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과학적 정보가 불확실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내분비 교란 물질’이라고 해야 할까, ‘호르몬 활성 물질’이라고 해야 할까?
언제나 ‘가치’와 엮어 이루어지는 과학이라는 인간의 활동
과학과 가치의 관계를 가장 입체적으로 탐구한 걸작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다’라는 전통적인 믿음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연구 주제 선정부터 설계, 실행, 평가까지 과학 활동의 모든 단계에 가치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책. 기후변화, 인류학, 화학 물질의 위험성 평가, 생태학, 신경생물학, 생리의학, 농업을 포함한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의 사례를 살펴보고, 과학에서의 가치가 신중하고 자세히 검토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과학철학자 케빈 엘리엇은 ‘가치(value)’를 “추구하기에 바람직한 그 무엇”(39쪽)으로 정의하고, 지식을 얻는 데 기여하는 논리적 정합성 같은 ‘인식적(epistemic) 가치’와 달리, 일반적으로 과학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여겨지는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윤리적인 가치인 ‘비인식적 가치’가 과학에 작용한 수많은 사례를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에서 가치가 정당한 역할을 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가치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이다. 과학자들은 증거를 해석하거나 결론을 도출하는 특정한 유형의 결정을 할 때 가치의 영향을 사실상 막을 수 없으며, 이를 피하려고 하기보다는 신중하고 의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과학자들이 타당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가치가 도움이 되는 경우이다. 과학 역시 사회적 활동이며 이런 맥락에서 과학에는 사회를 이롭게 한다는 목표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연구 주제 선정부터 설계, 실행, 평가까지
과학 활동의 모든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치
이런 두 가지 정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저자는 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과학 활동을 다음 다섯 가지로 나누어 질문을 던지고 실제 사례를 분석한다.
*연구 주제 선택: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2장) 가치는 연구 주제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특정 성(性)이나 인종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열등하다는 가정이나 무기에 대한 연구는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연구 과제들의 우선순위는 낮추는 것이 합당하다. 또 과학 연구에 공적 자금을 배분하거나 민간 자금을 지원할 때도 가치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저자는 국립과학재단(NSF)과 미국 의회 사이에 있었던 갈등과, 선진국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는 심각한 질병인 말라리아를 둘러싼 현대 생의학 연구 풍경을 예로 들어, 정책 입법자들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특허 제도 같은 사회 체제에도 가치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힌다.
*연구 방식: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3장) 같은 연구를 하면서도 연구에 영향을 주는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가치에 따라 과학자들의 연구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 농업 연구에서 과학자는 종자의 유전적 특성과 새로운 살충제 개발 연구에 집중해 농작물이 싼값에 대량으로 생산되는 데 기여할 것인지, 아니면 여러 작물 사이의 시너지와 토지 개혁이 가난한 농민들에게 주는 영향 등을 연구해 기아와 빈곤을 줄이고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구하는 데 기여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가치의 이런 영향은 오염 물질 연구(독성 화학 물질의 위험성 평가에 따르는 여러 가정에 따라 공중 및 환경 보건, 또는 경제적 이익에 기여할 수 있다), 의학 연구(우울증 연구의 초점이 수면, 식사, 운동의 영향보다는 분자적 경로를 밝히고 약물을 개발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이는 예방보다 치료에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암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에서도 볼 수 있다.
*연구의 목적: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는가?(4장) 세상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과학의 목표는 언뜻 꽤 명백해 보일 수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맥락에 따라 정확성과 객관성 외에 다른 목표를 추구해야 할 때도 있다. 저자는 습지 연구, 인류학 연구, 기후 모형 연구를 예로 들어 규제 기관이나 정책 입안자들과 함께 일할 때는 정확한 정보 이상의 실용적인 목표(비용 최소화 또는 신속한 결과 도출)를 추구해야 할 때도 있고, 더 많은 연구에 이용할 수 있는 이론을 개발해야 할 때도 있으며, 모든 것을 모형화할 수는 없으니 어떤 것을 모형화할 것인지, 좋은 모형이 가져야 할 성질은 무엇인지 선택해야 할 때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가치가 개입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방식: 불확실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5장) 1988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기후학자 제임스 한센은 온실효과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강경한 태도로 경고했다. 이후 그는 수많은 동료 과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는데, 이들 역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했지만 데이터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런 확신에 찬 발언은 기후학자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 사례에서 한센은 개인적인 가치에 영향을 받은 것이고, 그를 비판한 동료 과학자들은 가치중립을 지킨 것일까? 이렇게 불확실성이 크면서도 대중들에게 중요한 연구에서 결론을 내리려면 얼마나 많은 증거가 필요할까? 과학자들이 사회의 이익과 객관성 모두를 목표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갈등을 헤쳐나가기는 쉽지 않다. 저자는 기후변화, 유전자 변형 식품, 진화론, 백신 연구와 같은 최근의 여러 갈등 사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갈등 해결을 위한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제안을 한다.(198~199쪽)
*결과의 설명: 가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6장) 과학자들은 정보를 전달할 때도 가치가 개입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예를 들어 독성학 같은 분야에서 ‘내분비 교란 물질’이라고 할지 ‘호르몬 활성 물질’이라고 할지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의 반응은 다를 수 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일부일처제’나 ‘강간’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적절할까? ‘온실효과’,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등 온실가스로 인한 결과를 나타내는 말들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었을 때 ‘우한 폐렴’ 같은 말을 쓰는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것처럼, 어떤 질병에 사용되는 용어 중에는 환자나 장소에 오명을 씌울 수 있는 것도 있다. 저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언어에 대한 결정을 할 때 취했던 조치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추적’과 함께 시민단체나 정책 입안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제안한다.
왜 설득력 있는 과학 정보를 제공해도
과학기술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은 계속되는가?
해결의 실마리는 ‘가치’에 있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다’라는 명제를 겨냥한
과학철학자의 강력한 카운터펀치
저자는 사례 분석에서 더 나아가 가치가 과학에서 올바른 역할을 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세 가지 조건을 제안한다. 첫째, 데이터, 연구 방법, 모형, 가정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가치의 영향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해야 하며, 둘째, 연구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는 사회적, 윤리적 우선순위를 대표해야 하고, 셋째, 과학자, 시민, 정책 입안자 등이 적절한 형태로 참여해야 한다. 이 책의 7장에서는 세 가지 조건 중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참여’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특히 앞에서 에이즈 활동가들이 에이즈 연구에 기여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저자가 하려는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263~264쪽) 독자들은 이 책에서 기후변화, 유전자 변형 식품 및 백신 안전성, 성(性) 및 인종 간 인지 능력의 차이 같은 논쟁적인 과학 주제들은 물론, 가치와 무관할 것 같은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분야에도 가치가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과학의 역할에 대한 실마리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장 과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은 물론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와 과학 대중화에 힘쓰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에게도 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케빈 엘리엇
과학철학자. 미시간 주립대학교 라이먼브릭스칼리지 어류·야생동물학과, 철학과 교수이다. 과학 연구의 투명성과 오픈 사이언스 운동의 효과를 높이고, 더 나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과학철학과 실천윤리가 전공이며, 특히 연구 윤리와 환경 윤리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과학을 사회적 맥락에서 연구하며, 특히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들이 과학 연구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그러한 영향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재정적 이해 충돌을 해결하거나 연구자들에게 더 큰 인구통계학적·학문적 다양성을 촉진하려는 협업과 학제간 연구에 참여해왔다. 미국 국립환경보건 과학연구소(NIEHS) 자문위원회, 미국 국립과학원(NAS)의 여러 위원을 역임했고, 과학철학협회(PSA)에서 프로그램 위원장, 학회지 〈과학철학Philosophy of Science〉의 편집자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약간의 오염은 당신에게 이로운가?: 환경 연구에 사회적 가치 포함시키기Is a Little Pollution Good for You?: Incorporating Societal Values in Environmental Research》 등이, 편집한 책으로 《과학과 가치에 대한 오늘날의 논쟁Current Controversies in Values and Science》 등이 있다.
옮긴이 : 김희봉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주로 과학 분야의 책을 번역하고 있다. 번역서로 《1 더하기 1은 2인가》 《엔리코 페르미,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 《E=m²》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등이 있다.
목 차
추천의 말
서문
감사의 말
1. 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
2.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3.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4.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는가?
5. 불확실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6. 가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7. 가치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8. 결론: 가치의 태피스트리
토론 질문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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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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