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우리는 일상에서 어떤 이야기와 만날까?
사회학자의 일상 읽기는 소설 같기도 하고 로드 무비 같기도 하다.
칼럼보다 노트에 더 눈길을 머물게 한다.
사회학자 조은 교수(동국대 명예교수)가 2017년 12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 펴내면서 한 편의 긴 노트와 다섯 편의 짧은 노트를 붙였다. 학문과 장르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글을 써 온 저자가 칼럼 앞에 붙인 ‘긴 노트’는 50년 만에 고향을 방문하면서 시작한 귀향소설 같은 현장 일지다. 로드 무비 같기도 하다. 저자의 사유의 공간에 똬리를 틀고 앉아 칼럼을 수시로 간섭하고 사유의 궤적을 드러낸다. 칼럼 앞에 노트를 붙인 이유다.
조은 교수의 칼럼은 연재 내내 독자들에게 잔잔한 파장과 감동,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시기와 무관하게 지금 읽어도 공감과 흡입력을 자아내는 저자의 글은 시사적인 문제나 소수자의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에 대해 글쓴이 특유의 식견과 안목을 발휘하며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의 단서를 열어 준다. 따뜻하고 진솔하지만 예각이 있는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겸허함과 공감대를 자아내는 글쓰기는 책 전체를 관통하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이 사실 “얼마나 가볍고 또 무거운가”라는 문제의식을 환기시킨다. 아울러 “공통된 의미 지평을 잃어버린 통약 불가능한 비극적 공동체로 가는 징후”로서의 지금, 현재를 진단한다.
스물다섯 편의 칼럼 중 다섯 편에 붙은 ‘짧은 노트’는 칼럼에 미처 담지 못한 사유의 회로와 더 짚어야 할 담론 거리들을 담았다. 현장 연구자의 감수성을 드러내면서 읽기와 쓰기가 지식인의 실천의 영역임을 거침없이 짚는다. 특히 2장의 칼럼 〈여성들의 혁명은 일상에서 시작한다〉에 붙인 노트는 역사 추리 소설 같은 제목으로 역사학계에 질문을 던지고 지식권력의 장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요청한다. 3장의 〈장산곶매 이야기 좀 빌려도 될까요〉라는 칼럼에 붙은 노트 〈문제적 칼럼이 돠다〉는 하나의 글이 ‘문제적’이 되는 과정을 여과 없이 메모로 드러낸다. 독자들에게 사유와 성찰의 공간으로 열어놓은 계산된 여백의 글이다.
“원고지 칸을 메꾸는 일보다
마음속 빈칸을 채우는 일이 더 힘들다”
“원고지 칸을 메꾸는 일보다 마음속 빈칸을 채우는 일이 더 힘들다”는 저자의 고백은 긴 노트를 가로지르는 근본 정서다. 1부 〈어떤 한 해, 가까운 옛날이야기〉라고 이름 붙여진 긴 노트는 한국전쟁 중 좌우 대립이 가장 극심했던 지역으로 알려진 고향을 50년 만에 찾으면서 마주하게 된 가까운 ‘옛날이야기’다. 심하게 풍비박산된 한 가족사를 중심에 두고 고향 사람들이 들려주는 ‘가까운’ 옛날이야기와 전남 영광의 아픈 역사, 그리고 한국의 근현대사가 씨줄과 날줄로 엮인 현장을 읽는다.
이야기의 중심에 둔 한 가족사는 저자의 가족사다. 저자는 한 장의 대가족 사진이 찍힌 시대배경의 시간을 적시하고 독해한다. 1947년 겨울 저자의 할아버지 환갑 때 찍은 가족사진이다.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이다. 그 무렵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할아버지 1남 2녀의 직계 스물여덟 명이 함께 찍은 사진이나 잔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어두움이 깔려 있다. 그 사진에 10여 명도 넘는 손자손녀가 찍혔는데 저자도 그 사진에 없지만 손이 귀한 집안에서 매우 중히 여겼을 장손도 없다, 사진에 친 손자는 둘째 집의 외아들 세 살배기 한 명뿐이다. 월북해서 집안에서 쉬쉬하게 된 큰집의 장손은 그때 북에 갔다가 길이 막혀 할아버지 환갑에 못 온 듯하다. 할아버지 환갑 사진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어서 그 사진에 끼지도 못한 15개월배기 여자 아이가 사회학자가 되어 기억과 경험, 의식을 동원해 가족사진의 의미를 퍼내는 장면은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Punctum)을 연상시킨다. 단순한 가족사진이라는 기호로 환원시킬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간취하고 있다.
50년 만의 고향 방문 그리고 우연찮은 두 번째 방문
“어머니가 영광 선산에 묻히기로 마음을 정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고향 땅을 밟지 않았을지 모른다.” 책의 첫 구절과 같이 저자는 어머니를 모실 선산을 둘러보기 위해 50년 만에 고향 영광을 찾는다. 그러나 저자에게 영광 가는 길은 “마음이 움직여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길”이자 “몸이 움직여도 마음이 따르지 않는 길”이며 “산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사촌 동생과 함께한 첫 번째 방문에서 고향에 머문 시간은 5시간 20분이다. 6개월 후 동아시아 평화에 관심이 많은 일단의 여성 사학자들과 사회학자가 우연찮게 저자의 고향 방문에 동반하면서 저자가 맞닥뜨려가는 이야기의 반경은 가족사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려가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기 시작한다.
‘시국을 잘못 만난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며
두 번째 영광에 다녀온 뒤 열흘쯤 지나 ‘개똥어멈’의 딸의 전화를 받아 어머니에게 건넨다. 개똥어멈은 저자의 고향 집 앞에 버려졌던 아이가 어른이 된 뒤 얻은 이름이다. 1910년대 기아가 휩쓴 일제하에서 먹고살 만한 집 앞에 아이가 버려지는 일은 아주 흔했다. “개똥어멈 큰아들이 희선이한테 물들었던지 북으로 갔다.” 어머니는 전화기를 내려놓으면서 금기어였던 큰집의 장손 이름과 들어 본 적 없는 개똥어멈 큰아들을 묶어 툭 떨어뜨린다. 그러면서 가족 내에서 되풀이 듣는 “시국을 잘못 만난 사람들”이야기로 갔다가 전설이자 동화와 같은 동네 머슴 ‘야든이’ 등 이름 없는 민중들의 이야기로 가서 멈춘다. 어떤 기억과 어떤 기록이 미진하게 멈춰 있다.
2부의 칼럼 및 노트는 2016년 9월부터 2017년 9월까지 메모로 남긴, 한 해 동안 영광을 방문하고 경험한 일상적이면서 비일상적인 작은 이야기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작가 소개
조은
1946년 전남 영광에서 출생. 1983년부터 2012년까지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다. 페미니스트 사회학자로 학문과 장르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구하고 작업을 해 왔다. 학술논문 외에 다큐멘터리 〈사당동 더하기 22〉, 〈사당동 더하기 33〉을 제작 및 감독했다. 문화기술지 《사당동 더하기 25》와 소설 《침묵으로 지은 집》을 출간했다
목 차
책을 내며 7
프롤로그 12
Ⅰ부 어떤 한 해, 가까운 옛날이야기
50년 만의 고향 방문
고향을 다녀온 지 열흘 만에 전화 한 통을 받다
두 번째 영광 방문
육십 몇 년이 지나 떨어뜨린 이야기
‘목소리 소설’ 작가를 토론하다
시국을 잘못 만난 사람들
어떤 기억과 어떤 기록
Ⅱ 부 일상에 대한 예의
1장 일상의 무게
위 캔 스피크…
올해도 스치고 싶은 사람들
노예 만들어 줄 일 있느냐고요
왼손과 오른손을 찬찬히 들여다보다
- 채의진 선생 작업장 풍경
우리 모두 위로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
읽고 쓰기의 쓸모를 생각하다
올해 만나 보고 싶은 사람들
2장 글 안의 사람, 글 밖의 풍경
여성들의 혁명은 일상에서 시작한다
- 여성 독립운동가의 육필 원고에 누가 손댔을까?
학문이(도) 패션 상품일까
〈기생충〉과 중산층 파국의 징후 읽기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정원
역사가 부끄러움을 가르칠 수 있다면
어떤 가난과 어떤 가혹한 70년
글을 쓰다가 길을 잃다
오월 광주와 ‘우리 선생님’에 대한 사유
- ‘우리 선생님’이 던진 숙제 그리고 …
팬데믹 영화제 로드 무비를 상상하다
3장 일상에서 던지는 물음
장산곶매 이야기 좀 빌려도 될까요?
- ‘문제적 칼럼’이 되다
집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 보는 시간
‘그들의 시간’과 만날 수 있을까
어떤 위로 어떤 감동 어떤 아름다움을
‘어떤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
“살림 따라오나 봐라”
어떤 말하기와 읽어 주기의 힘
- 페미니스트 지식인의 ‘어떤 읽기’와 문해력
우리는 어떤 길을 낼 수 있을까?
에필로그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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