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중세 유럽을 지배한 여걸
십자군 전쟁과 음유시인의 시대, 기사도 문학이 꽃피우던 12세기 유럽.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왕비였으며 사자심왕 리처드의 어머니였던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아들들과 자손들은 대대로 잉글랜드의 왕을 지냈으며 딸들은 시칠리아와 카스티야의 왕비가 되었다. 손자들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나 카스티야와 예루살렘의 왕이, 증손자는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그녀와 헨리 2세가 시작한 플랜태저넷 왕조는 1485년까지 이어졌으며, 유명한 엘리자베스 1세나 빅토리아 여왕은 물론 현재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에게도 그녀의 피가 흐르고 있다. 유럽의 거의 모든 왕가가 그녀로부터 시작됐으니, 이쯤 되면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에게 ‘유럽의 할머니’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당연하다.
엘레오노르가 살았던 유럽은 봉건사회로 크고 작은 영지들로 나뉘어 있었다(12세기는 고려시대 무신정변이 일어나고 중국에서는 여진족의 세력 확장으로 송나라가 남쪽으로 밀려갈 때이다). 아직 국가의 기틀이 명확하게 세워지지 않았고, 백성들은 국가가 아닌 왕과 공작, 백작과 같은 상위 군주에게 충성을 바쳤다. 이 시기 엘레오노르는 프랑스 왕실령보다 더 큰 영지를 물려받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상속녀였다.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프랑스의 루이 7세와 결혼한 후에도 수많은 남성들을 상대로 염문을 뿌렸고, 결국 자신의 의지로 이혼을 했다. 한낱 앙주의 백작이었던 앙리는 엘레오노르와 재혼하면서 세력을 키워 훗날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가 될 수 있었다(이때 피레네 산맥에 이르는 프랑스 남서부 지방의 방대한 영토는 잉글랜드 소유가 되어 이후 백년전쟁의 원인이 된다). 한편 그녀는 왕자들 간의 세력다툼에 개입하여, 리처드 1세가 프랑스와 필리프 왕과 손을 잡고 부왕을 공격하도록 도왔다. 마침내 헨리 2세는 아내와 아들뿐만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 존마저 리처드의 편이 되었음을 알고 충격 속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결국 엘레오노르는 자신의 뜻대로 사자심왕 리처드 1세와 존 왕을 차례로 왕좌에 앉혔다.
유럽사의 위대한 여인을 꼽아 보라면 영국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이룩한 엘리자베스 1세나 영국의 황금기를 다스린 빅토리아 여왕,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한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 등이 떠오른다. 이 여인들은 모두 남성 중심 사회였던 유럽에서 비범한 삶을 산 유능한 정치가이자 유럽의 지배자였다. 엘레오노르는 그보다 수백 년이나 전에 유럽의 역사를 바꿔놓은 놀라운 여인이었으니 우리가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일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녀에 대해서 다룬 책은 다른 역사 속 여인들과 함께 간단히 소개하는 데서 그치거나, 소설의 형식을 빌린 아동 도서가 전부였다. 이 책은 엘레오노르라는 인물에 대해 세밀하고도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첫 책이다. 베스트셀러 《엘리자베스 1세》, 《헨리 8세와 여인들》을 쓴 역사가이자 유명 작가인 앨리슨 위어는 엘레오노르의 파란만장한 삶의 발자취를 되짚어가며 생동감 넘치는 중세 유럽사를 풀어내었다.
매혹적인 요부 혹은 현명한 왕비
아키텐의 여공 엘레오노르는 중세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자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살아생전에는 물론이고 8백 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극과 극의 평가가 공존한다. 그녀는 아름답고, 지적이고, 당돌했으며, 끊임없이 불미스러운 스캔들을 몰고 다닌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는 자신이 나고 자란 영지에 대해 평생 뜨거운 애정과 책임감을 잃지 않았던 자비로운 통치자였으며, 여러 왕의 훌륭한 조언자이자 현명한 모후이기도 했다.
엘레오노르의 명성에 따라붙은 전설들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그녀의 참된 모습에 다가가기 어려웠다. 프랑스 왕과 이혼하고 당시 막 부상하기 시작한 또 다른 실력자와 재혼한 요부, 숙부와 예비 시아버지를 상대로 염문을 뿌렸던 발칙한 간부姦婦의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십자군 원정에 동행할 당시의 온갖 스캔들이나, 남편 헨리 2세와 왕자들 간의 권력 다툼에 개입하여 아들들이 부왕에게 반란을 일으키도록 배후 조종했던 일은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쐐기를 박았다(셰익스피어의 희곡 《존 왕》에서 엘레오노르는 ‘타락한 할망구, 하늘과 땅을 망가뜨리는 괴물’로 묘사된다).
지은이는 일차원적이고 편협한 평가로 일축되어왔던 엘레오노르의 면면을 한 켜씩 들추어낸다. 그리하여 수많은 1차 사료와 2차 사료를 종합한 치밀한 연구 끝에 그녀를 가장 생생하고 객관적으로 포착하는 데 성공해냈다. 그 덕분에 비로소 우리는 ‘페르풀크라Perpulchra’, ‘아름답다는 말 그 이상’의 칭송을 들었던 화려하고 철없던 왕비가 ‘미덕의 꽃’으로, 모두의 존경을 받는 중년과 노년의 대비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차분히 추적해갈 수 있게 되었다.
한 여인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중세 역사 연대기
이 책은 단순히 엘레오노르의 전기는 아니다. 한 인물을 통해 보는 중세 유럽사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엘레오노르의 드라마틱한 개인적 삶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12세기 봉건제의 구조 아래 유럽의 모습과 정세,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국이 기틀을 세워가는 역사적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은이는 리처드가 무공을 세운 것으로 유명한 아크레 전투를 비롯하여 십자군 전쟁의 실상에 대해 자세히 들려준다. 또한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종교와 정치의 갈등도 생생하게 그려내었는데, 특히 클래런던 헌장을 둘러싼 헨리 2세와 성 토머스 베켓의 불화의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감탄할 만큼 실감난다.
기사도 정신과 음유시인의 시가 꽃피웠던 중세 궁정 문화를 엿보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묘미이다. 지은이는 당시 왕족과 귀족, 기사계급, 평민들의 의식주 생활에 대해서 상세히 다루고 있으며(p.64, 74, 178~195, 208~213), 엘레오노르를 찬양하는 음유시인의 노래나 각종 서한들을 풍부하게 인용해 놓아(p.170, 202, 305, 395) 당시의 시대상과 중세 감성을 한껏 느낄 수가 있다. 또 자신을 죽게 만든 궁수에게 “살아라, 살아서 나의 덕을 입고 대낮의 빛을 보라.”라고 말하는 사자심왕 리처드의 사망 장면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감동적이다(p.428). 드세고 제멋대로인 봉건 영주들을 진압하려 고군분투하는 군주나, 다혈질에다 온갖 술수를 동원해 배신을 일삼는 중세인들의 모습은 중세 로망을 방불케 하며 아스라이 오랜 이국 이야기와 환상의 세계를 선사한다.
이 역사의 현장에서 엘레오노르는 프랑스 남부의 문화적인 환경에서 공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당시 여성이 읽고 쓰기를 배우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다. 귀족 여성이라 해도 교육이라고는 신부수업을 받는 게 고작이었다.), 화려한 궁정생활을 누렸다. 루이 7세와 결혼한 후 보여준 사치스럽고 파격적인 행실은 프랑스 귀족들과 성 베르나르두스를 비롯한 성직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으나, 한편으로는 많은 예술인들을 후원하며 프랑스 왕실을 예술적인 환경으로 바꾸어 놓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 자신의 영토에 관해서 만큼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프랑스 왕실에서의 단조로운 생활을 답답하게 느낀 엘레오노르는 루이 7세의 십자군 원정에 귀부인들을 거느리고 동행했다. 그곳에서 엘레오노르는 이동에 방해가 되었을 뿐 아니라 숙부 안티오키아의 레몽과 노예들을 상대로 추문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루이 왕과의 사이가 틀어지자 엘레오노르는 근친혼을 빌미로 교회의 동의를 얻어냈고, 이혼을 감행했다.
그러나 엘레오노르를 그런 팜므 파탈로만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왕가와 귀족가의 여인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거나 수도원으로 은퇴하는 나이에 엘레오노르의 공적 생활은 비로소 만개한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이 전쟁을 위해 떠난 동안 그들을 대신하여 섭정을 맡아 정력적으로 정무를 이끌었다. 또한 그녀는 아들의 신붓감을 인도해 오기 위해, 프랑스 왕과 결혼시킬 손녀딸을 정해 데려오기 위해, 리처드의 임종의 순간을 지키기 위해서 노년의 몸으로 수차례나 피레네 산맥을 오르내리며 동분서주한 철의 여인이었다. 중세 여인으로서는 이례적인 장수를 누렸던 엘레오노르는 여든여덟의 나이로 눈을 감기까지 열 명의 자식들 중 여덟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평생 그들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현명한 조언자 역할을 했다.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네 명의 왕들
엘레오노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각양각색의 왕들 네 명을 소개한다. 역사에 남아 현대까지도 연구 대상으로, 또는 문학과 영화의 주인공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이들은, 엘레오노르의 남편들이자 그녀가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아들들이다.
① 첫 번째 남편, 프랑스의 왕 루이 7세(1121-1180)
루이 6세의 둘째 아들이었던 루이 7세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유년 시절을 생드니 수도원의 ‘꼬마 수사’로 보냈으나, 장손 필리프의 죽음으로 왕위를 이었다. 성인군자나 다름없는 성품을 지녔던 루이 7세는 평생을 ‘미덕의 표상’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왕비를 ‘이성을 잃을 지경으로’ 사랑했지만 자유분방하고 문화적인 환경에서 자란 엘레오노르는 남편의 고리타분한 성격과 프랑스 궁정 생활을 답답하게 느꼈다.
② 두 번째 남편,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지닌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1133-1189)
‘앙주의 앙리’로도 알려져 있다. 19세에 열한 살 연상의 엘레오노르를 신부를 맞이하여 프랑스 국토의 서반부를 수중에 넣었고, 스티븐 왕이 죽자 플랜태저넷 왕가 출신의 첫 번째 잉글랜드 왕이 되었다. 헨리와 엘레오노르 둘 다 열정적이고 활동적이며 드센 성격의 소유자였고 야망과 이해관계 면에서도 잘 맞는 배우자였다. 그러나 아들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 배후에 왕비가 있음을 눈치챈 헨리는 오랜 세월 그녀를 감금하기도 했다.
③ 사자심왕 리처드 1세(1157-1199)
헨리 1세와 엘레오노르의 셋째로 태어난 리처드는 엘레오노르가 ‘내 노년의 지팡이, 내 두 눈의 빛’이라 부를 만큼 가장 아끼는 아들이었다. 부모의 성격을 빼닮아 정열적이고 성미가 급했으며 엄청난 색정광으로 알려져 있다. 3차 십자군 전쟁에 출정해 용맹을 떨쳐 사자심왕이라는 별칭을 얻고 수많은 기사도 문학과 무훈시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를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 묘사하는 한편, 재위 기간 대부분을 외지에 나가 있으면서 군비와 자신의 몸값으로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인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면모도 다루고 있다.
④ 무지왕 존(1166-1216)
헨리가 가장 사랑했던 막내아들로, 리처드 1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부왕 때의 영토가 모두 형들에게 분배되고, 프랑스와의 싸움으로 대륙에 있던 영토 대부분을 상실했기 때문에 ''무지왕無地王''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귀족들의 강압에 못 이겨 ‘마그나카르타(대헌장)’를 승인하기도 했다. 악한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그는 유능한 행정관이었고 사법질서 확립과 복지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으며, 형 리처드와 달리 대륙보다 잉글랜드 왕국을 통치하는 데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인 왕이었다.
▣ 작가 소개
저자 앨리슨 위어 Ailson Weir
영국의 역사가이자 작가, 소설가. 노스웨스턴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역사교육학을 전공했다. 철저한 연구와 고증을 바탕으로 주로 중세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소설과 같은 유려한 문장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역사는 모든 이들의 것”이라는 소신에 따라 ‘대중적인 역사 쓰기’를 지향하는 그녀는 영미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있으며 매년 수십 차례의 강연을 한다. 그녀의 저서들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데 그치지 않고, 많은 역사학자들에 의해 자료로 인용되며 역사 교과서 및 교양서로 널리 애독되고 있다.
국내에도 소개된 《헨리 8세와 여인들》,《엘리자베스 1세》는 인문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고, 《헨리 8세의 후예들》,《9일 여왕: 레이디 제인 그레이》 등도 널리 알려져 많은 팬을 확보했다. 이 책 《아키텐의 엘레오노르》는 지은이가 철저한 자료 분석과 연구를 거듭하여 나온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녀의 명성에 걸맞게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넘어, 역사와 전설의 경이로운 결합을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밖의 책으로는 《장미전쟁 The Wars of the Roses》,《이사벨라 여왕 Queen Isabella》,《영국의 왕가 Britain''s Royal Families》,《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Mary, Queen of Scots》,《군주의 연인 캐서린 스윈퍼드 Mistress of the Monarchy》,《런던타워의 왕자들 The Princes in the Tower》 등이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영미권의 베스트셀러이다.
역자 곽재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강의하며, 문화 ? 예술 분야의 번역에 종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미술의 언어》,《다빈치코드의 비밀》,《다크 컬처》,《성형수술의 문화사》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역사와 전설 속의 위대한 여인을 기억하며 18
서문 22
프롤로그: 1152년 5월 18일 25
1. 풍요로운 아키텐 28
2. 미덕의 표상 56
3. 악마의 부추김 78
4. 예루살렘으로! 106
5. 정당한 이혼 134
6. 행복한 결말 157
7. 왕국에 관한 모든 것 178
8. 신의 은총을 받은 잉글랜드 왕비 엘레오노르 196
9. 왕께서 기적을 행하셨다 214
10. 날로 깊어가는 의혹 235
11. 성스러운 순교자 257
12. 새끼들이 깨어날지니 273
13. 왕비님과 왕자님들을 조심하십시오 286
14. 가여운 포로 304
15. 패배한 왕, 수치, 수치로다 327
16. 독수리가 세 번째 둥지에서 기쁨을 찾으리라 348
17. 연륜에 대한 찬사 364
18. 악마가 풀려난다네! 389
19. 내 노년의 지팡이 411
20. 가장 경애하는 엘레오노르 433
21. 악인의 소생은 번성하지 못하리라 449
22. 촛불이 꺼지다 464
엘레오노르의 가계도 478
참고문헌 483
중세 유럽을 지배한 여걸
십자군 전쟁과 음유시인의 시대, 기사도 문학이 꽃피우던 12세기 유럽.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왕비였으며 사자심왕 리처드의 어머니였던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아들들과 자손들은 대대로 잉글랜드의 왕을 지냈으며 딸들은 시칠리아와 카스티야의 왕비가 되었다. 손자들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나 카스티야와 예루살렘의 왕이, 증손자는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그녀와 헨리 2세가 시작한 플랜태저넷 왕조는 1485년까지 이어졌으며, 유명한 엘리자베스 1세나 빅토리아 여왕은 물론 현재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에게도 그녀의 피가 흐르고 있다. 유럽의 거의 모든 왕가가 그녀로부터 시작됐으니, 이쯤 되면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에게 ‘유럽의 할머니’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당연하다.
엘레오노르가 살았던 유럽은 봉건사회로 크고 작은 영지들로 나뉘어 있었다(12세기는 고려시대 무신정변이 일어나고 중국에서는 여진족의 세력 확장으로 송나라가 남쪽으로 밀려갈 때이다). 아직 국가의 기틀이 명확하게 세워지지 않았고, 백성들은 국가가 아닌 왕과 공작, 백작과 같은 상위 군주에게 충성을 바쳤다. 이 시기 엘레오노르는 프랑스 왕실령보다 더 큰 영지를 물려받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상속녀였다.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프랑스의 루이 7세와 결혼한 후에도 수많은 남성들을 상대로 염문을 뿌렸고, 결국 자신의 의지로 이혼을 했다. 한낱 앙주의 백작이었던 앙리는 엘레오노르와 재혼하면서 세력을 키워 훗날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가 될 수 있었다(이때 피레네 산맥에 이르는 프랑스 남서부 지방의 방대한 영토는 잉글랜드 소유가 되어 이후 백년전쟁의 원인이 된다). 한편 그녀는 왕자들 간의 세력다툼에 개입하여, 리처드 1세가 프랑스와 필리프 왕과 손을 잡고 부왕을 공격하도록 도왔다. 마침내 헨리 2세는 아내와 아들뿐만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 존마저 리처드의 편이 되었음을 알고 충격 속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결국 엘레오노르는 자신의 뜻대로 사자심왕 리처드 1세와 존 왕을 차례로 왕좌에 앉혔다.
유럽사의 위대한 여인을 꼽아 보라면 영국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이룩한 엘리자베스 1세나 영국의 황금기를 다스린 빅토리아 여왕,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한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 등이 떠오른다. 이 여인들은 모두 남성 중심 사회였던 유럽에서 비범한 삶을 산 유능한 정치가이자 유럽의 지배자였다. 엘레오노르는 그보다 수백 년이나 전에 유럽의 역사를 바꿔놓은 놀라운 여인이었으니 우리가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일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녀에 대해서 다룬 책은 다른 역사 속 여인들과 함께 간단히 소개하는 데서 그치거나, 소설의 형식을 빌린 아동 도서가 전부였다. 이 책은 엘레오노르라는 인물에 대해 세밀하고도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첫 책이다. 베스트셀러 《엘리자베스 1세》, 《헨리 8세와 여인들》을 쓴 역사가이자 유명 작가인 앨리슨 위어는 엘레오노르의 파란만장한 삶의 발자취를 되짚어가며 생동감 넘치는 중세 유럽사를 풀어내었다.
매혹적인 요부 혹은 현명한 왕비
아키텐의 여공 엘레오노르는 중세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자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살아생전에는 물론이고 8백 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극과 극의 평가가 공존한다. 그녀는 아름답고, 지적이고, 당돌했으며, 끊임없이 불미스러운 스캔들을 몰고 다닌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는 자신이 나고 자란 영지에 대해 평생 뜨거운 애정과 책임감을 잃지 않았던 자비로운 통치자였으며, 여러 왕의 훌륭한 조언자이자 현명한 모후이기도 했다.
엘레오노르의 명성에 따라붙은 전설들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그녀의 참된 모습에 다가가기 어려웠다. 프랑스 왕과 이혼하고 당시 막 부상하기 시작한 또 다른 실력자와 재혼한 요부, 숙부와 예비 시아버지를 상대로 염문을 뿌렸던 발칙한 간부姦婦의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십자군 원정에 동행할 당시의 온갖 스캔들이나, 남편 헨리 2세와 왕자들 간의 권력 다툼에 개입하여 아들들이 부왕에게 반란을 일으키도록 배후 조종했던 일은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쐐기를 박았다(셰익스피어의 희곡 《존 왕》에서 엘레오노르는 ‘타락한 할망구, 하늘과 땅을 망가뜨리는 괴물’로 묘사된다).
지은이는 일차원적이고 편협한 평가로 일축되어왔던 엘레오노르의 면면을 한 켜씩 들추어낸다. 그리하여 수많은 1차 사료와 2차 사료를 종합한 치밀한 연구 끝에 그녀를 가장 생생하고 객관적으로 포착하는 데 성공해냈다. 그 덕분에 비로소 우리는 ‘페르풀크라Perpulchra’, ‘아름답다는 말 그 이상’의 칭송을 들었던 화려하고 철없던 왕비가 ‘미덕의 꽃’으로, 모두의 존경을 받는 중년과 노년의 대비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차분히 추적해갈 수 있게 되었다.
한 여인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중세 역사 연대기
이 책은 단순히 엘레오노르의 전기는 아니다. 한 인물을 통해 보는 중세 유럽사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엘레오노르의 드라마틱한 개인적 삶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12세기 봉건제의 구조 아래 유럽의 모습과 정세,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국이 기틀을 세워가는 역사적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은이는 리처드가 무공을 세운 것으로 유명한 아크레 전투를 비롯하여 십자군 전쟁의 실상에 대해 자세히 들려준다. 또한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종교와 정치의 갈등도 생생하게 그려내었는데, 특히 클래런던 헌장을 둘러싼 헨리 2세와 성 토머스 베켓의 불화의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감탄할 만큼 실감난다.
기사도 정신과 음유시인의 시가 꽃피웠던 중세 궁정 문화를 엿보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묘미이다. 지은이는 당시 왕족과 귀족, 기사계급, 평민들의 의식주 생활에 대해서 상세히 다루고 있으며(p.64, 74, 178~195, 208~213), 엘레오노르를 찬양하는 음유시인의 노래나 각종 서한들을 풍부하게 인용해 놓아(p.170, 202, 305, 395) 당시의 시대상과 중세 감성을 한껏 느낄 수가 있다. 또 자신을 죽게 만든 궁수에게 “살아라, 살아서 나의 덕을 입고 대낮의 빛을 보라.”라고 말하는 사자심왕 리처드의 사망 장면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감동적이다(p.428). 드세고 제멋대로인 봉건 영주들을 진압하려 고군분투하는 군주나, 다혈질에다 온갖 술수를 동원해 배신을 일삼는 중세인들의 모습은 중세 로망을 방불케 하며 아스라이 오랜 이국 이야기와 환상의 세계를 선사한다.
이 역사의 현장에서 엘레오노르는 프랑스 남부의 문화적인 환경에서 공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당시 여성이 읽고 쓰기를 배우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다. 귀족 여성이라 해도 교육이라고는 신부수업을 받는 게 고작이었다.), 화려한 궁정생활을 누렸다. 루이 7세와 결혼한 후 보여준 사치스럽고 파격적인 행실은 프랑스 귀족들과 성 베르나르두스를 비롯한 성직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으나, 한편으로는 많은 예술인들을 후원하며 프랑스 왕실을 예술적인 환경으로 바꾸어 놓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 자신의 영토에 관해서 만큼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프랑스 왕실에서의 단조로운 생활을 답답하게 느낀 엘레오노르는 루이 7세의 십자군 원정에 귀부인들을 거느리고 동행했다. 그곳에서 엘레오노르는 이동에 방해가 되었을 뿐 아니라 숙부 안티오키아의 레몽과 노예들을 상대로 추문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루이 왕과의 사이가 틀어지자 엘레오노르는 근친혼을 빌미로 교회의 동의를 얻어냈고, 이혼을 감행했다.
그러나 엘레오노르를 그런 팜므 파탈로만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왕가와 귀족가의 여인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거나 수도원으로 은퇴하는 나이에 엘레오노르의 공적 생활은 비로소 만개한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이 전쟁을 위해 떠난 동안 그들을 대신하여 섭정을 맡아 정력적으로 정무를 이끌었다. 또한 그녀는 아들의 신붓감을 인도해 오기 위해, 프랑스 왕과 결혼시킬 손녀딸을 정해 데려오기 위해, 리처드의 임종의 순간을 지키기 위해서 노년의 몸으로 수차례나 피레네 산맥을 오르내리며 동분서주한 철의 여인이었다. 중세 여인으로서는 이례적인 장수를 누렸던 엘레오노르는 여든여덟의 나이로 눈을 감기까지 열 명의 자식들 중 여덟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평생 그들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현명한 조언자 역할을 했다.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네 명의 왕들
엘레오노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각양각색의 왕들 네 명을 소개한다. 역사에 남아 현대까지도 연구 대상으로, 또는 문학과 영화의 주인공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이들은, 엘레오노르의 남편들이자 그녀가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아들들이다.
① 첫 번째 남편, 프랑스의 왕 루이 7세(1121-1180)
루이 6세의 둘째 아들이었던 루이 7세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유년 시절을 생드니 수도원의 ‘꼬마 수사’로 보냈으나, 장손 필리프의 죽음으로 왕위를 이었다. 성인군자나 다름없는 성품을 지녔던 루이 7세는 평생을 ‘미덕의 표상’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왕비를 ‘이성을 잃을 지경으로’ 사랑했지만 자유분방하고 문화적인 환경에서 자란 엘레오노르는 남편의 고리타분한 성격과 프랑스 궁정 생활을 답답하게 느꼈다.
② 두 번째 남편,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지닌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1133-1189)
‘앙주의 앙리’로도 알려져 있다. 19세에 열한 살 연상의 엘레오노르를 신부를 맞이하여 프랑스 국토의 서반부를 수중에 넣었고, 스티븐 왕이 죽자 플랜태저넷 왕가 출신의 첫 번째 잉글랜드 왕이 되었다. 헨리와 엘레오노르 둘 다 열정적이고 활동적이며 드센 성격의 소유자였고 야망과 이해관계 면에서도 잘 맞는 배우자였다. 그러나 아들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 배후에 왕비가 있음을 눈치챈 헨리는 오랜 세월 그녀를 감금하기도 했다.
③ 사자심왕 리처드 1세(1157-1199)
헨리 1세와 엘레오노르의 셋째로 태어난 리처드는 엘레오노르가 ‘내 노년의 지팡이, 내 두 눈의 빛’이라 부를 만큼 가장 아끼는 아들이었다. 부모의 성격을 빼닮아 정열적이고 성미가 급했으며 엄청난 색정광으로 알려져 있다. 3차 십자군 전쟁에 출정해 용맹을 떨쳐 사자심왕이라는 별칭을 얻고 수많은 기사도 문학과 무훈시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를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 묘사하는 한편, 재위 기간 대부분을 외지에 나가 있으면서 군비와 자신의 몸값으로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인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면모도 다루고 있다.
④ 무지왕 존(1166-1216)
헨리가 가장 사랑했던 막내아들로, 리처드 1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부왕 때의 영토가 모두 형들에게 분배되고, 프랑스와의 싸움으로 대륙에 있던 영토 대부분을 상실했기 때문에 ''무지왕無地王''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귀족들의 강압에 못 이겨 ‘마그나카르타(대헌장)’를 승인하기도 했다. 악한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그는 유능한 행정관이었고 사법질서 확립과 복지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으며, 형 리처드와 달리 대륙보다 잉글랜드 왕국을 통치하는 데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인 왕이었다.
▣ 작가 소개
저자 앨리슨 위어 Ailson Weir
영국의 역사가이자 작가, 소설가. 노스웨스턴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역사교육학을 전공했다. 철저한 연구와 고증을 바탕으로 주로 중세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소설과 같은 유려한 문장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역사는 모든 이들의 것”이라는 소신에 따라 ‘대중적인 역사 쓰기’를 지향하는 그녀는 영미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있으며 매년 수십 차례의 강연을 한다. 그녀의 저서들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데 그치지 않고, 많은 역사학자들에 의해 자료로 인용되며 역사 교과서 및 교양서로 널리 애독되고 있다.
국내에도 소개된 《헨리 8세와 여인들》,《엘리자베스 1세》는 인문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고, 《헨리 8세의 후예들》,《9일 여왕: 레이디 제인 그레이》 등도 널리 알려져 많은 팬을 확보했다. 이 책 《아키텐의 엘레오노르》는 지은이가 철저한 자료 분석과 연구를 거듭하여 나온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녀의 명성에 걸맞게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넘어, 역사와 전설의 경이로운 결합을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밖의 책으로는 《장미전쟁 The Wars of the Roses》,《이사벨라 여왕 Queen Isabella》,《영국의 왕가 Britain''s Royal Families》,《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Mary, Queen of Scots》,《군주의 연인 캐서린 스윈퍼드 Mistress of the Monarchy》,《런던타워의 왕자들 The Princes in the Tower》 등이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영미권의 베스트셀러이다.
역자 곽재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강의하며, 문화 ? 예술 분야의 번역에 종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미술의 언어》,《다빈치코드의 비밀》,《다크 컬처》,《성형수술의 문화사》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역사와 전설 속의 위대한 여인을 기억하며 18
서문 22
프롤로그: 1152년 5월 18일 25
1. 풍요로운 아키텐 28
2. 미덕의 표상 56
3. 악마의 부추김 78
4. 예루살렘으로! 106
5. 정당한 이혼 134
6. 행복한 결말 157
7. 왕국에 관한 모든 것 178
8. 신의 은총을 받은 잉글랜드 왕비 엘레오노르 196
9. 왕께서 기적을 행하셨다 214
10. 날로 깊어가는 의혹 235
11. 성스러운 순교자 257
12. 새끼들이 깨어날지니 273
13. 왕비님과 왕자님들을 조심하십시오 286
14. 가여운 포로 304
15. 패배한 왕, 수치, 수치로다 327
16. 독수리가 세 번째 둥지에서 기쁨을 찾으리라 348
17. 연륜에 대한 찬사 364
18. 악마가 풀려난다네! 389
19. 내 노년의 지팡이 411
20. 가장 경애하는 엘레오노르 433
21. 악인의 소생은 번성하지 못하리라 449
22. 촛불이 꺼지다 464
엘레오노르의 가계도 478
참고문헌 483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
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
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