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소녀라는 세계,
소녀를 이루는 세계에 대한
눈부신 이야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한 아이의 세계에 온 마을이 담겨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 않을까.
2021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사라지기 전에 단 하나의 이야기를》에서 주인공 ‘미소’를 비롯해 사람들 모두가 손에 쥐고 있는 각자만의 이야기를 풀어냈던, 《아이의 슬픔과 기쁨》(공저)에서는 아이가 느끼는 외로움을 올올이 섬세하게 꿰어냈던 서연아 작가의 새 작품은,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세 편의 연작 소설이다.
“내 진짜 가족은 포피뿐이라고.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그거였다. 포피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었다.” _<포피와 나>
첫 작품 <포피와 나>는 열다섯 살 소녀 ‘미카’와 노인 ‘포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둘은 미카가 아홉 살일 때 처음 만났다. 마트에서, 미카가 초콜릿을 하나 슬쩍할 때. 미카의 엄마는 초콜릿 같은 건 하나쯤 가져와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사 온 동네에서 처음 학교에 가던 날 미카의 엄마는 미카를 데리러 가지 않았다. 집에 갈 방법을 알지 못했던 미카는 무작정 걷는다. 큰길을 따라서, 보행 신호등이 가장 먼저 켜진 횡단보도를 건너서, 아무 생각 없이. 포피가 그런 미카를 발견하면서 둘은 두 번째로 만난다.
곧 둘은 친구가, 가족이 된다.
미카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제대로 된 엄마가 없었다. 약물 중독이었던 엄마는 미카를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다. 미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방치했다. 학교에 데리러 가지 않았고, 준비물을 챙겨주지 않았고, 교복을 빨아주지 않았다. “더러운 교복을 입고 등교한 친구와 조회 시간에 나란히 서 있고 싶어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포피도 마찬가지다. 포피는 시드니에서 이 작은 동네로 이사 왔다. 지난 과거로부터 도망치듯이, 혼자. 둘의 관계는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비유적인 의미에서 가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피가 엄마 역할을, 미카가 딸 역할을 맡은 유사 가족이 아니다. 포피가 미카를 돌봐주듯이, 미카 역시 저도 모르는 사이에 포피를 살렸다. 포피가 계속 살게 했다.
그런데 이제 포피가 아프다. 응급실에 실려 가 몇 주씩이나 입원할 정도로 아프다.
<포피와 나>는 제목 그대로 ‘포피’와 ‘나’를 조사 ‘와(and)’로 엮기까지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다정한 관계 맺기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포피를 떠나보내는 이야기, 그럼에도 포피와 함께했던 기억들은, ‘와’로 묶였던 관계는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녀는 이별하면서 자란다
“할머니가 원했던 건 어쩌면 이야기의 끝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종이란 죽음과 달리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거니까. 할머니는 막내딸의 죽음을 애도했듯이 드디어 큰딸의 죽음도 애도할 수 있게 되었다.” _<딜과 루이>
이 세 편의 연작 소설에는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 외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세 편 모두, 누군가를 떠나보낸 이야기라는 점이다.
두 번째 작품 <딜과 루이> 속 ‘딜’과 ‘루이’는 25년 전에 실종된 엄마의 언니이자 그들에게는 큰이모인 코럴 이모의 흔적을 뒤쫓는 이야기이며, 세 번째 작품 <로즈 강>은 ‘로즈’가 비운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그녀를 떠나보내고 기억하고 애도하는 ‘강’의 이야기다.
탐정처럼 과거의 미스터리를 추적해 나가는 두 소녀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지는 <딜과 루이>는, 앞뒤로 붙어 있는 두 작품과 사뭇 다르게 추리극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이미 《사라지기 전에 단 하나의 이야기를》에서 벼랑 아래에 떨어진 ‘미소’의 이야기를 제3자인 ‘산호’의 관점으로 재구성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서연아 작가는 이 작품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빚는 솜씨를 발휘한다. 그리고 그렇게 쌓아 올려진 이야기는 사고로 엄마를 떠나보낸 딜과 루이에게도, 또 큰딸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할 수 없었던 할머니에게도 뜻밖의 위로가 된다.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므로.
<포피와 나>에서 미카가 포피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녀를 살게 했듯이, 이야기는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야기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기쁘고 슬픈 온갖 일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기억한다는 것은 마음에 남긴다는 것이다. 미카가 포피를 기억하듯이, <로즈 강>에서 ‘강’이 ‘로즈’를 로즈에 관한 무수한 이야기로 기억하듯이.
“나는 로즈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로즈였다. 로즈가 어떤 사람이었냐고? 듣는 사람만 있다면 로즈에 대해 밤새 말할 수도 있었다.” _<로즈 강>
로즈가 세상을 떠난 시점에 시작되는 이 소설은 어릴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소녀가 친해지고, 마을 한편에서 아무도 모르게 벌어지고 있던 범죄를 우연히 목격한 뒤의 사건을 다룬 <로즈 강>은, 어떤 면에서 강이 로즈에게 바치는 이야기에 가깝다. 로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고, 로즈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되새기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럼으로써 로즈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납득하고, 그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세 편의 연작 소설은 서로 교차하지 않는다. 포피는 딜과 루이를 알지 못한다. 딜과 루이 둘 중 누구도 로즈나 강을 알지 못한다. 이들이 사는 세상은 서로 포개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소설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익숙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로 존재하는 소녀들, 그들을 이루고 있는 세계가 몇 겹의 이야기로 다리를 놓음으로써.
작가 소개
서연아
경기도 동두천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호주 선샤인코스트에서 글을 쓰면서 내 안의 우주를 돌리고 있다. 2016년 《브로커의 시간》으로 한국 안데르센상 아동문학 대상을 받았고, 2021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사라지기 전에 단 하나의 이야기를》, 《아이의 기쁨과 슬픔》(공저) 등이 있다.
목 차
포피와 나
딜과 루이
로즈 강
에필로그∥198X 소녀의 세계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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