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그러니까 이 글은,
만개하지 못한 고백 때문에 쓰였어요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이원하 시인의 첫 산문집 출간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첫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를 펴내며 신선한 시와 독보적 재능으로 이름을 알린 이원하 시인이 첫 산문집을 출간한다. 이 산문집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에는, 그가 시인이 되기 위해 제주로 내려가 살면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시를 쓴 시작기詩作記이자 동시에 사랑하는 상대에게 전하는 고백과도 같은 산문들이 낱낱이 담겨 있다. 한 편 한 편의 산문들은 시인이 쓴 한 편 한 편의 시와 결을 같이 하면서도 산문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보다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사랑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까. 모두가 다 전문가처럼 매뉴얼을 다 열어본 것처럼 사랑하면 좋겠지만, 사랑은 할 때마다 매번 처음이라서 우리는 어렵고 서툰 모습을 보이고 만다. 오늘은 말하겠다고 결심하지만, 고백은 내내 입술에만 머무르고 마음과 행동이 따로 논다. 그러곤 돌아와서 그날의 일들을 곱씹어보며 진심을 되짚는다. 시인 역시 그랬다. 그의 앞에서 하지 못한 말들은 쌓여만 가고 표현하지 못한 진심들이 흩어질까 고스란히 글에 담았다. 시인이 때론 혼잣말로 때론 연서로 때론 속삭이듯이 써내려간 글의 사이사이는 시인이 머무른 공간에서 직접 눈에 담고 찍은 사진들이 마치 책 사이에 끼워진 꽃잎처럼, 책갈피로 자리하고 있다.
인생에는 여러 굴곡이 있겠지만,
내 사랑은 직선이에요
처음엔 시를 쓰기 위해 무작정 제주에 갔고 그곳에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살게 되었는데 그렇게 살다보니 한 사람만 그리워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시작된 제주, 사랑하는 ‘그’에게 마음이 붙박여 있는 제주를 떠나보면 달라질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기대하고 실망했다가도 다시 “판이 뒤집히는 날이 올거라”라 긍정한다. 시인은 ‘그’에게 끌려다니기보다는 그를 쫓아다닌다고 말하며 자신의 사랑에 주체성을 보인다. 사랑의 대상이자 시인이 내내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그’를 향해 자신의 마음을 온통 드러내는 시인의 문장은 어마어마하게 솔직하면서도 엉뚱하고 때로는 음흉하며 동시에 귀엽고 사랑스럽다. 마치 우리의 귓가에 비밀을 속삭여주듯 조곤조곤 쏟아내는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진심 앞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이 사랑을 응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꺼내지 못한 말 한마디가 마음속에 살아”서 입술에만 머무르던 고백을 끝내 내밀어보려 하는 시인의 사랑과 그 사랑의 과정을 지켜본 우리는 끝내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젠 고백만이 답이겠지요
이 책을 한 권의 긴 연서로 읽어도 좋을 것이고, 독자들에게만 비밀스럽게 속삭이는 ‘우리끼리만 아는’ 이야기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마음속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는 점에서 고백임은 변함없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고백. 이 책의 마침표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찍고 맺힐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지만, 이 사랑이 가진 환한 기운이 페이지 너머의 어디선가 사랑을 키워가고 있을 다른 누군가에게도 함께 공감의 미소를 짓게 했으면 좋겠다.
작가 소개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를 펴냈다.
목 차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동경은 편지조차 할 줄 모르고
눈 감으면 나방이 찾아오는 시간에 눈을 떴다
서운한 감정은 잠시라도 졸거나 쉬지 않네요
당신이 꽃으로 글을 쓸 때 나는 당신으로 시를 쓰지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긴 하루의 동선
여전히 슬픈 날이야, 오죽하면 신발에 달팽이가 붙을까
조개가 눈을 뜨는 이유 하나 더
바다는 아래로 깊고 나는 뒤로 깊다
이 시계는 느리게 가니까 다른 걸 쳐다보라고 했어요
입에 담지 못한 손은 꿈에나 담아야 해요
섬은 우산도 없이 내리는 별을 맞고
한입 크기의 연어 조각으로 오늘을 지우고 싶어
코스모스가 회복을 위해 손을 터는 가을
필 꽃 핀 꽃 진 꽃
첫 눈물을 흘렸던 날부터 눈으로 생각해요
약속된 꽃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묻는 말들
아무리 기다려도 겨울만 온다
더 중요한 건 말하지 않아도 돼
싹부터 시작한 집이어야 살다가 멍도 들겠지요
선명해진 확신이 노래도 부를 수 있대요
네팔에서의 밤들
네팔에서의 날들
빛이 밝아서 빛이라면 내 표정은 빛이겠다
빈 그릇에 물을 받을수록 거울이 넓어지고 있어요
바다를 통해 말을 전하면 거품만 전해지겠지
풀로 뒤덮인 길과 팔짱을 끼던 날이었어요
마음에 없는 말을 찾으려고 허리까지 다녀왔다
동백은 예쁘고 할말을 숨긴 소녀
그는 나보다 아름다워요
그늘을 벗어나도 그게 비밀이라면
귤의 이름은 귤, 바다의 이름은 물
가만히 있다보니 순해져만 가네요
하고 싶은 말 지우면 이런 말들만 남겠죠
장미가 우릴 비껴갔어도 여백이 많아서 우린 어쩌면
참고 있느라 물도 들지 못하고 웃고만 있다
비어 있는 모든 집들은 그가 사는 집이다
나는 바다가 채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같다
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투명해진다
풀밭에 서면 마치 내게 밑줄이 그어진 것 같죠
제주를 떠나 있어 보려고요
‘부다페스트’라고 발음하면 어떻게 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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