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예술의 종말을 고한 이 시대의 철학자, 아서 C. 단토
그와 나눈 뜨겁고 날카로운 대화들
‘도대체 왜 어떤 인공품은 예술품이 되고, 또 어떤 인공품은 예술품이 되지 못하는가?’
예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려면 이제는 철학이 필요하다
1964년, 단토는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보고 깊은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은 단토의 미학에서 일종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왜 어떤 인공품은 예술이 되고, 또 어떤 인공품은 예술이 될 수 없는가? 앤디 워홀은 하고많은 상품 중 왜 브릴로 상자를 택했는가? 이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이제 예술을 뭐라 정의내릴 수 있는가? 예술에서 철학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 그리고 통찰의 끝에, 그는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다. 이 테제는 단토의 많은 저서들에서 여러 번 논의된 바 있지만, 그만큼 대중으로부터 여러 번 비틀리고 왜곡되고 오인되어 왔다. 이 책은 그가 거듭 주장한 탈역사와 예술의 종말 개념을 재확인하고 오해를 바로잡으며, 더 나아가 워홀 말고도 다양한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그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단토의 예술 철학을 비판적으로 개관하는 서문이고, 나머지는 파파로니와 단토가 주고받은 대화록이다. 특히 본서의 주된 부분을 차지하는 대화록은 그 형식의 특성상 딱딱한 논문에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단토의 미묘한 생각과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예술의 종말’이라는 단토의 유명한 테제는 그토록 잘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오해를 낳고 파악하기 힘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단토의 예술 철학을 대담의 형식으로, 그러니까 일상의 언어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사유를 입체적으로 헤아려 볼 수 있는 무척 좋은 기회가 된다. 또한 그가 미술, 그중에서도 예술 철학과 분석 철학에 입문하게 된 내밀한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단토의 지적 흥분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기록
토론과 비판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탈역사’와 ‘예술의 종말’의 진정한 의미
이탈리아의 미술 비평가이자 큐레이터, 편집자인 파파로니와의 대화는 그의 넓은 식견과 탐구 정신으로 단토 사유의 여러 측면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이 대화(화가 밈모 팔라디노와 철학자 마리오 페르니올라가 참여할 때도 있다)에서 우리는 서로 날카로운 질문을 주고받는 대담자들의 생생하고 즉흥적인 토론을 지켜볼 수 있다.
본서의 대담자들은 저마다 전문 분야가 다르지만 모두 어느 정도는 철학자고, 미술가며, 미술 비평가다.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상대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서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이런 오해는 때로 자기 논리의 허점을 회피하는 의도적 혹은 무의식적 전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초점이 미세하게 틀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정합성을 갖춘 1인칭의 건조한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우발성의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대담자들은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때로는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고 솔직하게, 그러나 절대 오만하지 않게 전달한다. 이렇듯 상호 존중과 배려의 분위기 속에서도 시종 팽팽하게 유지되는 지적 긴장과 거기서 오는 지적 희열은 독자가 이 책에서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런 어긋남을 지켜보며 독자는 화자들, 특히 단토의 논지를 오히려 더 깊고 선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역사는 끝나지만 삶은 계속됩니다.”
단토의 기존 저서로는 메우기 힘들었던,
아주 작지만 결정적인 틈새를 보완해 줄 지적 길잡이
“내가 말하는 것은 역사의 종말이지 예술의 죽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로 구축된 세상에 얼마간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탈역사’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남은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단념하지 못하는데 인간의 마음이 늘 사태를 서사적 관점에서 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만간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94)
단토가 이 시대에 던진 두 가지 화두인 ‘탈역사’와 ‘예술의 종말’이 가리키는 방향은 곧 다원주의 시대다. 이런 점에서 단토의 사유가 가닿는 영역은 비단 예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 책의 담화가 예술과 철학, 미학의 범주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우리가 지금 발 디디고 살아가는 이 세상과 시대, 사회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되돌아보고 가늠해 볼 수 있는 비전을 제공한다.
대서사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무엇이라도 가능한 시대, 소서사들의 시대가 열렸다. 거실에서는 TV가 사라지고 셀 수 없이 많은 유튜브 채널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예술계의 오늘과 어제와 미래를 조망한다. 예술계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특수한 구역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을 축소한 모델―어느 영역보다 세계의 흐름에 예민하고 민첩하게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다. 이런 뜻에서 『예술과 탈역사』는 예술의 범주에서 더 나아가 한 권의 인문·역사서로도 기능한다. 나아가 단토가 제기한 두 가지 화두, 탈역사 개념과 다원주의 비전은 우리가 현시대를 진단하고 각자의 지난날과 앞날을 조망하는 데도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책을 국내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하게 된 2023년이 단토의 타계 10주기다. 이탈리아어 초판은 2020년에, 개정을 거친 영어판은 작년에 출간되었다. 시점이 시점이니만큼 한 가지 의미를 부여해 이 책을 소개한다면,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예술 철학자의 성취와 자취를 뒤돌아보고 기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아서 C. 단토
미국의 철학자이자 미술 비평가.
웨인주립대학교에서 미술과 역사를 공부했으며 판화가로 활동하면서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철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다양한 교수직을 역임하다가 1966년에 정교수가 되었다. 1984년부터 2009년까지 『네이션』의 미술 비평가로 활약했으며 미국철학회장과 미국미학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주 관심사는 사고, 감정, 예술 철학, 표상 이론, 철학적 심리학, 헤겔 미학, 그리고 메를로퐁티와 니체, 장폴 사르트르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
단토는 1964년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보고 ‘어떤 인공품은 예술품이 되고, 또 어떤 인공품은 예술품이 되지 못하는가?’라는 논지의 화두를 미술계에 제기해 이목을 모았다. 같은 해 발표한 논문 「예술계」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부하면서 철학적 미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2013년 10월 89세를 일기로 타계한 단토는 수많은 평론과 저서를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예술의 종말 이후』와 1990년 미국도서평론가협회 평론 부문을 수상한 『만남과 성찰』을 비롯해 『일상적인 것의 변용』 『브릴로 상자를 넘어서』 『비자연적인 기적들』 『미래의 마돈나』 『앤디 워홀』 『무엇이 예술인가』 『미를 욕보이다』 등이 있다.
지은이 : 데메트리오 파파로니
이탈리아의 미술 비평가이자 큐레이터, 작가, 편집자.
카타니아대학교에서 근현대 미술사를 가르쳤으며 지금은 이탈리아 신문 『도마니』에서 미술 비평가로 일하고 있다. 1983년에 현대 미술 매거진 『테마 첼레스테』와 동명의 출판사를 설립하여 2000년까지 운영했다. 주요 저서로는 『악마: 시각적 역사』(2019) 등이 있다. 단토 생전에 그의 담당 편집자로 일했으며, 단토와 주고받은 대화를 정리해 본서로 출간했다.
옮긴이 : 박준영
한때 영화를 만들었고, 미학을 잠시 공부했다. 현재는 미학을 실천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란 핑계로 번역을 하고 있다. 관심 분야는 분석 철학과 현대 예술이며, 옮긴 책으로는 나이절 워버턴의 『그래서 예술인가요?』와 벤체 나너이의 『미학』이 있다.
목 차
참고 도판
영어판 서문 1 - 배리 슈왑스키,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영어판 서문 2 - 데메트리오 파파로니, 우연히 시작된 대화들
해설 - 데메트리오 파파로니, 주디의 방에서
1. 역사와 탈역사 (1995)
2. 양식과 서사, 탈역사 (1998)
3. 천사 대 괴물 (1998)
4. 분석 철학으로서의 예술 비평 (2012)
역자 후기
색인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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