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이 책의 편집자이자 저자 황진규의 제자 김혜원입니다. 흔히들 편집자를 ‘최초의 독자’라고 합니다. 아직 원고 상태인 저자의 글을 최초로 읽는 사람이 바로 편집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을 철저히 ‘저자’의 편에 서서 만들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가 제 철학 스승이자 저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미리 생각하지 않고, 일단 소중한 사람의 소중한 생각을 최대한 온전히 담아내자는 마음으로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온 지금, 저는 다시 한 번 ‘최초의 독자’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는 ‘저자’의 편이 아닌, ‘독자’들의 편에 선 ‘최초의 독자’ 말입니다. 저자와 독자를 어떻게든 이어주고픈 소개팅 주선자의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은 독자 1호의 서평인 셈이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이 책은 어렵습니다. 이 책이 현학적이고 학술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책은 난해하고 복잡한 철학 개념들을 최대한 일상적인 언어와 예시로 설명하려고 애를 쓴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어렵습니다. 저자가 철학자들의 개념을 빌려 우리의 고민에 답하는 방식이 매우 낯설고 생소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일하지 않고 돈 벌고 싶은가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하는 생각입니다. 아무도 더 이상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되묻지 않을 정도로 당연시되는 생각이지요. 하지만 이 고민에 저자는 중세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진리론’을 설명하며, 일하지 않고 돈 벌고 싶은 마음은 생각만으로 물질을 만드는 ‘신’이 되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신이 ‘밥’을 생각만 하면 ‘밥’이 뿅 하고 나타나듯, 우리도 ‘돈’을 생각만 하면 ‘돈’이 뿅 하고 나타나길 바라고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이를 강하게 비판합니다. 인간은 생각만으로 물질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노동’의 존재라고요. 인간에게 주어진 실존적 조건들을 초월하려는 욕망, 즉 노동의 존재인 인간이 노동 없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몸이 없는 삶을 추구하는 것처럼 헛되고 위험한 일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덧붙입니다. “노동하는 삶이 기쁜 삶이다. 다만 우리가 기쁜 노동을 마주치지 못했을 뿐이다. 가장 기쁜 삶은 죽기 전날에도 하고 싶은 노동을 찾은 삶이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볼까요? “반복되는 삶이 지겨운가요?” 역시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법한 고민입니다. 이 질문에 저자는 근대의 종교철학자 키르케고르의 말을 빌려 답합니다. “반복은 지겨운 것이 아니다. 반복은 새로운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두 가지 반복이 있다고 합니다. 뒤를 향한 되풀이인 ‘기억’과 앞을 향한 되풀이인 ‘반복(Gjentagelsen)’이 그것입니다. 전자는 같은 영화를 다시 볼 때처럼 차이가 없는 되풀이인 반면, 후자는 같은 연극을 다시 볼 때처럼 미묘한 차이를 계속 발견하게 하는 되풀이입니다. 다시 말해, 전자는 차이 없는 반복이고, 후자는 차이 나는 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저자는 두 번째 반복, 즉 차이의 반복이 우리를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구원해줄 열쇠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 질식할 것 같을 때, 새로움을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새로운 영상, 옷, 맛집, 여행지, 사람을 끊임없이 탐닉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더 새로운 것’의 끝에는 공허와 허무밖에 없다는 사실을요. 우리는 ‘일상의 지루함’과 ‘새로움의 공허함’ 사이에서 휘청거리는 삶을 삽니다. 하지만 저자는 ‘차이 없는 반복’의 지루함과 ‘반복 없는 새로움’의 공허함 너머 우리 삶을 진정으로 유쾌하게 해줄 ‘차이의 반복’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지겨움에 삶이 시들어간다고 해서 매번 새로운 사람을 찾아 헤매서는 안 된다. 같은 사람을 반복적으로 만나야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마치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것처럼) 매번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매번 만날 때마다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책, 음악, 영상이든, 여행지, 운동이든, 아니면 한 사람이든, 이 ‘같으면서도 다른’ 것들의 반복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키르케고르가 말한 진정한 ‘반복’이며, 무의미한 삶에 활력을 줄 ‘반복’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불편하고 불쾌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불편하고 불쾌하다면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편함과 불쾌함은 저자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기에 발생하는 감정일 테니까요. “일하지 않고 돈 벌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실존적 조건을 초월하려는 헛되고 위험한 욕망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면 불편하고 불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인 만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이 기쁜 노동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차이 없는 반복이나 새로움에 대한 탐닉이 아닌, 차이의 반복만이 우리 삶을 구원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지금 내가 되풀이 하고 있는 일상이 전부 삶을 질식시키는 차이 없는 반복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 대체 뭔지 감조차 잡기 어려울 수도 있죠. 불편함, 불쾌함, 답답함. 이것은 진짜 철학을 만났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진짜 철학은 우리 시대 너머의 이야기들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책에 담겨있는 내용들이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요.
제가 편집자로서 이 책을 만들 때 바람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 몇 명이라도 철학이 불러일으키는 불쾌함과 불편함, 답답함 속에서 묘한 끌림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저에게 철학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저는 삶의 고민에 질식되어 죽고 싶을 때 철학을 만났습니다. 유튜브 영상이나 힐링 여행 같은 가벼운 방법은 물론이고, 자기계발, 심리학, 종교와 같이 나름대로 진지한 방법으로도 도무지 삶의 고민들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방황하고 있을 때, 우연히 황진규 저자의 철학 수업을 만났습니다. 거기서 처음 철학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난 철학은 불쾌하고 불편했습니다. 아니, 처음에는 도대체 철학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조차 하기 어려웠지요. 하지만 그 불쾌함과 불편함, 답답함 속에 이상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들어보고 싶은 느낌이랄까요. 저는 그 이상한 끌림에 이끌려 지금까지 근 4년 동안 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며 저는 삶을 질식시켰던 일상의 고민들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기쁘고 유쾌한 삶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쩌다 마주친 철학’이 제 삶을 전부 바꾸어 놓았다고요.
고대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세상은 어떤 원자의 작은 빗나감으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바꾸는 이 ‘작은 빗나감’을 ‘클리나멘’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책이 여러분들 삶에 작은 빗나감을 만들어내는 ‘클리나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철학이 제 삶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작가 소개
지은이 : 황진규
“앎과 삶을 연결할 수 없다면 철학은 필요 없다.”
철학을 공부하며, 글을 쓰고, 수업을 하며 산다. 앎과 삶을 연결하려는 인문공동체, ‘철학흥신소’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철학과 삶에 대한 주제로 몇 권의 책을 썼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스피노자의 생활철학』(2020년), 『가드를 올리고 도망치지 말 것』(2019년), 『한입 매일 철학』(2018년), 『철학보다 연애』(2017년), 『고통 말고 보통』(2016년), 『처음 철학하는 사람을 위한 아는 척 매뉴얼』(2016년), 『소심 타파』(2015년) 등의 저서가 있다.
목 차
머리말
프롤로그
생각의 시작
1. 철학은 돈 버는 데 도움이 되나요? _탈레스의 ‘형이상학’
2. 나와 다른 것은 왜 불편할까요? _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
3. 왜 쉽게 위축되거나 오만해질까요? _소크라테스의 ‘성찰’
생각의 생각
4. 강박적인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_플라톤의 ‘이데아’
5. 왜 무기력해질까요? _플라톤의 ‘원인론’
6. 어떻게 당당해질 수 있을까요? _디오게네스의 ‘시니시즘’
7.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_아리스토텔레스의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8. 어떻게 타인과 함께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_아리스토텔레스의 ‘폴리스’
생각의 믿음
9. 어떻게 해야 마음이 편안해질까요? _스토아학파의 ‘아파테이아’
10. 피해의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_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
11. 왜 새로운 시작은 어려울까요? _루크레티우스의 ‘클리나멘’
믿음의 시작
12.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궁금한가요? _아우구스티누스의 ‘과거, 현재, 미래’
13.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_안셀무스의 ‘믿음’
14. 일하지 않고 돈 벌고 싶은가요? _토마스 아퀴나스의 ‘실재론’
믿음의 생각
15. 변덕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_둔스 스코투스의 ‘헥시어티’
16. 어떻게 단순하게 살 수 있을까요? _오컴의 ‘오컴의 면도날’
17. 반복되는 삶이 지겨운가요? _키르케고르의 ‘반복’
에필로그
참고문헌
도판 출처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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