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자학과 죽음으로 연결되는 차별 서사
이 책엔 사회학자로서 필드워크를 수행한 저자의 오랜 연구들이 담겨 있는데, 거기서 낮은 지위에 머물며 차별당하는 이들의 마음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한 예로 팬데믹 기간에 배달 일을 했던 스물한 살의 민석태씨(가명)를 보자. 임대아파트에 네 가족이 살고 있는 그는 기본소득에 반대하고, 국가의 개입도 불신하며, 정치에도 관심이 없다. 저자는 그와 20대 대선 직전에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윤석열이 누군지 모르고, 이재명은 담뱃값을 올린다고 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정당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나라당’을 찍겠다고 했는데, 그건 ‘이명박 선생님’을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저자가 민석태씨와의 심층 면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파악한 특징은 진술의 비일관성이었다. 그는 수혜적 복지나 기본소득에 모두 반대하지만, 자신이 받았던 청년수당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청년수당으로 휴대폰비 내고, 그걸로 밥 먹고, 그러니까 너무 행복한 거예요. 다시 하고 싶어요.” 즉 정책 지지 발언과 본인의 생활에서의 경험 및 감정은 일치하지 않았다.
60대 여성 이영신씨(가명)와 한 인터뷰도 살펴보자. 그녀는 고졸이며, 가정주부였다가 IMF 이후 형편이 어려워져 식당과 마트 일을 거쳐 지금은 아이돌보미를 7년째 하고 있다. 하루 12시간 일하도록 돼 있지만, 아기 엄마의 퇴근이 늦어지면 자연스레 더 일하게 된다. 그에 따른 추가 수당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지. 힘들어요. 눈이 빙빙 돌고. 차라리 밖에서, 마트 같은 데서 나이 먹은 사람도 할 수 있는 걸 누구 배경 있는 사람 도움으로 들어갔으면 하는데 그게 안 되네. 긴장해서 월화수목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토요일에 집에서 쉬면 온몸이 다 아프지.”
나이 듦이 쓸모없음으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에서 그녀는 최저임금 노동자이자 고령으로 소수자 지위에 있다. 하지만 저자가 수행한 연구의 조사 대상자들은 최저임금 위반이나 일터의 부당한 처우를 모두 불가피한 것으로 수용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가령 “최저임금보다 낮게 받지만 내가 요구할 수는 없고” 고용주와는 법보다는 인간적으로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저자는 낮은 임금과 나쁜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스스로 이런 조건이 정당치 못하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곧장 자신의 말을 뒤집어 의문을 표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인식과 현실 사이에서 선후관계를 명확하게 그을 수 없다는 것은 저자가 수행한 수도권 내 서비스업 종사자 90명과의 심층 면접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저자는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의 노동 실태와 노동권에 대한 인식을 탐구하기 위해 연구를 수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은 문제 제기를 했을 때의 불이익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결코 공정하지 못했던 구제 절차와 기관에 대한 불신에 더해, “구조적이며 상시적인 제약 조건 아래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적응 전략을 발전시켜나간다. 불안정 노동자는 지배적 사고로부터 벗어날 경우 위험 비용이 다른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크다. 따라서 좋은 인간관계의 중요성, 근면한 노동의 가치와 보람, 직장에 대한 충성심, 투쟁적인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반감 등을 내면화해 현실의 어려움을 묻어두고자 할 수 있다”.
즉 아주 취약한 위치에 놓이면 지배적인 사고로부터 구조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차별을 온전히 인지하는 것이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첫 단계이며, 저자는 이를 위해 세밀한 감정들을 들여다보며 그들에게 숨겨진 구조를 드러내 보인다. 그 가운데 주요 사회학적 이론과 담론뿐 아니라 문학작품들도 적실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차별을 자아내는 조직, 국가, 신념 체계라는 거시 구조를 검토한다. 2, 3, 4장에 걸쳐 따로 다루나 이들은 실제로 정교하게 얽혀 각각의 구조가 가진 차별적 특성을 서로 강화한다. 2부에서는 차별받는 사람과 그들의 감정을 5장 체념, 6장 적응, 7장 혐오로 나누어 살펴본다. 대안을 꿈꾸지 못하게 하는 신자유주의적 각자도생의 신념 체계가 이처럼 다양한 감정의 기저에 놓여 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8장 차별금지법과 적극적 조치, 9장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한다. 10장에서는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자유’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살펴본다.
작가 소개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노사관계, 계급론, 사회정책과 관련된 연구를 폭넓게 수행해왔다. 현재 고용노사관계학회 부회장과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전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이외에도 비판사회학회 회장, 한국사회정책학회 부회장, Women 20(G20 Outreach Group) 한국대표,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대통령자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전문위원, 서울시 노동자권익보호위원회 위원장, 서울시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고진로High Road 사회권: 비정규직을 위한 대안적 복지 패러다임』 『유리천장 깨뜨리기』 『21세기 한국노동운동의 현실과 전망』, The New Structure of Labor Relations: Tripartism and Decentralization 등이 있다.
목 차
들어가며
제1장 차별이 어떻게 차별받는 사람을 무너뜨리는가?
제 1부 차별의 구조
제2장 탐욕스러운 조직, 나를 갈아넣는 시간
제3장 국가 구조의 편향성과 권력의 대리인들
제4장 신념 체계를 통한 차별의 재생산
제 2부 차별의 서사
제5장 능력주의는 차별이 아니다?: 체념
제6장 ‘다중균형 사회’의 일하는 여성: 적응
제7장 분열과 갈등의 정체성 정치: 혐오
제 3부 차별받지 않는 마음을 위하여
제8장 차별금지법과 적극적 조치
제9장 기본소득과 기본서비스: 한국 사회 평등의 에토스를 위하여
제10장 나가는 글: 자유 대 자유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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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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