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그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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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심윤경
출판사항문학동네, 발행일:2024/09/25
형태사항p.266 46판:20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41601249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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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나의 아름다운 정원』 『설이』 『영원한 유산』…

장편소설의 마이스터, 심윤경 신작

여성의 목소리로 다시 쓴 21세기식 『위대한 개츠비』


장편소설을 이렇게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은 게 얼마 만인가. 이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의 소설이다.

_정이현(소설가)


2002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고 20만 부 이상 판매된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 이어 『달의 제단』 『설이』 등 늘 새롭고 강렬한 이야기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심윤경. 서사를 장악하는 탁월한 능력으로 장편소설의 마이스터라 불리는 그가 『위대한 그의 빛』으로 돌아왔다. 희대의 친일파가 남긴 대저택 벽수산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소설 『영원한 유산』으로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뒤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이다.


매번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작품들을 선보여온 그. 이번에는 한때의 첫사랑을 다시 만나기 위해 막대한 부를 쌓고 매일 밤 강 건너 그녀의 집이 건너다보이는 대저택에서 파티를 벌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어딘가 낯익은 이야기라고? 그렇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위대한 그의 빛』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1925년작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쓴 소설이다. 심윤경은 1920년대 뉴욕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를 2020년대 서울로 옮겨와 펼쳐 보인다. 전통의 부호인 데이지와 톰이 사는 이스트에그는 압구정동으로, 신흥 부자 개츠비가 사는 웨스트에그는 성수동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위대한 그의 빛』은 단지 고전 소설의 배경만 현대로 옮겨온 번안 소설은 아니다. 소설에서 사건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는 이의 시선, 그리고 화자의 목소리가 아닌가. 『위대한 개츠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목격하고 서술하는 이가 남성인 닉이었다면, 『위대한 그의 빛』에서는 여성인 이규아로 반전된다. 이규아는 여성의 시선으로, 불가능한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제이 강을, 그리고 그의 빛이자 욕망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유연지를 지켜본다. 이러한 이유로 『위대한 그의 빛』의 이야기는 『위대한 개츠비』의 시작점에서 점점 멀어져 끝내 전혀 다른 결말로 나아가게 된다. 달라진 것이 화자의 성별만은 아니다. 바이오 스타트업과 가상화폐로 가공할 만한 물질적 성공을 이뤄낸 제이 강과 그를 자본주의의 영웅으로서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은 거울처럼 우리 시대를 비추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이 소설은 ‘여성의 목소리로 다시 쓴 21세기식 『위대한 개츠비』’라고 할 수 있겠다.


“제이 강을 본 적 있어요? 그는 신화예요.”


이야기는 뉴욕에서 방황의 시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규아의 독백에서 시작된다. 대학 시절 학교를 그만두고 떠난 성수동은 다시 돌아오니 서울에서 손꼽히는 명소가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한강을 앞마당처럼 거느린 T타워가 위용을 보이며 우뚝 서 있었다. 뉴욕에서의 경력을 살려 T타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단독주택을 개조해 뉴욕 스타일 와인바를 개업한 규아는 가게에서 한강 너머로 바라다보이는 압구정동 H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촌 유연지와 그녀의 남편이자 서울대 시절 동창인 이광채를 찾아간다. 규아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소공녀처럼 자란 연지와 상속받은 거대한 부와 짐승 같은 근육만큼이나 비대한 자신감을 지닌 이광채에게 거리감을 느끼지만, 사업을 하는 한 그들과 엮이지 않을 도리가 없으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한편 그녀의 귀에 하나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바로 T타워의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다는 제이 강. 그는 세계적인 기업이 된 바이오 스타트업 에클버그를 설립하고, 폭발적인 가격 상승으로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상화폐가 된 에클코인을 개발해 국민적 영웅이 되었지만 서울대와 하버드를 수석 졸업했다는 소문뿐 그외의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규아가 운영하는 와인바를 주기적으로 대관해 사용하겠다는 제안과 함께 제이 강이 직접 그녀의 가게를 찾아오고, 그녀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신화적 인물로 추앙받는 제이 강이 자신의 대학 시절 마당패 동아리 후배 강재웅이었던 것. 규아는 재웅의 초대에 응해 호화로운 파티가 벌어지는 그의 펜트하우스를 방문하고, 자신이 알던 강재웅과 제이 강의 모습에서 반가움과 함께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낀다.

재웅을 다시 만난 후 규아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가 여는 파티에서 연예인들과 예술가들을 만나며 화려한 세계를 접하고, 그 세계에 매혹되기도 하는 한편 그 모든 것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재웅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대학 시절 짧은 시간 동안 열렬히 마음을 나누고 사랑의 도피까지 한 적이 있었던 유연지를 다시 만나고자 했다는 것, 그리고 그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그가 이룬 엄청난 부를 포함해 이 모든 일을 이루어왔다는 것을.


강재웅은 유연지를 잊지 않았다. 그저 잊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연지와 다시 만나는 순간에 대한 조화롭고 완벽한 과정의 상이 그의 머릿속에서 수천만 번이나 재현되고 발전한 나머지 그 상상의 장면은 허공 속에서 쓰다듬은 수천만 번의 손길에 의해 매끄럽게 다듬어진 하나의 단단한 대리석 조각상이 되어 서 있었다. 그는 이제 실물이나 다름없이 확실해진 그 석상을 오른쪽과 왼쪽, 위쪽과 아래쪽에서 모든 각도로 지켜보고 만질 수 있었다. 집착조차 오래전에 잊었다는 듯 무덤덤한 그의 목소리는 그 재회의 장면을 실현하기 위해 그가 이 순간까지 신화적인 인생의 한 발짝 한 발짝을 내디뎌왔음을 분명히 암시했다.

_143쪽


결국 규아는 재웅을 도와 연지와 그를 만나게 한다. 연지는 규아와 함께 킹스포인트에서, 그리고 T타워의 펜트하우스에서 재웅을 만난다. 그리고 그 일은 그들과 얽힌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다. 이윽고 광채와 연지, 재웅과 규아는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한여름 압구정동 H아파트에서의 대화는 끝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이야기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향해 치닫기 시작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시대와 여러 대륙을 몰고 다닌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가 이룬 모든 일을 추동한 희망의 근원 앞에 다시 서서 그것을 마침내 얻으려는 황홀한 순간에 나는 잔인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말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를 죽일 수 있을 만큼 지독한 질문이었다.

_196쪽


불가능한 빛을 좇은 한 사람

그리고 그 빛에 대하여


『위대한 개츠비』가 손에 넣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빛을 좇은 개츠비라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라면, 『위대한 그의 빛』은 바로 그 빛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성 화자 이규아의 시선은 불가능한 빛을 좇는 강재웅보다 그의 빛인 유연지에게 더 깊이 가닿는다. 멀리 어른거리는 초록 불빛처럼 이상을 추구하는 누군가의 빛이 되는 존재, “프랑스 인형처럼” 예쁘고, 두 남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지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바로 이 시선이 심윤경이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쓴 이유이기도 하다. 『위대한 그의 빛』에는 화자만이 아니라 유연지의 아이의 성별도 반전되어 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아이를 낳은 데이지의 독백 “딸이라서 다행이야. 이왕이면 아주 바보가 돼버려라. 이런 세상에선 바보가 되는 게 속 편하다. 귀여운 바보”라는 독백은 아들은 낳은 유연지의 “그래, 아들이 좋아. 커서 바보나 되겠지. 남자애가 그거 말고 다른 게 있어? 잘생긴 바보”로 변용된다. 그밖에도 『위대한 개츠비』의 여성 골프선수 조던 베이커 또한 골프선수를 꿈꾸던 민경훈으로 등장하는 등, 여러 곳에서 성별이 반전되어 있다. 성별은 그저 성별일 뿐 아무것도 바꿀 수 없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한 아이러니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던지고 싶은 주요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위대한 그의 빛』에서 ‘빛’은 비단 유연지만은 아니다. 끝까지 막대한 재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강재웅이 아닌 제이 강, 그리고 그가 가진 눈부신 부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배금주의를 서늘할 정도로 선명히 드러내보인다. 심윤경은 이와 같이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빛을 놀라운 방식으로 서사화하여 우리 앞에 그려낸다. 그 눈부시고 뜨거우면서도 짙은 어둠과 그림자 또한 품고 있는 무언가를.


우리 시대를 위한 다시 쓰기


작가는 성수동과 압구정동이 마주보고 있는 풍경을 보고 이 소설을 떠올렸다고 했다. 뉴욕 롱아일랜드의 만에 서서 『위대한 개츠비』를 구상했을 피츠제럴드와 심윤경은 전혀 다른 시대를 살지만, 거기에서 어떤 유사점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은 변하지 않고 삶의 이야기는 되풀이된다는 것, 그것이 고전이 시대를 초월해 강력한 힘을 갖는 이유이다. 그러나 인간은 변하지 않지만 시대는 변한다. 그것이 원형적 이야기가 다시 쓰여야 하는 이유이다. 최근 왕자 햄릿이 공주가 된 버전의 <햄릿>(셰익스피어 작, 부새롬 연출), 한국으로 무대를 옮긴 <벚꽃 동산>(안톤 체호프 작, 사이먼 스톤 연출) 등의 작품이 상연되거나,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다시 쓴 소설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바버라 킹솔버)이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등 이와 같은 형식이 조금씩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고전 소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다시 쓰인 시도는 전에 없던 일이다. 원형적 이야기가 가진 힘을 우리에게 온전하고도 새롭게 가져오는 일은 어쩌면 그간 매번 전혀 다른 작품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끊임없이 갱신해온 심윤경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일 것이다.


맙소사, 성수동과 압구정동이 이렇게 정확하게 마주보는 위치였구나, 나는 한강을 따라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높고 얕은 두 건물들의 대칭성에만 집중하여 그곳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올드 머니와 뉴 머니를 대표하는 두 건물들이 찰랑이는 넓은 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이 풍경은 분명 낯익은 데가 있었다. 개츠비가 바다 건너편 가물거리는 초록 불빛을 향해 손을 내밀던 바로 그 자리에 선 놀라움 속에서 이 소설은 시작되었다.

_‘작가의 말’에서

작가 소개

심윤경

2002년 자전적 성장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달의 제단』으로 무영문학상을, 2021년 『영원한 유산』으로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이현의 연애』 『사랑이 달리다』 『사랑이 채우다』 『설이』 『위대한 그의 빛』, 연작소설 『서라벌 사람들』, 산문집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등을 펴냈다.

목 차

압구정동

대성리

뉴욕

밤섬

한강

녹두거리

성수동

올림픽대로

빛으로


작가의 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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