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장애인 ․ 비장애인 커플이 가만가만 들려주는,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들.
남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하고 사랑하고 일하며 사는 것!
그 평범한 소망을 가로막는 한 뼘 높이의 거대한 장벽에 대하여.
잠깐 이런 상상을 해보자.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바뀐다. 사람들 대부분이 장애인이고 비장애인은 사회의 소수가 된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장애인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비장애인은 모든 장소에서 거절당하고 모든 상황에서 차별받는다. 원하는 학교에 갈 수도 없고 대중교통을 편하게 이용할 수도 없다. 취업도 힘들고 연애도 힘들다. 그런 상황을 개선해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참다 못해 시위를 하면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비난을 퍼부어댄다. 결국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이 저학력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단지 몸에 장애가 없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내가 비장애인이라면 과연 이런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누가 봐도 부당하기 짝이 없는 이상한 세상! 문제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거꾸로 뒤집으면, 바로 그게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뜨인돌 ‘라면 교양 시리즈(시즌2)’의 첫 작품인 이 책은 장애인 ․ 비장애인 커플이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인권 이야기다. 두 사람은 전형적인 장애인과 평범한 비장애인으로 살았던 시간들, 그리고 연인이 된 후 함께 겪었던 일들을 독자들에게 가만가만 털어놓는다. 다들 아는 것 같지만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들. 남들처럼 공부하고 사랑하고 일하고 싶은 평범한 소망을 가로막는 한 뼘 높이의 거대한 장벽에 대하여! 그리고 말한다. 장애인들이 왜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20년째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지.
장애인 인권의 현주소를 보여주기 위해 글쓴이들은 책 곳곳에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를 실어놓았다. 거꾸로 뒤집힌 그곳의 풍경은 한편으론 우스꽝스럽고 한편으론 통쾌하지만, 그 또한 글쓴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누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불쌍한 나’에서 ‘당당한 나’로!
비장애인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윤영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학교라고는 초등학교 2년, 중학교 2년밖에 다니지 못했고, 성인이 된 후에야 전동휠체어를 타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책 속에는 그가 지금껏 겪어왔던 온갖 수모와 모욕, 차별의 순간들이 수두룩하다. 택시도 식당도 옷 가게도, 심지어 공공도서관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한 뼘 높이의 문턱보다 더 넘기 힘들었던 건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완강한 편견이었다.
한동안 남들의 시선에 연연하던 그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건 역설적이게도 ‘장애’ 덕분이었다. 부정과 자책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순간, 비로소 제 삶의 방향이 뚜렷하게 보였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그저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나 장애에 관해 공부하면서부터 불쌍한 나에서 벗어나 당당한 내가 될 수 있었다. 스스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비장애인으로 살기를 그만두었더니 오히려 장애인이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눈에 보였다. 장애를 가진 당사자로서 올바른 관점을 전파하는 일이었다.” (본문 중에서)
장애인으로서 겪어온 우여곡절과 정체성 확립이 윤영의 서사라면, 비장애인인 준우의 그것은 사뭇 다르다. 여느 비장애인들과 다를 바 없던, 달리 말하면 철저하게 비장애인 중심이던 그의 사고방식은 윤영의 연인이 되면서 완전히 달라진다. 그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 사회에서 뭔가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던 그였다.
“…그러다 윤영을 만나버렸어요. 더 이상 항변 따위는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데이트하러 가는 모든 길이 계단이고 턱이었으니까요. 거부당하는 것, 그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은 윤영에게는 일상이었습니다. 비로소 의문이 생겼어요. 왜 장애인은 힘들어야 하지? 남들 다 들어가는 카페에 들어가면서 왜 감사해야 하지? 아무리 봐도 윤영의 잘못은 아니었거든요. 그때부터였죠. 그동안 제가 비장애인이라서 겪지 않아도 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득해졌어요. 결국 저는 이 사회에서 특권을 누려왔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두 사람은 한국 사회 장애인 차별의 실태와 원인, 그리고 대안을 청소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차근차근 설명한다. 솔직하고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러나 때로는 단호하게! 윤영의 글에 당사자로서의 생생함이 담겨 있다면, 준우의 글에는 건강한 시민의식과 인권의식이 담겨 있다. 동일한 상황, 두 개의 느낌, 그리고 하나의 결론! 장애인 혼자 쓴 글이나 비장애인 혼자 쓴 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 책만의 미덕이다.
쓸데없는 동시에 쓸모있는 상상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
지하철에는 비장애인 칸이 하나밖에 없다. 어쩌다 휠체어 전용칸에 잘못 타기라도 하면 사방에서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고, 비장애인이 쓸데없이 나돌아다닌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지하철로 5분 거리인데 환승에만 30분이 걸린다. 비장애인 전용 계단을 찾기가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취업도 하늘의 별따기다. 전 직원이 휠체어를 타는 회사에는 의자가 하나도 없다. “의자를 짊어지고 출퇴근하겠다”는 당찬 각오를 밝혔지만 만장일치로 면접에서 탈락한다. 비장애인 취업 커뮤니티에는 “청각장애인 회사에 들어갔다가 수어를 몰라서 몇 달간 묵언수행을 하다가 퇴사했다”거나 “시각장애인 회사에 취직했다가 모든 서류가 점자로 되어 있어서 하루 만에 그만뒀다”는 슬픈 사연들이 수두룩하다.
일상생활 역시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극장에서 영화도 마음대로 볼 수 없고, 마트에서 주차를 편하게 할 수도 없다. 택시를 타려면 일단 비장애인 증명서를 보내서 회원등록을 한 다음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심지어 남들 다 들어가는 맛집에서도 문전박대를 당한다.
이 모든 얘기들은 현실에서 장애인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일들이다. ‘어느 비장애인의 슬픈 주말’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윤영의 어느 주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딱히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위치만 뒤집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243쪽)
그러나 글쓴이들은 알고 있다. 사회의 다수인 장애인이 더 많은 편의를 누린다고 해서 그게 당연하거나 공정하지는 않다는 것을! 현실의 장애인들이 그렇듯, 그 세계에서는 거꾸로 비장애인들이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비장애인들의 길거리 시위 장면을 그리고 있다. 평등을 외치며 모여든 비장애인들 속에는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장애인들도 보인다. 아마 그 속에는 휠체어를 탄 윤영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개인의 삶에서 모두의 삶으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하여
비장애인 독자들에게 장애인 문제의 실상을 알려주고 인권의식을 높여주는 게 이 책의 목적이라면, 그 모델은 다름 아닌 준우일 것이다. 윤영을 만난 이후 그의 삶은 그야말로 극적으로 달라졌으니까. 장애인의 남자친구라는 개인적 입장을 뛰어넘어 보편적 인권의식을 지닌 시민으로 변신한 자신의 경험을 그는 모든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
“윤영이 등장한 이후 제 삶에는 일종의 전환 스위치가 켜진 것 같습니다. 비장애인만 존재하던 좁은 세계가 단숨에 확장된 것 같았죠. 제가 좋아하는 게임에 빗대자면, 칠흑 같던 맵이 환하게 밝아졌다고나 할까요. 윤영이 없었다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 같은 건 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희의 책이 여러분의 관심을 개인의 삶에서 모두의 삶으로 확장시키는 전환 스위치가 되었으면 합니다.” (본문 중에서)
작가 소개
박윤영
커다란 휠체어에 인형을 올려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작은 사람이다. 강아지처럼 발랄하고 고양이처럼 예민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지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챈다. 특히 무례한 시선은 너무나 피곤해서, 아무도 자기를 쳐다보지 않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박윤영과 채준우는 좌충우돌 유럽여행기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를 함께 썼고, 이 책도 함께 썼다. 둘 다 평범한 사람이다.
채준우
떡볶이를 좋아하는 갈색 곰이다. 떡볶이를 위해 겨울잠도 포기했다. 남이 뭐라고 하건 끄떡도 하지 않지만 윤영에게는 유독 약해서, "우리 얘기 좀 해"라고 윤영이 말하면 숨이 턱 막힌다. 여행을 좋아하고, 멀리멀리 떠나는 꿈을 늘 품고 산다. 윤영과 함께 어디든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박윤영과 채준우는 좌충우돌 유럽여행기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를 함께 썼고, 이 책도 함께 썼다. 둘 다 평범한 사람이다.
목 차
<프롤로그>
첫 데이트, 설렘에도 준비가 필요해
새벽 2시, 우리는 집에 갈 수 있을까?
<1부>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1. 우리는 만나지 못할 뻔했다
10대 시절, 윤영과 준우의 하루
다른 세상 속 우리 둘
분리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 ① : 어느 비장애인 취업준비생의 일기
2. 그래도 만난 우리
불편한 시선들
##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 ② : “비장애인이 왜 쓸데없이 나돌아다녀?”
장애가 있어도 괜찮다고?
너는 내가 어디가 좋았니?
##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 ③ : 출구가 대체 어디야?
<2부>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1. 인권에 대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
인권이란 무엇일까?
장애인도 아닌데 왜 장애인 인권을 알아야 할까?
역차별의 진실
##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 : ④ 어느 비장애인의 슬픈 주말
2.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
2001년, 지하철을 세운 사람들
2021년, 다시 멈춰 선 지하철
나는 선량한 시민일까?
어느 정치인의 발언에 대하여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본 지하철 시위
쓸데없는 동시에 쓸모있는 상상
##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 ⑤ :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첫걸음
<에필로그>
우리가 바라는 세상
우리가 이 책을 쓴 이유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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