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공자님이 말하지 말라던 ‘괴력난신’의 세계,
그러나 진 무제 사마염도 조선 선비들도 밤이면 그 속으로 빠져들었다
동아시아의 판타지 백과사전!
매혹적이고 기이하고 낯선 존재들을 총망라한 문화콘텐츠의 원류를 찾아서
기기묘묘한 옛날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졌는가?
장화張華가 진晉 무제武帝 사마염에게 『박물지博物志』 400권을 바쳤을 때의 일이다. 책을 읽은 무제는 공자가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했다며, 귀신 이야기와 기이한 사건들을 다 빼고 『박물지』를 다시 정리하라고 했다. ‘괴력난신’이야말로 현실 사회의 질서를 중시하는 유교적 사유에서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가장 위험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4세기 중반, 『진기晉紀』 20권을 쓴 사관 간보干寶도 ‘신神’들을 ‘수집하여[搜]’ ‘기록한[記]’ 책 『수신기』를 썼다. 세상에 버려지고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이 사라지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간보가 모아들인 신들은 위대하고 신성한 신에서부터 유유자적하는 신선, 영험한 능력을 지닌 인간,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귀신, 변신하는 동물, 요괴가 깃든 사물 등에 이르는 모든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다 수집하여 정리하고 보니, 아이코,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 기이한 책을 무엇이라고 정의내릴 것인가? 그래서 『수신기』를 ‘팔략八略’과 ‘미설微說’이라는 단어로 소개하였다. 기존에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장르라는 의미로 당시 서적 분류법이었던 칠략七略이 아닌 여덟 번째 장르 곧 ‘팔략’이라고 소개하고, 또 쓸데없고 잡다한 이야기 모음집이라는 의미로 ‘미설’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미微’는 작고 자질구레하다는 뜻이니, 미설은 곧 작은 이야기 ‘소설小說’과도 의미가 통한다.
‘작고 자질구레한 이야기’는 어떻게 장르콘텐츠의 원류가 되었나
장자莊子는 소설에 시큰둥했다. 관직을 얻거나 큰 뜻을 펼치는 데에 소설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가 밤마다 샤리아르 왕과 사투를 벌일 수 있었던 무기가 ‘이야기’였듯이, 이야기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또한 이야기는 호기심이자 욕망 그 자체가 아닌가. 더 듣고 싶은 욕망, 결말을 알고 싶은 궁금증은 인간을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그러니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황당무계하다는 이유로,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이유로 괴력난신의 이야기들을 버릴 수는 없다. 일상의 평범한 존재를 낯설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하는 『수신기』의 이야기들을 지금, 여기의 현실에 접목하기 위해 저자는 민담과 전설뿐만 아니라 현대의 영화와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을 끌어들인다.
예를 들어, 그 하나, 도사들이 부리는 도술은 대체로 현실의 총량을 벗어나지 않는다. 일본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의 ‘등가교환의 법칙’처럼 말이다. 서양의 마법사는 지팡이를 허공에 대고 흔들어 마음대로 신비한 마법을 일으킬 수 있지만, 동양의 도사들의 주술은 소박하다. 도사 서광은 오이 장수에게 오이를 구걸하지만 오이를 주지 않자, 당장 저잣거리에서 도술을 부린다. 오이씨를 심어 오이가 열리자 그 자리에서 따먹고는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준 것이다. 오이 장수의 오이가 사라진 건 그다음의 일이다.
그 하나, 아이 열매가 열리는 나무에 대한 상상력은 오늘날 동아시아 판타지에 그대로 수용되어 만화 <십이국기>에서 부부가 함께 빌면 열매 안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는 상상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인간과 동물, 반인반수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사는 젠더의 경계를 초월하고 새로운 형식으로 생명을 잉태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또 하나, 한국의 홍수설화에 등장하는 목도령은 개미 떼와 모기 떼의 도움으로 인류의 시조가 될 수 있었다. 『수신기』에서도 세상이 부조리하여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는 상황에서 인간의 도리를 이해하고 돕는 벌레의 신비한 능력에 대해 들려준다. 더럽거나 혐오스럽거나 두렵거나 한 벌레=타자의 편견을 극복한 아름다운 이야기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정보. 임금의 사위를 부마라고 부르게 된 연유가 『수신기』에 나온다. 산 사람과 귀신이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저승의 영혼과 이승의 남성이 부부 연을 맺었음을 증명해줄 것은 금베개밖에 없다. 그 증표를 현실세계에서 확인받고 나서야 남자는 왕의 딸이었던 귀신의 남편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왕은 금과 비단, 수레를 하사하였고, 부마도위駙馬都尉에 봉해 진짜 사위로 받아들였다.
어쩌면 그 시대의 SF였을 『수신기』에는 날개옷을 입고 하늘을 날고, 불에 타지 않는 옷을 입으며, 천일주를 마시고 시간여행을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삶의 다양한 경험들을 끌어안고, 인간에게 지혜를 부여한다. 그러니 우리는 꿈을 꾸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꼭 이런 식이지. 지나가는 나비 한 마리도 함부로 못 하게.”(드라마 <도깨비>에서)
괴력난신을 표방한 판타지의 세계를 기록한 『수신기』에 실려 있는 신화나 전설, 민간 고사들은 후대의 소설이나 희곡에 소재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설화 연구에서도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괴소설의 백미이자 설화문학의 보고인 『수신기』를 새롭게 다시 읽어야 할 이유다.
특히 기괴함과 황당무계함을 통해 인간의 모습과 사회상을 말하고, 죽음과 타자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데에 특출난 『수신기』를 현대에 다시 소환한 저자는 공포보다는 연민의 시선으로, 자극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귀신을 바라보고 타자의 세계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옛 선조들이 죽음과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상상하였는지 탐색해나간 저자의 모색은, 이 세상에는 어떤 것도 이상하지 않고 그것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인간이 이상할 뿐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수신기』에서 ‘신’은 위대한 신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신비로운 일과 사물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벌레 한 마리, 돌 하나 그 어떤 미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사유가 깃들어 있다. 온 세상의 존재에 영혼이 깃들어 있어 그들이 살아서 인간과 함께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사실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 일인가. 그래서일까, 우리는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괴담을 즐기고 판타지 소설에 열광한다.
덧붙임: 상상력과 환상성의 진가를 엿볼 수 있는 판타지 소설의 원류를 소개하는 『수신기, 괴담의 문화사』와 무협소설의 원조를 소개하는 『수호전, 별에서 온 영웅들의 이야기』에 이어, 이 기기묘묘한 이야기들을 ‘살아-잇기’ 위한 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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