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제5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 수상작
누구보다 치밀하고 집요하게,
그러면서도 일말의 낙관을 잃지 않고
삶을 바라보는 이들을 위하여……
김종연 장편소설
“우리는 모두 새로운 기억의 가능성이자
조금씩 매몰되는 기억의 생존자였다.”
제5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한 『마트에 가면 마트에 가면』이 ‘새소설 시리즈’ 열두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2011년 시인으로 등단해 활발히 활동 중인 김종연 작가가 빚어낸 새로운 세계, 첫 번째 소설이다. 고단한 ‘재난’이란 상황이 명랑한 ‘마트’라는 공간과 만나 묘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이 작품은 “전염병의 시대를 은유하며 그 고통과 비극을 기록하고 이해하려는 작가의 진심이 생생하게 돋보인다”(김희선 소설가)는 평가와 “작가의 시선에 믿음이 가지 않을 수 없다”(이주란 소설가)는 찬사를 받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지금-여기’를 비추며 그 안 깊숙이 자리한 심상들을 그림처럼 그려낸 이 소설의 힘은,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로 흘러 오늘을 살아내게 할 것이다.
“해피 해피 해피 이마트 이마트!”
암울한 재난 속 명랑한 마트의 삶
이야기는 재난의 한복판에서 시작한다. 지진이 이미 일상을 휘젓고 떠난 자리, 절망과 같은 색의 감정들이 저변에 깔린 그곳에서 사람들은 초췌한 몰골과 메마른 마음으로 무력하게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생존자라는 이름의 그들은 구조된 삶과 무너진 일상 사이에서 환멸을 느끼며, 가까스로 스스로를 재건 중이다. 그들 가운데 성결도 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피난 중인 그는 뿌연 낙관만을 품은 채 오늘과 다를 바 없는 내일을 준비한다. 희망이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라 오직 슬픔만이 고여 있는 세상에서, 마치 마약과도 같은 낙관을 키우고 또 비축한다. 이러한 그들이 지금 자리하고 있는 곳은 ‘마트’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명랑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마트. 집을 잃은 이들의 피난처가 마트인 것은, 때가 되면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노래는, 삶의 감각을 일깨우는 블랙코미디와 같다. 비관과 낙관이 뒤섞인 채 공존하는 그들의 삶의 모양과도 닮아 있다.
사람, 관계, 유대감…… 그리고 기억
저항할 수 없는 존재와 비존재로부터
마트 안은 진열된 다양한 상품처럼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마트의 웃어른이자 정신적 지주인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들을 내세워 철권통치를 하는 ‘왕언니파’ 아주머니들, 왕언니파와 갈등을 빚곤 하는 조기축구회 아저씨 무리, 부모의 눈을 피해 붙어 다니는 학생 커플 세인과 경민,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된 버려진 아기 겨울이, 겨울이를 돌보며 가까워진 재희와 덕규……. 그리고 그곳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성결의 기억 속, 더 내밀하게 말하자면 상처 속―인물들이 복작이며 마트 안을, 성결의 공간을 채우고 있다.
마트의 일상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지만, 성결의 마음을 바쁘게 만드는 건 ‘마트 속 현실’보다 ‘기억 속 과거’인 듯하다. 유물처럼 간직된 기억은 늘 성결을 지금에 속하지도, 이전으로부터 떠나지도 못하게 만든다. 성결이 자신의 쉘터인 키즈 놀이터 ‘볼풀’에 누워 무중력을 느끼는 것처럼, 그는 자주 ‘기억’에 눌려 현실에서 벗어나곤 한다. 그 기억의 가장 많은 몫은 가족이 차지하고 있다. 성결에게 “피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다. 그래서 가족, 즉 혈육은 “기억을 나눈 사람들”이라는 뜻. 가족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은, 기억의 속박이 영원할 거란 잔인한 진실이다.
삶의 희망이 양육한 낙관
간절히 원했고 처절히 잃은 것들
별안간 마트 화장실에서 발견된 아기는, 재난 속 낙관처럼 마트 사람들에게서 키워진다. 아기를 발견한 최초의 성인이란 이유로 성결은 아기와의 “특별한 인연”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다들 선뜻 나서지 않는 아기 돌보는 일에 자원한 재희, 덕규와도 가까워지며 특별한 인연이 되어간다. 마트에 들어오기 전 늘 어렵고 꼬이던 인간관계가, 사는 게 재난 같던 상처와 흠결이, 작고 옅기만 하던 성결의 존재감이 조금씩 되살아나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기처럼 성결의 희망도, 삶에 대한 기대도, 마트 밖에서 펼쳐질 미래에도 밝은 기운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때, 아기를 놓아두고 갔다는 사람이 찾아온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아기를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 낙관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성결을 비추던 빛이 일순간에 꺼지고 잠시 덮였던 균열선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아니, 전보다 더 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몽상 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몽상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이야기
소설의 주인공 성결은 말한다. “어쩌면 가장 두려운 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무너지고 나서도 이어지게 될 삶”이라고. 작가가 지진이 일어난 이후 마트에서의 삶을 조명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알 수 있다. 작가가 성결에게 닥친 새로운 시련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란 사실을. 수시로 성결의 과거를, 기억을 파고든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끝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애초에 맺어질 수 없었다. ‘지금-여기’를 비추면서도 그 너머를 향해 있는 작가의 시선은, 마침표 이후에도 쓰이고 있는 이 소설을 증명하고, 멈추지 않고 이어질 우리의 삶을 응원한다. 재난을 건너는 마트의 일상 속에서 아이러니한 희망 한 조각을 발견하는 기쁨은, 작가가 우리 모두에게 허락한 낙관일 것이다.
‘새소설’은 지금 한국문학의 가장 참신하고 첨예한
작가들의 시선을 담는 소설 시리즈입니다.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젊고 새로운 작품을 소개합니다.
작가 소개
김종연
199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미디어창작학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1년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 2022년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시집 『월드』를 출간했다.
목 차
소비의 집
사람이 살던 집
잠에서 깨는 꿈
보이지 않는 손
나와 당신들의 이야기
고귀한 모든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
기억의 주인
해피해피해피 맑은 날 우리 가족 손잡고 함께 가요
작가의 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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