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언어로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끝
자연의 충일한 관찰자이자 리포터 시인
메리 올리버 시집 『서쪽 바람』 출간
메리 올리버의 든직한 동반자로 꾸준히 국내에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마음산책에서 시집 『서쪽 바람』을 출간한다. 1992년 시선집 『기러기』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이 시대 최고의 시인”(<뉴욕 타임스>)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획득한 메리 올리버. 『서쪽 바람』은 그가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하던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공개됐다. 본격적으로 산문과 산문시를 쓰기 시작하던 무렵 나온 시집에는 길이도 형식도 자유로운 4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덕에 메리 올리버의 초기 산문시들을 접하는 동시에 다양한 시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반가운 것은 연작시 「가자미」(「가자미, 셋」)가 수록됐다는 점이다. 작고, 가시가 많고, 그리 중요하진 않지만 조화로운 물고기. ‘가자미’라는 제목 아래 놓인 일련의 시들에, 메리 올리버는 소로와 에머슨의 정신을 잇는 금언적인 경구들을 새겨 넣었다. 마음산책은 그간 『긴 호흡』 『휘파람 부는 사람』 『완벽한 날들』을 통해 총 9편의 연작시인 「가자미」 중 8편을 소개했고, 『서쪽 바람』의 출간으로 전편을 선보이게 되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바지런히 바깥세상을 거닐며 풍경의 세부 사항들을 면밀히 눈에 담고 기록한다. 나아가 숲, 호수, 동식물, 날씨 등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하며 자연 세계와 자신이 나누는 내적 대화를 실체화한다. 평범해 보이는 순간들에서 발견하는 경이로움을 단순하고 명료한 단어로 치환해낸 그의 시는, 가히 언어로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끝이라 할 만하다. 독자는 시를 읽으면서 그가 노닐던 풍경 속에 놓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 고개 숙여 절하지”
변함없는 세상의 경이와 끊임없는 생명의 순환을 노래하다
『서쪽 바람』은 총 3장으로 나뉜다. 1장은 나비, 뱀, 여우, 떡갈나무, 단풍나무 등 동식물과, 별, 봄, 천둥 번개 등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시들이 이어진다. 시인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신적으로, 시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 프로빈스타운을 인상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면서 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야생 세계에서 받은 위무를 부듯해하며 지극한 사랑과 경외를 보낸다.
경이로운 건─내 나이 스무 살 때/ 내 몸의 모든 움직임에 달콤한 평안이/ 초록 지구의 모든 움직임에/ 파라다이스의 암시가 있었던 것처럼,/ 내 나이 예순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거지.
─「나, 일찍 일어나는 사람 아니던가」 중에서
메리 올리버는 줄곧 삶과 죽음을 고찰하는 시를 써왔는데, 『서쪽 바람』에는 유독 죽음에 대한 암시와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살아남지 못한 서부구렁이의 몸뚱아리는 죽음의 “물렁한 검은 구조물”로 남겨지고, 어둠의 새인 올빼미는 “죽음의 사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편안한 여름에도/ 자주 죽음을 생각”하듯, 그의 시에서 죽음은 두렵고 부정적인 관념이 아니다. 사는 것만큼 죽는 것도 중요하고 경이로운 일이라고 말하는 시인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부터/ 빛의 흰 눈밭 나오리니”라며 죽음에서 다시 이어지는 생의 감각을 노래한다.
삶이 죽음으로, 다시 부활로, 다시 소멸로, 다시 거듭남으로 무한히 이어지는 생명의 신성한 순환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은 영원, 이곳은 세상 모든 곳, 나는 세상 만물이 된다. 그리고 날마다 자연 속을 걷고 또 걷는 메리 올리버는 이 우주적 합일의 경이를 거듭거듭 목격하고 환희와 감사의 목소리로 노래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우리가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면, 함께인 게 좋겠지”
자연에 몸을 맡기는 기쁨과 필요성에 대한 시인의 메시지
2장에는 표제작 「서쪽 바람」 1편이 실려 있는데, 1부터 13까지 번호로 나뉜 시들은 연작으로도 개별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다. ‘서쪽 바람’이라는 제목은 메리 올리버가 일생 흠모한 시인 퍼시 비시 셸리가, 자연과 생명의 순환적 세계관을 드러낸 「서풍에 부치는 노래」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 메리 올리버는 「서쪽 바람」에서 내세를 바라보는 관점, 자연물과의 합일에 이르는 경지, 사랑에 관한 인식 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내생이라는 게 있다면, 나와 함께 갈래? 그때까지도? 우리가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면, 함께인 게 좋겠지. 상상해봐! 작은 돌멩이 두 개, 갈매기 날개 아래 붙어 안개를 헤치고 날아가는 벼룩 두 마리! 아니면, 풀잎 열 장. 레이스로드 가장자리에 뒤엉켜 있는 인동덩굴 열 줄기! 해변자두! 겨울 숲으로 미끄러지듯 날아들어 먼지 빛깔 리기다소나무와 결합하며 아주 조그맣게// 소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소리 내는 눈송이들.
─「서쪽 바람 1」 중에서
3장은 「검고 긴 나뭇가지들 사이로 들어가본 적 있어」라는 단 1편의 시뿐이다. 시인은 “그러니, 어서 일어나, 외투 걸치고, 책상 앞을 떠나!”라며 적극적으로 자연 속에 들어가라고 부추긴다. 원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숲과 들판과 바다에 어긋남 없이 합체되도록 쉴 새 없이 고무적인 격려를 쏟아낸다. “자연 속에서 보고 듣는 것의 가치”(<라이브러리 저널>)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하는 시인의 메시지는 독자에게 세상 만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선사할 것이다.
이봐, 그저 조금씩만 숨을 쉬면서 그걸 삶이라고 부르는 거야?// 결국 영혼은 하나의 창문일 뿐이고,/ 창문을 여는 건 얕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보다/ 어렵지 않은 일인데.
─「검고 긴 나뭇가지들 사이로 들어가본 적 있어」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메리 올리버
시인. 1935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1963년에 첫 시집 『여행하지 않고 No Voyage and Other Poems』를 발표했다. 1984년 『미국의 원시 American Primitive』로 퓰리처상을, 1992년 『기러기』로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서른 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낸 메리 올리버는 예술가들의 고장 프로빈스타운에서 날마다 숲과 바닷가를 거닐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를 쓰면서 소박한 삶을 살았다. 2015년 플로리다로 거처를 옮긴 그는 2019년 1월 17일, 여든세 살을 일기로 잡초 우거진 모래언덕으로 돌아갔다.
옮긴이 : 민승남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메리 올리버의 시선집 『기러기』, 시집 『천 개의 아침』, 산문집 『완벽한 날들』 『휘파람 부는 사람』 『긴 호흡』을 옮겼다. 제15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목 차
1
흰나비 일곱 마리
라운드 연못에서
검은 떡갈나무
개가 또 달아나서
나, 일찍 일어나는 사람 아니던가
서부구렁이
그래서
봄
별들
세 가지 노래
셸리
단풍나무
물수리
감미로운 피리 존 클레어
가자미, 셋
사십 년
이번엔 검정뱀
아침 산책
비, 나무, 천둥 번개
황홀
여우
감사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은 여름 시
개들
해변에서
그레이트 연못에서
2 서쪽 바람
서쪽 바람
3
검고 긴 나뭇가지들 사이로 들어가본 적 있어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메리 올리버를 향한 찬사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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