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나를 온전히 바라봐 주는
너를 만났어
지금 내 품에 안긴 소중한 것들은
어떤 이야기를 간직한 채 이곳에 닿았을까?
소녀의 이야기 ‘너의 슬픔을 보았어’
정말 추운 하루였어.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북극이 생각날 정도로. 그렇지만 아무리 추워도 장난감 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오늘 따라 창문 너머를 꼭 보고 싶었는데, 과연 거기에 처음 보는 니가 있었어. 너는 구석 자리에 웅크려 있었지만 나는 단번에 알아보았어. 수많은 인형들 속에 가장 조그마하게 외따로 앉은 너를 꼭 안아 주고 싶었던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어. 얼마 전 보았던 다큐멘터리 때문이었을까. 황량하고 드넓은 대지를 혼자 걸어가는 북극곰을 보았거든. 바람 소리, 차가운 공기,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땅, 녹아내리는 얼음, 성난 바다의 노래가 가득한 곳에서 자꾸만 나를 돌아보는 곰에게 “어디로 가는 거니?” 묻고 싶었거든. 어쩌면 너는 그 멀고 추운 길을 걸어 나에게 닿은 것은 아닐까? “아기 곰아!” 하고 나지막하게 너를 불러 보았어. 그 순간, 할 말이 가득해 보이는 너의 눈빛이 커다란 얼음 섬처럼 일렁이며 빛났어. 이제 내 손을 잡아. 그리고 긴긴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아기 곰의 이야기 ‘너의 손을 잡았어’
내가 살던 곳은 얼음이 늘 가득했어. 하지만 엄마와 지내던 굴속은 정말 포근하고 따뜻했지. 엄마는 혼자서는 절대로 굴 밖에 나가선 안 된다고 하셨지만, 얼음 녹는 소리가 뽀지직 나고 짭조름한 바람이 실려 오면 내 마음은 한껏 부풀었어. 아직도 잊을 수 없어. 엄마와 헤어지던 날을. 엄마가 먹이를 구하러 간 사이에 정말 잠시만 외출을 다녀오려고 했거든. 조용히 멀어지던 엄마의 뒷모습이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굴 밖을 나서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깨달음은 항상 늦지. 그때는 놀라운 세상이 온통 전부였고 나는 겁도 없이 끝도 없이 멀리로 나아갔어. 처음 넘실대는 바다를 보았을 때는 얼마나 벅찼는지 몰라. 나도 모르게 얼음 조각을 건너 바다 한가운데에 닿았으니까. 더 이상 엄마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깨달았어. 다시는 엄마 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갑자기 바다도 하늘도 거대해졌어. 두려웠고 외로웠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지 못했어. 차라리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 점점 얼음처럼 변해 가던 그때 “아기 곰아!”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 엄마처럼 따뜻한 목소리에 감은 눈을 떠 보았어. 거기에 손을 내밀어 주는 니가 서 있었어.
성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온전함
장난감 가게의 수많은 인형들 중에 하얀 아기 곰이 소녀의 눈에 띕니다. 소녀가 “아기 곰아!” 하고 부르는 순간, 구석진 자리에 앉은 아주 작은 아기 곰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먼 북극, 엄마와 지내던 따뜻한 굴속을 벗어나 잠시 외출을 하려던 것이 아기 곰의 기나긴 여정이 되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혼자가 된 곰에게 세상은 너무도 광활하고 춥습니다. 엄마도, 돌아갈 곳도 잃어버린 아기 곰은 어떻게 소녀에게 닿게 되었을까요? 소녀는 어떻게 아기 곰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알아채고 손을 내밀었을까요?
세상의 어떤 일들은 다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기에 오히려 온전합니다. 아기 곰과 소녀가 만나게 된 이유, 아기 곰이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없는 이유,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 매일이 이어지며 살아지는 이유, 서로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기대게 된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성긴 말로는 헤아릴 수 없지만 형체 없이 우리를 가득 채워 주는 순간들과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 온전함을 담은 이 책은 이별의 이야기고 만남의 이야기이며 시간을 길게 관통하는 삶의 이야기였다가 성장의 이야기가 됩니다. 자연과 환경의 이야기이고 그저 신기한 상상의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의 내밀한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 줍니다.
고독한 길을 걸어가게 해 주는 따뜻한 기억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어린 아기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자라면 안락한 품이 답답한 울타리로 변하고 그 너머를 꿈꾸게 되죠. 스스로의 힘으로 걷기 시작한 길의 초입에는 달뜬 호기심과 생기가 가득해 자꾸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다 길을 잃는 순간, 이미 너무도 멀리 와서 홀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삶의 여정이 계속될수록 길은 혹독하고 발걸음은 지칩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독한 길을 그래도 다시 걸어 나갈 수 있는 건 온전히 사랑받은 따뜻한 기억들 때문입니다. 다리가 아파 잠시 쉴 때도, 여우를 만나 숨을 때도, 차가운 바다 위에서 잠이 들 때조차도 엄마 곰의 형체가 아기 곰의 곁을 지키듯 말입니다. 이 밤, 아기 곰을 품에 안은 소녀에게도 먼 훗날 홀로 길을 떠날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무릎이 꺾이도록 힘이 드는 어느 날, 서로의 품에 안겨 완전하게 따뜻했던 이 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덤덤함이 먹먹함으로 번지는 김혜원 작가의 세계
김혜원 작가의 이야기는 섬세하고 정갈합니다. 정성스럽게 눌러 담은 질감과 감정을 깊이 울리는 색감은 천천히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거대한 얼음의 능선, 초록빛 신비스러운 바다, 푸른 빙하와 타는 듯한 하늘, 검은 물 위로 쏟아지는 얼음 빛 별들을 만나며 우리는 맡아 보지 못한 북극의 냄새를 맡고 온몸이 쨍해지는 냉기를 느끼고 눈이 시린 고요를 듣습니다. 무엇보다 같은 공간을 무한히 깊고 너르게 만드는 작가의 담담한 수평선들은 장면 장면에 머무르는 동안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해 줍니다. 『아기 북극곰의 외출』과 『정말 멋진 날이야』에서 작가는 삶과 죽음이 맞닿아 구별되지 않는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아기 곰이 죽었다고 해도, 살아 있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덤덤하게 살아 있음을 생각하다가도 먹먹하게 죽었음을 상상하게 됩니다. 김혜원 작가의 세계에서는 아픈 이별도 벅찬 만남도 삶과 죽음도 야단스럽지 않기에 더욱 형형하게 마음에 번집니다.
작가 소개
김혜원
그림책을 좋아하고 작은 동식물을 돌보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오래오래 들여다보고픈 그림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첫 그림책으로 『아기 북극곰의 외출』을 펴내고 『정말 멋진 날이야』, 『고양이』를 쓰고 그렸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누가 올까?』, 『고양이 뜰』, 『찰방찰방 밤을 건너』, 『숲으로 가자』, 『여름방학, 제주』 등이 있습니다.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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