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한국 축구는 일본 축구를 상대할 때마다 간절하고 절실했다. 축구 경기가 아니라 마치 전투를 치르는 듯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도 그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1954년부터 2022년까지의 한일전 결과는 통산 80경기에서 42승 23무 15패로 한국의 우위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책은 그 답을 찾기 위해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이 우여곡절 끝에 첫 한일전에서 승리한 뒤 처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여정을 한 편의 소설처럼 그려냈다.
사상 최초의 축구 한일전에 얽힌 비화와 연대기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맞붙은 한일 축구
1차전 1954년 3월 7일 도쿄 5-1 승
2차전 1954년 3월 14일 도쿄 2-2 무승부
◎ 한일전의 기원과 본질
책은 한일전의 시작점을 되돌아봤다. 1954년 3월 스위스 월드컵 예선 13조, 사상 최초의 축구 한일전. 그날 수년, 길게는 수백 년간 켜켜이 쌓이고 응축된 다양한 이야기와 사연이 일순간 폭발했다. 월드컵 참가 동기부터 이승만 설득, 재일동포의 헌신적 노력, ‘코리아 유나이티드Korea United’(남북한 선수+재일동포 선수) 결성과 경기 준비 과정, 드라마 같은 경기 내용, 국민의 열광적인 반응까지. 선수들의 기술과 대표팀 전력을 떠나 정신과 정서까지 고려해야 일방적인 한일전 기록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1954년 폭발한 한국 축구의 민족주의는 세대와 세대를 거쳐 DNA처럼 뿌리 깊게 각인됐다. 책은 최초의 한일전 자체가 지금의 한일전을 만들어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한국 축구의 민족주의는 오롯이 그 첫 한일전에서 비롯했다는 생각이다. 축구 역사에서 봤을 때 그 자체로 ‘보존’되어야 하는 경기임이 틀림없다.
◎ 축구 민족주의
1954년 한국은 식민 지배를 받은 입장에서 반드시 일본을 꺾어야 한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이제 국가대 국가로 싸우는 만큼 필승의 결의를 보였다. 당시 신문들은 한국 팀이 아니라 한국군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읽는 독자로서는 당시 한일전을 ‘총성 없는 전쟁’으로 체감했다. 사상 첫 축구 한일전은 스포츠 민족주의 또는 축구 민족주의로 흘러가는 계기 중 하나였다.
축구대표팀이 일본으로 향하던 1954년 3월 1일 이승만은 제35회 삼일절 기념사에서 북진 통일을 강조하고 나섰다. 반공을 주장하는 이승만은 대내적 측면에서 북한과의 긴장을 고조시켜 내부 통합을 고취하고 정권의 안정을 꾀했다.
언론도 지속적으로 국민과 동포의 정서를 결집시켰다. 한일전을 보도할 때 한국 언론이 감정에 호소하는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는 기사 제목과 내용을 보인 반면 일본 언론은 비교적 차분한 어조로 양측 상황을 설명하며 관전 포인트 등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한일전 보도 경향은 2022년 현재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 ‘현해탄 발언’: “지면 현해탄에 빠져 고기밥이 되어라”
“일본에 가도 좋네만 만일 패한다면 현해탄에 몸을 던지게.” 대한체육회와 재일본대한체육회는 1954년 최종 결정권자인 이승만의 재가를 먼저 받아야 했다. 한일전 성사의 관건이었다. 만약에 지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이제 막 지나온 한국인들의 실망이 얼마나 클까. 이승만은 한국 축구가 강하다는 확신이 없었다. 마침내 이승만은 재가하면서 예선전 두 경기(홈 앤드 어웨이 방식) 모두 일본에 가서 다 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일본이 다시는 한반도에 발을 디뎌서는 안 된다는 극렬 반일주의자의 모습이었다.
최초의 한일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 말을 떠올린다. 역사적 경기를 앞두고 강렬한 메시지가 나오다 보니 반세기가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회자된다. 누가 처음 언급했는지를 두고 이승만이다, 장택상이다, 이유형이다 등 아직까지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대다수 언론은 홍덕영의 증언을 토대로 ‘현해탄 발언자’는 이승만이 아니라 장택상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승만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그가 발언한 것처럼 ‘가짜뉴스’가 나갔다는 뉘앙스다.
하지만 책은 다른 증언과 자료들을 섭렵하고 발언 시점과 인물 등을 추적한 끝에 이승만이 발언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힌다. 한일전 재가를 받는 자리에서 최고 권력자인 이승만이 극단적인 ‘현해탄’ 표현을 쓰는 것을 보고 이에 강렬한 인상이 남은 장택상(대한축구협회장)과 이유형(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에게 권력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 발언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본다.
◎ 일본 측의 거친 플레이와 반칙
1차전은 진흙탕 싸움이었다. 운동장은 며칠째 눈이 내려 질척한 데다 비까지 내려 진흙탕이 돼 있었다. 일본 측은 경기를 연기하자는 한국 측의 제안을 물리치고 강행 의사를 밝혔다. 운동장 위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걸음을 뗄 때 선수들의 축구화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비바람이 불어 체감 기온이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공은 진흙 범벅이 되어 굴러가면서 금방 새까매졌다. 그라운드가 질퍽하고 울퉁불퉁해 공이 덜컹거리며 굴러갔다.
하지만 일본의 패착이었다. 일본은 날씨 등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이라 판단해 1차전을 강행했으나 오히려 자신들이 먼저 극심한 추위와 냉기에 얼어붙었다. 한국 선수단은 5‒1 승리를 만끽했다.
2차 한일전은 말 그대로 난장판, 그라운드 위 전쟁이 됐다. 예선전 탈락을 눈앞에 둔 일본 선수들은 감정이 극에 달했다. 경기에 돌입한 일본은 거친 플레이로 일관하며 한국을 밀어붙였다. 공중 볼을 놓고 경합할 때 일본 선수는 점프를 하면서 팔꿈치로 한국 수비수의 얼굴을 가격했다. 따악 하는 타격음이 관중석까지 전해졌다. 수비수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한국은 10명으로 수적 열세에 몰렸다.
하지만 한국은 동요에 휘말리지 않고 끝까지 스포츠맨십을 발휘해 평온을 찾았다. 수세에 몰리는 중에도 하나의 몸처럼 움직이며 일본의 공격을 막아냈다. 넘어지면 곧바로 다시 일어서 일본 선수를 죽어라 뒤쫓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실황 중계를 듣고 있던 시민들은 손을 모아 기도하고 숨죽이며 응원했다. 2-2 무승부. 이처럼 거친 플레이를 보인 일본 축구가 한국 국민에게 악인 이미지로 낙인찍히면서 당시 한국에서 축구 민족주의가 형성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작가 소개
국영호
고려대 체육교육/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대학원 글로벌스포츠산업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스포츠조선 신문기자를 거쳐 현재는 MBN 방송기자로 일하고 있다. 전공과 현업의 영향인지 스포츠저널리즘과 스포츠사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홍명보의 미라클>(공저)이 있다.
학창 시절 고연전을 보며 스포츠로 진로를 정하고 현재에 이르게 됐다. 스포츠가 건강한 사회로 가는 밑거름이자 기반이라는 믿음은 철없던 청소년기나 불혹을 넘긴 지금 중년이나 똑같다.
16년간 동·하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FIFA 월드컵, UEFA 챔피언스리그 등 주요 스포츠 이벤트를 현장 취재했다. 처음부터 줄곧 취재해온 축구에 대한 애정이 특히 깊다. 정체성이자 뿌리라고 여긴다. 예나 지금이나 축구가 실질적인 국기라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100년 넘은 한국 축구에 민족 혹은 시민의 희로애락이 진하게 배어 있다고 믿는다.
목 차
추천의 글
저자의 말
프롤로그: 1954년 3월 14일
1 “일본은 절대로 우리 땅 밟지 못해!”
역사 클립 / 국제축구연맹 서한
2 1만 4060달러 사건
역사 클립 / 동남아 원정과 외화 사건
3 “우리 조국이 일본에 온다고?”
역사 클립 / 재일동포
4 한국에 꼭 가야 한다
역사 클립 / 전국체전
5 이기붕과의 전략적 만남
역사 클립 / 한일전 성사
6 “틀림없이 일본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역사 클립 / ‘현해탄’ 발언
7 두 경기 모두 일본에서
역사 클립 / 도쿄에서 두 경기
8 남북한 선수 헤쳐 모여!
역사 클립 / 경성, 평양, 함흥
9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역사 클립 / 최정민
10 우리는 조선인 일본 국가대표였지
역사 클립 / 조선 축구
11 노인이 건넨 달걀 50개
역사 클립 / 1948년 런던 올림픽
12 조선인 정체 숨긴 역도산도 동참
역사 클립 / 역도산
13 지면 현해탄에 빠져 고기밥이 되어라
역사 클립 / 출발 인사
14 삼일절에 오른 장도
역사 클립 / 한일 간 시차
15 이길 자신 있는가?
역사 클립 / 후쿠야료칸
16 하늘은 우리 편이 아닌가
역사 클립 / 한일전 신문 보도
17 축구 대신 농구 훈련
역사 클립 / 축구 민족주의
18 “고베일중 출신은 한국을 요리할 줄 알지”
역사 클립 / 대표팀 선수가 된 기자들
19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역사 클립 / 이석의
20 역사적인 한일전 휘슬
역사 클립 / 다케노코시의 경기 강행
21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역사 클립 / 1차전 득점자
22 “일본쯤이야 눈 감고도 이기지”
역사 클립 / 선수 교체 규정
23 최후의 일전
역사 클립 / 동포들의 감격
24 거대한 환영 인파
역사 클립 / 최광석 귀국설
25 가자, 스위스로!
역사 클립 / 항공권 예약
26 쓰라린 월드컵의 첫 기억
역사 클립 / 변모
27 한일전 68년의 역사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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