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설재인
대학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하고, 한때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2019년 소설집 『내가 만든 여자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세 모양의 마음』 『붉은 마스크』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우리의 질량』 『강한 견해』 『내가 너에게 가면』 『캠프파이어』, 소설집 『사뭇 강펀치』, 에세이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 등이 있다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어른들이 만든 견고한 세계를
아프게 버티고 있는 두 소녀의 생존기
전 국민이 숨죽이는 수능 날, 원인 모를 전염병이 한반도를 강타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지닌 작품 〈붉은 마스크〉로 코로나 시기의 교육 현장을 아프게 후벼 파낸 설재인 작가. 그가 이번에는 평범한 일상에서의 한국 교육은 어떤 모습인지 낱낱이 파헤치는 작품으로 돌아왔다. 『딜리트』는 십 대들이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학교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어른들의 어긋난 기대가 어떻게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원외고와 서원정보고는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점이 많다. 외고에서는 명문대 진학률을 위해 학생들에게 엄청난 양의 학습을 강요하고, 정보고에서는 높은 취업률을 위해 학생들을 어느 기업에든 취직시키려 한다.
외고에 진학한 진솔은 쏟아지는 과제와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고, 정보고에 진학한 해수는 무책임한 부모와 불확실한 진로에 흔들린다. 서로를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둘은 우연히 두 학교를 연결하는 지하 통로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사라진 이름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세밀하게 그려낸 이번 작품은 입시 전쟁, 대리 수행평가, 취업률 조작, 현장실습 사고 등 외부로는 잘 알려지지 않는 학교 내부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선보인다. 오늘날의 교육이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되묻는 것과 동시에, 독자들이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위해 오늘을 견디고 있는지 돌아보게끔 한다.
어른들의 압박 속에서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두 소녀의 일상에 더해, 심상치 않은 지하 통로, 그곳에 잠들어 있는 이름들, 갑작스럽게 사라진 부모님 등 이야기 전반에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감돈다. 안개 속에 쌓인 길을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생각지 못한 결말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참고 견디기만 하던 아이들이
마침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은 보편적 법칙에 가깝다. 누구에게나 유효한 이 말은 특히 학생들에게 자주 권해지는데, 십 대 시절을 앞으로의 삶을 잘 보내기 위한 준비 기간으로 여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오늘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힘겹고 불안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뚜렷한 목적 없이 부모의 강요에 따라 견디고 있다면 과연 더 나은 삶을 위한다고 할 수 있을까? 『딜리트』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어른들이 만든 견고한 세계에서 서로를 응원하며 겨우 하루하루를 버티는 진솔과 해수는 처음에는 어떻게든 이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몸부림친다. 그래서 그들은 전혀 다른 제3의 공간이 아니라 학교에 속해 있는 지하 통로를 아지트로 삼는다. 그러나 계속되는 부모의 요구와 학교의 압박으로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마침내 둘은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잘못된 마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살기 위해 부모가 사라지길 빌고, 자신들이 목격한 학교의 잘못된 일들을 어른들에게 낱낱이 밝힌다. 그러던 중 ‘대리 수행평가’ 사건에 휘말리면서 또다시 어른들의 압박을 받는데 이미 굳게 마음을 먹은 둘은 한층 더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진솔은 더는 어른들의 뜻대로 머무르지 않고자 교실 밖으로 나가고, 해수는 재단의 비리를 고발하는 정보고 학생들의 행진에 앞장서서 가담한다.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하면서 둘은 마침내 타인을 위한 삶이 아닌 온전히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게 된다. 무엇을 위해 오늘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면 이런 행동은 불가했을 것이다.
우리는 전체를 파악할 수는 없더라도 일단 키메라의 다리를, 꼬리를, 배와 눈과 귀를 각자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아야 한다. (…) 이 소설도 어쩌면 키메라의 발톱 정도를 관찰한 기록에 불과할 터이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 제아무리 좋은 결말이 요원해 보일지라도.
_작가의 말 중에서
눈앞의 일이 너무 거대해서 옴짝달싹할 수도 없을지라도 일단은 조금씩 몸부림쳐야 한다. 아무리 견고한 세계라도 목소리를 내다보면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타인의 꿈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를 견디지만 말고, 내가 무엇을 위해 오늘을 버티고 있는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인지 찾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답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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