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우리는 풍경 속에 위치하고 시간 속에 놓인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여지는 있다.
어느 정도는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나는 운 좋게도 그것을 배웠다.“
(본문에서)
존 버거가 극찬한 스코틀랜드의 마카르(국가 시인), 캐슬린 제이미
그녀가 자연을 예찬하는 열네 가지 아름다운 시선들
책 소개를 하기에 앞서, 캐슬린 제이미의 화려한 경력을 늘어놓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을지 고민했다. 그녀는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이며, 몇 권의 굵직한 시집과 에세이를 펴내 여러 상을 받았고, 2021년에 이르러서는 스코틀랜드 마카르(Makar, 스코틀랜드 정부가 지정한 국가 시인)로 임명되었다. 그녀를 대표하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자연, 여행, 고고학, 여성, 시각 예술. 캐슬린 제이미는 이 키워드들 사이를 자유롭게 비행하고, 그 심오하고도 자유로운 여정을 아름다운 언어로 구현해내는 데 탁월하다. 그녀의 언어는 간결하고 단정하다. 더하기보단 빼는 방식으로 글을 직조하는데, 오히려 그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이 독자에게 풍성한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 『시선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이런 식이다. 그녀는 병원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세포의 세계, 보존 작업 중인 고래 턱뼈의 구멍, 스코틀랜드 섬 위에 뜬 위성, 빙산이 흩뿌려진 바다 위를 환히 비추는 북극광, 절벽들 사이를 휘도는 범고래, 떠들썩한 가넷 서식지, 동굴 깊은 곳에 숨겨진 그림을 묘사하며, 그것들을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빙하 사이에서 침묵을 듣고, 그 침묵을 “산이 내뿜고 얼음과 하늘이 내뿜는 침묵, 아주 먼 곳에서 흘러 나와 우리의 몸을 강력하게 짓누르는 무기질의 침묵”(13쪽)이라 부른다.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옛 물건들을 발굴하면서는 그 행위를 시 쓰는 행위와 나란히 병치시키고, “시를 쓰는 것도 요란하지 않다 뿐이지 비슷했다. 단어의 무게와 힘, 소리의 유희, 진정한 뭔가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느낌, 항상 ‘의미’를 나타내지는 않지만 예컨대 자아나 의식 같은 것을 참되게 표현하는 인공품의 느낌을 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짜릿했다”(78쪽)라고 묘사한다.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존 버거는 캐슬린 제이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에세이 형식을 마술처럼 주무르는 마법사. 손에 잡힐 듯 생생한 언어로 여러분을 사로잡는다.” 마술을 관람한 적 있는지. 분명 그 자리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거나 여러 모습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우리를 곧장 신비의 영역으로 이끄는 마술. 그녀가 우리 앞에 정갈하게 늘어놓은 이야기들을 따라 읽다보면 한 사람의 경험이 독자에게 어떤 마술을 일으키는지 목격하게 된다.
그녀의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는 것보다 아름답지 않은 것을 찾는 게 훨씬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태주 시인의 저 유명한 시구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쁜 것”(「풀꽃」)들이 있다. 어쩌면 세상만물이 그럴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변이되고 뒤틀리고 오염된 인체의 장기 세포 속에도 아름다움은 깃들어 있다. 제이미는 그 미미한 조각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신이 본 것을 졸졸 흐르는 깨끗한 냇물에 씻어 우리 앞에 내놓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 사소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좀 보라고. 이런 것들이, 우리 주위에 무척이나 많다고.
자명하게 아름다운 것,
아름답게 여겨야 마땅한 것,
아름다움에서 탈각된 것들을 해부하는 당대 최고의 자연 에세이
“작가의 숨결이 담긴 풍경과 소리가 영원토록 여러분과 함께할 책.” - 「선데이 텔레그래프」
그렇다고 캐슬린 제이미가 단순히 자연을 예찬하는 데서 자족하는 시인은 아니다. 그녀는 자연의 어제, 오늘, 내일을 고고학자의 시선으로 해부하고 거기에서 인간이 개입한 흔적을 예리하게 끄집어내 경종을 울릴 줄 안다. 또한 무한한 자연 앞에서 인간과 그 삶이 얼마나 작고 희미한 것인지 역설한다.
“우리가 날았던 바다가 한때는 땅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그렇게 오래전은 아니었을 때, 나무들로 들어찬 숲이었는데 해수면이 상승하여 바다가 덮어버린 것이다. 바람과 바다. 그것 말고는 모두 임시적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날갯짓 한 번이면 사라진다.”(262쪽)
날갯짓 한 번이면 사라지는 것이란 얼마나 무력한가. 언뜻 인간의 나약함을 염세하는 태도로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이어 고백한다.
“우리는 풍경 속에 위치하고 시간 속에 놓인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여지는 있다. 어느 정도는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나는 운 좋게도 그것을 배웠다.”(83쪽)
그리하여 캐슬린 제이미는 수동적인 인간이 아닌,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나아가는 능동적인 인간을 꿈꾼다. 거친 바람을 맞으면서도 야생 새의 서식지를 관찰하고 그 안에서 지혜를 얻으려는 마음, 고래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고 싶어서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내달리는 마음, 땡볕에서 녹초가 될 때까지 흙을 파고 또 파면서 인간의 본질을 발굴하려는 마음……. 그 마음을 읽어 내려가면 잔잔하게 시작하다가도 어느새 절정에 치달아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버리는, 한 편의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감상한 기분이 든다. 이제 그 멜로디를 독자에게 건넨다.
■ 빛소굴 세계산문선, 세리프(serif)
세리프는 글자 획의 시작이나 끝부분에 있는 작은 돌기를 말합니다.
빛소굴 세리프는 작가 고유의 언어와 감성, 통찰을 아름답고 개성 있게 구현한 시적 산문을 소개합니다. 세리프의 산문들은 때로 시공간에 제약받지 않은 채 비선형으로 뻗치기도 하고, 뜻밖의 소재를 색다른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일상에 균열을 내기도 합니다. 자유롭게 변주되는 언어의 향연, 이 아름다운 돌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캐슬린 제이미
1962년 스코틀랜드 서쪽 지방에서 태어나 에든버러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했다.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이다. 스코틀랜드의 풍경과 문화에 뿌리를 두면서도 여행, 여성문제, 고고학과 시각예술 등을 아우르는 작품을 쓰고 있다. 2012년 출간한 시집 『오버홀The Overhaul』로 코스타 문학상을 받았다. 논픽션도 활발하게 집필하고 있는데, 자연과 풍경을 다룬 에세이집 『발견들Findings』과 『시선들』, 『서페이싱Surfacing』(근간, 가제)이 폭넓은 찬사를 받았다. 저명한 평론가 존 버거는 『발견들』을 읽고 ‘에세이 형식을 마술처럼 주무르는 마법사’라는 찬사를 보냈다. 두 번째 에세이 『시선들』은 존 버로스 메달과 함께 오리온 북 어워드를 수상했다. 『시바의 여왕The Queen of Sheba』으로 서머싯 몸 상을 받았고, 『나무 집The Tree House』은 2004년 포워드 상 시문학 부문과 2005년 스코틀랜드 예술위원회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지젠Jizzen』, 『오버홀』 등 네 편의 작품집이 T. S. 엘리엇 상 최종후보작에 올랐다. 이외에도 폴 햄린 상, 크리에이티브 스코틀랜드 상, 제프리 파버 기념상 등 여러 권위 있는 상들을 수상했다. 2016년 영국왕립문학협회 회원으로, 2018년 에든버러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됐으며 2021년 스코틀랜드 마카르(Makar, 스코틀랜드 정부가 지정한 국가 시인)로 임명되었다.
옮긴이 : 장호연
서울대학교 미학과와 음악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음악과 과학, 문학 분야를 넘나드는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스스로 치유하는 뇌』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뮤지코필리아』 『소리의 마음들』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리얼리티 버블』 『기억의 과학』 『콜럼바인』 『고전적 양식』 『클래식의 발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 차
감사의 말
1장 오로라
2장 병리학
3장 들판의 여자
4장 가넷 서식지
5장 빛
6장 발살렌
7장 달
8장 세인트 킬다를 찾은 세 번의 방문
9장 라 쿠에바
10장 줄노랑얼룩가지나방
11장 로나에 대하여
12장 쇠바다제비
13장 바다의 여행자
14장 바람
캐슬린 제이미에 대하여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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