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툰드라』는 『밤과 요람』(1983), 『숲속의 방』(1986) 이후 세번째로 펴내는 작가의 소설집이다. 『가까운 골짜기』『미불』 『신성한 봄』등 장편소설로는 꾸준히 독자들을 만나왔지만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으로는 『숲속의 방』이후 37년 만의 출간인 셈이다. 1974년 등단 이후 반세기가 넘는 작가 활동인데, 염결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 보폭을 지키며 언제나 최상의 언어를 선보이려고 노력해온 작가의 모습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걸음의 속도가 느린 만큼 작가가 남기는 발자국은 깊다. 『툰드라』에는 「석양꽃」(1987)부터 「툰드라」(2022)에 이르기까지 무려 35년에 걸친 작품들이 묶여 있다. 이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작가에게 문학이란 마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상념들을 다스리면서 자기를 찾아가는 구도(求道)이기도 했음을 새삼 지각하게 된다. 「석양꽃」 말미에 한 스님은 법문과 함께 “법이 따로 없다. 밥 짓고 나무하고 보고 듣는 게 다 법이다”라는 말을 들려준다. 알 듯도 하면서도 당시에 충분히 가닿지 못했을 깨달음은 「툰드라」에서 몽골의 한 고원 위에 이르자 “해탈이 거기 있었다”는 문장과 함께 도달한다. 이 작품집에 가로놓인 35년의 시간에는 해탈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오가며 견뎠던 무수한 번뇌가 담겨 있고, 이 진폭은 북구의 툰드라만큼이나 광활하다.
강석경 소설에서 세속에 진저리치며 저 멀리 바깥으로의 떠남을 꿈꾸는 자들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여전하다. 「발 없는 새」와 「보루빌에서 만난 우리」, 「오백 마일」에서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은 우연한 사고나 치밀한 배신과 함께 박탈당하거나 소멸된다. 지적인 소유욕과 예술에 대한 갈망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발 없는 새」의 영서는 원예학자의 집을 방문한 날 불교적 사유를 가미시켜 완성한 김 계장의 시 앞에서 자신은 남루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다짐한다. “자신의 이상국인 정원을 세워도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기 위해 근력운동을 해야 하고 회충약도 먹어야 하는 현실”의 유물론적 현실은 그에게 엄연한 진리로 다가온다. 추상적인 대상으로서의 예술과 학문을 탐닉할 때 망각하게 되는 육체와 죽음의 문제를 그는 직시하고 붙들려 한다. 「보루빌에서 만난 우리」에서 불행한 결혼의 원인이었던 ‘유령 남편’ 곁을 떠나 “구름이 아니라 나무처럼 뿌리 내려” 인도의 보루빌 공동체에서 자신을 새롭게 꾸려나가려 했던 시도는 이념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끝이 난다.
「석양꽃」은 불교의 교리와 세속의 시선이 정면충돌하면서도 비스듬히 겹쳐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 전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핵심적인 장면은 한 달 예정으로 왔던 의선이 날을 다 채우지 않고 내려가겠다고 선언한 후, 담대한 눈빛으로 속인의 편에서 자조의 말을 길게 꺼내는 순간이다. 그의 입장은 “되풀이되는 업의 윤회를 끊으려면 먼저 자신을 관(觀)해야지. 자기를 통하지 않고는 진정한 구원이란 없어요. (……) 전 어리석게 피 흘리더라도 세속에서 부대끼며 살고 죄일지라도 사랑하고 그 대가로 고통도 삼킬 겁니다”로 요약된다. 의선이 말하는 ‘관’은 불교의 ‘견성’과 반대에 가깝다. 아무리 두터운 층위를 대어도 불교에서 추구하는 공은 삶보다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인간의 복잡한 욕망과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흡수하지 않고 튕겨내는 데서 얻어지는 투명함이라면 그것은 기만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의선이 말하는 세속은 다르게는 충만과 불안으로 가득한 삶의 활기라고도 할 수 있겠고, 여기에서 작가의 의중이 깊이 짚이기도 한다. 「기나긴 길」에서 단테문학관에 머무르던 문인들은 귀신에 대한 생생한 목격담을 전해 들을 뿐 아니라, 밤마다 정체불명의 소리에 시달린다. 잠시 문학관을 빠져나와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화자는 철문 치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쫓아 여기까지 온 듯한 미망의 혼령이 생시의 환영을 쫓아 업을 되풀이하고 있음을 통탄한다. 이 소리에 쫓기는 어두운 새벽 네시에 그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것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맑은 목탁 소리다. 그런데 불안을 다독여주는 그 소리를 따라 산 능선 어딘가의 절을 짐작한 것과 달리, 그가 문득 발견한 것은 욕실 안 고장 난 샤워기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다. 소설은 떠도는 혼령들을 통해 인간이 불행과 원한에 집착하지 않고 어떻게 해탈의 영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질문하지만, 고장 난 샤워기를 발견한 순간 ‘어리석음을 짓는 업의 굴레’와 ‘생명 본연의 발견과 해탈’의 이분법은 깨져나간다. 우리는 표면적인 현상 속에서 일시적인 착각과 함께 안도와 구원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잠시 환영으로 채우는 것에 불과하다.
이 해탈 불가능한 인간의 맨얼굴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자리에 「가멸사」가 놓인다. 상징적인 이미지를 촘촘히 활용하고 있는 유기적인 구성과 종교에 대한 더욱 깊고 치열한 성찰로, 앞으로 말하게 될 단편들과 함께 강석경 소설 세계 안에서 계속 거론될 만한 명편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하정길’이라는 시인이 동창 현우의 사촌 제수 ‘박정숙’과 무장사지를 향해 가는 등산길에서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 여로형 소설이다. 가지가 나 있던 자리 밑동 한쪽에 구멍이 나 있는 나무처럼 그들의 생도 상처와 고통으로 가득하다. 소설은 가시투성이로 태어난 존재들이 구멍이 나고 뜯기고 밟히는 가운데 세상에 부질없이 맞서기보다 자신을 내어주는 것의 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자신의 내면에 유폐되어 상처를 곱씹는 대신 나무와의 유비 속에서 고통을 삶을 위해 마땅히 치르는 대가로 받아들일 때, 이는 간결하고도 단단한 지혜가 된다. 서사 구조적으로도 가지, 가시, 유리 파편 등의 날카로운 이미지들은 무장사지로 향하며 여러 번의 개울을 건너는 동안 나무에 난 구멍, 이끼 등의 이미지를 경유하며 어느덧 둥글고 부드러워진다.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는 「석양꽃」 이후 네 편의 장편과 산문집을 거친 후 무려 14년 만에 발표한 단편이다. 이 소설은 마지막에 이르러 인물의 절망을 높은 밀도로 그려내며 신화적 도약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후기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이로부터 20년이 지나 발표한 작가의 최신작 「툰드라」와 겹쳐 읽을 때 비로소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의 ‘관(觀)’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 「하안으로 가는 길」이 거듭 엎어지면서 무력감과 절망에 빠져 있는 상태다. 그런 그에게 문득 5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조카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미국에 갔다가 일시적인 관계를 맺었던 게이 ‘닥터 박’의 전화가 걸려온다. 자신을 방기했던 시절의 불편함을 대면한 관은 눈밭에 누워 있다가 ‘재연’이 보낸 말다래 엽서를 떠올리고, 그리움에 사로잡혀 경주로 간다. 재연에게 경주는 잉여의 부르주아지 냄새를 벗어나 살아 있는 듯 느끼게 하고, 실종자처럼 조용히 고립되어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그런 재연 앞에서 관은 대학 후배 오와의 우발적인 두 번의 관계에서 아이가 생겨 보름 뒤 결혼해야 하는 상황으로부터 도피하길 원하지만, 재연은 쓴웃음으로 현실을 직시하라는 냉정한 충고를 건넨다. 관은 결정적인 순간에 고개를 돌린 오르페우스다. 자신이 무엇을 잃은 줄도 모르고 지금껏 살아왔으니, 그 무지가 유지되었더라면 천오백 년 전의 고분이 켜켜이 쌓여 있는 신성한 지하세계(경주)에서 지상(서울)으로 무사히 되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혼돈 속에 있던 그가 비로소 중요한 진실을 깨닫고 고개를 돌린 순간, 모든 것은 불길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다.
남자가 멈추고 수장된 그 자리에서 「툰드라」는 여자의 시선으로 다시 시작된다. 마흔아홉이 된 ‘주영’이 몽골로 떠나는 날, 작년부터 계속 불규칙했던 생리가 “한숨을 토하듯 찌꺼기를 쏟아내듯 마지막 출혈”을 시작한다. ‘울란바토르’라는 지명이 주영에게 처음 빛을 마주한 “아기 엉덩이의 몽고반점”으로 다가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녀의 몽골행은 처음부터 탄생과 죽음이 만나는 기묘한 여행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회한 없이 단순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몽골의 초원행은 ‘승민’과 함께하는 여행이지만, 애초에 소유가 전제되는 제도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적 없던 주영에게 승민의 존재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작별 여행이기에 승민은 “너 조금이라도 나 좋아했니? 그렇다고 말해주길 바라. 거짓말이라도 괜찮아”라 재차 묻지만, 주영은 승민이 보여준 그간의 인색함과 다른 여자와의 만남을 지적하면서도 산뜻하고 단호하게 헤어짐을 말한다. 승민의 인정처럼 주영은 “미약한 계란이 아니라 반체제”이자, “사랑도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너만의 형식으로 살아온 독립된 영혼”으로 바로 선다. 그렇게 또다시 승민과 작별을 고한 주영이 마지막에 마주하는 것은 탑만 있는 무인의 절 ‘스투파’다. 넓이를 잴 수 없는 하늘 아래 노을이 깔리고, 온통 말과 새들이 대지를 누빈다. 더없이 완전한 풍경이자 낙원인 그곳에서 그녀는 문득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는다. “해탈이 거기 있었다.” 주영은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본 순간 멀리 떠나가는 에우리디케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이 돌아보고 붙들려 했기에 이 모든 사건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소유가 중요하지 않은 에우리디케에게 정착하지 않고 떠나가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대상에 매이지 않는 그녀에게 사랑했느냐는 질문은 무용하며, 계속해서 이동할 수 있는 자유만이 중요하다.
세속의 삶에 결코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강석경의 날짐승 같은 감각은, 욕망을 거듭 꺼뜨리는 가멸(加滅)의 구도(求道)를 거치며 이제 여기까지 왔다. 경주와 인도 너머 중국과 몽골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곳곳을 두루 어우르다 마침내 그가 발견한 툰드라. 한국 문학사에서 새로 개척해낸 이 영토는 속세를 함부로 초월하지 않고 자신 안에서 고요히 거듭 멸하는 자의 품격이 도달한 자리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강석경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1974년 제1회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로 『청색시대』 『가까운 골짜기』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 『내 안의 깊은 계단』 『미불』 『신성한 봄』, 소설집으로 『밤과 요람』 『숲속의 방』, 동화로 『인도로 간 또또』 『북 치는 소녀』, 산문집으로 『일하는 예술가들』 『인도 기행』 『능으로 가는 길』 『저 절로 가는 사람』 『이 고도를 사랑한다』 등이 있다. 오늘의 작가상, 녹원문학상, 21세기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목 차
툰드라
기나긴 길
보루빌에서 만난 우리
발 없는 새
오백 마일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
가멸사(加滅寺)
석양꽃
해설 | 속세를 초월하지 않는 가멸(加滅)의 힘 | 강지희(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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