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죽고 싶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아, 이 식물이라는 생명체를 어쩌지?
이 책은 우울증, 불안장애 등 여러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저자가 식물을 기르면서 알고 깨달은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간 경험을 담백하게 써 내려간 에세이다. 식물이 지친 마음을 달래고 위로해 준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코로나 사태로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식물의 이런 장점이 더 부각되고 있다.
우울증, 불안장애 등에 시달리던
저자에게 찾아온 식물이라는 ‘존재’
그런데 이 책은 식물이 단순히 ‘위로’를 넘어 마음속 깊은 상처까지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여느 식물 에세이와 다르다. 저자는 수년 동안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여러 마음의 병을 앓으며 “죽고 싶어서 날짜를 헤아리고,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절망에 빠져 괴로워하는” 나날을 보냈다. 타인들과 관계 맺는 일도 서툴렀다. 이런 저자를 세상 밖으로 조금씩 끌어내 준 존재가 반려 식물들이다. 하나둘 집 안에 들인 식물은 어느새 300본이 넘는다.
식물의 무엇이 저자를 일으켜 세운 것일까. ‘생명력’이다. 식물 역시 살아 있는 생명체이므로 저자는 그 존재를 그냥 방치할 수 없었다.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수렁”으로 자꾸만 가라앉는 몸을 억지로라도 일으킨 이유다.
강아지와 식물들은 보살펴 주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늘어지면 많은 문제가 불거진다. 단적인 예로, 강아지들은 밥을 제때에 못 먹고 식물들은 갈증에 시달린다. 그래서 밥때가 지났는데도 보채지 않는 강아지들을 보다 미안해 일어나고, 침대로 바로 직행하려던 발길을 돌려 바싹 말라 ‘응급 상황’에 처한 식물들에게 물이라도 흩뿌린다. -176, 177쪽
내가 식물을 살리고,
식물이 나를 살렸다
이런 상황을 자초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왜 책임져야 할 일을 이렇게나 벌여 놓았을까.’ 후회하는 날이 많았지만, 식물들은 ‘괘씸하게도’ 이런 저자의 상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존재’했다. 이 때문에 저자는 결국 번번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저자는 깨닫는다.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이 수많은 생명체 덕분에 자신 역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미련 없이 죽고 싶은 마음 바로 뒤편에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절박함이 있었다”는 사실도.
마침내 저자는 용기를 내 정신병원을 찾고, 심신의 상태가 안 좋아질 때면 그곳에서 입원 치료를 비롯한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다. 저자 역시 처음엔 여느 사람들처럼 정신병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팔다리를 묶어 놓고 종일 약만 주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직접 체험한 병원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이제 저자는 정신병원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곳이 자신을 살게 하는 “또 다른 숲”임도 받아들인다.
문득 나에게 또 다른 숲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을 때, 스스로 실타래를 풀 수 없을 때, 억지로 내가 모든 것을 할 필요는 없다. 나를 위한 전문가들이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은 정신과, 정신과 입원 치료들에 대한 편견을 살짝 내려놓고, 마음을 맡겨 보는 것이다. -204, 205쪽
사람에겐 생수,
식물에겐 ‘묵힌’ 물
책에는 저자가 식물과 오래 함께 살면서 알게 된, 식물에 관한 정보도 많이 담겨 있다. 일례로 식물에게 가장 좋은 물은 ‘묵힌’ 물이니, 하루 이틀이라도 물을 ‘재워’ 쓰길 권하고, 식물이 많이 죽어 나가는 겨울철에는 식물들을 위해 어떤 환경을 조성하면 좋은지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해 준다. 식물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 의외로 ‘지나치게 물을 준 것’임을 짚으며, 식물을 가장 잘 키우는 사람은 ‘잘 참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식물을 가장 잘 키우는 사람은 ‘잘 참는’ 사람이다. 식물이 원하는 속도를 잘 읽어 주는 사람, 식물에게 물을 더 주고 싶을 때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사람, 식물마다 자라는 속도가 있음을 인정하고 가만히 그 식물 고유의 리듬을 읽을 줄 아는 사람 말이다.
-55, 56쪽
마음 치유부터 인간관계 개선, 더 나아가 인생관까지 바꾸어 놓는, 식물의 힘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작가 소개
심경선
식물을 좋아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보면 1인 가구지만 실제로는 두 동거인과, 강아지 생강과 하루,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3백여 본의 식물과 산다. 우울증, 불안장애 등 여러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정신병원은 중증 환자들만 가는 곳이란 편견에 가기를 미루었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 내원했고, 운 좋게 좋은 분들을 만나 치료 중이다. 병원의 도움도 크지만, 자꾸 안으로 침잠하는 자신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건 무엇보다 반려 동물과 식물들임을 알고 있다. 그 생명체들을 보살피기 위해서라도 애써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로 인해 살아나는 건 자신이다. <정신의학신문>에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목 차
책을 내며
많이 죽이셨나요?
봄의 속말은 ‘괜찮아, 다시 시작해’
고사리가 가장 원했던 것
물을 재우는 마음으로
병든 아랄리아에게서 보지 못한 것
사라져 가는 식목일
나의 사랑, 토분
나만의 속도가 필요해
1인 가구, 나의 가족들
올리브나무처럼
지나친 사랑의 문제
한국에서 식물을 키우는 위험한 일에 대해
튤립을 자주 볼 수 있는 이유
병원에서 ‘정원’을 가꾼 일
세설, 나는 이제 참지 않아
공원이 많아지면 좋겠다
조심조심 식물 선물하기
힐링과 물욕 사이
로즈마리, 악연일까 식연일까
K와 홍콩야자
나의 물꽂이, 정신병원
반려 동물과 식물이 함께 살 때
식물이 만들어 내는 세계
무늬 종 유행에 대해
여행지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
권태기, 식물 집사는 식태기
겨울 준비가 필요한 이유
비정형의 숲
또 다른 숲이 생겼다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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