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의 페미니즘》 《돌봄과 인권》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인권활동가·페미니스트 김영옥의 노년 성찰 에세이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공동대표 김영옥의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 출간되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에 인구의 20%가 고령자인 초고령 사회가 된다. 가구주 연령이 65세 이상인 고령자 가구는 전체 가구의 24.1%, 그중 3분의 1은 1인 가구, 즉 독거노인이다. 2019년 기준 한국 66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3.2%로 OECD 15개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다. 노년부양비(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하는 고령인구)에 대한 부담 너머, 돌봄과 개호를 둘러싼 개인의 부담이 극심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초고령 사회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노인’이란 말은 결코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노인이라는 말에 두껍게 달라붙어 있는 부정적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15쪽). 저서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의 페미니즘》 《돌봄과 인권》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등을 통해, 인권과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몸 시간 노년 죽음을 탐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노인’ ‘늙음’ ‘나이듦’에 드리워진 두려움과 혐오의 정동을 걷어내고, “늙어감의 다른 길을 상상하고 실제로 구현하는 … 실험적이고 급진적인 모험”(235쪽)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또 자기다운 삶과 다른 몸들의 공존을 강조하면서 아픈 몸, 늙은 몸, 장애가 있는 몸 등이 스스로, 또 서로 기대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한다(264쪽). 자기 돌봄을 포기하지 않고 ‘나답게’, 다른 몸들과 기대어 ‘함께’ 늙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 하며 늙어가는 사람의 곁에,
○○ 하게 늙어가는 사람이 되어
다리 놓는 사람들
테두리를 넓히는 사람들
이 책은 농부, 주거복지 서비스 관리자, 요양보호사, 예술가, 환경운동연구가, 장애여성이자 장애여성 단체 대표, 인권운동과 반빈곤운동의 활동가, 트랜스젠더이자 퀴어 아카이빙 활동가, 생애구술사 작가 등, 저자가 만난 각계 열한 사람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1부 ‘다리 놓는 사람들’에는 노년을 만나 우정을 쌓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 이들이 소개된다.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다가 두물머리의 ‘데레사 농민’이 된 김현숙, 2019년에 시작돼 노년·청년의 통합 사례로 주목받은 서울 성북구 고령친화 맞춤형 주거관리 서비스 사업단의 김진구,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의 저자이자 말기 중증 치매 환자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돌봄을 해온 이은주, ‘노년의 이야기’를 소재로 문화예술 작업을 이어 나가는 이야기청 프로젝트의 육끼, 전국 팔도 씨앗 지킴이 할머니들과 교류하며 제철 밥상을 누리는 환경운동연구가 김신효정이다.
한 독거 할머니의 집을 대대적으로 수리한 김진구는 모든 작업이 끝난 뒤 의자 하나를 현관에 놓았다. 의족을 하는 할머니가 신을 불편하게 벗고 신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이은주는 돌봄받는 환자를 위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저귀를 가는 일상적 동작에도 요양보호사와 환자 간의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육끼를 만난 저자는 더 많은 ‘노년의 이야기 집’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세대 간 갈등이라는 정치 게임에 에너지 쏟지 말고, … 예술 같은 건 저 좋아서 하는 일 아니냐며 ‘열정 페이’로 청년 작가들을 착취하지 말고, 그들이 내장하고 있는 ‘타인에 대한 호기심’과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노년들과의 협업에 쏟게 만들자”(106~107쪽).
2부 ‘테두리를 넓히는 사람들’에는 한국 사회의 차별과 혐오,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싸우고 있는 이들이 나온다. 이들을 따라가 보면 노년이 되어 겪는 차별 혐오 불평등은 한국 사회의 그것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중증 골형성부전증 장애인이자 장애여성공감의 공동대표인 조미경,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어쓰, 홈리스행동 활동가 이동현과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김윤영, 트랜스젠더이자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활동가 루인, 노년 생애구술을 하면서 작가의 정체성을 갖게 된 생애구술사 작가이자 소설가 최현숙이 소개된다.
‘최최최중증 장애인’ 조미경은 “매우 의존적이면서 동시에 대단히 자율적으로”(140쪽) 살아왔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심화하는 장애를 ‘진화’라고 표현한다. 얻는 게 분명 있다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루인은 재난이 일어나더라도 대피소에 갈 수 없을 거라 상상한다. 대피소는 성별 분리와 혐오가 예상되는, 재난 현장보다 더 ‘위험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동현과 김윤영은 홈리스 상태를 “노령기를 훨씬 더 젊을 때 맞이한 상태”(183쪽)라고 말한다. 경제적으로 빠르게 열악해진 사람일수록 노인성 질환을 빨리 얻은 이들이 많다. 최현숙은 남의 인생을 계속 듣고 그걸 해석하는 과정이, 결국 “자기 인생을 계속 떠올리고 들여다보고 해부하는”(238쪽) 자기 해명의 과정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이 책을 열고 닫는 두 개의 질문
“할머니들은 모두 어디서 오는 거예요?”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싶나요?”
이 책 시작엔 공원에서 만난 곱슬머리 소녀로부터 “할머니들은 모두 어디에서 오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임상심리학자 메리 파이퍼의 일화가 소개돼 있다. 소녀의 이 천진난만한 질문은 저자에게, 어린이를 포함한 청년 장년 중년의 ‘보통’ 시민들이 어디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고 교류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남겼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 다섯 중 하나는 노년인데, 그때도 노년을 지하철 안에서 본 것도 같은, 별 인상적인 장면이 없다면 기억에 남지 않는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될까.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의 글은 대개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싶나요?”라는 저자의 질문과 그에 대한 상대의 답으로 맺는다. 두물머리 농부 김현숙은 참견하는 ‘어른’ 할머니, 주거관리 서비스 사업단 김진구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왕래하는 케어 팜을 운영하는 할아버지, 요양보호사 이은주는 어린이들의 성장을 돕는 할머니, 이야기청 프로젝트의 육끼는 이야기하는 할머니, 환경운동연구가 김신효정은 무언가를 살리는 할머니, 장애여성공감 대표 조미경은 공동체를 만드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답한다. 모두 발 디디고 있는 바로 그 자리, 지금 하고 있는 일들, 관계 맺은 노년들과 연결되는 답들이다.
심화하는 장애를 ‘진화’라고 표현한 조미경의 말에 기대자면, ‘늙어감’도 ‘진화’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매일 ‘진화’하는 모두를 위한 급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책. 이 책으로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을 더 많이 찾아내길 바란다.
작가 소개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의 공동대표.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페미니즘과 인권을 수련했다. 공부와 수련을 하는 내내 표현될 수 없는 것을 가리키는 언어의 힘과 표현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정치적 행위에 매혹됐다. 지금은 사람 책이 들려주는 범속한 트임에 귀 기울이며 몸-마음의 늙어가는 현상에 몰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이미지 페미니즘》 《노년은 아름다워》, 공저 《돌봄과 인권》 《제로의 책》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등이 있다.
목 차
프롤로그
1부 다리 놓는 사람들
1장 할머니들과 함께 ‘리틀 포레스트’를 살다 (두물머리 농부 김현숙)
2장 독거노인의 집에서 우리의 노년기를 엿보다 (서울 성북구 고령친화 맞춤형 주거관리 서비스 사업단 김진구)
3장 나는 ‘신’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입니다 (요양보호사 이은주)
4장 노년의 이야기로 짓는 예술 (이야기청 프로젝트 육끼)
5장 씨앗을 지키고, 세대를 잇다 (환경운동연구가 김신효정)
2부 테두리를 넓히는 사람들
6장 호기심 가득한 장애여성 노인을 꿈꾸다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조미경)
7장 노년도 청년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어쓰)
8장 두려움이 우리의 미래를 압도하지 않도록 (홈리스행동 활동가 이동현·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9장 트랜스젠더‘의’ 나이듦, 또는 트랜스젠더‘와’ 나이듦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활동가 루인)
10장 늙은 사람 ‘되기’에는 준거집단이 필요하다 (생애구술사 작가·소설가 최현숙)
에필로그
주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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