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거식증에서 회복한 사람의 이 강렬한 회고록은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가디언〉
“거식증 당사자인 반쪽과 저널리스트인 반쪽”을 결합해 쓴
거식증 회고록이자 탐구서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 anorexia nervosa)은 모든 정신질환 가운데 사망률이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으며(전체 환자의 약 5~10%), 유독 여성들에게서 진단율이 높다(전체 환자의 70~90%). 언론은 잊을 만하면 ‘거식증의 위험성’을 보도하고,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같은 소셜 미디어나 패션 잡지, 아이돌 문화가 거식증을 부추긴다고, 외모 강박과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손쉽게 지적한다. 그렇게 거식증은 더 깊이 들여다보거나 논의해볼 가치가 없는 주제로 재빨리 휘발되어 버린다. 거식증은 정말 외모 강박과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저 마른 몸이 되고 싶어서 먹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가디언〉, 〈보그〉를 거쳐 〈선데이 타임스〉에서 일하는 베테랑 저널리스트 해들리 프리먼은 거식증 당사자였다. 14세에 시작된 거식증으로 17세까지 3년간 입·퇴원을 아홉 차례 반복했다. 이후 20년 넘게 ‘기능하는 거식증 환자’이자 ‘저널리스트’로 살았다. 프리먼의 신작 《먹지 못하는 여자들(원제: Good girls)》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거식증 당사자인 반쪽과 저널리스트인 반쪽”을 결합해 쓴 거식증 회고록이자 탐구서다.
프리먼은 두 가지 정체성을 오가며 책을 썼다. 불안과 강박에 사로잡힌 청소년 여자아이의 관점과 세심하고 꼼꼼한 저널리스트의 시각이 교차되는데, 마치 책 한 권으로 두 작가의 글을 읽는 기분이 든다. 우선 거식증 당사자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뒤틀린 사고방식의 흐름이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담겼다. 이 내밀하고 핍진한 경험담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거나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마르고 싶은 욕구로 오인한 거식증의 진짜 세계’로 우리를 데려다놓는다. 20년 넘게 자신을 장악하고 있던 병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저널리스트로서의 장점도 십분 발휘한다. 입원 시기에 함께 했던 다른 환자들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하고, 의사와 상담사와 섭식장애 전문가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관련 연구 논문과 최신 기사 자료도 샅샅이 조사했다.
이 책은 출간 후 “선명한 서사와 탄탄한 탐구와 온화한 유머 덕에 특별한 매력을 발산한다”(〈월스트리트 저널〉), “거식증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값진 통찰을 제공”(〈퍼블리셔스 위클리〉)한다는 찬사를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필사적으로 (거식증이라는) ‘축소된 세계’를 추구해왔던” 프리먼은 결과적으로 이 책을 통해 “거식증이 무엇이며 또 무엇이 아닌지 이야기”(〈커커스 리뷰〉)를 밝혀내며, “더 넓은 지평선을 찾아내는 데 성공”(〈뉴욕 타임스〉)한 것으로 보인다.
왜 거식증 당사자의 90퍼센트가 ‘여자들’일까
축소되고 왜곡된 거식증을 위한 변론
해들리 프리먼이 처음부터 거식증 책을 쓸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이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일들이 많았고, 앉아서 배꼽만 노려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19쪽)이었기에 회피하고 싶었다. 또 자신의 불완전함과 불가해한 고통을 드러내는 일이라 망설였다. 그러나 프리먼은 “누군가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20쪽) 책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특히 ‘거식증 환자의 90퍼센트가 여성’이라는 통계 수치가 오랫동안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12세 미만 어린이들에게 거식증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에서 느낀 충격과 분노는 책을 쓰게 한 결정적 동력이었다.
청소년기 여자아이들이 먹기를 거부하는 현상은 1천 년 전부터 존재했는데, 세상은 거식증을 ‘마른 몸이 되고 싶은 병’이라 단정 짓고 ‘현대사회가 발명한 유행병’ 정도로 일축해버린다. ‘깡마른 아이돌이 인기를 끄는 풍조’, ‘사이즈 제로 열풍’,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불안이나 외모 강박’ 등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현상을 원인으로 꼽는다. 그렇게 서둘러 이야기를 봉합하고, 더는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프리먼은 그런 설명들에서 거식증 당사자인 자신의 경험을 대변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며 “나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보슬비를 이야기하고 있다(18쪽)”고 비유한다. 이러한 축소와 왜곡이 정신질환 사망률 1위인 거식증에 관한 건강한 논의와 해결을 도리어 막는다는 것이다.
책에 인용된 의학 저널 《랜싯》의 연구 결과는 여자아이들이 겪는 고통의 단면을 여러 겹에 걸쳐 보여준다. 연구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여자아이들의 자해 비율이 세 배 증가했다. 2022년 1만 5천 명의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18세가 되었을 때 정신건강 문제에 시달릴 확률을 따져봤더니,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두 배 높으며 그 사실을 숨길 가능성도 더 컸다. 11세의 어린 여아들도 남아들보다 정신건강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30퍼센트 컸으며, 여학생의 80퍼센트가 ‘완벽주의와 극단적인 자기통제’에 집착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프리먼은 “극단적인 자기 통제와 완벽주의는 너무나 많은 여자아이들이 불안을 표현하는 방식이며, 거식증은 여자들 사이에서 너무나 흔한 그 경향이 확장된 것”(16쪽)이라고 말한다.
프리먼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거식증은 “음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며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온몸으로 말하려는 시도”이자 “성애화와 여성성에 대한 공포”이자 “슬픔과 분노에 관한 것”, 완벽함의 덫에 사로잡힌 존재이므로 함부로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믿음에 관한 것이자 세상에 의해 완전히 압도된 느낌이 들고 그래서 단순한 규칙(‘먹지 마’)만 통하는 자기만의 작은 세상을 만들어내려는 일이다.(21쪽)
용어 사용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다. 프리먼은 ‘거식증 당사자’라는 표현이 “사람은 단순히 어떤 질병이 아니며 그 병을 넘어서는 고유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는 한편 ‘거식증 환자(anorexic)’라는 표현에도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거식증에 붙잡혀 있었을 때, 삶에 다른 건 아무것도 없고 거식증이 하루하루의 매초를, 모든 생각과 말을 통제했기에 말 그대로 ‘환자’였다는 것이다. 또한 거식증이 외부가 아닌 자기 안에서 생겨난 것임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회복을 위한 ‘통제력’을 가질 수 있었다며, 익명의 알코올중독자 모임이 “나는 아무개이며 알코올중독자입니다”라는 유명한 소개말로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덧붙인다.
나는 해들리 프리먼이고 ‘거식증 환자’였습니다
당사자와 전문가 인터뷰, 꼼꼼한 자료 조사를 통한 입체적인 탐구
열네 살 프리먼에게 거식증은 벼락같이 찾아왔다. 체육 시간이 끝난 후 반에서 ‘가장 마른 아이’였던 친구 리지에게 들은 “나도 너처럼 평범하면 좋겠어”라는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그 말을 들은 프리먼은 깊고 시커먼 동굴로 추락한다. 파스타와 마돈나와 《제인 에어》를 좋아하던 여자아이는 몇 달 후 강박적으로 운동하고 굶는 일에만 몰두하는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게 된다. 그렇게 체중의 3분의 1을 줄인 끝에 첫 번째 입원의 문이 열리고, 고통스러운 거식증의 여정에 발을 들인다.
배가 고픈데도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은 물론 끊임없이 운동을 하는 장면, 심한 윗몸일으키기로 척추 주변 살이 찢어져 피가 나는데도 멈추기는커녕 스쿼트, 다리들기, 팔벌려뛰기를 쉼 없이 해대는 모습, 먹지 않기 위해 음식에 관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역겨운 생각을 떠올리는 수법 등이 세밀하게 등장한다.
입원 생활에서 벌어진 다양한 일들도 상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이 모든 장면들은 거식증 환자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정신적, 심리적 과정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먹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병’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에, 한쪽에서는 먹이기 위한 의료진의 협박과 구슬림과 회유가, 다른 한쪽에서는 먹지 않기 위한 환자들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꼼수가 펼쳐진다.
프리먼은 자신의 이야기가 꽤 ‘전형적’인 사례라면서도, 입원 시절 만났던 다른 거식증 당사자를 수소문해 만나 인터뷰를 한 내용도 책에 실음으로써 보다 다양하고 입체적인 거식증 당사자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한 섭식장애 전문가와 의사, 상담사와 나눈 인터뷰를 통해 거식증과 유전 및 성격의 관계, 자폐스펙트럼장애나 강박장애, 신체 대사율과 거식증의 연관성에 관한 새로운 가설들을 파헤친다. 다만 노련한 저널리스트답게, 특정 주장에서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한편, 우리가 아직 거식증에 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음을 강조한다.
끝내 회복한 그가 남긴 이야기
우리는 아직 거식증을 모른다
프리먼은 “거식증은 분명 나의 본질”이었으며 자기 자신을 형성한 가장 강력하고 강렬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거식증에서 회복한다. 거식증 환자 중 회복하는 사람은 절반이 안 되며, 특히 입원 경험이 있는 경우 그 비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생각하면, 뻔한 표현이지만 기적 같은 일이다.
거식증으로 미끄러질 때처럼 회복으로 향하는 계기도 갑작스러웠다. 마지막 입원 생활 중 서른두 살의 어느 환자가 자신의 빵에 버터가 더 많이 발라져 있다고 화를 내며 소동을 벌이는 장면을 목격한 뒤, 프리먼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나이를 먹어, 그 환자와 같은 처지에 놓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 작은 균열은 점점 커져 서서히 거식증의 세계에서 빠져나갈 디딤돌로 작동했다. 잦은 입·퇴원으로 중단한 수밖에 없었던 학업을 재개했다.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고, 옥스퍼드에 합격한 뒤 기자로 데뷔, 20년간 저널리스트로 일하게 된다. 의사들도 어떤 환자가 회복하고, 어떤 환자가 회복하지 못할지를 전혀 가늠하지 못한다는 면에서 프리먼은 운이 매우 많이 좋았다.
프리먼의 회복에서 얻을 수 있는 힌트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의미가 없진 않다. 그는 마지막 장에서 갑자기 굶기 시작한 딸을 둔 어머니들에게 이런 조언을 남긴다. “가능한 한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딸의 간병인이 되지 말라”고. 이는 곧 모든 것이 거식증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 딸을 구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맞기고 ‘엄마’로 남으라는 이야기다.
프리먼은 이어서 ‘왜 아직도 그렇게 많은 여자아이가 어른이 되는 일을 그토록 힘들어하는지’를 고민할 때라고 말한다. 여자아이들 앞에 가로놓인 모든 잠재적 위험을 치워줄 수는 없지만,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일들을 차분히 잘 설명해주자고 독려하며 다양한 조언(자신이 어린 시절 간절히 듣고 싶었던 그 조언)을 풀어낸다.
프리먼은 이 책 《먹지 못하는 여자들》에서 당사자이자 목격자로서 거식증의 가장 깊은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린 시간을 충실하게 증언하는 한편, 저널리스트로서 거식증에 관해 알아야 할 것들,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예리하고 꼼꼼하게 짚어낸다. 책을 덮는 순간, 거식증이 그저 ‘마르고 싶은 욕구’로 정의내릴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는 것, 이 진실만큼은 확실히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해들리 프리먼
저널리스트. 〈가디언〉, 〈보그〉 등에서 20년 넘게 활동해온 베테랑 기자로 지금은 〈선데이 타임스〉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선글라스의 의미(The Meaning of Sunglasses)》, 《삶은 꽤 빨리 흘러간다(Life Moves Pretty Fast)》, 《끝내주는 여자가 될 것(Be Awesome)》, 《유리의 집(House of Glass)》 등이 있다.
옮긴이 : 정지인
번역하는 사람.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자연에 이름 붙이기》, 《우울할 땐 뇌과학》,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욕구들》, 《마음의 중심이 무너지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등을 번역했다.
목 차
추천의 말
들어가는 말
1장 계기
2장 가설들
3장 아동기
4장 분열
5장 첫 번째 입원
6장 앨리슨 이야기
7장 어머니들과 여자들
8장 거식증의 언어
9장 진짜 세상
10장 프리사 이야기
11장 무인지대
12장 베들럼
13장 제럴딘 이야기
14장 병약한 여자아이
15장 공기 한 모금
16장 집과 기숙학교
17장 대학
18장 패션
19장 어맨다 이야기
20장 중독
21장 회복
22장 마지막 이야기
감사의 말
후주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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