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조선통신사의 시선으로 에도시대의 도시를 걷다
한양을 떠나 부산에서 바닷길에 오른 조선통신사 일행이 다시 뭍길의 여정을 밟기 시작하는 곳은 생각보다 내륙 쪽으로 깊이 들어간 오사카에서부터였다. 이후 최종 목적지인 에도(지금의 도쿄)에 이르기까지 육로로 이동하며 여러 도시를 지나게 되는데 예나 지금이나 그 중요한 곳은 오사카, 교토, 나고야, 에도였다.
임진왜란 종결 이후 재개된 사행길의 조선통신사가 본 당시의 일본은 에도 막부의 치세 아래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고, 도시는 그 발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왜란의 쓰라린 기억을 원형질처럼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던 통신사들에게 이 도시들은 어떻게 보였을까, 또 그들에게 어떤 복잡한 심사를 불러일으켰을까.
이 책은 이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저자는 한국 고전문학을 전공한 인문학자로, 조선통신사에 매료되어 30년 가까이 연구를 지속하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행원들이 처했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숨결과 시선을 따라 그들의 내면과 그들이 보았던 바를 입체적으로 그리고자 노력하였다. 조선통신사가 직접 가고 머물며 관찰했던 일본 도시들에 대한 기록을 살핀 탐구는 아직까지 거의 없고 이 점이 우선 이 책이 지니는 첫번째 의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 풍속, 역사를 망라한 사행록
이 책은 1607년부터 1764년에 이르기까지 11차에 걸친 조선통신사 사행록들을 기본 자료로 하였다. 그렇기에 이 책 속에서 일본의 주요 도시는 그 역사의 겹을 보여주고도 있으며, 관심의 방향을 달리하는 여러 사람의 눈에 비친 파노라마적 조망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의 서술 차례이기도 한 오사카-교토-나고야-에도는 조선통신사의 여정 순서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 도시들은 오늘날에도 일본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런데 오랜 세월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를 제외하고, 오사카, 나고야, 에도 등은 에도 막부 시대에 이르러 새로 건설되거나 발전하게 된 도시들이다. 사행록은 에도 막부 이후 도시 발전의 궤적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 기록과 인식을 통해 일본 주요 도시의 역사·문화적 특성과 성장을 알 수 있다.
조선통신사의 기록에서 각 도시들은 각자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나타난다. 오사카는 ‘물화(物貨)의 부고(府庫)’, 교토는 ‘왜황(倭皇)과 불교의 공간’, 나고야는 ‘도쿠가와 종실(宗室)의 식읍(食邑)’, 에도는 ‘관백(關白)의 공간’으로 특화되었다. 또한 각각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 천황, 도쿠가와 종실,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과 긴밀히 연관된 도시이기도 하다. 사행원들은 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정보를 수집하거나 관찰을 하였다.
세부적으로는 도시들은 ‘지리적 거리 및 특징’, ‘관소’, 그리고 ‘역사와 문화’ 항목으로 나뉘어 검토되었다. 지리적인 면에서 오사카는 항만과 하천, 교토는 지세와 산세, 나고야는 평야와 하천, 에도는 주변 산세와 평야 등을 특징으로 하였다. 또한 각 도시의 구조, 성(城)과 시장 그리고 민가 등의 건축물, 거리 및 도로 그리고 다리 등을 흥미롭고 자세히 살폈다. 관소는 조선통신사가 머물렀던 숙소를 일컫는데 주로 사찰이었다. 그 생김새 및 규모를 비롯하여 흥망성쇠 또한 자세히 기록되었다.
다음으로 각 도시는 각자가 지닌 역사적 추이에 따른 문화적 특징을 드러낸다. 도시의 탄생과 발전 혹은 쇠퇴에 따라 역사·문화적 특징도 변화하였는데, 사행록은 이를 섬세하게 포착하였다. 각 도시에서 살핀 인물들은, 조선통신사를 관광하던 일반인, 문화교류를 갈망하던 지식인, 쇼군 및 관리들이 중심을 이룬다. 또한 의식주에 관련된 일상 문화, 특이한 풍속, 일본 무기, 서적 출판, 일본인들의 조선 시문에 대한 열망과 그 역사적 악영향 등을 고찰하였다.
회차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외견상 조선통신사는 에도시대 도시와 문화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면서 그들의 고유 문화를 인정하고자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원수라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를 물리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위시한 쇼군들에 대한 인식 및 평가에 차이가 나타났고, 일본과 그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의 저 깊은 곳에 복수심과 멸시와 당혹감이 섞인 복잡한 심사가 드러났다. 그렇게 나타나는 관찰과 인식을 얼마나 중층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가는 통신사들의 시대였던 조선후기뿐만 아니라 지금에도 당면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김경숙
고전문학을 전공한 인문학자이다. 조선후기 문학과 문화에 관심을 두었고, 주로 서얼과 여성과 조선통신사에 대해 글을 썼다. 한문과 한문학, 문화공간과 예술,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해 강의하였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서얼문학 연구』, 『조선후기 지식인, 일본과 만나다』, 『일본으로 간 조선의 선비들』, 『한시에서 삶을 읽다』, 『한국어문학 여성주제어 사전』(공저) 등이 대표적이다.
목 차
머리말
제1장 물화(物貨)의 부고(府庫) 오사카
지리적 특징 및 거리
오사카항과 하구(河口)
강을 거슬러 가는 뱃길
나루에서 관소까지 가는 육로
관소
관소의 종류 및 특징
관소에 대한 감상
오사카의 역사와 문화
도요토미 부자(父子)에 대한 인식
오사카성의 소실과 재건
오사카의 문화
제2장 왜황(倭皇)과 불교의 공간 교토
교토의 위상과 지리적 특징
교토의 위상
지리적 특징
‘관광’하는 사람들과 피로인(被擄人)
관소
관소의 종류 및 특징
다이부츠덴(大佛殿) 연회 문제와 이총(耳塚)
교토의 역사와 왜황
후시미성(伏見城)에 대한 인식
왜황에 대한 인식
제3장 도쿠가와 종실(宗室)의 식읍(食邑) 나고야
지리적 특징 및 거리
하천 및 배다리(舟橋)
나고야에 이르러 관소 가는 길
관소
도쿠가와 가문과 인연 깊은 관소
도쿠가와 종실과 나고야 문화
나고야 도쿠가와 종실에 대한 인식
나고야의 문화
시문창화(詩文唱和)의 유래와 조선 문화재
제4장 관백(關白)의 공간 에도
지리적 특징 및 거리
에도에 대한 인식
에도 거리의 특징
관소
관소의 종류 및 특징
관백과 에도 문화
관백에 대한 인식
에도성의 건축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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