는 ‘단 하나의 요구’를 중심으로 전 국민이 결집했던 2016년 촛불시위를 복기한다. 그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와 IT 테크놀로지에 힘입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혁명적으로 발전한 오늘, ‘이념의 박스권’을 뛰어넘는 모두의 공통된 요구는 20대를 이대남이라는 ‘작달막한 우리’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품은 ‘거대한 우리’로 응집해낼 것이다. 가장 위태로운 세대는 가장 급진의 20대가 될 수 있다.
작가 소개
김내훈
1992년생. 작곡을 공부하다가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그만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해 영화이론을 전공했다.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통해 세상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영상ㆍ문화ㆍ사회ㆍ정치ㆍ철학을 두루 배우고 익힐 방법을 궁리하다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입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좌파 포퓰리즘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정치 유튜브, 밈과 커뮤니케이션, 인터넷에서의 위악과 트롤링문화 등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다. 《프로보커터: 그들을 도발해 우리를 결집하는 자들》과 《급진의 20대: K-포퓰리즘, 가장 위태로운 세대의》를 썼다.
목 차
머리말
프롤로그: 20대 현상, 렌즈를 바꾸자
1. 만들어진 세대 – 20년간의 롤러코스터
2. 혐오 – 우울과 불안의 그릇된 방어기제
3. 포퓰리즘 – ‘그들’과 ‘우리’의 항시적 투쟁
4. 낡은 것은 가고, 새로운 것은 오지 않은 – 포퓰리즘의 정치경제적 계기
5. 기만과 위선의 정치 – 포퓰리즘의 문화정치적 계기
6. 20대의 탈-정치적 정치 – 응징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7. 정치 불균형과 협소한 정치적 상상력 – 자유주의에서 극우까지의 세계
8. 진짜 분노를 가리는 학습된 분노 – 사유의 외주화
9. 외부인의 생성 – 공정한 차별주의자들
10. 미래는 중단되었다 – 부모보다 ‘가난할’ 세대로 산다는 것
11. 헤게모니 전쟁 – 2016 촛불시위와 20대 현상
에필로그: 과격화냐 급진화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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