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형용사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 왜 사람들은 민주주의자를 자임하면서, 또 민주주의를 제한하려 하나
◆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결합에 의해 위기에 처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원초적 민주정은 어떤 시사점을 제시할 것인가
…
“자유주의와의 혼합 이전 또는 이후를 막론하고, 민주주의를 그 자체로 이해하기 위한 명확하고 명료한 분석적 틀을 제공한다. 그 결과 정치철학적으로 강력한 저작일 뿐만 아니라 인간 존엄성이라는 가치에 의해 규정되고 제약되는 자치 형태인 민주주의의 인간적 가치에 대한 강력한 논증이기도 하다.” _대니얼 앨런(하버드 대학교)
“역사와 이론을 결합한 정치 여행서.” _멜리사 레인(프린스턴 대학교)
“조사이아 오버는 한평생 민주주의자로 살았고, 그 자신 민주주의 이론가인 한스 켈젠이 일찍이 강력하게 주장한 것처럼, 자유주의자들에게 원초적 민주주의와 이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운다.” _SPSR
모두가 민주주의자임을 자임한다.
그러나 모두가 민주주의를 제한하려 한다.
“이 정권은 권력을 사유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하여 계속 국민을 약탈하려 합니다.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합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입니다.”
_어느 대선 후보의 출마 선언문 중에서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적 권위체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하나의 명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자신을 자본주의사회로 부르는, 혹은 그것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사회라 지칭한다고 하더라고, 그런 나라들 역시 스스로를 민주주의라 부르며 정당화한다. 요컨대,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들은 스스로를 민주주의 국가라 부른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정치체를 단순히 ‘민주주의’라고만 부르는 국가들은 거의 없다. 실제로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민주주의는 흔히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반공민주주의’, ‘일민민주주의’, ‘우리식 민주주의’, ‘쿠바식 민주주의’, ‘중국식 민주주의’ 등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가치(자유주의, 사회주의, 반공주의)와 결합되어 있거나, 특수한 시·공간적 제약(쿠바식, 중국식, 우리식, 일민 등)을 받고 있다. 이런 현실은 역설적이다. 모두 민주주의를 자임하지만, 모두 순수한 민주주의는 거부하거나, 다른 가치 체계와 섞으려 하거나, 무언가를 통해 한정/제한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분명 철학적, 역사적 이유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예컨대, 민주주의는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기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다수의 폭정(전제)으로 전락하거나, 부자들을 증오하고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의 우중 정치로 타락할 수 있다는,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서처럼, ‘자유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17세기 종교전쟁부터, 20세기 파시즘과 권위주의적 공산주의 체제의 발흥, 나아가 최근 다시 포퓰리즘이 각광을 받으며, 민주주의의 제어되지 않은 다수의 횡포를 인권을 통해, 또 헌법을 통해 제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요는, 문제는 민주주의에 있기에, 민주주의는 길들여지거나, 한정되거나, 다른 어떤 것과 혼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이런 흐름에서 우리가 간과한 것은 없을까? 또는 우리가 거꾸로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서 언급했듯, 자유주의 정치 이론가들은 자유주의 없는 민주정을 마치 루소가 꿈꾼 하나의 일반의지 혹은 무제한적 다수결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근본적으로, 심지어 지독한 정도로, 반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 그린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조사이아 오버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는 순수한 다수결주의가 충분히 상상해 볼 만한 정치의 한 형태이긴 하지만, 그것은 민주정의 타락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코 하나의 원형적이고 정상적이며 건강한 정치체제의 유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오버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그들이 옹호하는 가치는 민주정 자체로도 충분히 보장될 수 있으며, 그들이 악몽처럼 여기는 비자유주의적 결과들이 민주국가에서 도래하지 않을 것임을 이 책을 통해 보여 준다.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의 교과서 반영) 부분은 실제로 헌법 정신에 입각한 교육과정이 개발되어야 된다는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 …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헌법의 가치로, 민주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_어느 교육부 장관 인사 청문회
“여기 어떤 가상의 나라가 있다. 이 나라는 안전하고 풍요로우며, 시민들이 직접 통치하고 있다. 시민들은 몇 가지 문제를 놓고는 갈등을 빚기도 하며, 이 갈등은 때로 심대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집단적 자기 통치’의 가치에 동의하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비용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시민들은 발언의 자유, 결사의 자유, 정치적 평등, 시민적 존엄을 누리면 살아간다. 하지만 국가 종교에 대해서는 입장을 정하지 않은 상태이고, 국내외에서 보편적 인권을 향상하려는 노력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회적 협동으로 발생할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지에 대한 사회정의의 원칙을 정한 바도 없다. 이 나라는 ‘데모폴리스’이며, 이들의 통치 방식은 원초적 민주정이다.”
_조사이아 오버, 이 책 프롤로그에서
그렇다면,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 민주주의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이 책은 역사와 정치 이론의 결합을 통해 시민들의 집단적이고 제한된 자기 통치(자치)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의미를 복원하고 있다. 실제로, 조사이아 오버에 따르면, 자유주의가 등장하기 이전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원초적 민주정)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우려한 것과 같은 다수의 횡포가 아니라 시민에 의한 제한적 통치를 의미했다. 이는 아테네의 법 그리고 공동체의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행동 양식상 규범 덕분에 민주정의 조건인 정치적 자유, 정치적 평등, 시민적 존엄이 지속될 수 있었다. 특히, 이 ‘자유’(원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평등’(동일한 가치의 발언권과 표를 행사하고), ‘존엄’(상대를 어린아이로 취급하지 않고 나와 동등한 성인 시민으로 대하는 것)이라는 민주정의 조건들은 인민이 자신의 ‘권력’(kratos)을 행사하는 데에 제약 조건이 되었다.
실제로 아테네 정치사에서 인민이 정치적 권력을 행사할 때 거기에는 항상 입법 절차를 준수하도록 하는 법률적 제한이 있었고, 인민은 그런 제한을 잘 지킬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왔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민의 권위가 법률에 의해 제한되어야 하고, 또 제한될 수 있다는 인식을, 자유주의적 민주정을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정과 구별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로 여기지만, 입법적 권위에 대한 법률적 제한은 자연법이나 자연권 이론의 여러 교의들이 출현하기 훨씬 이전인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미 이론상으로나 현실 속에서 잘 발달해 왔다. 가령 도편추방(인민이 바라는 바를 어느 시민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권위)은 아무 때나 인민의 변심에 의해 자의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따라야 할 여러 절차적 제한에 의해 규제되었다. 이 외에도 아테네 민주주의는 민회에서 다수결로 이루어지는 일상적 결정과 까다로운 여러 단계를 거쳐 제정되는 법률을 구별했고, 의회에서 내려지는 입법적 명령이 헌정 질서와 관련된 법률과 합치하도록 다양한 제한을 두었다.
시민적 존엄
“‘떼법’이니 ‘정서법’이니 하는 말을 우리 사전에서 지워 버리자.”
_어느 전 대통령
“대한민국에 더 이상 ‘떼법은’ 없다.”
_화물 노동자 파업 종료에 대한 정부 여당의 논평
“민주정에 필요한 윤리가 무엇인지는 존엄의 영역에서 분명해지며, 정치적인 행동 양식과 구성원의 상호적 행동 양식이 겹치는 영역이 바로 이 존엄의 영역이다 . 강자로부터 모욕을 당하는 피해자는 시민으로서 참여할 자격을 갖췄다는 의미에서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또한 누군가 행한 발언이나 행동이 마치 어린애가 한 것인 양 취급하는 경우에, 그런 대우를 받는 성인은 적절한 의미에서 평등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는 피해자로서 자유롭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어린애 취급 때문에 평등하지 못한다면, 그런 체제가 민주정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
_조사이아 오버
이 책에서 오버의 주장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번성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모든 민주주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무효임을 밝힌다. 두 번째로, 오버는 안전하고 번영하며 제3자의 통치 없이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개인들이 설립한 가상의 사회인 ‘데모폴리스’에 기반한 사고실험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를 넘어 오늘날에도 민주주의가 그 원초적 형태로 어느 정도로나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물론, 오버의 주장은 원초적 민주정이 자유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거나,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사고실험은 아테네의 시민적 존엄성(시민의 존엄성)에 대한 그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시민의 존엄성은 성인 시민 누구나 정치적 참여에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며, 이 같은 인정은 서로 다른 잠재적 이해관계를 가진 상호 의존적인 개인들의 사회적 균형으로 이해되는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존엄성의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이다. 우리는 서로를 존엄하게 대해야 하며, 공직자 역시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힘 있는 공직자나 힘 있는 개인이 시민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것은 굴욕감을 주고, 시민을 어린아이처럼 무능력한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동료 시민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시민은 책임감 있는 성인이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하며, 여기에는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도 포함된다. 이런 민주주의적 가정 위에 설립된 데모폴리스는 시민 개개인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명령에 따라, 타인의 존엄성을 희생하여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고 약자의 권리를 박탈하려는 극단적인 우파 자유주의자들과, 불평등의 모든 흔적을 없애고 시민을 어린애 취급하려는 극단적인 좌파 평등주의자들에 맞서 중간 지점을 찾고자 노력한다.
오버는 시민적 존엄성이라는 개념에 기반한 데모폴리스에서의 통치 방식을, 현대 민주주의에서 시민을 어린애 취급하고, 위험한 선택이 없는 형태의 민주주의 정치를 확립하려는 기술 관료적, 엘리트적, 지식 기반 통치 방식과 대조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가 한정되고 규제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제한하고 규제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선호하는 통치 방식은 무엇인지, 또한 그런 경우, 우리는 그런 통치 체제를 과연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시민의 집단적 참여에 기반한 시민적 자기 통치의 가치에 여전히 주목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민주정만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가 우리가 정당화할 수 있는 정치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이라면, 우리가 민주주의를 통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유주의 이후의 민주정
“만약 누군가가 공적인 공간에서 발언할 때 그것이 그저 어린애의 재잘거림쯤으로 취급된다면, 그가 공적 사안에 대해 대단히 중요한 정보를 제시하면서 주장하고 있음에도 존중받지 못한다면, 또는 그가 자신의 의견을 갖기 위해 필요한 정보에 어떤 이유로든 접근이 제한된다면, 그런 민주정은 엉터리다. 국가기관이 시민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오직 엘리트들이 미리 자신들의 지배에 무해한 의견이나 사전에 허가한 의견 몇 가지만을 놓고 시민들에게 투표하도록 한다면, 그런 민주정은 허상이다.”
_조사이아 오버
이 책에서 잘 지적하듯이, 오늘날 자유주의적 민주정(자유민주주의)은 커다란 위험에 봉착해 있다. 지난 몇 년간 국내외적으로 출간된 많은 책들이 자유민주주의, 특히 민주주의가 어떻게 위험에 처해 있고, 무너지고 있는지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예컨대, 미국은 정치적 양극화와 인종 갈등, 테크노포퓰리즘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테크노포퓰리즘은 자유주의를 지독하게 자기만족적이기만 한 ‘정치적 올바름’으로 낙인찍고 있다. 유럽에서 자유주의 체제는 오랫동안 지속된 재정 위기, 장기간의 경제 불황, 이민자 급증 및 난민 사태 등으로 위태로워지고 있다. 비국가 테러리즘은 관용이라는 가치와 이에 기반한 자유주의 국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자유주의적 제도 전반을 위협한다. 또한 배타적 민족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득세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사람들은 ‘자유주의’를 모욕적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자유주의란 한편으로 (주로 좌파에게) 엘리트주의, 글로벌리즘, 약탈적 자본주의를 연상시킬 뿐이고, 다른 한편으로 (주로 우파에게) 현실에 안주하는 세계시민주의, 다양성을 다양성만으로 찬양하는 태도, 전통적 가치를 모두 일소해 버리려는 사상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나아가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운동과 당선 이후의 행보, 또 영국의 브렉시트 운동 등은 국가 단위의 자결을 강조하고 이민자들을 악마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기존 통치 엘리트들을 제 잇속만 차리는, 인민의 적으로 그리고 있다.
자유주의 이론가들은 오늘날의 상황을 보며, 민주정에 대한 혐오와 절망, 그리고 지식 기반 체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시민들의 참여는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하기에 최소화해야 할 비용으로 치부되며, 통치와 공적 권위는 잘 교육된 유능한 엘리트들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민주주의를 포퓰리즘과 동일시하면서, 민주주의의 문제점과 오류, 잘못된 결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버는 이런 흐름에 대해, 시민들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으려면 발언과 결사의 자유, 정치적 평등과 시민적 존엄이 꼭 마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할 경우, 민족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은 민주정의 이름을 참칭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만들려는 정치체는 민주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민주주의는 다른 형태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무오류하지 않으며, ‘완벽한’ 결과를 무한히 제공할 수 있는 능력으로 측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민주정치에서 완벽을 요구하는 것은 충족할 수 없는 기준이며 이 같은 기준은 거꾸로 ‘국민’ 전체를 어린애 취급하며, 시민이 아닌 더 높은 곳의 의사 결정권자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치부하는 것을 정당화할 뿐임을 지적한다.
물론 이 글에서 오버는 원초적 민주정이 현대에도 즉각 실천될 수 있다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나아가, 원초적 민주정이야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등등보다 우월한 형태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오버는 원초적 민주정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 민주주의가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이며, 반대로 자유주의를 비롯해 도덕적 가치에 기반한 다양한 형태의 이념들이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인지, 그러나 덧붙일 수 없는 것은 또 무엇이며, 무엇이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지 세심히 따져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자유의 가치, 자유주의가 세계사적으로 기여한 측면들을 부정하거나 폄하하기 위해 기획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자유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제약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의 모든 가치 체계를 하나의 묶음으로 일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사적 재산의 절대적 보호, 시장의 무제한적 자유 등등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주의가 민주정체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자유주의의 가치를 선별적으로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어쨌든 우리는 민주정체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외 다른 어떤 정체도 자신의 정당성을 민주정체만큼 자임하거나 주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자유주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체가 될 수 없는 수많은 한계가 있지 않은가. 이 점에서 원초적 민주정은 비자유주의적 시민들과 충분히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적 시민들과도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 그것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은, 민주정을 참칭하는,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을 등에 업는 기회주의자들이다.
장별 주요 내용
이 책의 전반적 내용과 문제의식을 개괄하고 있는 1장에 이어 2장에서는 고전기 아테네의 정치 발전사를 개관한다. 고전기 아테네의 사례는 근대 초 혹은 현대의 자유주의자들의 철학적 관념들이 섞이지 않고도 잘 작동했던 민주정에 대한 가장 풍부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 장들에서는 그리스어 단어 ‘데모크라티아’의 본래 의미와 ‘성숙한 아테네식’ 민주주의의 의미에 주의를 기울여, 민주정일 실천했던 그리스인들이 이 단어를 통해 의미했던 민주정이란 무엇인지 살펴본다.
3장에서는 데모폴리스 사고실험을 한다. 즉 안전하고 충분할 정도로 풍요로우며 전제적 지배자에게 지배받지 않는 나라에 살고 싶어 하는 공유된 선호라는 공통점 하나만 빼고 사회적으로 다양한 개인들이 모여 있는 한 사회에서 헌정적 공공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핀다.
4장에서는 자유주의적 상부구조를 아직 채택하지 않았다는 가정 아래, 데모폴리스가 정당성을 갖췄는지의 문제를 다룬다. 데모폴리스의 체제 정당성 논변은 민주정이 물질적으로나 비물질적으로 무엇을 위해 좋은지 밝힌다.
5장에서 오버는 인간은 사회적이며, 이성적이고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이런 능력의 자유로운 행사는 민주주의에서만 완전히 실현되는 내재적 선이며,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에 의해 강제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진정으로 포용적이며,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자의적으로 권리를 보류하는 것은 폭정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저자는 고대 아테네인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들이 보인 남성 참정권의 제한(예컨대, 태생적 아테네인들에게만 참정권을 부여하고, 여성, 외국인, 노예 등에게는 부여하지 않은 것)은 그들 당대의 문화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특히 비난받을 만하며, 이로 말미암아 아테네가 국가로서, 그리고 사회로서 가진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6장에서는 원초적 민주정을 가능하게 하는 세 가지 조건들, 즉 정치적 자유, 평등, 그리고 정치에 참여할 만큼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으로서의 시민적 존엄을 살펴본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 시민적 존엄인데, 원초적 민주정에서는 시민적 존엄을 보호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이다. 이는 곧 타인을 모욕하거나 어린애 취급함으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오만불손한 개인들의 형태를 어떻게 통제할지라는 고질적인 사회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된다. 특히, 참여하는 시민들이 성인으로서 대우받아야 한다는 존엄의 요구 조건은 데모폴리에서 실현되는 분배 정의가 자유 지상주의의 한 극단과 평등주의의 다른 극단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지지 않도록 하는 제약 조건으로 작동한다.
7장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대한 독해와 더불어, 현대 정부의 규모와 복잡성이라는 조건에서 인민이 대표자에게 어떻게 권한을 위임하고, 또 이를 철회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8장과 에필로그에서는 원초적 민주정 이론을 요약하고, 현대 자유주의 정부 이론과 관련하여 데모폴리스가 제안한 기본 민주주의의 이상적 유형과 오늘날의 실제 존재에 대해 논의한다. 여기서 오버는 원초적 민주정이 현대에서 즉각 실현된 적이 없고, 그 자체로 실현되기 어렵다고 인정한다. 그럼에도 왜 원초적 민주정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지,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을 등에 업은 기회주의자들에게 맞서, 자유주의적 시민과 비자유주의적 시민이 원초적 민주정을 토대로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조사이아 오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정치학과, 고전학과, 철학과 교수이고, 스탠퍼드 시민학 공동행동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미시간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린스턴 대학교와 몬태나 주립 대학교 등에서 가르쳤고, 프린스턴 대학교 인문학부와 스탠퍼드 대학교 사회과학부 학장을 지냈다.
역사적 제도주의와 정치 이론, 특히 민주정 이론과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의 정치 사유와 실천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지 주로 연구했고, 지금은 ‘시민적 협상’이 민주 정부의 발생 및 지속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 이 책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2017)를 비롯해 『그리스인들과 이성적인 것: 실천적 이성의 발견』(2022), 『고전기 그리스의 부흥과 몰락』(2015) 등이 있다.
옮긴이 : 노경호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독일 본 대학교 철학과에서 플라톤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오트프리트 회페의 『정치철학사』(공역, 길, 2021)를 옮겼고, 논문으로 「플라톤의 비극적 영웅주의 비판」(2018)이 있다.
목 차
프롤로그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정 10
감사의 글 20
제1장 원초적 민주정 25
제2장 고전기 아테네에서 민주정의 의미 63
제3장 데모폴리스 건국 99
제4장 정당성과 시민교육 153
제5장 인간적 능력들과 시민적 참여 191
제6장 시민적 존엄과 민주정의 다른 조건들 239
제7장 위임과 전문성 293
제8장 하나의 민주정 이론 353
에필로그 자유주의 이후의 민주정 395
옮긴이 후기 403
참고문헌 409
찾아보기 435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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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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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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