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국의 공정 이슈에 답한다면?
7가지 정의론은 우리의 공정을 어떻게 말하는가
엄정한 근거와 치밀한 논리로
공정 담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민주주의의 논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줄 것이다”
- 강원택(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획일적인 공정 담론에 마침맞게 도착한 길잡이”
- 박권일(사회비평가, 『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 말이다. 그로부터 5년,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는 한국 사회는 그동안 얼마나 공정해졌을까? 2020년 《경향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응답자 중 30퍼센트에 불과했다. 언론에서는 공정과 관련된 기사가 쏟아지고, 서점에는 공정에 대한 책이 한두 권이 아니다. 공정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가 많아지는 만큼 사회가 더 공정해져야 하는데, 왜 이럴까?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김범수 서울대 교수에 의하면, 한국 사회가 여전히 불공정하다고 인식되는 이유는 공정을 논의하는 방식인 공정 담론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정 담론은 분배와 경쟁에 치중되어 있다.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몫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 즉 능력주의가 한국의 주요 공정 담론이다. 그런데 공정 담론에는 능력주의만 있는 게 아니다.
그동안 공정을 다루는 국내 도서들은 외국의 이론을 소개하거나, 한국의 특정 이슈를 공정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데 그쳤다. 이 책은 한국의 공정 이슈에 대해 세계적인 석학들에게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할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시카고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저자는 최근 가장 뜨거운 한국의 공정 이슈를 선별해서 ‘존 롤스’로 대표되는 규범적 정치이론, 이른바 ‘정의론’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이를테면 1장 「선별적 복지는 공정한가」에 대해 롤스가 “최소 수혜자를 위한 복지는 공정하다”라고 답하는 식이다. 이렇게 일곱 개의 질의 응답 형식으로 구성된 책은 각 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정의론 자체를 개괄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흐름에서 한국의 공정 담론이 그동안 외면한, 혹은 좀 더 근본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근거는 엄정하고, 논리는 치밀하다.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공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에 그 해답이 있다.
우리는 왜 공정을 두고 갈등하는가
이분법에 빠진 공정 담론
“능력주의는 그 자체가 잘못이라기보다는
‘그것만이’ 옳다는 방식으로 획일적이기 때문에 문제다.”
한국의 공정 담론은 대결적이다. 한쪽에서는 결과의 평등을, 한쪽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말한다. 정의론을 부흥시킨 존 롤스라면, “선별적 복지는 공정한가”라는 한국의 복지 이슈에 대해 “최소 수혜자를 위한 불평등은 공정하다”라고 답할 것이다. 롤스의 평등주의적 정의론에 의하면, 공정은 사회적 혜택을 최소로 받는 사람들, 최소 수혜자를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자유지상주의자로 알려진 로버트 노직이라면, “소득 격차는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과정이 정당하다면 모든 것이 정당하다”고 답할 것이다. 롤스의 정의론을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노직에 따르면, 경쟁의 결과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과하게 침해하는 것으로서, 자유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이러한 롤스와 노직의 정의론은 한국 사회에서 대립하고 있는 공정 담론의 이론적 근거를 명확하게 대변하고 있다.
저자는 그러나 이러한 롤스와 노직의 정의론 중 양자택일을 하지 않는다. 둘의 관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금수저’, ‘엄빠 찬스’, ‘신의 아들’ 등 상속과 증여는 공정의 핵심 이슈다. 로널드 드워킨이라면 “상속과 증여는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자원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출발선이 다르므로 불공정하다”라고 답할 것이다. 비록 상속과 증여가 합법적이더라도 공정의 관점에서 보면 재화를 추구할 자원이 다르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아마르티아 센은 경쟁의 목적에 주목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유독 시험이, 특히 수능 시험이 중요하다. 경쟁의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험은 공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안이다. 센은 “수능 시험은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일단은 “역량도 평등해야 공정하다”라고 답할 것이지만, 그 역량의 평등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즉 개인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처럼 드워킨과 센은 롤스나 노직처럼 평등이냐 자유냐라는 이분법적인 접근이 아닌, 공정의 과정과 목적에 주목한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공정 자체에 대한 이론을 소개하면서 공정 담론의 범위를 확대한다.
공정은 정의로워야 하고, 정의는 공존을 향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잊은 ‘함께’라는 가치
“평등은 정의론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유일한 가치가 아니며
정의의 요구의 일부일 뿐이다.”
한국 사회의 공정 담론에서 그 중심에는 능력주의가 있다. 분배와 경쟁을 말할 때면 어김없이 능력주의가 등장한다. 물론 능력주의가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능력에 따른 경쟁이 정당하다면, 그에 따른 분배는 공정하다. 하지만 마이클 왈저는 “분배는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기준이 다양해야 공정하다”라고 답할 것이다. 현대 사회는 복잡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직업을 갖고 있다. 이러한 다원적 사회에서 공정의 기준으로 능력주의 하나만 내세우는 것은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비현실적이다. 공정 담론은 획일성보다 다양성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양성’이 공정의 조건이라면, 그 기준은 아무려면 다 괜찮다는 식으로 해도 될까? 여기서 저자는 아이리스 영의 ‘정의와 차이의 정치’를 소개한다. 남자와 여자, 서울과 지방, 비장애인과 장애인 등을 기준으로 적용되는 ‘할당제’를 논할 때면 때론 감정적으로 격해져 갈등을 넘어 서로에 대한 혐오로까지 나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자 우대 제도는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영은 “억압과 지배의 철폐는 불공정해도 정의롭다”라고 답할 것이다. 공정이 결과의 평등이나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도 좋고, 그 과정과 목적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에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정의로워야 한다면, 할당제가 불공정해도 그것은 옳다. 이는 모든 공정 이슈를 경쟁과 분배의 제도적 관점으로만 보면서 능력주의에 빠진 한국 사회의 공정 담론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라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었다. 한국인에게도 챙겨주기 빠듯한 재난지원금을 외국인까지 챙겨줘야 하냐는 말이 나왔다. “외국인 재난지원금 지급은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찰스 바이츠와 토머스 포기는 “불평등한 세계는 불공정하다”라고 답할 것이다. 공정을 제도적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나올 수 없는 답이다. 공정은 개인의 성공을 위한 경쟁의 기준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하기 위한 공존의 조건이다.
공정은 인정과 합의의 과정이다
공정한 나를 지켜줄 정의론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공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찾아가는 ‘사회적 합의의 과정’에 있다.”
공정이 경쟁과 분배의 기준이 아니라 공존의 조건이라면, “공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중요한 것은 “공정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공정을 누가,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혹자는 지금이 갈등과 혐오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정을 제시하지만, 저마다 생각하는 공정이 달라 오히려 갈등이 심화되기도 하고, 때론 공정이 정치권의 진영 논리에 휩쓸려 상대방을 공격하는 근거로 전락하기도 한다. 저자는 7가지 정의론을 한국 사회의 주요 공정 이슈와 엮어서 보여주지만, 어떤 공정이 맞는지에 대해 단언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책에서 다루는 7가지 정의론은 모두 옳다. 핵심은 그것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다. 우리에게 필요한 공정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하기에, 그것을 특정인 누군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논의하며 각각에 맞는 공정을 찾아야 한다. 독자는 7가지 정의론에서 각자 자신에게 맞는 공정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것의 실현 방안을 한국의 사례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으며, 우리가 잊은 공존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김범수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2010년부터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부원장과 자유전공학부 캠퍼스아시아 사업단장을 맡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위원회 위원, 자유전공학부 부학부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정치학회 총무이사, 한국국제정치학회 연구이사, 한국정치사상학회 총무이사, 거버넌스 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주제는 정의론, 인권론, 정체성의 정치, 민족주의, 다문화주의 등 현대정치이론 주요 분야를 포함하며 주요 저서 및 논문으로는 『한일관계 갈등을 넘어 화해로』(박문사, 2020, 공저), 『인권의 정치사상: 현대 인권 담론의 쟁점과 전망』(이학사, 2010, 공저), 「칸트의 자유 개념과 평화론: 국가의 자유와 국제 공법의 양립가능성을 중심으로」(《국제정치논총》 59(3), 2020. 9) 등이 있다.
목 차
머리말. 우리의 공정은 정의로운가
서론. 개인주의적 능력주의는 공정한가
객관적이고 공개적인 경쟁 | 각자에게 합당한 각자의 몫을 나눠주는 것 | 정치적 평등과 공정 |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공정 | 공정의 논리들
1장. 선별적 복지는 공정한가
“최소 수혜자를 위한 불평등은 공정하다”- 롤스
선별적 복지 vs 보편적 복지 | 공리주의는 정의로운가 | 공정으로서의 정의와 그 원칙들 | 정의로운 복지를 위해
2장. 소득 격차는 공정한가
“과정이 정당하면 모든 것이 공정하다”- 노직
우리나라의 소득 격차 | 공리주의와 롤스는 부도덕하다 | 정의의 자격 | 정의의 조건 | 과정이 곧 정의다
3장. 상속과 증여는 공정한가
“출발선이 같아야 공정하다”- 드워킨
합법적 ‘엄빠 찬스’ | 최고의 덕목은 평등한 배려다 | 시초의 평등은 가능한가 | 불운은 선택할 수 없다 | 분배가 아닌 보상 | 타고난 선택은 없다
4장. 수능 시험은 공정한가
“역량도 평등해야 공정하다”- 센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 | 무엇의 평등인가 | 성취할 수 있는 자유 | 정의의 요구는 단순하지 않다 | 교육의 목적
5장. 단순한 평등 분배는 공정한가
“기준이 다양해야 공정하다”- 왈저
백가쟁명식 공정 논쟁 | 롤스는 비현실적이다 | 다원주의 사회의 평등 | 분배 영역과 분배 기준 | 개천에서 용이 나오려면
6장. 소수자 우대 제도는 공정한가
“억압과 지배의 철폐는 불공정해도 정의롭다”- 영
할당제에 대한 위험한 생각 | 핵심은 분배가 아니다 | 억압의 철폐 | 지배의 철폐 | 차이의 인정과 정의 | 공정하다는 신화
7장. 외국인 재난지원금 지급은 공정한가
“불평등한 세계는 불공정하다”- 바이츠와 포기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 무정부 상태의 윤리 | 현실주의적 유토피아 | 국가의 경계를 넘어 |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
결론. 공정은 인정과 합의의 과정이다
승자에게는 축복을, 패자에게는 좌절을? | 형식적 평등이 공정과 정의는 아니다 |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을 | 불만과 과잉이 아닌, 최선의 수단
주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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