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2022 창원아동문학상 수상 작가 윤해연의 청소년 신작
녀석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우리 안에 섞여 있었다.
마치 얼굴이 없는 것처럼.
너와 나의 몸에 나타난 이상 징후!
청각, 시각, 후각, 촉각……
익숙한 감각을 낯설게 깨우는 여섯 편의 이야기
살갗에 상처가 나 생긴 딱지를 자꾸 매만진 적이 있는가? 고막을 울리는 낯선 주파수가 귓속을 스친 적은? 알던 것이 다른 형태로 보여 눈을 깜박인 경험은? 보편적이지만 또한 매우 주관적이며 개인적이기도 한 신체의 감각들. 윤해연의 청소년 단편집 『녀석의 깃털』은 그러한 일상적 감각을 낯설게 깨우는 여섯 편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친구의 등에 돋아난 깃털, 내 귓바퀴에 생긴 아가미 같은 구멍, B양에게만 들리는 양의 울음소리, 나를 따라다니는 불쾌한 냄새 등 나와 타인에게 불현듯 나타난 몸의 이상 징후들을 통해 일상을 새롭게 경험하게 하는 강한 잔상을 남기는 이야기들이다. ‘나’이기도 하고 ‘녀석’이기도 한 이들의 내밀한 고백 같은 이야기들이 나와 타인이 가진 고민과 상처 그리고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며 새롭게 공감하게 한다.
제3회 비룡소 문학상, 2022년 제12회 창원아동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동화와 청소년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이들의 세상을 감각적으로 다뤄 온 윤해연 작가의 신작이다. 흥미로운 소재로 엮인 짧은 이야기들이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다양한 결말과 시작을 만들어 낸다. 일과에 쫓기는 십 대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환기시켜 줄, 단편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소설집이다.
고단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깃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상으로 떨어질 때 한번은 멈출 수 있는 작은 날개라면 족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 내가 보고 듣고 느끼던 세계를 낯설게 깨부수는 목격과 발견
“세상에는 근거가 있어야 믿는 사람이 있지요. 이를테면 사람 몸에 난 깃털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_「녀석의 깃털」 중에서
곧 수능을 앞둔 친구의 입에서 ‘나는 것이 꿈’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꿈을 증명이라도 하듯 녀석의 어깻죽지에 진짜로 깃털이 자라날 줄은. 표제작인 「녀석의 깃털」에는 친구의 깃털을 뽑아 주는 ‘나’가 등장한다. 나는 입시라는 터널을 향해 달리는 트랙에서 탈선하지 않기 위해 스터디 카페 화장실에서 친구의 깃털을 몰래 뽑아 준다. 그러나 그 행위는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녀석은 그 사건 이후 정말로 꿈을 이룬 듯 사라져 버린다. 「여섯 번째 손가락」에도 이상 징후를 목격한 화자가 등장한다. ‘나’는 오지수의 손에서 ‘여섯 번째 손가락’을 발견하고 그 손에 깃들었을지 모를 신묘한 힘을 믿고 농구 경기의 가드 자리를 내어준다. 그러나 형편없는 경기 이후 오지수는 홀연 학교를 그만두고, ‘나’는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오지수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본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녀석의 등에 난 ‘깃털’과 녀석의 손에 있던 ‘여섯 번째 손가락’은 그것을 목격한 ‘나’의 세상을 한번 새롭게 뒤집는다. 그것을 목격하기 전과 후의 나의 세계는 완전히 다를 것임이 분명하다.
「전이개누공」에 등장하는 병진은 그러한 세계의 확장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다. 전이개누공이라 불리는 귓바퀴에 있는 작은 구멍에 진물이 생긴 병진은 수영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그곳을 막는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어쩐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물속 깊이 잠영을 할 때 그 구멍이 아가미처럼 열리고 닫히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에게 이끌려 간 어느 수영 경기에서 병진은 자신과 같은 아가미를 지닌 무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떤 광경이,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 우리 곁에 ‘있지만’ ‘없는 얼굴’로 존재하는 녀석들과 함께하기 위하여
“아직 얼굴은 없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손이었다.” _「없는 얼굴」중에서
깃털이 생긴, 여섯 번째 손가락을 지녔을지도 모를 녀석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들은 어쩌면 꿈을 이뤘을지도 모르겠지만, 신체의 징후는 때로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페이머스 양」에 등장하는 B는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유기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다. 그러나 B가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이유는 B에게 들린다는 양의 울음소리 때문이다. 자신에게만 들리는 소리를 집착적으로 쫓는 ‘B양’과 자꾸만 들러붙는 악취에 힘겨워하는 ‘선주(「야생 거주지」)’의 이야기는 원하지 않는 환경에 처한 아이들의 고립과 외로움을 청각과 후각에 빗대어 보여 준다. 자신에게 느껴지는 아픔의 징후를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소문과 질타뿐이다.
상처를 회피하기 위해 오히려 자신을 철저히 가두는 방법을 선택한 아이들도 있다.(「없는 얼굴」) 지우는 일 년이 넘도록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촌 동생 선우를 찾아간다. 선우도 선우지만, 사실 병원에 입원했다는 해식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온 참이다. 장난으로 시작된 ‘가라사대’ 놀이는 어느새 해식을 스스로 해치게 만들었고, 선우는 그 장난을 시작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반 대표로 어쩔 수 없이 해식을 만나러 왔다. 악의는 정말 없었는데, 억울하기만 한 지우는 그러나 막상 해식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선우는 닫힌 문 앞에서 답이 돌아오지 않는 질문들을 꺼내 놓는다. 있지만 ‘없는 놈’으로 취급받는 선우와 교실에서 존재를 느끼지 못할 만큼 ‘없는 얼굴’로 지내 온 해식은 서로 너무나 닮았다.
우리는 뉴스에서 무수한 사건을 만난다. 수면으로 드러난 상처는 그제야 어떤 ‘얼굴’이 생기고 유명해지지만, 우리는 그것을 정말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떠한 작은 징후가 생겼을 때, 내 옆의 누군가가 그것을 알아챌 수 있다면, 보지 못한 것일지라도 믿어 줄 수 있다면, 상처 입은 사람들 또한 정말로 우리 곁에 본연의 얼굴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여섯 편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작은 ‘깃털’을 달아 주려고 한다. 한 번쯤 추락할지언정 그 충격의 아픔이 조금은 덜하기를, 그리하여 작은 깃털로도 다시 날아오를 수 있기를.
작가 소개
윤해연
『오늘 떠든 사람 누구야?』로 2014년 비룡소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동화 『우리 집에 코끼리가 산다』, 『뽑기의 달인』, 『투명의자』, 『빨간 아이, 봇』, 『말총 말고 말사탕』 등을 썼으며, 청소년 소설 『그까짓 개』, 『우리는 자라고 있다』, 『허니보이 비』, 『외로움의 습도』(공저) 등을 썼다. 『지구 소년 보고서』로 2022년 창원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목 차
전이개누공
녀석의 깃털
페이머스 양
여섯 번째 손가락
야생 거주지
없는 얼굴
작가의 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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