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것이 사랑이 꿈꾸는 장면이다”
소중한 것이 머물던 시간 속 눅눅한 장면을 꺼내
볕에 말리며 다시 사랑하는 시
비가 소록소록 내리던 어느 여름밤, 가족이 저마다의 꿈속을 돌아다니는 동안, 라디오를 들으며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을 입이 닳도록 발음했던 날을 기억한다. 시는 내 삶에 물방울들이 천천히 창 아래로 모이듯 다가왔다. 이후 모든 형태의 글쓰기가 내 속의 아픔들을 조금씩 소분하고 있었다.
-이기리, 김수영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2020년 김수영문학상을 통해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한 이기리의 두번째 시집 『젖은 풍경은 잘 말리기』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시집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민음사, 2020)를 통해 “밝으면서도 슬픔을 놓지 않는 이상한 풍경 앞으로 독자를 인도”(김언)하는 세계를 선보인 후 2년 만이다. 전작이 소년 시절의 ‘나’가 겪은 불편한 과거를 들춰보다 생긴 눅진한 감정들의 기록이자 그것과의 이별 선언을 담았다면, 이번 시집은 좀더 단단해진 시선과 솔직한 언어로 소중한 모든 것을 그러모으는 50편의 시를 엮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시집은 제목처럼 젖은 감정들이 조금씩 말라가는 장면들의 집합이다. 아끼던 것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 자꾸만 올라오는 후회와 분노에 젖어버리기도 하지만 각각의 장면들을 멀리서 총체적으로 바라보면 제법 잘 마른 풍경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열정이 소멸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양새로 자세를 틀었을 뿐이다. 고통과 상처로 점철되었던 ‘나’를 끌어안은, 사랑했던 것들과의 이별조차 사랑할 준비가 된 시인의 맑은 시선이 오롯이 담겨 있다.
작가 소개
목 차
시인의 말
1부
여백 발화
흙비
번식하는 잠
무언가를 적는 손
꽃꽂이
아포스트로피
극세사
컵이 서로 붙으면
헛것을 보는
모노레일
수양버들
춘수春愁
오지 말아요
히치하이커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다
2부
만약 이루어졌을 세계였어도
나는
반감
갈변하는 과일 속 안온함
손을 풀자 연주를 시작하자
버금가는 날들
유월의 일들
불꽃
죽은 곁
환상 충돌
블록 꽃
불순물
나란한 조명
어제오늘
상쇄
독립 생활
3부
증오
열매는 못 봤지만
유산
버리러 오는 춤
여는 기쁨
역광
서른네 장면
자리를 박찰 때 의자를 뒤로 세게 밀지 말기
일회용품에 관한 딜레마
병원 갔다 오는 길
엄마의 입맛
회복하는 자유
아주 그만두는 축소
일상적 배치
이제 다 지나갔다 남은 것은 단 하나
안식이 온다면
유력한 사람
여백 화자
다시는 이제부터
해설
총체적으로 이해하기ㆍ김정빈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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