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경쟁에서 연대로, 독립에서 의존으로, 성장에서 돌봄으로!
한국 사회를 전환할 새로운 물결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인류의 문명화 또는 시민됨(civilization)의 첫 번째 증거로 1만 5,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러졌다 다시 붙은 대퇴’를 꼽았다고 한다. 그 시기 부러진 대퇴골이 다시 붙었다는 사실은 뼈가 부러진 사람이 회복될 때까지 돌봐준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흔히 이를 근거로,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에서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 연구팀이 75년간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을 정말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요인은 가족과 친구를 비롯한 공동체와의 ‘연결’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돌봄과 상호의존이 부와 명성보다도 삶을 지속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은 돌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성장 및 개발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돌봄은 일찍이 생산성이 없고 가치 없는 행위로 저평가되었고, 특히 ‘여성성’과 결부되어 집 안에서 여자들이 도맡아야 할 성역할로 축소되었다. 이후 국가가 돌봄을 일정 정도 책임지는 돌봄의 사회화가 진행되었지만, 그마저도 저임금 노동이 되어 시장에 내맡겨져 왔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에는 “청소 유니폼의 비밀이 뭔지 알아? 우리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준다는 거야”라는 대사와 함께 샐러리맨들이 청소 노동자들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존중받지 못하고 투명하게 지워지는 다양한 돌봄 노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 이후, 한국에서도 돌봄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코호트격리 중심의 방역대책으로 인해 돌봄이 필요한 중증 장애인과 환자들은 시설에 격리된 채 감염을 넘어 생존권을 위협받았고, 어린이집과 노인주간보호소가 연달아 폐쇄되며 수많은 시민이 일상의 재난을 경험했다. 의료진을 비롯한 돌봄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또한 조명되며,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하지만 한국여성민우회의 조사(2020년 2월부터 8월까지 16개 주요 언론사의 기사에 코로나 단일 단어 언급 기사는 7만 8,667건이었으나, 그중 돌봄 위기를 심층 분석 대상으로 삼은 기사는 1.05%에 불과했다)가 말해주듯, 이러한 문제들은 간헐적으로 기사화됐을 뿐, 돌봄의 가치를 성찰하는 사회적 담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돌봄이 돌보는 세계』는 지금까지 분절적으로 등장했던 돌봄을 둘러싼 문제들을 연결하여 돌봄에 얽힌 다층적인 현실을 읽어내고자 하는 시도다. 사회학자, 보건학자, 여성학자, 문화인류학자, 노동 운동 활동가, 장애인 운동 활동가, 질병 당사자가 모여 각자의 주제에서 돌봄이 취급되어 온 방식과 경로를 검토하고, 돌봄에 새겨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조명한다. 자본·성장·경쟁 중심 사회가 초래한 팬데믹과 기후 위기의 시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패러다임으로서 ‘돌봄’의 가능성과 가치를 선명하게 그려나간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다른몸들 (기획)
n개의 다른 몸들이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회단체. 시민과 함께하는 대중적이고 급진적 활동을 지향하며, 특히 질병권(잘 아플 권리) 보장을 위해 아픈 몸 당사자들의 저항적 질병서사 및 돌봄과 젠더를 둘러싼 불평등을 주요한 의제로 삼고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와 진보적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에 연재했던 저항적 질병서사를 묶어서 책 『질병과 함께 춤을』, 『아픈 몸, 무대에 서다』를 출간했고, 아픈 몸들을 공개 모집해서 제작한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백상문화예술대상후보에 오른 바 있다. 이외에도 장애, 계급, 종차별 등의 문제를 교차적으로 고민하며 몫 없는 몸들의 자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김창엽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이자, 민간독립연구소(사단법인)인 ‘시민건강연구소’의 이사장. 건강보장, 건강권, 건강 불평등과 건강정의, 건강체제개혁 등이 주요 연구 분야이며, 최근에는 ‘비판건강연구’에 관심을 두고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이다. 저서로 『건강의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 『건강보장의 이론』, 『포스트 코로나 사회』(공저),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공저) 등이 있다.
김현미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젠더의 정치경제학, 이주, 환경 문제를 연구해왔다. 현지조사 방법론을 활용하여 글로벌 연결성의 관점으로 문화 현상, 노동 현장과 다양한 이주민의 삶을 분석한다. 저서로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글로벌시대의 문화번역』,『젠더와 사회』(공저),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공저) 등이 있다.
박목우
조현 당사자. 동료 상담가. 오래 주머니 속에서 쥐어보았던 동전처럼 따스히 남은 조현의 삶을 26년째 살고 있다. 저서로 『질병과 함께 춤을』(공저), 『아픈 몸, 무대에 서다』(공저),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등이 있다.
백영경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배틀그라운드』 등이 있다.
안숙영
계명대학교 정책대학원 여성학과 교수.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Freie Universit?t Berlin)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사는 젠더와 정치, 젠더와 공간 및 젠더와 노동이며, 저서로 『젠더, 공간, 권력』, 『공간주권으로의 초대』(공저) 등이 있다.
목 차
여는 글 - 돌봄은 진실을 묻는다
[질병] 나의 장애는 몇 점인가요? _염윤선
[정신장애]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_박목우
[장애] 장애를 중심에 둔 돌봄사회 _전근배
[권리] 의존과 질병의 ‘정상성’ _조한진희
[노동] 돌봄이 노동이 될 때 _오승은
[의료] 의료에는 돌봄이 없다 _김창엽
[교육] 돌봄 없이는 교육도 없다 _채효정
[젠더] 보살핌 윤리와 페미니즘 이론 _정희진
[혁명] 돌봄은 혁명이 되어야 한다 _안숙영
[이주] 국경을 넘는 여자들 _김현미
[탈성장] 지구의 성장이 멈추는 곳에서 돌봄이 시작된다 _백영경
주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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