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가슴에 멍이 들 수도 있다.”
‘동시대 유럽 작가들 중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흥미로운 작가’
루카스 베르푸스의 에세이 국내 첫 번역 출간
우리가 당연시해온
가족, 혈통, 상속에 관한 새로운 통찰
★ 베를린 문학상, 스위스 도서상, 게오르크 뷔히너 상 수상 작가
작가 루카스 베르푸스는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되는 작가다. 그는 청소년기에 노숙을 할 정도로 지독한 가난을 겪었다. 20대 중반까지 ‘부패하고 방탕한 청춘의 부채를 분할 상환’하며 자기 출신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고, 그 노력이 다행히도 결실을 거두었다. 더군다나 ‘일반적으로 빚으로 말미암은 고통이 서유럽에서는 문학의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덕에(독일어로 죄Schuld는 부채Schulden와 가깝다)’, 그는 자신의 불행했던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오히려 소설가와 극작가로 명예와 부를 얻게 된다.
“나는 글을 써서 이름을 얻었고, 내 인생에 대한 독점적인 해석권을 누렸으며, 나와 비슷한 정신적 혈족을 만났다. 나는 스스로 행운아라 여겼다. 문학에서 아무리 길어 올려도 마르지 않는 샘을 발견했고, 나에게 늘 도전과 감동을 안기고 심지어 정신을 살찌우는 무언가를 찾았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그런데 그런 그의 앞에 과거의 출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오물과 빈곤으로 대표되었던 삶, 노력과 행운 덕에 간발의 차로 탈출할 수 있었던 벼랑 끝의 삶‘을 상기시키는 아버지의 상자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은, 기껏해야 절대 본받으면 안 되는 반면교사 역할만 한 아버지가 죽은 후 그에게 남긴 것은 약간의 빚과 바나나 상자 하나에 담긴 유품뿐이었다. 빚은 상속을 포기함으로써 떠안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물인 상자는 결국 받아 들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25년 동안이나 그 상자를 외면하고 지내다가, 차마 그 상자를 자녀들에게 건네줄 수 없어 고민 끝에 열게 된다. 상자 열기는 곧 아버지의 삶과의 대면이자 그가 벗어나고자 했던 출신과의 조우와 다름없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그는 자기 삶에 남겨진 부모의 흔적을 회상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 질서의 근간을 지탱해온 출신, 계보와 족보, 유산, 상속, 가족, 사유재산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이로써 그의 사적인 이야기는 사회, 국가, 세계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스스로 자신의 기원을 선택할
자유와 용기에 관하여
태어날 때부터 삶의 궤도가 다르게 정해지는 출신에 관한 이 이야기는, 소위 ‘어떤 수저를 들고 태어났느냐’에 따라 삶의 등급이 매겨지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묻는다. 어느 가족, 더 나아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가에 의해 삶이 좌우되는 불공정함을 바라만 보는 것이 옳은가. 지금 우리가 저지른 온갖 과오, 이를테면 환경 파괴, 기후변화, 전쟁 등으로 후손이 피해를 보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우리가 짐짓 나의 책임만은 아니지 않느냐고 한발 물러나 있던 문제들을 저자는 전면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든 원치 않는 정신적 유산은 거부할 수 있으며, 우리를 얽매어온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의 우리와 미래의 후손을 위해 얼마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계속 살아가지 않을 용기,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물려받은 생물학적 기원과 문화적 기원을 끊고 스스로 새롭고 더 나은 기원을 선택하는 결단력만이 ‘절멸’로 치닫는 이 세상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강렬한 목소리로 호소한다.
“우리는 우리가 물려줄 이 유산을 잘 관리해야 한다. 그러려면 언어와 이야기, 세계, 인정과 동의, 법, 정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념과 관념, 필연성 면에서 물려받은 다른 유산은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정신적 유산’은 없다.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그 관련성을 직접 선택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생물학적 기원과 달리 모든 문화적 기원은 우리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본문 중에서
그의 문체는 담백하며 명징하다. 짧게 내뱉는 듯한 목소리에는 깊은 울림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적확한 단어와 거기서 흘러나오는 언어적 광채로 사고를 확대하고 생각을 사건으로 만드는 작가”, “문장 하나에 전체를 담아내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불평등, 소외, 에너지 위기, 기후변화, 전염병, 전쟁 등 수많은 문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가 잠시 멈춰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를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줄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루카스 베르푸스
극작가이자 소설가. 1971년 스위스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마친 후 담배 농장 일꾼과 지게차 운전사, 정원사로 일했다. 열여섯 살 때부터 스무 살 때까지 여러 차례 노숙을 하며 빈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나라에서 가난이 무슨 의미인지 배운 그는, 베른의 한 서점에서 일하다 본인의 표현대로 운 좋게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가 쓴 희곡은 전 세계에 상연되고 소설은 20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베를린 문학상, 스위스 도서상, 게오르크 뷔히너 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주요 희곡은 『우리 부모의 성적 노이로제』가 있고, 주요 소설로는 『100일』, 『코알라』, 『하가르트』 등이 있다.
옮긴이 : 박종대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사람이건 사건이건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이면에 관심이 많고, 환경을 위해 어디까지 현실적인 욕망을 포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자신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는 제대로 된 이기주의자가 꿈이다. 『특성 없는 남자』, 『인공 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 『앙겔라 메르켈』,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콘트라바스』, 『승부』,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어느 독일인의 삶』, 『너 자신을 알라』, 『세상을 알라』,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등 100권이 넘는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 차
추천의 글_ 당신의 상자(박혜진 문학평론가) -007
이야기의 시작 -016
누가 나의 가족인가? -037
종의 기원 -063
이름 사용법 -091
쓰레기에 관한 고찰 -102
상속자들을 생각하며 -115
참고문헌 -136
출처 -139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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