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나에게는 이 책이 산의 색, 빛, 소리 같은 생명에 관한 그야말로 눈부신 이야기로도 읽히고, 동시에 오감을 가진 우리 ‘몸’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_정혜윤 (PD, 작가)
낸 셰퍼드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시인 겸 작가로, 2016년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에서는 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며 5파운드 지폐에 그의 초상화를 싣기도 했다. 『살아 있는 산』은 산 애호가이기도 한 낸 셰퍼드가 자신이 나고 자란 하일랜드의 케언곰 산맥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자연 에세이로, 스스로 이 작품을 케언곰과의 ‘사랑의 교류’에 대한 기록이라고 밝혔다. 바위와 흙, 물과 공기, 태양과 빛, 그리고 그곳에 사는 생명체 등 산을 이루는 ‘살아 있는 존재’에 관한 생동감 넘치는 통찰과 깊은 사유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존 뮤어의 전통을 잇는 자연철학과 시적 문장이 만난 독창적인 에세이로 재조명 받으며 영미권 국가에서 2011년과 2019년, 연달아 재출간되었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산과의 교감
사랑의 교류를 넘어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스코틀랜드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인 애버딘 근처 디사이드에서 나고 자란 낸 셰퍼드는 긴 생애의 오랜 시간을 케언곰 산맥을 둘러보며 지냈다. 그는 1년 내내 케언곰을 들락날락했는데, 그런 셰퍼드에게 케언곰 산맥은 셰계의 중심과도 마찬가지였다. 새벽에, 한낮에, 황혼녘에, 밤중에,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친구나 학생이나 디사이드 자연 연구회 동료들과 함께 걸었고, 그렇게 산과 교감을 나눈 경험을 시와 산문으로 풀어냈다. 세 편의 모더니즘 소설 『쿼리 우드(The Quarry Wood)』, 『기상 관측소(The Weatherhouse)』, 『그램피언 산맥의 고갯길(A Pass in the Grampians)』을 통해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평생 그를 둘러싸고 있던 케언곰의 ‘자연력’을 예찬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실감하는 내용을 담은 『살아 있는 산』이야말로 낸 셰퍼드의 문학적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케언곰 산맥은 영국의 북극으로 겨울이면 시속 170마일에 달하는 폭풍이 산맥의 고지대를 강타하고, 산비탈에는 온통 눈사태가 쏟아지며, 산꼭대기 위로 초록빛과 붉은빛 북극광이 번쩍인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강들 중에 디 강과 에이번 강이 케언곰 산맥에서 발원한다. 한때 오늘날의 알프스 산맥보다 높았지만, 수백만 년 동안 침식되면서 둥근 언덕과 부서진 절벽으로 이루어진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살아 있는 산』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케언곰 산맥의 지형적 특징에 관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낸 셰퍼드가 이야기했듯 “지형이란 산의 희미한 복제일 뿐이며, 그 실체는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모든 실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p.15)하기 때문이다.
낸 셰퍼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부터 『살아 있는 산』을 쓰기 시작하여 전쟁 직후에 완성했지만, 한 차례 출간을 시도했다가 포기하고 원고를 책상 서랍에 넣어둔 채로 30년이 흘렀다. 그러다 1977년, 생의 막바지 즈음 소유물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원고를 다시 읽어보고 산과의 교감에 관한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함을 깨달아 책으로 출간하기로 결심했다. 산과 나눈 “사랑의 교류”이기도 한 이 이야기를 통해 결국에는 “사랑을 열성적으로 추구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p.13) 실제로 『살아 있는 산』은 자연 에세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최근 재조명되며 영미권 국가에서 2011년과 2019년에 연달아 재출간되었고, 산의 자연력을 생생하게 묘사한 내용이 부각되며 코비드-19로 인한 락다운 시기에 널리 읽히기도 했다.
온몸의 감각으로 그려내는 자연의 실체
살아 있는 산을 통해 깨닫는 존재의 이유
『살아 있는 산』은 강의 발원지이기도 한 고원으로 시작해 바위가 흩어진 평원, 고요히 빛나는 호수, 거무스름하게 튀어나온 절벽, 호수 위의 깎아지른 벼랑과 호수 너머 바리케이드처럼 우뚝 솟은 케언곰 산 등 케언곰 산맥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를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낸 셰퍼드는 1년 내내 산을 찾는 산 애호가답게 꽃과 잎이 만발하는 봄과 여름을 거쳐 서리와 눈이 감탄할 형상을 만들어내는 겨울에 이르기까지 기후가 빚어내는 다채로운 풍광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
“보름달이 은은한 초록빛을 발하며 떠올랐다. 눈 쌓인 땅과 하늘 위로 장밋빛 어린 보랏빛이 번져나갔다. 실제로 살아 있고 실체와 생명력을 지닌 것 같은 색,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색이었다”(p.55)와 같이 시각에서 비롯된 구체적인 묘사와 더불어, “사방에서 움직이는 물소리는 꽃에 꽃가루가 필요하듯 산에 꼭 필요한 존재다.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숨 쉬듯 귓가에 전해지는 물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주의 깊은 사람의 귓가에서 그 소리는 온갖 다양한 음들로 분해된다. 호수가 느리게 철썩대는 소리, 시냇물의 높고 맑은 지저귐, 급류의 포효. 귀는 한 줄기의 작은 하천에서 수십 가지의 다른 음을 구분할 수 있다”(p.51)와 같은 청각을 이용한 묘사, “소나무는 히스처럼 햇볕을 받으면 향기를 뿜어내지만 숲지기에게 벌목될 때도 강렬한 냄새를 풍긴다. 산자락에서 자라는 식물 중에는 가문비나무가 톱으로 베일 때 유난히 짙은 향을 내뿜는다. 뜨거운 햇볕 아래 발효 음식처럼 훅 끼쳐오는 냄새다. 딸기 잼을 끓이는 냄새와도 비슷하지만, 코와 목의 점막을 당기듯이 톡 쏘는 맛이 있다”(p.86)처럼 남다른 후각적 묘사는 낸 셰퍼드가 어떻게 몸뿐만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하여 자연을 감각하고 있는지 실감하게 한다.
낸 셰퍼드가 그려내는 산의 세계는 모든 것이 살아 있다. 산에서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인 식물이나 동물, 곤충, 산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창조하는 힘이기도 한 풍화되어가는 바위, 대지를 살찌우는 비, 산을 휘감는 안개, 활기를 불어넣는 태양 같은 요소들까지 모두 살아 있는 세계에 포함된다. 이렇게 ‘살아 있는 산’을 걷고 호흡하고 감각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존재도 산의 일부임을 체감하게 된다. “몸은 무시할 수 없는 최우선의 존재이며, 육체는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 없는 존재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육체다”(p.168)라며 그가 흡사 물아일체와도 같은 감각으로, 자신의 존재 또한 산이 지닌 생명력의 발현이라는 깨달음을 고백하는 장면은, 결국 그 존재론적 자각이 산이 내려주는 가장 최후의 은총임을 알게 한다. 산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나 자신의 삶도 이해할 수 있다는 진실, 바로 이것이 케언곰 산맥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이유일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낸 셰퍼드
스코틀랜드의 모더니스트 시인이자 작가. 1893년 스코틀랜드의 디사이드Deeside에서 태어나 1981년 사망했다. 1915년에 디사이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의 애버딘 교육대학교에서 영어 강사로 41년 동안 일하며 고향뿐만 아니라 애버딘 지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정원 가꾸기와 산지 하이킹에 열심이었고, 디사이드 자연 연구회의 열성 회원으로서 제자나 친구들과 함께 케언곰 산맥을 즐겨 찾았다. 대표작 『살아 있는 산』을 통해 산에 대한 애정과 산의 다채로운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 밖에도 노르웨이,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와 남아프리카 등 지구 곳곳을 여행했지만 매번 어릴 적부터 살아온 고향으로 돌아갔고, 애버딘에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디사이드 북쪽의 웨스트컬츠 마을에서 성인기 대부분을 보냈다. 낸 셰퍼드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며, 2016년 스코틀랜드 왕립은행 5파운드 지폐에 그의 초상화가 실렸다.
옮긴이 : 신소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다양한 분야의 책을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야생의 숨결 가까이』 『야생의 위로』 『야생의 식탁』 『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모두가 가면을 벗는다면』 등이 있다.
목 차
케언곰 산맥 지도
머리말
1장 고원
2장 계곡
3장 산봉우리들
4장 물
5장 서리와 눈
6장 공기와 빛
7장 생명체: 식물
8장 생명체: 새와 동물과 곤충
9장 생명체: 인간
10장 잠
11장 감각
12장 존재
해설: 로버트 맥팔레인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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