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오백년 조선문단의 특별한 존재, 16세기의 위대한 문학가 백호 임제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87)는 흔히 황진이의 무덤을 보고 지었다고 전해지는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로 시작되는 시조나 기생 한우와 주고받은 시조로 친근한 시인이다. 그러나 그를 그저 풍류를 즐기던 문인의 한 사람으로 기억하기에는 그의 문학세계는 넓고도 높고, 깊다. 같은 시대를 산 문인 허균(許筠)은 백호의 문학을 두고 “인류문자가 생긴 이래 별문자(別文字)이다. 천지간에 이 문자를 얻지 못했다면 하나의 결함으로 될 것이다”라고 했다. 백호 문학이 없다면 오백년 조선문학이 충만하지 못했으리라는 이 격찬의 발언은 백호의 문학세계를 오늘 다시 즐길 근거를 보여준다. 자신의 임종 자리에서 약소국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곡을 하지 말라고 호령한 남다른 기상과 기생의 연시를 대신 써줄 만큼의 낭만을 함께 지녔고, 시와 산문에서 모두 이름이 높았으며, 활달하고도 섬세한 작품세계 또한 비할 데 없이 독창적이다.
울울한 생애가 이룩한 높은 예술적 성취
백호는 생전에 산문작가로 명성이 높았다. 「수성지(愁城誌)」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화사(花史)」 등 한번쯤 제목을 들어보았을 산문적 소설들은 모두 그가 마주한 현실세계의 부조리와 불의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급제해 벼슬살이에 나선 첫 3년 동안에 지은 것들이다. 허구적 기법을 활용했지만 「수성지」(1576)에 그려진 충신과 간신의 대립이라든가 군주(천군)를 수심에 빠뜨리는 상황 등은 당대 정치현실의 생생한 반영이기도 하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생(원호)이 꿈속에서 단종과 사육신을 만나는 내용으로 충절을 말한 「원생몽유록」(1576)은 몽자류 소설을 한 차원 높였다는 문학적 평가를 받지만, 이에 더해 당대의 금기인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한 것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금기를 넘어 인간사의 부조리를 비판한 과감성은 동시대 사람들의 큰 공감을 얻어 국역본까지 만들어졌고, 사대부만 아니라 부녀자층까지 은밀하고도 폭넓게 읽혔다 한다. 마치 1970,80년대 숱한 판금서적과 지하출판물의 존재를 보는 듯한 일화이다. 「화사」(1578) 또한 식물세계의 여러 꽃을 군왕과 신하로 의인화하여 현실사회를 풍자하고 이상사회를 향한 소망을 피력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백호가 30세 되던 해에 쓴 것으로, 당쟁이 격화되어 동서 대립이 심각하던 시절이다.
활달한 기상과 큰 포부를 지니고 벼슬살이를 시작한 백호의 존재를 당파싸움에 눈먼 당대 조선사회는 용납하지 못했다. 백호의 호방한 성격도 헐뜯고 비방하며 편당을 지어 세상의 공명을 얻으려는 비열한 세태에 타협하지 못했다. 벼슬길에서 펴보려던 큰뜻은 사무치는 울분과 자조로 바뀌었다. 그러나 뛰어난 문인들에게 그렇듯이 이런 자기 시대와의 불화는 백호의 문학활동에 풍부한 자양분을 제공했다. 마흔살이 못 되는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이고도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선보였으니, 생전에는 산문작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 문학적 본령은 시에 있다. 변방의 말직으로 돌며 경험한 벼슬살이의 쓰라림,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에 대한 안타까움, 그 시대에는 드물게도 함경도부터 제주도까지 두루 아름다운 강산을 둘러보고 우러난 풍류 들이 모두 절창의 시로 남았다.
『백호시선』의 구성과 엮은 이들
『백호시선』에는 총 118편의 시와 2수의 시조, 1편의 제문(祭文)을 주제에 따라 가려뽑아 10부로 나누어 실었다. 호한한 무장이던 부친 임진(林晋)의 시조 1수와 기생 한우의 화답 시조 1수, 간략한 연보와 상세한 역주를 함께 싣고, 부마다 이끄는 말로 그 부에 실린 시들의 주제와 작품 선정경위, 창작상황을 붙여 이해를 도왔다. 1부 ‘우주간에 늠름한 사나이’는 드높은 자존감을 지녔던 백호가 현실과 부딪히며 겪은 자조와 애환이, 2부에는 제주도에 근무하던 아버지를 뵈러 가 접한 제주도 풍물과 한라산 비경이, 3부와 4부에는 자신이 북방 변경의 벼슬살이로 길을 오갈 때의 고단함과 길에서 보고들은 사람살이의 서글픈 정경이 담겼다. 5부 ‘수줍어서 말 못하고’는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시들로, 당대 누구보다 낭만과 풍류를 즐기던 문인 백호의 다감함을 보여준다. 5부의 끝에는 황진이 무덤을 지나며 읊었다는 시조와 한우와 주고받은 시조를 말미에 붙였다. 6부 ‘밝은 달 싣고 간 배’는 당대의 고승 휴정 스님을 비롯한 불가의 교유를 그리는데, 마지막 시 「금선요(金仙謠)」는 불교의 이야기를 도가적 분위기로 풀어낸 장시로, 신비롭고 호탕한 느낌을 주는 걸작이다. 7부는 서울 인근에 있던 집을 오가는 자신의 심경, 절친한 시우(詩友)들과 삼각산 일대를 유람하며 주고받은 시들이, 8부는 각기 평양과 개성을 노래한 장시 2수가 실렸다. 평양과 개성 두 고도(古都)의 역사와 옛 왕조의 흔적,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생활모습, 사랑과 이별의 정조를 풀어낸 대작으로, 두 곳은 모두 백호 문학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다. 9부는 전라도 나주의 고향과 고향 사람, 형제와 지인들에 대한 그리움 가득한 시들이다. 10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는 먼길을 가는 벗들에 대한 이별의 정, 죽은 이들에 대한 슬픔을 노래한 시들이다. 평생의 스승이던 대곡(大谷) 성운(成運) 선생에 대한 만시와 제문, 일찍 죽은 큰딸을 애도한 「망녀전사(亡女尊詞)」는 특히 절절하고 간곡함이 마음을 울린다. 또한 마지막에 실린 「스스로를 애도함(自挽)」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백호는 풍류 사십년 세월에 자신의 죽음이 슬프기보다 속세를 벗어나 신선세상으로 가는 과정으로 여기고 있다.
이 『백호시선』은 1997년 발간된『역주 백호전집』(창작과비평사)을 모태로 한다. 한문학 연구의 큰 학자이던 우전(雨田) 신호열(辛鎬烈) 선생과 한 세대 아래인 임형택 교수가 함께 역주하다 우전 선생이 1993년 작고하면서 임형택 교수가 마무리한 것이 『역주 백호전집』이었다. 이번 『백호시선』은 다시 임형택 교수와 한 세대 아래 소장학자 이현일 교수가 함께 편역했으니, 세대를 뛰어넘는 공동작업의 열정이 놀랍다. 원숙한 학문과 젊은 감각이 더해져 유려하고 정확한 번역을 낳은 것은 물론, 창작배경과 전거를 상세하고 친절하게 풀어낸 각 부의 이끄는 말과 역주는 4백년 전 한시의 묘미를 오늘의 독자가 흠뻑 느낄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 작가 소개
역 : 임형택
林熒澤
1943년 전남 출생.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1973∼74년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1975년부터는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를 지내다 2009년 정년퇴임을 맞았다. 한국고전문학연구회와 한국한문학연구회의 회장을 역임하였고 대동문화연구원과 동아시아학술원의 책임을 맡아 한국학 진흥과 동아시아학 수립을 위해 노력, 민족문학사연구소 공동대표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한국문학사의 시각』(창작과비평사 1984), 편역서로는 『이조한문단편집』(상·중·하, 일조각 1978) 『이조시대 서사시』(창작과비평사 1992), 공역서로 『역주 백호전집』(창작과비평사 1997) 『실사구시의 한국학』(창비 2000) 『한국문학사의 논리와 체계』(창비 2002) 『문명의식과 실학』(돌베개 2009), 편서로는 『전환기 동아시아 문학』(창작과비평사 1985), 『한국근대문학사론』(한길사 1982), 『임거정의 재조명』(사계절 1988) 등이 있으며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저자 : 백호 임제(林悌)
본관은 나주,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이다. 대곡 성운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577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동인과 서인의 당쟁이 점차 치열해지던 시기에 호탕한 기질과 자유분방한 성격, 남다른 기상을 드러내며 당대의 문장가로 명성을 떨쳤다. 「수성지」「원생몽유록」「화사」와 같은 문제적인 작품을 남겼고, 본격적인 제주기행문으로서는 최초인 『남명소승』을 짓기도 했다. 산문작사로 이름이 났지만 그의 문학적 본령은 시에 있었다.
역자 : 이현일(李炫壹)
1973년 서울 출생. 연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성균관대 한문학과에서 자하(紫霞) 신위(申緯)의 한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후기 한시사가 주전공이며, 주요 논문으로 「낙화시의 계보」 「19세기 한시의 소품취」 등이 있다. 현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있다.
▣ 주요 목차
1부 우주간에 늠름한 사나이
느끼는 대로
회포를 노래함
이 사람
청석동에서
감회
신군형에게 부침
고의
백호에서 지음
희언
관아의 서재에서 허미숙에게 부침
붓 가는 대로
병중에 쓰다
2부 어사화 높이 꽂고 넓은 바다 건너
흔들리는 배에서
파도소리
백운편
백록선인
구름 걷히기를 기원하는 노래
한라산
제주의 민속
영랑곡
송랑곡
모흥혈
배를 매고
3부 길 위에서
고당을 지나며
한풍루에서
기행
행로난
선천 가는 길에
구룡담에서 남쪽으로
길에서
길에서 본 이야기
대곶섬
답청날
돌섬의 석단 위에 올라
취승정
매서운 추위
길에서
대둔사로 놀러 가는 길에 짓다
4부 변새의 노래
꿈을 꾸고 나서
잠령의 민정에서
황초령을 밤에 넘으며
역루
상산협에서
원수대
기행
홍원에서
마운령
적유령
장가행
파저강
북평사 이영을 송별하며
경성판관으로 가는 황경윤을 보내며
[붙임] 임진의 시조
5부 수줍어서 말 못하고
수줍어서 말 못하고
복암사에서 우연히 염체로 짓다
탐라 기생에게
기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어느 여인을 위하여
거문고 아가씨에게
그네타기 노래
옥정에게
무제
몽선요
평양 기생을 대신하여 그의 정인에게
이별하는 마음
[붙임] 시조 3수
6부 밝은 달 싣고 간 배
성불암에서 휴정 스님을 맞아 이야기하다
처영에게
보원상인에게
대둔사
일선의 강원
원오에게
무위사에 묵으며
장춘동
금선요
7부 서울 주변의 풍광
중흥동으로 들어가며
무릉계
사한동에서
삼각산 연구
수월정 주변의 여덟 명승
압구정
양화나루
서울로 가며
새벽에 저자도에 정박하여 서울을 바라보다
비 오는 날 서울 집에서
8부 고도를 찾아서
패강가
송도회고 시에 차운하다
9부 고향, 고향 사람들
배 안에서 작별하며
주룡나루
보광사의 두 스님에게
금리에 아우들을 두고 떠나며
송추를 지나며 소회를 읊다
아우 환의 시에 차운하여
고향의 천진 스님에게
우 노장에게
백호 가는 길에
배를 타고 앙암 주위를 노닐며
배 젓는 노래
금성곡
오산곡
초산곡 월출산 노래
도갑사 동구
월남사 옛터에 들러
10부 삶과 죽음의 갈림길
고선건에게
회계로 부침
서울 가는 청계를 송별하며
장필무 장군을 추억하며
지천의 시에 차운하여
이달의 시에 차운하여
서울로 가는 순무사 허봉에게
고석정에서
안 거사가 요성으로 떠나며 이별시를 청하기에
김시극의 부채에 청계의 시를 차운하여 쓰다
대곡 선생 만사
[붙임] 대곡 선생 제문
백옥봉 만사
관원 선생을 애도함
중부 풍암 선생 만사
망녀전사
스스로를 애도함
연보
원제 찾아보기
오백년 조선문단의 특별한 존재, 16세기의 위대한 문학가 백호 임제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87)는 흔히 황진이의 무덤을 보고 지었다고 전해지는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로 시작되는 시조나 기생 한우와 주고받은 시조로 친근한 시인이다. 그러나 그를 그저 풍류를 즐기던 문인의 한 사람으로 기억하기에는 그의 문학세계는 넓고도 높고, 깊다. 같은 시대를 산 문인 허균(許筠)은 백호의 문학을 두고 “인류문자가 생긴 이래 별문자(別文字)이다. 천지간에 이 문자를 얻지 못했다면 하나의 결함으로 될 것이다”라고 했다. 백호 문학이 없다면 오백년 조선문학이 충만하지 못했으리라는 이 격찬의 발언은 백호의 문학세계를 오늘 다시 즐길 근거를 보여준다. 자신의 임종 자리에서 약소국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곡을 하지 말라고 호령한 남다른 기상과 기생의 연시를 대신 써줄 만큼의 낭만을 함께 지녔고, 시와 산문에서 모두 이름이 높았으며, 활달하고도 섬세한 작품세계 또한 비할 데 없이 독창적이다.
울울한 생애가 이룩한 높은 예술적 성취
백호는 생전에 산문작가로 명성이 높았다. 「수성지(愁城誌)」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화사(花史)」 등 한번쯤 제목을 들어보았을 산문적 소설들은 모두 그가 마주한 현실세계의 부조리와 불의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급제해 벼슬살이에 나선 첫 3년 동안에 지은 것들이다. 허구적 기법을 활용했지만 「수성지」(1576)에 그려진 충신과 간신의 대립이라든가 군주(천군)를 수심에 빠뜨리는 상황 등은 당대 정치현실의 생생한 반영이기도 하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생(원호)이 꿈속에서 단종과 사육신을 만나는 내용으로 충절을 말한 「원생몽유록」(1576)은 몽자류 소설을 한 차원 높였다는 문학적 평가를 받지만, 이에 더해 당대의 금기인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한 것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금기를 넘어 인간사의 부조리를 비판한 과감성은 동시대 사람들의 큰 공감을 얻어 국역본까지 만들어졌고, 사대부만 아니라 부녀자층까지 은밀하고도 폭넓게 읽혔다 한다. 마치 1970,80년대 숱한 판금서적과 지하출판물의 존재를 보는 듯한 일화이다. 「화사」(1578) 또한 식물세계의 여러 꽃을 군왕과 신하로 의인화하여 현실사회를 풍자하고 이상사회를 향한 소망을 피력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백호가 30세 되던 해에 쓴 것으로, 당쟁이 격화되어 동서 대립이 심각하던 시절이다.
활달한 기상과 큰 포부를 지니고 벼슬살이를 시작한 백호의 존재를 당파싸움에 눈먼 당대 조선사회는 용납하지 못했다. 백호의 호방한 성격도 헐뜯고 비방하며 편당을 지어 세상의 공명을 얻으려는 비열한 세태에 타협하지 못했다. 벼슬길에서 펴보려던 큰뜻은 사무치는 울분과 자조로 바뀌었다. 그러나 뛰어난 문인들에게 그렇듯이 이런 자기 시대와의 불화는 백호의 문학활동에 풍부한 자양분을 제공했다. 마흔살이 못 되는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이고도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선보였으니, 생전에는 산문작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 문학적 본령은 시에 있다. 변방의 말직으로 돌며 경험한 벼슬살이의 쓰라림,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에 대한 안타까움, 그 시대에는 드물게도 함경도부터 제주도까지 두루 아름다운 강산을 둘러보고 우러난 풍류 들이 모두 절창의 시로 남았다.
『백호시선』의 구성과 엮은 이들
『백호시선』에는 총 118편의 시와 2수의 시조, 1편의 제문(祭文)을 주제에 따라 가려뽑아 10부로 나누어 실었다. 호한한 무장이던 부친 임진(林晋)의 시조 1수와 기생 한우의 화답 시조 1수, 간략한 연보와 상세한 역주를 함께 싣고, 부마다 이끄는 말로 그 부에 실린 시들의 주제와 작품 선정경위, 창작상황을 붙여 이해를 도왔다. 1부 ‘우주간에 늠름한 사나이’는 드높은 자존감을 지녔던 백호가 현실과 부딪히며 겪은 자조와 애환이, 2부에는 제주도에 근무하던 아버지를 뵈러 가 접한 제주도 풍물과 한라산 비경이, 3부와 4부에는 자신이 북방 변경의 벼슬살이로 길을 오갈 때의 고단함과 길에서 보고들은 사람살이의 서글픈 정경이 담겼다. 5부 ‘수줍어서 말 못하고’는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시들로, 당대 누구보다 낭만과 풍류를 즐기던 문인 백호의 다감함을 보여준다. 5부의 끝에는 황진이 무덤을 지나며 읊었다는 시조와 한우와 주고받은 시조를 말미에 붙였다. 6부 ‘밝은 달 싣고 간 배’는 당대의 고승 휴정 스님을 비롯한 불가의 교유를 그리는데, 마지막 시 「금선요(金仙謠)」는 불교의 이야기를 도가적 분위기로 풀어낸 장시로, 신비롭고 호탕한 느낌을 주는 걸작이다. 7부는 서울 인근에 있던 집을 오가는 자신의 심경, 절친한 시우(詩友)들과 삼각산 일대를 유람하며 주고받은 시들이, 8부는 각기 평양과 개성을 노래한 장시 2수가 실렸다. 평양과 개성 두 고도(古都)의 역사와 옛 왕조의 흔적,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생활모습, 사랑과 이별의 정조를 풀어낸 대작으로, 두 곳은 모두 백호 문학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다. 9부는 전라도 나주의 고향과 고향 사람, 형제와 지인들에 대한 그리움 가득한 시들이다. 10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는 먼길을 가는 벗들에 대한 이별의 정, 죽은 이들에 대한 슬픔을 노래한 시들이다. 평생의 스승이던 대곡(大谷) 성운(成運) 선생에 대한 만시와 제문, 일찍 죽은 큰딸을 애도한 「망녀전사(亡女尊詞)」는 특히 절절하고 간곡함이 마음을 울린다. 또한 마지막에 실린 「스스로를 애도함(自挽)」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백호는 풍류 사십년 세월에 자신의 죽음이 슬프기보다 속세를 벗어나 신선세상으로 가는 과정으로 여기고 있다.
이 『백호시선』은 1997년 발간된『역주 백호전집』(창작과비평사)을 모태로 한다. 한문학 연구의 큰 학자이던 우전(雨田) 신호열(辛鎬烈) 선생과 한 세대 아래인 임형택 교수가 함께 역주하다 우전 선생이 1993년 작고하면서 임형택 교수가 마무리한 것이 『역주 백호전집』이었다. 이번 『백호시선』은 다시 임형택 교수와 한 세대 아래 소장학자 이현일 교수가 함께 편역했으니, 세대를 뛰어넘는 공동작업의 열정이 놀랍다. 원숙한 학문과 젊은 감각이 더해져 유려하고 정확한 번역을 낳은 것은 물론, 창작배경과 전거를 상세하고 친절하게 풀어낸 각 부의 이끄는 말과 역주는 4백년 전 한시의 묘미를 오늘의 독자가 흠뻑 느낄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 작가 소개
역 : 임형택
林熒澤
1943년 전남 출생.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1973∼74년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1975년부터는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를 지내다 2009년 정년퇴임을 맞았다. 한국고전문학연구회와 한국한문학연구회의 회장을 역임하였고 대동문화연구원과 동아시아학술원의 책임을 맡아 한국학 진흥과 동아시아학 수립을 위해 노력, 민족문학사연구소 공동대표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한국문학사의 시각』(창작과비평사 1984), 편역서로는 『이조한문단편집』(상·중·하, 일조각 1978) 『이조시대 서사시』(창작과비평사 1992), 공역서로 『역주 백호전집』(창작과비평사 1997) 『실사구시의 한국학』(창비 2000) 『한국문학사의 논리와 체계』(창비 2002) 『문명의식과 실학』(돌베개 2009), 편서로는 『전환기 동아시아 문학』(창작과비평사 1985), 『한국근대문학사론』(한길사 1982), 『임거정의 재조명』(사계절 1988) 등이 있으며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저자 : 백호 임제(林悌)
본관은 나주,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이다. 대곡 성운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577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동인과 서인의 당쟁이 점차 치열해지던 시기에 호탕한 기질과 자유분방한 성격, 남다른 기상을 드러내며 당대의 문장가로 명성을 떨쳤다. 「수성지」「원생몽유록」「화사」와 같은 문제적인 작품을 남겼고, 본격적인 제주기행문으로서는 최초인 『남명소승』을 짓기도 했다. 산문작사로 이름이 났지만 그의 문학적 본령은 시에 있었다.
역자 : 이현일(李炫壹)
1973년 서울 출생. 연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성균관대 한문학과에서 자하(紫霞) 신위(申緯)의 한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후기 한시사가 주전공이며, 주요 논문으로 「낙화시의 계보」 「19세기 한시의 소품취」 등이 있다. 현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있다.
▣ 주요 목차
1부 우주간에 늠름한 사나이
느끼는 대로
회포를 노래함
이 사람
청석동에서
감회
신군형에게 부침
고의
백호에서 지음
희언
관아의 서재에서 허미숙에게 부침
붓 가는 대로
병중에 쓰다
2부 어사화 높이 꽂고 넓은 바다 건너
흔들리는 배에서
파도소리
백운편
백록선인
구름 걷히기를 기원하는 노래
한라산
제주의 민속
영랑곡
송랑곡
모흥혈
배를 매고
3부 길 위에서
고당을 지나며
한풍루에서
기행
행로난
선천 가는 길에
구룡담에서 남쪽으로
길에서
길에서 본 이야기
대곶섬
답청날
돌섬의 석단 위에 올라
취승정
매서운 추위
길에서
대둔사로 놀러 가는 길에 짓다
4부 변새의 노래
꿈을 꾸고 나서
잠령의 민정에서
황초령을 밤에 넘으며
역루
상산협에서
원수대
기행
홍원에서
마운령
적유령
장가행
파저강
북평사 이영을 송별하며
경성판관으로 가는 황경윤을 보내며
[붙임] 임진의 시조
5부 수줍어서 말 못하고
수줍어서 말 못하고
복암사에서 우연히 염체로 짓다
탐라 기생에게
기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어느 여인을 위하여
거문고 아가씨에게
그네타기 노래
옥정에게
무제
몽선요
평양 기생을 대신하여 그의 정인에게
이별하는 마음
[붙임] 시조 3수
6부 밝은 달 싣고 간 배
성불암에서 휴정 스님을 맞아 이야기하다
처영에게
보원상인에게
대둔사
일선의 강원
원오에게
무위사에 묵으며
장춘동
금선요
7부 서울 주변의 풍광
중흥동으로 들어가며
무릉계
사한동에서
삼각산 연구
수월정 주변의 여덟 명승
압구정
양화나루
서울로 가며
새벽에 저자도에 정박하여 서울을 바라보다
비 오는 날 서울 집에서
8부 고도를 찾아서
패강가
송도회고 시에 차운하다
9부 고향, 고향 사람들
배 안에서 작별하며
주룡나루
보광사의 두 스님에게
금리에 아우들을 두고 떠나며
송추를 지나며 소회를 읊다
아우 환의 시에 차운하여
고향의 천진 스님에게
우 노장에게
백호 가는 길에
배를 타고 앙암 주위를 노닐며
배 젓는 노래
금성곡
오산곡
초산곡 월출산 노래
도갑사 동구
월남사 옛터에 들러
10부 삶과 죽음의 갈림길
고선건에게
회계로 부침
서울 가는 청계를 송별하며
장필무 장군을 추억하며
지천의 시에 차운하여
이달의 시에 차운하여
서울로 가는 순무사 허봉에게
고석정에서
안 거사가 요성으로 떠나며 이별시를 청하기에
김시극의 부채에 청계의 시를 차운하여 쓰다
대곡 선생 만사
[붙임] 대곡 선생 제문
백옥봉 만사
관원 선생을 애도함
중부 풍암 선생 만사
망녀전사
스스로를 애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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