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꽃 흔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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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조의연
출판사항시와사람, 발행일:2023/06/30
형태사항p.130 46판:20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56656762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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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조의연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이전의 시집과 차별성을 갖는 시적 특성은 ‘길’의 심상을 노래한 시편들이다. 시적 상징으로서 ‘길’은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둠을 밝히는 기제에서부터 삶을 견인하는 이정표에 이르기까지 긍정적인 이미지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적 경향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실존에 대한 탐구와 모색이다. 물론 대부분이 자연의 생태적 특징에서 이를 발견하는데 이러한 시적 탐구는 그의 이번 시집의 수준을 한차원 높은 경지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시인의 또다른 관심사는 자연을 시적 소재나 주제로 삼고 있는 까닭에 당연히 생태학적 상상력을 강조한다. 이러한 경향 또한 기존의 생명성 탐구와는 다르게 자연의 모습을 섬세하게 관찰하며 자연이 지닌 생명성을 묘파화고 있어 참신하다.

‘길’은 ‘어둠을 밝히는 등불’(「등꽃 피는 계절」), ‘지향하는 어떤 세계’(「길을 잃었다」), ‘천국으로 오르는 통로’(「등꽃 지는 소리」), ‘이상적 세계에 이르는 과정’(「바람소리」), ‘겨울에서 봄에 이르는 과정’(「봄을 기다리다」),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의 마음’(「해바라기」). ‘지향성’(「논길을 가다」), ‘시간의 흐름’(「가을」), ‘계절의 흐름’(「너릿재 옛길」) 등 수없이 많은 의미의 길이 있다.

- 강경호(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회장)


▣ 작품론


자연을 통한 ‘길’의 심상과

생명성, 실존 탐구

-조의연 시집 『엉겅퀴꽃, 흔들리다』


강 경 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서정시에서 ‘자연을 모방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래된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인류의 역사가 드러낸 인간의 비극을 자연이 지닌 생태학적인 특질에서 발견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은 물론 인간의 운명과 삶의 방식을 노래해왔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에 의해 자연이 훼손되어 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인간은 여전히 자연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그리워하며 닮아가고자 한다. 조의연 시인의 이번 시집 대부분의 시편들도 ‘자연’을 모범교과서로 인식하고 다양한 자연의 모습과 그 자연에 견주어 인간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 이전의 시집과 차별성을 갖는 시적 특성은 ‘길’의 심상을 노래한 시편들이 많다는 점이다. 시적 상징으로서 ‘길’은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둠을 밝히는 기제에서부터 삶을 견인하는 이정표에 이르기까지 긍정적인 이미지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적 경향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실존에 대한 탐구와 모색이다. 물론 대부분이 자연의 생태적 특징에서 이를 발견하는데 이러한 시적 탐구는 그의 이번 시집의 수준을 한차원 높은 경지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시인의 또다른 관심사는 자연을 시적 소재나 주제로 삼고 있는 까닭에 당연히 생태학적 상상력을 강조한다. 이러한 경향 또한 기존의 생명성 탐구와는 다르게 자연의 모습을 섬세하게 관찰하며 자연이 지닌 생명성을 묘파화고 있어 참신하다.


2.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길’은 사람이나 동물,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게 땅 위에 낸 일정한 공간을 말한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의 길만으로는 시의 의미를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시인의 언어는 다양해서 다의적多意的으로 사용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전적 의미를 훨씬 능가한다.

조의연 시인의 시 속에서의 ‘길’은 ‘어둠을 밝히는 등불’(「등꽃 피는 계절」), ‘지향하는 어떤 세계’(「길을 잃었다」), ‘천국으로 오르는 통로’(「등꽃 지는 소리」), ‘이상적 세계에 이르는 과정’(「바람소리」), ‘겨울에서 봄에 이르는 과정’(「봄을 기다리다」),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의 마음’(「해바라기」). ‘지향성’(「논길을 가다」), ‘시간의 흐름’(「가을」), ‘계절의 흐름’(「너릿재 옛길」) 등 수없이 많은 의미의 길이 있다.

먼저 「등꽃 피는 계절」을 살펴본다.


등꽃이 피었네요

가로등도 없는 국도변에

수만 송이의 등불을 켜들고 길을

밝히고 있네요

차창에 비치는 희미한 외딴길

터덕거리는 새모래덩굴의 길동무가 되어

환하게 별빛과 어울려

치렁치렁 매달려 불꽃놀이를 하네요.

멀리서 달리는 차들의 불빛이

민망한 듯 고개를 숙이네요.

보라 빛깔이 산등성이를 환하게 밝히네요

칡넝쿨도 그 빛을 따라 길을 가네요.

- 「등꽃 피는 계절」 전문


“가로등도 없는 국도변에/수만 송이의 등불을 켜들고 길을/밝히고 있”다. 가로등도 없는 국도변의 길은 길이지만 길이 아니다. ‘국도변’을 지나는 자동차가 불을 밝혀야 길을 갈 수 있다. 길이 있어도 어두우면 갈 수 없기 때문에 길이 아니다. 길은 갈 수 있어야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창에 비치는 달빛에도 희미한 외딴길”을 “터덕거리는 새모래덩굴의 길동무가 되어/환하게 별빛과 어울려” 갈 수 있다. 그런데 국도변의 어둠을 환하게 등꽃이 피어서야 비로소 환한 길이 나타남으로서 길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환하게’와 “수만 송이 등불을 켜고” 있는 등꽃은 서로 언어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밝게 하므로 길이 나타난다. 실제로 등꽃이 등불이 될 수 없지만 등꽃의 관념이 불을 의미화시킨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어둠 속의 길을 비추므로 없는 길이 나타나는 까닭에 ‘어둠’과 ‘밝음’의 빛의 지각력을 시 속에 투사시켜 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칡넝쿨도 그 빛을 따라 길을” 간다는 화자의 진술이 가능한 것이다.

「봄, 바람」에서도 ‘밝음’이 ‘어둠’을 걷어냄으로 해서 길을 내고 있다 한다. 그러나 “잠자던 뿌리들 꿈틀거리며/소리 없이 온 힘을 다해 펌프질을 시작”한다. 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잠’의 기표가 의미하는 것은 ‘한밤’이다. 그런데 잠자던 뿌리들이 꿈틀거리며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꽃숭어리’ 즉 ‘밝음’ 또는 ‘빛’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봄이 오는 것이고 생명이 움트는 것이다. ‘빛’이 ‘어둠’을 물리침으로 해서 봄이라는 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먼길 돌아온 바람은/봄을 얼싸안고 햇살”을 받고 피어오르는 것이다. ‘빛’이 ‘봄’을 부르고 ‘바람’을 불러와 “꽃이 만발한 미친 계절” 봄이라는 또다른 길을 연 것이다.

「길을 잃었다」에서는 ‘길’의 상징이랄 수 있는 ‘봄’이 멀기 때문에, 즉 “눈보라는 기마병처럼 북풍 휘몰아 오”기 때문에 “길 잃은 꽃봉오리들이 떨고 있”고,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앞에서 살폈던 ‘길’의 상황과는 정 반대인 까닭에 “봄날은 멀고” “새들도 초저녁 달빛 속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해바라기」에서는 앞에서 보았던 ‘길’과는 다른 길이 전개된다.


해바라기 해만 바라본다

불볕 더위에 견디며 서 있는 해바라기 꽃송이들

천둥 번개 쳐도 흔들리지 않고

고개를 떨구고 서 있는 큰 꽃.


해를 바라보다 키만 자라 하늘에

꿈이 닿았다

그리움의 가슴앓이에 박힌 들숨의 멍자국들

씨앗으로 까맣게 영글어 대를 이어

해만 바라보는 조상의 후예들

한 줄기에서 흐르는 피는 수만 년이 지나도

같은 길을 걸어간다

도도하게 아래로 흐르는 강줄기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자가 없다.

- 「해바라기」 전문

해바라기는 “불볕 더위에 견디며” “해를 바라보다 키만 자라 하늘에/꿈이 닿”는다. 해를 좇기 때문에 해바라기라는 이름을 얻었듯 해바라기는 오직 해를 바라본다. 그러므로 해바라기의 이러한 생태적 특징을 ‘그리움’이라고 화자는 말한다. 이 그리움의 힘이 해바라기를 해바라기 답다는 정체성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씨앗으로 까맣게 영글어 대를 이어/해만 바라보는 조상의” 유전자를 받은 “후예들”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행위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같은 길을 가게 한다. 이러한 해바라기가 살아온 시간과 역사를 “도도하게 아래로 흐르는 강줄기”라고 화자는 인식한다. 참으로 끈질기게 오직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의 특성은 하나의 ‘길’이며, 거역할 수 없는 ‘강줄기’라고 할 수 있다. ‘강줄기’ 그 자체가 해바라기가 만들어온 길이 아닐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를 향하는 정신이 곧 ‘길’이어서 폭포가 늘 아래로, 낮은 곳으로만 흐르듯 변할 수 없는 해바라기의 총체성이 곧 ‘길’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 ‘길’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으로는 「나주호」, 「낙엽 위를 걷다」, 「옷 벗는 나무」, 「낙하」, 「낙엽이 지다」, 「뱀딸기」, 「꽃무릇의 시절」 등이 있다.

「나주호」는 “시나브로 모여든 실가닥의 물줄기”를 하나의 길로 형상화하여 나주호에서 만나 또다시 어디론가로 흘러가는 길을 묘사했고, 「낙엽 위를 걷다」에서는 “어린 새싹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우고/때를 기다렸다가/말없이 자리를 내어주고 내려앉아/밑거름이 되는 이들”의 세대교체 과정을 길로 의미화 하였다. 「옷 벗는 나무」에서는 나무들이 겨울이 되어 낙엽으로 떨어져 “더 큰/그늘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여 「낙엽 위를 걷다」와 같이 ‘세대교체’ ‘희생의 밑거름’하는 과정을 ‘길’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낙하」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그럼으로써 “떨어져 본 자들만 다시 올라가는 길이/환하게 보인다”고 하여 인간의 삶에 비유하여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뱀딸기」에서는 “숲은 모든 길을 품고 있다.”라고 하며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짐승’ ‘알을 노리는 빨간 눈동자’들을 ‘길’로 인식하여 약육강식, 또는 적자생존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들의 제각각의 삶을 ‘길’이라고 하고 있다.

이처럼 이번 조의연 시집에서 주목되는 시적변화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생존의 숲, 또는 저수지 같은 세계에서 제각기 생존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삶을 ‘길’로 파악하고 있는 점이다.


3.

앞에서 살펴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연은 어떤 방식이든 제각각의 생존방식을 터득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생명성’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 선조들의 삶의 방식에서는 ‘생명성’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만을 위하는 탐욕적인 삶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민속적인 삶에서 겨울 먹이가 부족한 새들을 위하여 이른바 ‘까치밥’이라고 부르는 감을 감나무에 몇 개씩을 남겨주는 아량과 여유, 그리고 산에서 제사를 지내고 산에 사는 짐승들을 위해 음식을 나눠주는 행위인 ‘고수레’가 그 대표적인 생명성을 실천하는 방식이었다.

조의연 시인의 시집에서는 자연의 모습을 내밀하게 관찰하여 자연이 지닌 원초적인 생명의 본질을 묘파하여 더 높은 차원의 생명성을 시를 통해 형상화하였다.


이중창을 뚫고 들어온

풀씨 하나 화분에 터를 잡고

파란 눈을 떴다

기특한 마음에 뽑지 않고 지켜보았다

자고 일어나면 한 매듭 훌쩍 커서

하얀 꽃송이들 피어나고

기세등등 푸른 열매 등을 높이 든다

인삼팬다는 옆에서 주눅이 들고

수리부엉이 날개 펴듯 영토를 넓히더니

까만 눈동자들 반짝거린다


나라 잃고 떠나간 먼 이국땅

멕시코 에네켄밭 애니깽의

눈동자들이 보인다

흰옷 민족의 눈물방울들이 살아남아

얼마나 많은 열매를 낯설은 땅에 맺을지

지켜보고 있다

까마중 한 포기에 달린

눈동자들과 날마다 눈을 맞추고 서 있다

- 「까마중의 영토」 전문


시인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지 않는다. 사물의 기표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포착하는 힘을 지녔다. 이 작품은 까마중의 생명성을 통해 민족수난기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멕시코에 이민 간 선조들의 불모의 땅에서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끈질긴 생명의식을 노래하고 있다. 이중창을 뚫고 들어온 풀씨가 화분에서 뿌리내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우 강인한 삶의 의지를 지닌 까마중이라는 식물이 마침내 화분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 꽃을 피워낸다. 그런데 본래 화분에서 자라던 인삼팬다는 죽고 밖에서 날아들어온 까마중만이 푸르게 자란다. 이것을 눈여겨 본 화자는 멕시코라는 낯설고 머나먼 대륙으로 건너가 에네켄밭에서 궂은일을 하며 노예처럼 살아가지만 까마중 열매처럼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지난한 삶을 이겨낸 선조들의 삶을 주목한다. 화자가 처음에 바라본 것은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와 화분에서 뿌리를 내리는 강한 생명력에서 애니깽이라고 부르는 멕시코 이민 1세대들의 강인함을 떠올린다.

「봄이 오면은」은 봄이 되어 생명의 촉수를 내밀고 생명 활동하는 온갖 생명들의 활기찬 모습을 그려낸다. ‘붉은 찔레꽃’, ‘탱자꽃송이’, ‘감나무 어린 잎’ 등의 시어가 생명성을 더욱 강조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봄날의 꿈」은 아주 짧은 작품이지만, 시제가 말하듯 ‘봄날의 꿈’이 ‘맑음’과 ‘푸르름’을 드러내는데 강조하고 있다. ‘맑음’과 ‘푸르름’은 칙칙한 겨울을 지낸 ‘만물’이 ‘꿈틀거리’고 ‘민들레 노란 꽃잎’은 꽃잎을 피워 생명성을 질문하고 화답한다. 그러므로 ‘숲’은 “푸른색으로 ‘우~우’ 일어서고 있”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이처럼 “칡넝쿨 따라 하늘길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벚꽃나무 아래서」는 생명성을 노래한 시편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오로지 열매를 맺기 위해서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홀로 견디다 견디다

때가 되어

팡!

있는 힘을 다해 터져버린 것이다

365일 중에 딱 한 번

활짝 기를 펴보는 것이다

개나리꽃도 옆 마을에서 같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열매 없는 잡초들이 더 창창하다.

- 「벚꽃나무 아래서」 전문


이 작품 역시 매우 짧은 형식으로 ‘생명’의 환희를 잘 나타내고 있다. 흔히 꽃이 피는 이유를 열매를 맺기 위한 전단계로 생각한다. 그러나 벚나무는 일 년 동안 “홀로 견디다 견디다/때가 되어/팡!/있는 힘을 다해” 꽃을 피우는데 더 의미를 두고 있다. 벚나무가 꽃을 피우자 개나리꽃도 꽃을 피우는 일이 가치있는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데에서 꽃을 피우는 일이 “활짝 기를 펴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벚나무 아래에 있던 “열매 없는 잡초들이 더 창창하다.”고 한다. 화자가 꽃피우는 일이 일 년 중 가장 활기있는 순간임과 더불어 왕성한 생명력으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에 주목함으로써 생명의 힘에 주목하게 한다.

「도리깨질 소리」는 특이한 소재이지만 농경사회에서 흔히 보아왔던 일상의 일화를 다시 소환함으로써 결실을 맺는 즐거움과 더불어 삶의 의미와 생명의 본질을 묘파하고 있다. 마당에서 농부가 도리깨질로 콩타작을 하고 있고, 콩알들이 튀어 마당가로 굴러간다. 이를 본 수탉이 콩알을 주워먹으러 쫓아간다. 이러한 모습은 오직 인간만을 위한 농경이 아니라 사람과 뭇 짐승들까지 함께 추수의 결실을 공유함을 해학적으로 노래하는 소란스러운 가을날의 한때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양이역취꽃」에서는 양이꽃의 생명력과 외국으로 입양 간 입양아들의 삶을 대비시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명성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미국에서 온 외래수종인 양이역취꽃이 낯선 땅에서 “노란 꽃송이들 만삭이 되어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모습에서 생명의 가치와 자신의 유전자를 번식시키는 생태적 특징에서 입양 간 우리 아이들의 눈망울을 발견하고 있다.


4.

살펴본 것처럼 조의연 시인의 시편들은 대부분 자연의 생태적인 모습에서 시적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길’의 의미를 모색하고, ‘생명성’을 탐구하고 있다.

조의연 시인의 시적경향의 중요한 또다른 한 줄기는 ‘실존’의 문제를 깊이있게 묘파함으로써 시적 무게와 진중함, 그리고 삶의 가치를 자연을 통해 노래하는 부분이다. 주지하다시피 시인의 시가 자연을 포함한 우주와 사물의 진실을 찾아내는데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다시 말해 서정시에서 그 중심에 ‘인간’에 대한 탐구가 우선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실존의 의미를 모색함으로써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장 큰 화두로 삼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파리 하나에도 그리움이 쌓여 붉게 물이 든다

떨어져 내리면서도 날아오르기를 꿈꾸는

나뭇잎을 보면서

살아갈 길이 오 색 빛깔로 꿈틀거리고 있다

단 한 알의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도

헛된 삶이 아니었다는 것.

그대의 정수리에 답을 한 것이었다는 것

가을이 내게 오고서야 알게 되었다.

얼마나 열병을 앓았으면 온 몸이 노랗게 물이 들까

은행나무 몸을 흔들자 노랑나비 떼가 살아 날아오른다

생生의 구 할이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견디는 것이었다

겨울의 문턱 앞에 서니 몸속에 사리 하나쯤은

눈부시게 빛을 내리라.


가을이 내게로 온 것은 꿈의 빛깔을 확인하는 것

겹 노을 지는 가을 늦저녁에 이파리는 지고

안으로 안으로 옹골진 생이 들어앉는 것이다.

- 「가을이 내게로」 전문


앞에서 밝혔듯이 조의연 시인의 시에서는 자연을 화두로 삼아 자연이 지닌 생태적인 특징을 내밀하게 관찰하고 그것들이 지닌 의미를 발견한다. 이 작품에서도 나무 이파리에 주목한다. “이파리 하나에도 그리움이 쌓여 붉게 물이 든다”며 가을을 맞아 단풍이 든 나무 이파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시의 전경에 배치한다. 이러한 모습은 가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식상한 풍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화자는 단풍 든 이파리에 대한 사색을 펼침으로써 시의 의미 투사와 함께 시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단풍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도/헛된 삶이 아니었다는 것”과 “그대의 정수리에 답을 한 것이었다는 것”을 가을이 내게 옮으로써 깨달았다고 고백하는데, 이는 세상에 태어나 청년시절을 지나 노년에 이르는 과정을 단풍 든 이파리에서 읽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과정이 화자의 눈앞에 펼쳐진 단풍든 풍경에서 마치 단풍이 되는 과정의 시간을 ‘그리움’으로 인식하고 있음은 놀라운 대목이다.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 “얼마나 열병을 앓았으면 온몸이 노랗게 물이 들까”라는 깊은 사색과 “은행나무 몸을 흔들자 노랑나비 떼가 살아 날아오”르는 환타지 같은 풍경에서 “生의 구할이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견디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화자는 “가을이 내게로 온 것은 꿈의 빛깔을 확인하는 것”이며 단풍이 떨어지는 것에서 “안으로 안으로 옹골진 생이 들어앉는 것”이라고 하며 실존의 과정이 견딤이며, 그리움이라는 인식에 이른다.

「옹이의 집」에서는 나무들의 옹이를 생각한다. 비바람에 꺾인 나무에 옹이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상처의 흔적이다. 그렇지만 나무는 견디어왔다. 그러면서도 새들이 도시를 다녀와 조잘거리는 소리에서 “간신히 목숨 부지한 삶의 이야기”와 그것을 “다 삭히지 못해 응어리진 언어들도” 모두가 옹이라 생각하게 된다. 상처가 부풀어 올라 “밤새 ‘끙끙’ 앓다가 몸뚱이에 종기가 되어/딱딱하게 굳은” 옹이가 마침내 “빗장 걸린 둥근 집 한 채가 된 것”이라는 깨달음을 통해 실존의 과정이 녹록치 않음을 말해준다.

「화음和音」은 나무들의 생태적 특징에서 결과적으로 인간의 상생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숲에서 나무들끼리 살다보면 “다른 손이 쑥 옆구리를 파고들어”오기도 하지만 “욕하지 않”고 “소리 없이 자신의 팔을 내려준다”고 한다. 의인화법을 통해 나무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다. 뻐꾸기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도 “시끄럽다고 화를 내는 새는 없”고, “개울물은 맑고 차분하게/합창을” 함으로써 오히려 화음을 이룬다는 시인의 상상력이 인간에게 실존의 방식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또다른 예를 보여주는 작품이 「어울리다」이다.


앞 봉우리가 뒷 봉우리를 어부바하고

그 뒤 봉우리는 더 높은 바위산 봉우리를 업고

그 뒤 봉우리는

더 높은 할아버지 봉우리를 업고 또 업고……

첩첩이 기대어 살아가는 산봉우리들.

그 품안에서 골짜기에 햇살은 찾아들고

숲들이 파랗게 꿈틀거리며 살아가는

겹겹이 어울린 세상.

늘 푸른 모습으로 노송은 곧게 서서

사시사철 푸른 힘을 보태고 서 있다.

- 「어울리다」 전문


우리는 ‘산’이라는 자연을 대부분 풍경으로만 바라본다. 그러나 조의연 시인의 시적 상상력은 의인화법을 구사함으로써 “앞 봉우리가 뒷 봉우리를 어부바하고/그 뒤 봉우리는 더 높은 바위산 봉우리를 업고/그 뒤 봉우리는/더 높은 할아버지 봉우리를 업고 또 업고……”고 있다고 한다. 기발한 생각이다. 한편의 산수화를 앞산이 뒷산을 업고, 또 뒷산은 그 뒷산을 업고 있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첩첩이 기대어 살아가는 산봉우리들”은 탐욕스러운 인간의 모습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온화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그 품안에서 골짜기에 햇살은 찾아들고/숲들이 파랗게 꿈틀거리며 살아가는/겹겹이 어울린 세상.” 인간이 꿈꾸는 공동체적인 이상세계를 산들이 보여주는 걸 우리는 아무도 몰랐다. 조의연 시인의 상상력은 이처럼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주는 따스함과 진중함이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말미에서 “늘 푸른 모습으로 노송은 곧게 서서/사시사철 푸른 힘을 보태고 서 있”는 것이 마치 마을의 품이 넓은 큰 어른처럼 느껴진다.

「엉겅퀴꽃, 흔들리다」에서는 엉겅퀴꽃을 아름다운 ‘팜므파탈’로 바라보고 있다. 엉겅퀴꽃은 민가 가까운 들이나 산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깊은 산속에까지 와서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 마음을 설레게 한다. 거칠고 메마른 척박한 땅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 아름다운 여인 같은 꽃에 바람이 장난질하고 벌 나비 떼가 날아와 꽃을 흔든다. 불모의 땅에서도 견디어내며 꿋꿋하게 살아내는 모습에서 시인은 인간의 삶이 어찌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듯하다.

「하현달」에서는 화자가 새벽 커튼을 걷고 창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하현달을 통해 자신의 심상을 달을 통해 드러내며 동일화를 시도한다. 곧 날이 밝아올텐데 밤새 잠못 이룬 화자처럼 희미한 하현달을 바라보며 동병상련의 마음이 되어 서로에게 동화된다. “잠든 내 머리 위에서/늙고 병든 나와 함께/닳고 닳아 반쪽만 남았”다는 생각과 더불어 한편으로 고마우면서도 측은지심의 심경으로 하현달을 바라본다. 더불어 ‘하현달’을 화자 자신의 또다른 모습으로 여긴다. 이 작품의 기저에는 연민과 사랑이 흐르는데, 삶의 동반자로 하현달을 생각하는 화자의 마음이 뜨겁다.

이밖에도 자연을 통해 실존을 노래한 시편으로는 「가을이 내게로」, 「팻말」, 「노란 장미꽃 피는 집」, 「가을 단풍잎에 햇살이 닿을 때」 등의 시편에서도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처럼 자연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모색하고 있다.

살펴보았듯이 조의연 시인의 이번 시집 『엉겅퀴꽃, 흔들리다』는 자연을 통해 ‘길’의 심상을 이끌어내고 생명성과 실존에 대한 탐구를 진중하게 보여준다. 갈수록 왜소해지는 우리 시단에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묘파하여 실존의 방식을 모색하는 조의연 시인의 시들은 가볍지 않은 사색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 이번의 성공을 바탕으로 조의연 시문학의 빛나는 금자탑을 쌓아올릴 것을 믿는다.

작가 소개

조의연

• 전남 화순 출생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199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 1998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 광주문인협회, 전남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우송문학회, 화순문학회원.

• 광주문학상, 우송문학상, 동서커피문학상 수상

• 시집 『강의 어귀에서 휘돌아나가다』 『깊은 그늘』

『거꾸로크는 콩나물』 『엉겅퀴꽃, 흔들리다』

• 동시집 『뒹굴 뒹굴 뒹굴』 등,

• 공동 저서 다수.

목 차

작가의 말


제1부 옹이의 집


폭포 아래서

불갑사의 꽃무릇

옹이의 집

화음和音

바다의 꿈

그리움

노란 장미꽃이 피는 집

명옥헌의 실개천

엉겅퀴꽃, 흔들리다

도리깨질 소리

귀뚜라미 울음 소리

호암정원의 소나무들

비밀번호

나주호


제2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어울리다

청춘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목걸이

다듬이 소리

가을 단풍잎에 햇살이 닿을 때

터널 입구에서

벚꽃잎 무늬

봄이 오면은

가을이 내게로

가을 발자국

벚꽃나무 아래서

정자에 앉아

환벽당의 상사화

양배추가 자라는 것은

하현달


제3부 까마중의 영토


너릿재 옛길

길을 잃었다

등꽃 지는 소리

봄을 기다리다

해바라기

논길을 가다

가을

바람 소리

까마중의 영토

감꽃 지다

가을비 소리

정원의 소나무들

낙엽 위를 걷다

옷 벗는 나무


제4부 어린왕자를 그리며


백목련 피어나다

덩굴장미의 가시

등불

꽃잎 진다

식영정의 빗방울 소리

‘풍류, 달빛에 놀다’를 보며

대숲 바람 소리

참빗나무

옹이

꽃잎

어린왕자를 그리며

솔낭구의 변辯

낙하落下

낙엽이 지다

팻말

꽃무릇의 시절


제5부 구절초꽃의 사랑


수련꽃

꿈, 살다

등꽃 피는 계절

한옥과 맨드라미꽃

양이역취꽃

동백꽃송이의 꿈

봄, 바람

장미의 가시

돌계단, 오르다

구절초꽃의 사랑

봄날의 꿈

지는 꽃이파리

여름날

뱀딸기


작품론

자연을 통한 ‘길’의 심상과 생명성, 실존 탐구 / 강경호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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