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현대의 서양 박물관은 대부분 세심한 선택과 기획을 거친 제국주의 시대 약탈물로 채워져 있다.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진열장에 전시된 문화재 옆에는 이름과 날짜, 출처가 적힌 설명판이 놓여 있다. 그러나 그것이 훔쳐온 물건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다.
국가를 구분하는 것이 국경이라면
제국을 구분하는 것은 박물관이다
‘베닌 브론즈’를 통해 본 서양 박물관의 약탈의 역사
1897년 1월, 10여 명의 영국인 사절단이 서아프리카 베닌 왕국을 방문하던 중 원주민의 습격으로 사절단의 상당수가 살해당하는 ‘베닌 학살’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빌미로 영국은 1897년 2월부터 약 3주간 이른바 ‘베닌 원정’이라 불리는 ‘응징 작전’을 통해 수천에 달하는 대량학살과 마을 파괴, 그리고 심대한 문화적 약탈을 자행한다. 옥스퍼드대학 피트 리버스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저자는 이 ‘작은 전쟁’의 이론과 배경, 전개 과정, 피해 상황, 특히 ‘베닌 브론즈’라 불리는 청동 문화재의 대량반출과 그 이후 전 세계로 흩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한다. 이 사례를 통해 제국주의 시대 영국의 식민지적 폭력을 드러내고 약탈 문화재 전시의 문제점을 역설한다.
《대약탈박물관》은 1897년 2월 베닌시티에서 벌어진 영국 군대의 폭력적인 약탈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당시 영국군의 응징 작전들을 더 큰 군사적 움직임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베닌시티에서 벌어진 파괴가 오늘날까지 어떤 영향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재고해보고자 한다. 베닌시티 원정은 나이지리아를 영국의 보호령이자 식민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다. 영국이 서아프리카에서 벌인 수많은 ‘응징 작전’은 사실 응징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베닌시티 원정에서 영국군이 약탈한 왕실 예술품과 종교적 성물들은 전 세계의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베닌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물관과 미술관의 수는 150곳 이상이다.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베닌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비공개 컬렉션의 수도 그 절반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이것이 바로 이 책을 통해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아프리카에서의 식민지적 폭력, 대량학살, 문화적 침탈
그것은 ‘0차 세계대전’이었다
유럽 열강들은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아프리카 분할을 논의했다. 베를린 회의 이후 약 30년간 영국과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와 남반구에서 벌인 군사 활동은 20세기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의 전조가 된 ‘0차 세계대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영국은 이 시기 ‘무한 전쟁’을 통해 아프리카 지역의 왕과 군대, 마을을 차근차근 제거해나가며 새로운 ‘간접’ 통치 모델을 수립했다. 노예무역을 철폐하겠다며 시작된 ‘인도주의적’ 군사 행동은 아프리카 내륙으로 향할수록 변질됐고, 그 과정을 맥심기관총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수월케 했다. 이 시기 작성된 공식 보고서들은 하나같이 빽빽한 밀림에서 로켓포와 기관총으로 진행한 작전의 특성상 “사망한 원주민의 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자행된 폭력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이 모든 작은 전쟁과 원정들이 사실은 하나의 연속적인 정복 작전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국은 이후로도 1890년대 내내 그 지리적 범위를 넓혀가며 아프리카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폭정과의 전쟁’을 수행해나갔다.
폭력으로 강탈한 약탈물을 전시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야만적이다
식민지 폭력의 전리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을 그저 중립적인 유물의 보관소로 보아야 할까? 박물관은 그저 아프리카의 예술품과 유럽의 조각, 회화를 나란히 전시함으로써 아프리카의 창의성을 보여주고 매년 박물관을 찾는 수백만의 관람객에게 세계문화유산을 보여주는 관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식민지에서 학살을 통해 약탈한 왕실 유물과 성물을 지금처럼 계속 전시하는 한 박물관은 ‘인종과학’의 이름으로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폭력적인 장소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박물관은 전쟁기념관처럼 유럽과 북미 곳곳에 자리 잡은 채 남반구의 후진성을 강조하는 장치가 되고, 극단적 폭력과 문화적 파괴의 연장에 공모하는 장소, 대규모 학살과 문화재 파괴, 그리고 지속적인 비하의 상징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식민지 약탈물의 반환은 균형의 문제도 아니고, 편을 가를 문제도 아니다. 약탈물 반환은 지금까지 가려져 있던 문제를 지적하고, 지금도 진행 중인 제도적 인종주의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다. 놀랍게도 영국 박물관계의 고위 전문가나 정치인들 중에는 여전히 아프리카 국가들의 문화재 관리 능력을 문제 삼는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1896년 아샨티 전쟁에서 ‘발견’된 14세기 영국 청동 물주전자를 영국박물관으로 가져오며 근 500년의 세월동안 물주전자를 잘 보관해온 아샨티의 관리 능력을 문제 삼았던 것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돌려줘봤자 누가 다시 훔쳐갈 뿐”이라는 말은 도둑들의 표어일 뿐이다. 영국의 국립박물관들은 (나치 약탈 예술품이나 인간유해 반환이라는 예외가 분명이 있었음에도) 소장품 처분을 허락하지 않는 법을 탓하며 훔쳐온 것들을 되돌려주지 않고 원소유국에 장기 임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베닌 브론즈가 쏘아 올린 약탈 문화재 반환 논쟁
‘베닌 브론즈’는 식민주의의 탐욕성과 수탈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다. 나이지리아 베닌시티 일대를 통치했던 오바(왕)들의 역사를 기록한 수천 점의 청동 장식판과 세공 상아 작품을 통칭하여 이르는 ‘베닌 브론즈’는 1897년 영국의 공격 당시 약탈되었다. 그렇게 약탈된 문화재는 빅토리아 여왕의, 영국박물관의, 그리고 수많은 개인 수집가들의 소장품이 되었다.
‘베닌 브론즈’는 문화재 반환과 배상, 박물관의 탈식민화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있다. 《대약탈박물관》에서 댄 힉스는 베닌 브론즈의 즉각적인 반환을 강력히 촉구하는 한편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식민지 시대 부채 청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댄 힉스
옥스퍼드대학 현대고고학 교수. 피트 리버스 박물관의 큐레이터이자 옥스퍼드 세인트크로스칼리지의 펠로이기도 하다. 2017년 영국 왕립인류학회에서 수여하는 리버스 기념상을 받았으며, 2017~2018년 파리 케 브랑리 자크 시라크 박물관에 교환교수로 파견되어 근무했다. 《역사고고학에 대한 케임브리지 안내서(The Cambridge Companion to Historical Archaeology)》를 비롯해 여러 저서에 공동 필자로 참여했다.
옮긴이 : 정영은
서강대학교에서 영미문학을,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영통역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 다양한 기관에서 상근 통번역사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좋은 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번역 공동체 펍헙번역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옮긴 책으로는 《달님과 소년》,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 《키르케고르 실존 극장》, 《아이들의 시간》 등이 있습니다.
목 차
머리말
1장 두 번 발사되는 총
2장 약탈의 이론
3장 죽음과 상실의 기록, 네크로그라피
4장 백인적 투사
5장 0차 세계대전
6장 기업적·군국적 식민주의
7장 폭정과의 전쟁
8장 베닌-나이저-수단 원정
9장 베닌시티 약탈
10장 대량학살
11장 문화적 삭제
12장 약탈
13장 죽음과 상실의 역사, 네크로로지
14장 무기의 박물관
15장 시간의 정치학
16장 선전포고
17장 부정적 순간
18장 1만 개의 단절된 역사
맺음말: 반환의 10년
부록
옮긴이의 말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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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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