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피아노와 함께 한 매 순간
그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었다”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세계적인 대가의 마스터클래스까지
무대 아래에서 펼쳐지는 고통과 환희의 피아노 수업
2022년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최연소 나이로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한국 클래식계는 그야말로 ‘임윤찬 앓이’가 시작되었다. 피아니스트에 대한 관심이 전에 없이 높아지며 코로나 시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피아노 배우기 열풍 또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위대한 피아니스트를 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클래식 피아니스트는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할까? 피아니스트들은 어떻게 연습하고, 무슨 수업을 받을까? 곡 해석, 테크닉, 감정 표현까지 아름답고 감동적인 무대를 만들기 위해 보냈던 무대 아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뛰어난 피아니스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그중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며 이름을 널리 알린 피아니스트는 (마음만 먹는다면) 셀 수는 있겠지만 상당히 많다. 그들 중에서도 자신의 글을 통해 음악 애호가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남긴 피아니스트를 꼽자면 (두 손 두 발 이상이 필요할 만큼) 그 수가 적지 않다. 어쩌면 신께서 그들에게 피아노 재능을 주시면서 글쓰기 재능까지 덤으로 준 게 아닐까.
우리가 이 명단에 추가해야 할 또 한 명의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있다. 미국에서는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는 제러미 덴크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기에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일 수 있으나, 그는 2018년에 한국을 방문해 독주 콘서트를 열기도 했으며, 2019년에는 리처드 용재 오닐과 함께 한 듀오 콘서트로도 한국 관객을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2024년 4월, 그의 또 다른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첫 책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이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악보도 볼 줄 모르던 여섯 살 꼬마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
이 책의 원제 “Every Good Boy Does Fine”은 높은음자리표의 오선지에 해당하는 음이름(EGBDF)을 가지고 문장을 만드는 놀이에서 따온 제목이다. 음악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을 위한 암기법이다. 이 특별한 제목은 제러미 덴크의 책이 어떤 면에서 다른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바닥에 닿지 않는 발로 음향판을 차던 여섯 살 귀여운 꼬마가 테크닉과 표현과 감정을 고민하며 음악과 인생을 이해하는 성숙한 삼십대 청년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이 책은 ‘피아니스트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가장 솔직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기 전까지의 삶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 우리는 알 수 없었던 무대 아래의 시간들이 상세하면서도 유쾌하게 펼쳐진다. 지루하고 고된 연습 시간, 이해할 수 없는 레슨들, 피할 수 없었던 콩쿠르 준비 과정, 전율이 일었던 영감의 순간들, 작은 성공과 작은 실패, 큰 성공과 큰 실패가 쉴 틈 없이 이어지며 더욱 단단해지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만날 수 있다. 저자가 한 인터뷰에서 이 책을 “음악 교사들에게 바치는 러브레터”라고 표현했듯 그 길에 수많은 선생님들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 세상 수많은 피아노 교사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기록
첫 레슨은 동네 피아노 학원 선생님과 함께 시작한다. 손은 수평으로 하고 손가락은 둥글게 구부리고 손목은 낮게 둔다. 등을 똑바로 펴고 한 번에 하나의 손가락 마디만 들어 올린다. 계이름을 배우고 박자를 배우고 운지법을 익힌다. 지루함의 새 지평을 연 도흐나니 음계 연습, 모차르트의 A장조 협주곡 K.488을 연습하며 음악의 구조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 자꾸 빨라지는 박자를 제어하는 메트로놈과의 사투 등 이런 대목들을 읽고 있으면 피아노 앞에 앉아 고뇌하는 어린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마을 어른들이 나서 그의 학비를 지원하는 장면에서 뛰어난 인재는 혼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로서의 배움의 과정이 펼쳐진다. 오벌린 대학의 조지프 슈워츠, 인디애나 대학의 죄르지 셰복, 줄리아드 스쿨의 허버트 스텐신을 사사한 덴크는 그들과의 개인 레슨이나 스튜디오 수업뿐만 아니라 레온 플라이셔, 야노스 슈타커 등과 함께 한 마스터클래스 등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전문적인 피아노 레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엿볼 수 있다. 우연히 잘 치게 되었을 때 그 방법을 곡의 나머지 부분에 어떻게 적용할까? 곡에 방향감을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별도의 두 음과 이음줄로 이어진 두 음이 가진 의미를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까? 어떻게 해야 슬픔이, 무거움이, 달콤함이 느껴지도록 연주할 수 있을까? 음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처럼, 겨우 발을 떼는 것처럼 들리게 할 수 있을까?
피아노와 함께한 매 순간 그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었다
피아노를 친다고 해서 피아노 교사에게만 배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에서는 피아노 레슨과 더불어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다채로운 일상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고등학교 때 활동했던 교내 오케스트라 지휘자, 음악회를 통해 만난 지역 오케스트라, 여러 음악 페스티벌에서 만난 음악가들과 함께한 시간을 통해서도 저자는 순간순간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대학 시절 돈을 벌기 위해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성악 등 친구들의 반주를 해주러 간 레슨에서 여러 분야의 교수들을 통해 배운 것들 또한 많았다.
현대음악앙상블의 지휘자 래리 레츨레프에게서는 악보에 적힌 모든 표기의 정확성과 엄격함을 배웠다면, 첼로 교수 노먼 피셔에게서는 악보에 쓰여 있지 않은 인간의 온기와 악상의 동기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바이올린 교수 그레그 풀커슨에게는 음악을 흐르는 강처럼 묘사하는 방법을 배웠다. 또한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레퍼토리를 익히고, 경쟁을 배우고, 콩쿠르 무대에서 자신감과 자괴감을 오가며 피아니스트로서 단단하게 성장해가는 모습은 인간적인 감동을 준다.
음악은 음악으로만 배우지 않는다. 동료 음악가들의 말 한 마디, 눈짓, 표정, 포옹 한 번, 살짝 짓는 웃음, 잠깐의 일탈, 유유히 흐르는 강, 밤하늘의 별… 너무나 많은 것들이 그에게 깨달음을 주고 영감을 주었다.
덴크의 음악 수업과 플레이리스트 해설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바로 덴크가 풀어낸 음악 수업과 이야기에 등장하는 클래식 작품 해설이다. 음악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화성, 리듬, 선율 세 가지로 나눠 진행되는 그의 음악 수업은 복잡한 음악 개념을 전문적이면서도 다양한 비유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선율에는 뭐랄까, 물건 같은 측면이 있다. 혼자서 흥얼거리고 소유한다.”) 또한 곳곳이 유머와 재치로 번득이며, 클래식 음악과 인간 정신의 보편적 측면들을 시적으로 연결시키는 그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은 문학적인 에세이를 좋아하는 독자들까지 만족시켜줄 것이다. 부록으로 실은 플레이리스트 해설 속 곡 설명과 추천 음반은 덴크가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과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르투르 슈나벨, 이그나츠 프리드만, 알프레트 브렌델, 알프레드 코르토 등의 추천 연주는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클래식 애호가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기에 충분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제러미 덴크(Jeremy Denk)
미국 피아니스트. 오벌린 대학에서 화학과 피아노를 전공했고, 인디애나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줄리아드 스쿨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이다.
솔리스트이자 실내악 연주자로서 그는 공연과 음반을 통해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같은 고전뿐 아니라 리언 커슈너, 찰스 아이브스, 죄르지 리게티 등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다. 카네기 홀에서 자주 공연하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했다.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은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에 올랐으며, 〈리게티/베토벤〉 음반은 『뉴요커』와 『워싱턴포스트』, NPR에서 올해의 최고 음반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여준 연주자에게 수여되는 에이버리 피셔 상을 수상했다. 2018년 한국을 방문해 독주 콘서트를 열었으며, 2019년에는 리처드 용재 오닐과 함께 한 듀오 콘서트로도 한국 관객을 만난 바 있다.
2013년에 그는 “천재들의 상”이라 불리는 맥아더 펠로십을 수상했는데, 선정 이유로 그의 음악적 능력과 더불어 그가 직접 쓴 음반 해설, 블로그 글, 여러 매체에 기고한 에세이 같은 그의 탁월한 글쓰기 능력을 꼽았다. 그가 『뉴요커』 『뉴리퍼블릭』 『가디언』 등에 쓴 글들은 발표되자마자 많은 독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순식간에 널리 퍼져나갔고, 그중 한 편이 바로 이 책의 기초가 되었다. 그의 블로그 ‘Think Denk’는 현재 미국 의회도서관 웹 아카이브에 선정되어 보존 중이다. 2014년에는 오하이 뮤직 페스티벌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하며 찰스 로젠의 『고전적 양식』에 기반을 둔 동명의 코믹 오페라의 대본을 썼는데, 이 작품은 카네기 홀과 애스펀 페스티벌에서 공연되었다.
2023년에 그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캐나다 왕립음악원(RCM)의 글렌 굴드 학교 이나토비치 석좌교수에 임명되었으며,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원제 Every Good Boy Does Fine)은 그의 첫 책이다.
옮긴이 : 장호연
서울대학교 미학과와 음악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음악과 과학, 문학 분야를 넘나드는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클래식의 발견』 『뮤지코필리아』 『스스로 치유하는 뇌』 『소리의 마음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하워드 구달의 다시 쓰는 음악 이야기』 『하얗고 검은 어둠 속에서』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고전적 양식』 『쇼스타코비치』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 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렐류드
1교시 화성
1장 최초의 레슨
2장 화성: 첫 번째 수업
3장 연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구나!
4장 화성: 두 번째 수업
5장 피아노로 정하다
6장 화성: 세 번째 수업
2교시 선율
7장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해?
8장 선율: 첫 번째 수업
9장 꼭 피아노 선생이 아니어도
10장 선율: 두 번째 수업
11장 넷째 손가락에 닥친 위기
12장 선율: 세 번째 수업
3교시 리듬
13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 이루어진다”
14장 리듬: 첫 번째 수업
15장 콩쿠르와 마스터클래스
16장 리듬: 두 번째 수업
17장 종착점에 다다르다
18장 리듬: 세 번째 수업
19장 그래서 줄리아드에 가고 싶다고
코다(이행부)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부록 플레이리스트 해설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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