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온 세계가 낯선 얼굴을 한 이상한 저녁에,
사랑과 기억으로 써 내려간 시편들
박인식의 여섯 번째 시집 『이상한 저녁에』가 출간되었다. 다양한 시제(詩題)를 다루며 지치지 않고 부단히 시를 창작해 온 시인은 문득 모든 것이 낯설어지는 순간, 다시 한 번 사랑과 기억을, 끝없이 밀려드는 “어쩔 수 없는 사랑”과 괴로워도 차마 “잃어버릴 수 없는 기억”(「시인의 말」)을 써 내려갔다.
이번 시집은 앞선 모든 시를 품고 있다. 첫 시집에서부터 자신만의 ‘시의 집 한 채’를 빚어온 시인 박인식은 한글 자모의 구성 원리를 시로 담아낸 첫 번째 시집 『겨울모기』, 사랑하는 일과 불태우는 일을 빼곡하게 담은 두 번째 시집 『러빙 고흐 버닝 고흐』, 북한산 인수봉의 존재 의미를 사진과 함께 엮은 세 번째 시집 『인수봉, 바위하다』, 모든 목숨이 존재에서 의미로 넘어가며 알게 모르게 익힌 언어의 비밀을 풀어내고자 한 네 번째 시집 『언어물리학』, 시한부 죽음을 체험하고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써낸 다섯 번째 시집 『내 죽음, 그 뒤』를 거쳐서 어느덧 “익숙한 저녁이 익숙하지 않은 어스름으로 다가오”는(<어느 저녁의 감각>) ‘이상한 저녁에’ 다다랐다.
수없이 마주한 세상이 낯선 얼굴을 내어보일 때 시인은 시를 쓴다. 바위 절벽에서 추락하여 “여름 한 철 시한부 죽음”을 겪고 돌아온(『내 죽음, 그 뒤』) 시인 박인식은 어딘지 이상해진 세계를 맞닥뜨렸다. 시집 속에 그려진 세계는 해가 땅에 그림자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늘이 해시계 돌리듯 해를 돌리고, 땅이 하늘에 구름이라는 그늘을 드리우는 곳이다.(<그늘은 힘이 세다>) “어느 오솔길로 이 저녁을 내려서야 하나” 알 수 없는 낯선 곳에서 헤매이면서도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보이고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들리게 된(<어느 저녁의 감각>) 시인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시 쓰기를 택했다.
“떠날 수 있는 곳은 언제나 집뿐”(<노마드>)이기에 소설가, 미술평론가, 산악인으로서 세계 곳곳을 떠돌았던 박인식의 시 쓰기를 이끈 원동력은 해설에서 짚어냈듯 “온전히 누리기 어려우면서도 끊임없이 솟구치는 사랑의 의지”이다. 이곳에서 그는 “이별보다 두려운─기억에 없다는 망각의 말”을 하며 “낯선 얼굴을 하고 사랑을 몰라”보곤 하는 요양원에 맡겨진 어머니와(<찾다>) “너무 많은 사랑의 기억”을(<열대어 입김같이 그림자도 없이>), “홀로 누렇게 철들어 고개 숙인 / 늦가을”을(<허수아비와 눈사람 그리고 참새>), 모든 피고 지는 것들(<피고 지는 것들끼리 한 오백 년>)을 노래한다. 거듭해서 잊히고 마는 기억을 쉼 없이 되살리고 반추하며 사랑으로 살뜰하게 껴안는다.
그의 시집은 “나는 이제 사랑과 기억의 어떤 내가 아니”며 “삶과 죽음의 어떤 것도 아”니라며 문을 닫는다.(<나보다 나를>) 그러나 그가 빚어낸 마지막 시구는 어쩌면, 그도 모르는 사이 “문득 첫 구를 열 / 마지막 시구”(<첫 문장 또는 끝 문장>)가 될지도 모른다.
작가 소개
박인식
보다 느리고 보다 불편한 걸음 끝
시 근처,
경북 청도에서 1951년 태어났다.
목 차
시인의 말
1부
시 근처
바다
바라보는 사람의 바다
서해 일몰
열대어 입김같이 그림자도 없이
나무와 바위 사이
그늘은 힘이 세다
꽃
2부
스핑크스 다리의 기억
파리 붉은 지붕
인면조의 꿈
종소리
어느 이탈리아식 화양연화
그 가장은
찾다
빈집
아무런 할 일이 없어
용수철을 말해보다
첫 문장 또는 끝 문장
하늘이 눈 감을 때
유토피아
3부
그 겨울의 시
이상한 저녁에
그 새
하얀 나비
대홍수
피고 지는 것들끼리 한 오백 년
곤충 채집통
오월
가을 끝에서
새들의 북쪽
허수아비와 눈사람 그리고 참새
폭염주의보
4부
매
눈사람
달맞이꽃
하늘 물살
벌레
눈치
구름
지붕
모자 1
모자 2
5부
하양의 살갗
ㅇ 또는 ㅁ
따로국밥 해장의 새벽
어쩌다 네팔
모자 3
오이기득권
손톱 같은 눈썹 같은
여인숙을 찾아
새랑
미치도록 미치다
원없이 한없이
6부
태몽
일그러진 자화상
사랑은 오늘도
눈물의 신은 영영 운다
엄마 생각
치매
노마드
당신은
바람의 눈벌판
어느 저녁의 감각
나보다 나를
해설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모자 이경호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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