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엄마와 나의 평행선은 끝내 만날 수 있을까”
종갓집 전통 고택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어머니와의 갈등과 반목, 화해와 치유의 이야기!
‘산수헌’ 고택에서 종가의 전통 장맛을 이어가며 살고 있는 정순임의 에세이. 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우복 종가 산수헌(山水軒)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고택으로, 글쓴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이다. 외지에서 한문학 관련 일을 하던 저자는 오십이 되어 종부(宗婦, 종가의 맏며느리)인 어머니로부터 간장, 된장, 고추장, 떡, 조청 등등을 만드는 법을 전수받고 브랜드화 하기 위해 귀향을 결심한다.
상주·안동 지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하, 그 집 딸내미로구먼!” 하던 종갓집이었지만, 지금은 일가를 이루던 친척집들이 사라지고 고즈넉하게 혼자 남아 있다. 이곳에서 글쓴이와 어머니와의 동거는 시작된다. 아버지와 일찍 사별한 후 홀로 오랫동안 집안의 대들보로 살아온 어머니. 가업을 잇겠다는 딸이 미쁘고 대견스러울 것 같기도 하련만, 귀향 초반 두 모녀의 한집살이가 마냥 알콩달콩하고 그러진 않다.
15대에 걸쳐 400년을 내리 한집에서 살아온 가문, 일 년에 열다섯 번 조상 제사를 지내는 종갓집이라고 하면 누구나 짐작하듯이, 봉건적 전통이 대대로 이어져 온 집안이다. 그런 집안의 둘째로, 그것도 딸로 태어난 저자는 일찍부터 차별을 감당해야 했다. 집안에서의 차별은 사랑이 바탕이 되기라도 했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되면서부터 경험하고 목도한 차별은 견디기 힘들었다. 한집안 안에서라면, 그런 딸과 가부장적 전통의 수호자라 할 종가의 종부(宗婦)인 어머니 사이 세계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일 테다.
상처는 덧나고 곪아가기만 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 것일까, 바뀌어 가는 것일까.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저자는 남은 미래를 걸고 가출을 감행한다. 나이 오십에. 제주도 한적한 마을에 거처를 마련하고 어린 시절부터의 일들을 복기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쓰지 않고는 얽히고설킨 매듭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그 실마리를 찾기 전에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것만 같아서였다.
가부장제의 상징 같은 고택에서 태어나 자랐고 결국 그곳으로 돌아왔지만, 성차별에 반대하는 대의에는 동감한다. 한편으로는 정말 깨어 있는 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지식하며 차별적인 어머니, 너무 좋지만, 한편으로 너무 밉기도 하다. 이 모순에서 오십 대 여성 정순임은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것은 그 답을 찾는 이야기다. 고택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배경으로, 여성으로서의 생애사와 감정을 담담하고 다감하게 때론 격렬하게 풀어내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참고 살 수 없었던 것, 차별!
전통에 충실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더욱 필요했던 것, 평등!
저자 정순임은 경북 상주 소재 ‘우복 종가’에서 태어났다. 사랑채 당호는 산수헌. 대학 한문학과 교수들이 모두 자기 집안 내력을 꿰고 있더라는, 이름난 명문가다. 하지만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저자의 어머니가 집안을 사실상 이끌어 오늘에 내려왔다. 예전부터 같은 마을에 살며 일을 돕던 아지매들까지 나이가 들어 모두 도시로 떠났고, 이제 전통의 가치를 잇는 분은 오직 어머니 한 분이다.
그리운 고향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옆에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된장, 간장, 고추장, 담북장, 집장, 박장, 약과, 유과, 전과, 타래과, 수란, 족편, 피편…. 그런 대대로 내려온 음식들을 배우고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 역시 한몫했다. 그래서 대학원을 나와 번역을 하던 글쓴이는 오십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400년 된 고택으로, 사랑채(산수헌)와 안채 등은 물론 누각, 정자, 강당, 사당을 갖춘 국가지정 문화재인 전통가옥에서의 삶은 자연과 벗하는 나날들이다.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가지고 사람의 손으로 옛 방식 그대로 장을 만들고 조청을 끓인다. 어머니의 장사법 또한 옛날 그대로다. “(원가가) 콩 얼마 천일염 얼마, 그것이 계산법의 전부다”. 도회지에서 살다 와서 땅값, 인건비, 그리고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하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도둑놈이 따로 없네”라며 중얼거린다. ‘양심 없는’ 딸에게 전통비법 전수는 언감이다.
모성이란 과도하게 포장된, 남자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것
그리고 여전히 가부장적인 어머니의 사고방식. 밥 차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배려는 아들이 우선이고 딸은 뒷전이다. 딸에게도 마찬가지로 헌신하셨고 대학 교육에까지 차별을 두지 않았던 어머니였다는 걸 알지만, 딸의 입장에서는 점점 마음이 상하기만 한다. 결국 불만이 사랑을 갉아먹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글쓴이는 가출을 감행한다.
어떻게 하면 농촌은 옛 방식을 계승해나가면서도 정당한 경제적 대가를 가져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며 전통 문화재를 지키면서도 편리한 삶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십오 대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면서도 가정 문화는 평등하게 가꾸어나갈 수 있을까. 지은이의 고민은 여러 가지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어머니와의 관계 정립부터다.
안다. 당신과 나를 동일시했다는 걸, 남자들 밥상 위에 맛있는 거 놓고 여자들은 대충 먹으면 된다고 배우고 익히며 살아온 당신의 세월을, 모성이란 과도하게 포장된 남자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것이란 걸, 그런 시절을 산 엄마가 혼자 달리 살기는 어려웠단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 삭이고 대항하지 않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_본문 중에서
템플 스테이에 이어 ‘한옥 한달 살기’가 나름의 ‘힙’함으로 받아들여진 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다. 전통가옥에서의 진짜 삶은 어떤 의미와 결을 담고 있을까.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고민과 생각으로 오늘을 살고 있을까. 자연의 여유로움, 전통의 다정한 느낌에 끌리면서도, 그곳들에 매인 불합리와 차별의 그림자를 꺼려하던 독자들에게 특별히 추천하는 책이다.
작가 소개
정순임
400년을 한 곳에서 살아온 가문,
15대에 걸쳐 봉건적 전통을 이어온 집안의
둘째이면서 딸로서의 삶이 만만치 않았다.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공부하면서부터
번역일로 밥벌이를 하며
아이들 두 명과 우당탕탕 살았다.
오십에 귀향해 된장 고추장 담그며 산다.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한 번쯤 으쓱해 보이고 싶었으나,
갱년기를 지나며 돌아보니
보잘것없는 생만 허무하다.
죽음이 삶의 결승점이라면
보잘 것도 좀 챙기고,
허무 대신 충만이랑 많이 친해진 뒤에
왁자지껄 환하게 통과하고 싶다.
목 차
머리글 005
1장 종가집의 둘째, 그리고 딸
밖에선 별당 아씨, 안에선 가시나 . 013
뚝배기보다 장맛 . 016
아버지, 내 첫 번째 남자 . 019
따뜻했던 사람들의 기억 . 022
봄이면 과수원 나가신다 해놓고 . 026
예기치 않았던 일들 . 032
품이 넉넉했던 우천할매 . 035
순하고 선했던 무섬아지매 . 042
삶과 죽음 속에서 나는 자랐다 . 045
겨울에도 놀거리는 많고도 많았다 . 048
나도 출세하면 안 돼? . 052
가면 밝아지고 가면 밝아지고 . 056
우리집을 거쳐 간 사람들 . 059
2장 단지 여자이고 여자였을 뿐
사랑은 원하는 것을 주는 거야 . 065
흘린 눈물이 아깝고 분해서 . 069
나는 괜찮지 않았다 . 075
사랑은 왜 배우지 못했을까 . 080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한 시절 . 084
그건 아내를 못 믿는다는 뜻이지 . 089
결혼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 . 092
‘옆집 아줌마’는 무슨 뜻일까 . 096
관습적 피해자 . 100
그 아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 105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109
마녀가 돼도 괜찮아 . 112
여자의 일생 . 117
3장 엄마와 나의 평행선
가자, 가족 품으로 . 123
그 술 내가 마셨냐고요 . 126
콩이 튀고 팥이 튀는 날들 . 129
내 죽거들랑 그때나 울어라! . 134
누가 우리 엄마 좀 말려 주세요 . 140
니가 뭘 안다고! . 143
우리 사이에는 ‘사이’가 필요하다 . 148
다시 시작하는 나이 . 152
세월이 약이 되려면 . 155
사랑 혹은 타령 . 158
어매, 아껴 쓰시게 . 161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이름 . 164
지질하고 짠해서 버리지 못하는 꿈 . 167
4장 모든 길은 가족에 닿는다
트렁크에 상처와 용기를 욱여넣고 . 173
엄마가 버텨낸 시간들 . 178
오십이 넘어 가출이라니 . 182
당신이란 여행지 . 187
사소하고 유치한 슬픔 . 191
오빠야 조금만 기다려 줘 . 194
곧 당신께 돌아가겠습니다 . 199
슬픔이 건네는 말들 . 203
집으로 가는 길 . 207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 211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 . 215
있어 줘서 고마워 . 220
나는 나, 우리는 가족 . 225
산수헌의 나날 . 229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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