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애벌레의 시간을 함께하며 깨달은 것들
수많은 애벌레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살아간다. 인간의 눈에는 공중에 매달린 삶이 불안해 보이지만, 애벌레가 어른벌레가 되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의례다. 애벌레는 성장하면서 껍질을 벗는 탈피 과정을 겪는데, 이 거꾸로 매달린 고독의 시간이 애벌레를 어른벌레로 만들어준다. 작가 이상권은 애벌레를 키우거나, 숲속이나 마당 앞의 애벌레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면서 이 작은 존재들의 무한하고 동적인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방이나 벌 등의 어른벌레가 되기 전, 애벌레의 시간을 바라보면서 작가는 열두 종류의 애벌레와 그에 얽힌 일화, 고민, 성찰을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한 열두 편의 글로 꾹꾹 눌러 담아 썼다.
주홍박각시 애벌레, 대왕박각시 애벌레, 매미나방 애벌레,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 맵시곱추밤나방 애벌레, 반달누에나방 애벌레, 거세미나방 애벌레, 현무잎벌 애벌레, 차주머니나방 애벌레, 참나무산누에나방 애벌레, 큰빗줄가지나방 애벌레, 유리산누에나방 애벌레. 책에는 모두 열두 종의 애벌레가 등장한다. 이 중에는 뱀처럼 생겨서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애벌레도 있고, 해마다 봄이 되면 숲을 점령하여 사람들이 싫어하는 애벌레도 있고, 농부들의 골칫거리가 되는 애벌레도 있다.
작가 역시 애벌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작은 초록 애벌레를 친구로 받아들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알아간다. 애벌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쌓이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날마다 지켜보다 보니 믿을 수 없게도” 애벌레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애벌레는 아이들이 다가오면 가만히 귀를 기울여주었다. 아이들의 말랑거리는 손이 다가와도 전혀 놀라지 않다가, 누군가 짓궂게 건드리면 ‘싫어, 하지 마!’ 하고는 머리를 옆으로 휘저었다. 그제야 아이들은 애벌레가 정확하게 감정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애벌레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때로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힘이 되고,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존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본문에서
생태 작가 이상권, 애벌레를 바라보며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더듬다
나뭇잎과 바람, 애벌레가 보내는 침묵의 위로
작가는 특히 애벌레의 집과 인간의 집을 비교하며 ‘생가’라는 말을 잃어버린 인간의 건축 문명,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삶을 돌아본다. 애벌레들은 현재에 주목하고, 과정에 충실하다. 자기 몸에서 실을 뽑아 번데기로 살아갈 집을 짓는다. 욕심 부리지 않고, 중력이 허락하는 만큼의 가벼운 집이다. 그래야 그들은 그다음 삶을 이어나갈 수 있고, 꿈꿀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잠시나마 애벌레와 인간의 삶을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써내려갔다.
나방이 날갯짓을 할 수 있는 것은 “재주라고는 꿈틀거리는 것밖에 없었던” 작은 존재가 만들어낸 경이다. 또한 이 작고 신비로운 존재들을 키우는 풀과 나무, 바람과 땅, 물과 햇볕… 그 모든 것이 함께 만들어낸 이야기다. 그렇게 작가의 세계는 넓어지고 겸손해진다.
아주 오래 이어져온 숲과 애벌레의 신화를 읽듯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글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 그리고 미래의 시간까지도 더듬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것들이 침묵의 위로를 보낸다. 일반독자는 물론 청소년들이 우리를 둘러싼 더 많은 존재들과 경계 없이 만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전한다.
“이 책은 애벌레에 대한 서사시입니다. 오감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애벌레의 운명을 노래했습니다. 애벌레는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와 미래의 시간까지도 다 안고서 살아갑니다. 그들의 역사 속에는 풀과 나무, 바람과 땅, 물과 햇볕 그 모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애벌레와 함께하며 그들의 낭만적인 건강함을 배웠습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의 겸손함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다니, 그것만큼 고마운 해탈이 있을까요?”
-〈작가의 말〉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상권
산과 강이 있는 마을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 본 수많은 풀꽃과 동물들의 삶과 생명의 힘을 문학에 담고 있다. 1994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소설을 발표하면서 이야기꾼이 되었고, 이후 일반문학과 아동·청소년 문학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작품으로는 『시간여행 가이드, 하얀 고양이』, 『시간 전달자』, 『서울 사는 외계인들』, 『위험한 호랑이 책』 등이 있다. 소설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는 현재 고1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를 비롯하여 10여 권의 책이 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으로 소개되었다.
그린이 : 이단후
도봉산이 한눈에 보이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수많은 풀꽃과 애벌레들을 그리고 놀면서 자랐다. 이 책에 나오는 참나무산누에나방 애벌레에게 ‘통통이’와 ‘늦나돌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으며, 그림도 그 시절의 감성을 떠올리면서 그리려고 했다. 사람들이 흔히 징그러워하는 애벌레를 최대한 색연필만을 사용해 따뜻하면서도 친근하게 담아내려 했다. 서울과학기술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애벌레들처럼 최선을 다해 삶의 과정에 충실하고자 한다.
목 차
작가의 말
애벌레 그림을 그리며
1. 천상의 색을 빚다 : 주홍박각시 애벌레
2. 영원한 대지 속으로 들어가다 : 대왕박각시 애벌레
3. 당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애벌레를 위한 헌사 : 매미나방 애벌레
4. 외계인 같은 나의 특별한 친구에게 :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
5.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잃다 : 맵시곱추밤나방 애벌레
6. 이토록 넓고 자애로운 나무의 품에서 : 반달누에나방 애벌레
7.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 : 거세미나방 애벌레
8. 그는 진짜 외계생명체였는지 몰라 : 현무잎벌 애벌레
9. 하늘을 나는 마법의 집, 설계자 : 차주머니나방 애벌레
10. 가만히 세상 모든 소리에 귀 기울이다 : 참나무산누에나방 애벌레
11. 탱자나무에서 만난 애벌레와의 대화 : 큰빗줄가지나방 애벌레
12. 천상의 예술가, 비상하다 : 유리산누에나방 애벌레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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