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한 개인이 최소한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1914년 영국에서 여성참정권 운동이 한창일 무렵 한 여성이 식칼을 숨겨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들어가 바로크시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 <로커비 비너스>의 등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해 버렸다. 메리 리처드슨이라는 이 여성은 여성참정권을 주장하는 영국의 서프러제트 운동 지지자였는데, 이 운동의 지도자인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체포되었고, 그에 대한 항의로 이 같은 행위를 한 것이다. 그녀는 결국 체포되어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여성참정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일조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한 인터뷰에서 리처드슨은 “남성 방문객들이 하루 종일 그 그림을 바라보는 모습이 싫어서 사진을 찢어버렸다.”고 말했다. 여성의 권리에는 뒷전이면서 신화 속 여성 누드화에 찬사를 보내는 남성중심의 사회적 인식에 대한 항의였던 것이다.
영국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을 가지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나 주어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경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나 가능했으며, 미국의 경우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법률로서 보장되게 되었다. 서양에서 여성들의 권리가 보장된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불과 백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동서양 할 것 없이 인간의 역사에서 여성들은 참정권뿐만 아니라 재산을 소유할 권리, 교육 받을 권리도 제한이나 차별을 받았다. 근대에 들어와서도 여성들은 오랫동안 교육의 기회에서 배제되었다. 여성의 고등교육의 기회와 재산권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획득하게 된다.
1971년 초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은 <아트뉴스>지에 ‘왜 이제껏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없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했다. 인류역사에서 위대한 남성상은 많아도 위대한 여성상은 별로 없는 것이 비단 미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며, 이런 수적인 열세의 진정한 이유는 여성의 교육, 사회제도, 관습에서 기인한 것임을 지적한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노클린은 여성에 대한 누드 모델의 금기였으며, 미술의 인체묘사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까지 여성은 모델의 자격으로서나 화실에 입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페미니스트 미술의 일종의 선언문이라 할 수 있는 이 기사는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없었던 이유로 여성 미술가가 남성과 동등한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선구적 페미니스트이자, 모더니스트로서 20세기 초 버지니아 울프도 문학사에서 여성의 이름이 드문 이유로 여성의 열등함이 원인이 아니라면, 사회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나는 영국에서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여자다.”(버지니아 울프, 『울프 일기』, 솔출판사, 146쪽.) 라고 표현할 만큼 울프는 여성 참정권 운동 등 성차별이 만연한 시대에 여성으로서는 흔치않은 특권을 누린 환경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문예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울 수 있었고, 오빠 토비의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들인 학자, 문인, 예술가, 비평가들과 함께 ‘블롬즈버리 그룹’을 결성해 문화와 사회에 대한 지적교류를 통해 성장했다. 울프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이해했던 남편 레너드는 결혼 후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하여 그녀의 작품을 출판할 정도로 당시 여성으로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교육받은 남성의 딸’이라는 특권적 상황에서도 울프 역시 당시 여성에게 강요되는 규범에 따라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에서 배제되었다. 울프의 이러한 심정은 1928년 일기에서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 생신. 살아계셨으면 96세가 되었을 것이다. (…) 고맙게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랬더라면 그의 인생이 내 인생을 완전히 끝장내 버렸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고, 책도 없었을 터,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다.”(같은 책, 234쪽.) 울프는 교육받은 남성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적 산물인 아버지로 인해 글을 쓰는데 제한을 받았을 것이라고 술회한다. 당시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지 못하고 남성에게 종속되고 억압되어 있다는 인식은 울프에게서 글쓰기의 출발점으로 작용한다.
울프는 1928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의 강연문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방』을 발표한다. 가부장제 하의 여성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필요조건으로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10쪽.)고 주장한다. 중산층에 속했지만 울프가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준 건 숙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연간 오백 파운드의 수입은 그녀에게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바탕이 되었다. 자신의 사례를 견본으로 울프는 여성 작가에게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으로 연간 ‘오백 파운드의 돈’과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여성에게 오백 파운드의 돈은 물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다. 여성들은 대부분 공동거실에서 수시로 방해 받으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울프는 19세기 여성 작가들이 주로 소설을 쓴 이유가 그들이 주로 거실에서 글을 써야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집중력이 요구되는 시보다 소설이 더 적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울프는 당시 여성들이 마주한 물질적 한계를 『자기만의 방』에서 주디스 셰익스피어라는 허구의 인물을 가정해 여성이기 때문에 교육의 기회와 공평한 사회의 시선을 누릴 수 없는 입장을 묘사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누이인 주디스는 셰익스피어처럼 문학적 재능을 가졌지만 셰익스피어와는 달리 어떠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재능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천재란 고생하고 교육도 못 받고 노예같이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태어나지 않는 법이니까요. 영국에서는 그러한 천재가 색슨족이나 브리튼족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오늘날 노동자 계층에서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성들 사이에서 그런 천재가 태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 여성들의 임무는 육아원을 거의 벗어나기도 전에 시작되었고, 그것도 부모들에 의해 강요되고 온갖 법률과 관습에 의해 고수되도록 되어 있었으니까요.(같은 책, 69-70쪽.)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재산과 자유 시간이 보장된 계층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중산층 여성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다. 울프는 여성이 셰익스피어처럼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불타오르는 마음으로 창작에만 몰두하기 위해서는 연 오백 파운드의 수입뿐만 아니라 자기만의 방이라는 ‘자유’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자기만의 방』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는 정신적 활동을 위한 물질적 토대의 중요성이며, 자기만의 방은 자유의 공간이다.”(버지니아울프학회 편, 『버지니아 울프』, 도서출판 동인, 406쪽.)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은 자유롭게 사색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자기만의 방이 있고 없음의 차이는 크다. 자기만을 위한 자유로운 공간의 확보는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가부장제하의 여성으로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이다. 결국 자기만의 방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오롯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픈 작은 외침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신의 방을 가지라고 부탁할 때 나는 여러분이 이 실재의 현존 안에서, 활기를 북돋아주는 삶으로 보이는 그런 삶을, (…) 살아가기를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자기만의 방』, 152쪽.)
울프에게 자기만의 방은 “다른 무엇이 되기보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같은 책, 153쪽.)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실재의 현존 안에서, 활기를 북돋아주는 삶으로 보이는 그런 삶, 즉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만의 방은 단지 여성과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조건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구분을 넘어 한 개인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은유로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여성이 겪는 성차별을 쟁점화한 『자기만의 방』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의 불합리성에 대한 항의이다. 울프는 한 개인이 사회적 억압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자기만의 방과 돈’을 제시했다. 당시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 참정권 확보를 위한 투쟁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과 달리 울프는 개인적인 삶을 통해 여성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지성인이었다. 20세기 초 여성에게 주어진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어느 누구도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썼던 울프. 그녀의 글은 여성과 남성을 넘어 한 개인으로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삶의 질문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을 넘어 인간주의에 대한 문제이다.
―임영매「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작가 소개
임영매
보드리야르의 미학이론과 현대예술론으로 문화학박사 학위 취득. 바다를 거니는 걸 좋아하며 절반의 삶에서 숨 고르기를 하는 중이다.
목 차
서문
울프의 영원을 마주하다
임영매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여성의 삶과 출항
어느 작가의 일기
정광모
『밤과 낮』 그리고 로맨스
릴리. 마지막 승리자
울프와 문학의 방
이수경
올랜도의 여성-되기
울프, 그녀를 만나다
글을 쓴다는 것, 깃발을 향해서 쓰러지기
김덕아
『밤과 낮』 속의 그녀들
인간 삶의 층
김수우
우리 안에 빛나는 수천 개의 자아를 위하여
『올랜도』에 담긴 시학
우리의 삶, 그 막간들
읽기와 쓰기, 타자와 마주 앉기
함께 읽고 공부한 책 -버니지나 울프 전집(솔출판사)
필진 약력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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