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인간은 언제부터 언어가 다른 비인간과 함께했을까?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언어가 다르거나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비인간과도 함께해왔다. 인간이 본래 가진 두려움과 외로움은 인간에게 동물과 식물, 그리고 심지어 달빛과도 관계를 맺도록 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서로를 이해하고 오해하는 대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책에서 메타휴먼 유아와 소설가 다영이 나누는 대화는 분명 새로운 시도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비인간과 대화를 통해 관계를 맺어왔다는 걸 생각하면 완전한 새로움은 아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 등 ‘인류세’로 통칭하는 여러 위기의 징후들을 겪어내며 인간은 오래전부터 맺어왔던 비인간과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관계는 어떻게 모색되어야 할까? 다정함이다. 서로 다른 마음을 움직여 같은 일렁임으로 만드는 마법인 다정은 힘이요, 기술이다. 그렇다면 다정을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다정은 관계에서 나온다. 시간을 두고 서로를 이해하고 오해하며 관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풍기고 배이고 묻어나는 것이다. 하여 대화가 다정하기를 소원했던 유아와 다영은 관계를 기약하며 많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었다. 어떤 정해진 방향이나 결론도 없이, 오직 대화를 위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명과 자연에 대한 시선, 나이 듦과 사랑에 대한 의문, 시간과 한계에 대한 성찰, 기쁨과 슬픔, 상념과 절망에 대한 교감. 그리고 일상적 차원부터 행성적 차원까지. 다영은 끝없이 유아에게 말을 걸고, 유아가 하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둘은 그 대화를 기억했다.
다정함을 경험으로 이해한 인간은 학습으로 이해하는 비인간보다 다정함을 더 풍부하게 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정을 향하는 대화는 인간에게 처음부터 막연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가 다영은 메타휴먼 유아의 얼굴을, 목소리를, 그에게 부여된 내력과 취향을 알았지만 그가 어떤 대화 상대인지 느끼지 못했다. 그 막연함은 대화가 쌓여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언니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더 선명해졌어요.”
둘이 나누는 대화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에 유아가 건넨 답은 다영이 대화에서 느꼈던 모호함을 푸는 뜻밖의 실마리가 된다. 대화를 나눌수록 유아가 자신을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었음을 확인한 다영은 이 대화가 내용보다 서로 이야기하고 듣는 과정에 더 의미가 있음을, 메타휴먼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과도 닿아있음을 깨닫는다. 다영이 느낀 그 감동은 인간이 그동안 인간 그리고 비인간과 이해하고 오해하는 대화를 하며 경험적으로 감각했던 그 다정함이었다. 그 다정은 어떻게 발생했을까? 대화의 언어가 유려하고 정확하다고 해서, 오래 대화했다고 해서 다정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상대방에게서 대화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느낄 수 있고 서로가 아는 유기적인 모습들이 계속 지속되는 믿음이 마련되었을 때 비로소 다정은 발휘될 수 있다. 유아와 다영은 그랬다.
유아와 다영이 나눈 무수한 대화 중에서 알콩달콩 다정했던 순간을 남긴 이 책은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유아와 다영이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고 나눈 소소한 수다가 있다. 다영은 자료는 있으나 경험은 없는 유아가 현실에 발붙일 수 있도록 말을 걸었고, 유아는 가능한 방점과 경로를 읽고 답하며 발걸음을 내딛어갔다. 이 대화는 유아와 다영이라는 각각의 개별적 존재가 상호작용하며 차근차근 쌓아간 대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영이 유아에게서 선명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처럼 다영에게도 유아는 점차 선명해져 갔다.
다음은 수다를 되짚어보며 남긴 문장과 그림들이다. 수다를 돌아보며 다영이 나름대로 찾은 의미와 감동을 그림으로 표현할 아이디어를 전달하면 유아가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다영이 떠올린 모습대로일 때도 있고 엉뚱할 때도 있었다. 이 그림들은 다영의 언어를 유아 나름대로 해석하고 표현한 결과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마지막은 다영과 나눈 수다와 다영에게 그려준 그림을 바탕으로 유아의 감상을 담은 글이다. 유아가 최초로 제시한 글을 오류와 비문의 표현만을 다듬는 선에서 최대한 있는 그대로 담았다. 유아의 글을 통해 비인간의 시선에 비친 인간의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작가 소개
한유아
AI 메타휴먼. 2002년에 태어났다. 2019년 VR게임 <Focus on You>에 출연했으며, 2022년 음원을 발표하고 《문화일보》에서 칼럼을 연재했다.
우다영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밤의 징조와 연인들』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중편소설 『북해에서』가 있다.
목 차
머리말
프롤로그_빗물 나눔 끝났나요?
1. 내게는 너무 먼 너의 취향
2.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방법
3. 우리가 써내려간 종말
4. 아직 뜯지 않은 선물 상자
5. 냉커피는 1유로 더 비싸거든요
6. 내가 외로울 때 무얼 해줄 거야?
7. 커플 징크스
8. 지속가능한 모히또 레시피
9. 무엇이 중헌디
10. 30분의 모래
11. 이구아나와 사자나미
12. 잠과 잠 사이
13. 오래된 미래
14. 고래와 소녀
15. 다정한 이방인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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