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에서 신시까지

고객평점
저자나해철
출판사항솔, 발행일:2022/02/11
형태사항p.325 국판:22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60201697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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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마고에서 아침 새 빛의 나라까지 창세신화와 건국신화의 접점을 상상하다


창세신화는 세계의 시작과 인간의 기원을 둘러싼 질문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잊힌 ‘마고’를 이야기의 장으로 다시 불러옴으로써 그에 답한다. 세계의 시작에 있던 “노래이기도 하고/말이기도 하고/이야기이기도 하고/생각이기도 한 것을” “진즉 잉태”한 “물방울 거품”(「3 물방울 거품」)은 곧 거대한 몸집을 가진 ‘마고신’이 되고, “모든 것의 전부인 여신 마고”로부터 “새로운 것들이 태어”(「6 하늘과 신들의 탄생」)나 세계가 지어진다. 세계는 ‘마고신’의 몸과 몸짓으로, 의도와 우연 속에서 창조와 분화를 거듭해가며 확장된다. 한 존재로부터 다른 존재가 파생되고 새로운 존재들이 자꾸만 생겨나는 것은, 세계를 좀더 다종다양하고 다채롭게 하는 것인 동시에 복잡하고 모순적인 국면에 이르도록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존재가 ‘괴물 여신’이다. ‘괴물 여신’은 ‘마고신’의 딸이자 자매인 ‘아랫몸신’의 잠을 깨우기 위해 빚어졌는데, 그처럼 하찮은 일을 해야만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점차 변심을 하여”(「16 괴물 여신」) 세계를 어지럽히고 존재들에게 해를 끼치는 ‘악신’이 된다.

‘마고신’에 대항하는 ‘악신’의 탄생은 선악 구도에 대한 설명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이 그려내는 신화의 세계에서 ‘악신’을 명백한 ‘악’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악신’의 탄생은 자연재해나 질병과 같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극복하기도 쉽지 않은 인간의 고통이나 시련을 “해명하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악신’은 “악 그 자체라기보다”는 인간의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들이 “사납고 기괴한 형태로 의인화된 것”(「해설」)이라고 할 수 있으며, 2부에서 펼쳐지는 열 차례에 걸친 ‘마고신’과 ‘악신’의 전쟁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기보다는 세계의 불가해한 지점에 대한 해명의 과정에 가깝다.

한편 ‘악신’과의 전쟁은 ‘마고’라는 개별적 존재의 삶이 타자와의 대결을 통해 하나의 역사와 신화적인 상징으로 구축되는 의미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모든 치열한 과정을 통과하면서 건국신화에 밀려 오랫동안 신화의 세계에서 소외되어온 ‘마고’는 비로소 생명과 창조의 요체로 재형상화되고 창세신이자 신화의 중심 서사로서 자리매김한다.

마고신이 ‘환인’이 되는 변모의 장면은 유연하게 자신의 존재를 갱신하는 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존재의 탄생을 나타낸다. 이로써 각각 분절되어 있던 창세신화와 건국신화는 연속선을 이루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세계의 탄생과 형성이 시를 통과하여 이제 신화적 상상력으로 직조해낸 하나의 맥락,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

삶, 지금 여기 ‘너’에게 도착한 태초로부터의 전언


깊고 혼곤한 잠을 자면서

마고신은

코를 골게 되었다

그 코 고는 소리가 너무나 컸다

그때까지 그런 큰 소리는

하늘과 땅에 있지 않았다


그 소리는 후에 천둥소리라고

사람들이 말하게 되지만


[…]


너여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갈라지는 시간이

네 몸 안에도 웅크리고 있다

너의 몸은

모든 것의 지도이며

시간이 쌓인 시간의 전집이다

-「14 천둥」 부분


한 편의 시는 신의 이야기를 진술하는 국면과 ‘너’를 호명하는 국면이 차례로 나열되는 이중구조로 짜여 있다. 신이 탄생하고 생성시키며 존재의 전환을 통해 소멸하는 연대기적 과정과 ‘너’가 태어나고 살아가며 소멸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치유되는 일련의 과정이 마주 닿은 채 함께 간다. 시의 화자는 ‘악신’과 고투하는 ‘마고’로부터 환기된 생명과 대지의 순환성을, 개별적 존재인 ‘너’ 또한 지니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중첩을 통해 신화적 공간은 현재에 틈입한다.

시인이 우리 앞에 불러낸 이 신화적 공간은, 우리가 기억하고 되살려내고 기려야 하는,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너’들,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역사에 대한 추모의 공간이자 잉태의 공간이다. 동시에 이는 잃어버린 ‘너’들을 마음에 지닌 채 살아가는 ‘너’, 지금 여기의 당신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기도 하다. 오늘 밤하늘에 피어난 별빛이 오래전 과거에서 출발하여 이제 막 우리의 눈앞에 도달한 메시지이듯, 신화의 전언 또한 이전의 ‘너’들로부터 부쳐져 지금 ‘너’의 앞에 도착한 편지이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층위를 건너오느라 잔뜩 낡고 닳은 편지봉투를 열어보면 그 안엔 두려움과 오욕, 뿔, 욕심, 좋지 않은 생각, 눈물, 실패, 생로병사가 있다. 우리가 살려내지 못한 ‘너’들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껏 살아갈 것이 분명한,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너’가 있다.

시인은 신화를 빌어 생명을 지켜주고 싶은 의지를 드러낸다. 마음속에서 어지럽게 일렁거리는 감정들, 나쁜 상황들, ‘너’의 힘과 의지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맞서 “견디어”(「31 아홉 번째 전쟁 시작 전」)낼 때, “걷고 뛰고 날고 기어서” “삶 가운데 있”고자 애쓸 때 시의 화자는 다정한 목소리로 “그 순간 네가 바로 마고”(「15 마고의 동아시아 평야와 백두대간 창조」)이자 “위대한 환웅천황”(「67 환웅천황의 홍익인간」)이라고 넌지시 속삭인다. 신의 이야기로부터 뻗어 나간 ‘삶’이 ‘너’에게 가닿는 바로 그 순간, ‘삶’은 곧 이야기가 된다.

“너야/너의 삶이/이야기가 되어야 한다”(「39 마지막 전쟁의 승리」). ‘너’라는 존재가 슬픔에 망가지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나가기 위해 삶이 발화發話되어야 한다는 것, 그 이야기는 긴 생명의 공간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 그것이 시인이 신화로부터 발견한 자명하고도 단순한 세계의 진리이자, 지금 열린 신화의 공간으로 우리를 부른 이유이다. 시인이 열어젖힌 신화의 세계가 ‘너’의 삶, 바로 이곳에 하나의 시로 놓여 있다.


***추천글***

이 신화서사시는 창세로부터 건국에 이르는 길고 긴 시간의 여정 속에서 벌어지는 특이점에 이르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이 사건들은 인간의 정형화된 사고의 틀을 넘어 상상력이 극대화된 스펙터클한 파노라마 형태로 펼쳐진다. 우주적 규모의 서사 속에는 신비하고 오묘한 창조의 원리가 보화처럼 숨어 있다. 심장박동 같은 음양의 리듬으로 세상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간다. 서사는 태초의 ‘혼돈’에서 세상이 열리는 ‘개벽’으로 시작하여 여자 인간과 남자 사람이 탄생되는 인간 창조의 이야기로 장대하게 펼쳐진다. ‘혼돈’은 단순히 무질서가 아니라 형태가 아직 태동하지 않은 상태일

뿐 조화로운 에너지의 흐름인 율려律呂가 작용하는 세계이다.

-이안나(신화학자·한국외대 연구원), 「해설」에서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가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上古史 고조선을 찾았다면, 도저한 ‘생명의 시인’ 나해철은 창세의 시원을 더듬어 우리 천손족天孫族의 시초가 ‘물방울’임을 밝힌다. 물기[陰氣]에서 나온 여신 마고가 “밝은 하늘빛” “모든 것의 근원”의 뜻을 지닌 자웅동체의 천제 환인桓因으로 새로이 화생하고, 환인은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홍익인간’의 뜻으로 그 아들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와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내려가서 세상을 다스리게 한다.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밑에 강신降神한 환웅천황은 신시神市를 세우고, 웅녀를 맞아 단군왕검을 낳고 왕검은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朝鮮’ 이라 부른다.

시인 나해철은 이 아름다운 단군신화의 어두운 심연에 감추어진 태초의 창세신화를 밝히기 위해 바이칼, 몽골, 만주 등 북방의 신화들을 일일이 찾아 서로를 맞추며 웅혼한 상상력을 통해 마침내 경이로운 ‘신화서사시’를 창조한다. 이 ‘신화서사시’는 단군신화가 남긴 오래된 과제이자 한국문학사에 주어진 중요한 과업에 대한 응답으로서, 오늘의 물질문명이 부닥친 벽을 넘어 새 인간성을 찾고 새 세상을 여는, 이른바 ‘음陰 개벽’의 신화 이야기를 우리 안에 숨어 있던 영혼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임우기(문학평론가) 


작가 소개

1956년 전남 나주 영산포에서 태어났다. 1976년 천마문학상 시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한국작가회의 이사를 역임했으며, ‘5월시’ 동인이다.

시집으로 『무등에 올라』, 『동해일기』, 『그대를 부르는 순간만 꽃이 되는』, 『아름다운 손』, 『긴 사랑』, 『꽃길 삼만리』, 『위로』가 있으며, 2014년 4월 29일부터 페이스북에 하루에 한 편씩 올린 304편의 연작시를 묶어 『영원한 죄 영원한 슬픔』을 펴냈다. 


목 차

제1부 물방울

1 혼돈 | 2 개벽 | 3 물방울 거품 | 4 태극 | 5 마고 | 6 하늘과 신들의 탄생 | 7 세 자매신 | 8 땅 | 9 바다와 강| 10 해, 달, 별 | 11 인간 여자 | 12 뭇 생명 | 13 남자 사람 | 14 천둥 | 15 마고의 동아시아 평야와 백두대간 창조


제2부 마고의 전쟁

16 괴물 여신 | 17 악신의 탄생 | 18 악신의 첫 행보 | 19 최초의 전쟁 | 20 두 번째 전쟁 | 21 세 번째 전쟁 | 22 네 번째 전쟁 | 23 다섯 번째 전쟁 | 24 여섯 번째 전쟁 | 25 일곱 번째 전쟁 | 26 여덟 번째 전쟁 | 27 동쪽 바람의 여신 | 28 영원한 시간의 별 | 29 불돌, 하늘나무, 아주머니 여신들 | 30 샛별 여신과 해맞이 매 별신 | 31 아홉 번째 전쟁 시작 전 | 32 아홉 번째 전쟁의 시작과 참상 | 33 아홉 번째 전쟁에서 활약한 여신들 | 34 아홉 번째 전쟁 | 35 아홉 번째 전쟁의 결과 | 36 마지막 전쟁의 전반부 상황 | 37 마고신의 회복 | 38 마지막 승리를 위한 준비 | 39 마지막 전쟁의 승리 | 40 우주의 어머니신 | 41 마고 여신, 여성 인간 지도자를 양육하시다 | 42 첫 영적 지도자가 된 여자 사람 | 43 미륵신과 미륵땅의 인간 | 44 미륵신과 석가신의 이야기 | 45 거대한 홍수 | 46 홍수가 지나간 후 | 47 천인의 탄생 | 48 천인들의 삶 | 49 마고성의 비극 | 50 천인들의 이주


제3부 신시

51 환인, 드러나시다 | 52 환인, 세계를 다스리시다 | 53 제신들의 이주 | 54 환인천제의 아들신이신 환웅천황 | 55 환웅천황의 첫 번째 하늘전쟁 | 56 환웅천황의 두 번째 하늘전쟁 | 57 환웅천황의 마지막 하늘전쟁 | 58 환웅천황과 사람들 | 59 환웅천황, 허락을 받다 | 60 천부인 이야기 | 61 세 도움신에 대하여 | 62 풍백의 노래 | 63 우사의 노래 | 64 운사의 노래 | 65 환웅천황, 드디어 동쪽으로 향하다 | 66 환웅천황의 인간전쟁 | 67 환웅천황의 홍익인간 | 68 자기들의 땅에 도착하다 | 69 환웅천황과 밝달족의 나라 | 70 단군왕검의 탄생 | 71 단군왕검 황제, 조선을 건국하시다 | 72 배달국 조선, 홍익인간을 이루다


해설 ‘아침 새 빛의 나라’에 내리는 율려의 빛꽃_이안나

시인의 말

참고문헌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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