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일본에 자주 다닌다고 다 일본과 일본인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일본을 자주 다니며 일본을 더 좋아하고 그래서 더 자주 가는 사람과, 말로는 일본을 미워하고 욕하면서 기회만 있으면 일본 다니는 사람(미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과 일본인을 더 잘 알아가기는 한가지일 텐데, 두 부류의 지일(知日)이 어쩌면 이렇게 다른가?
여기, ‘가장 가까운 외국이자 선진국’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맨주먹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간 남자가 있다. 막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건축을 배우다 돌아와서는 본업인 건축보다 음식으로 눈을 돌려 성공했다. 우동집 ‘와라쿠샤샤’를 운영하면서 SNS와 신문에 칼럼을 쓰고, 그러면서 본업인 건축도 아주 놓지 않고 있다. 몸이 셋이라도 부족할 이 남자의 첫 책, 『우동, 건축 그리고 일본』(남택 지음, 기파랑 刊, 2022)은 제목이 말해 주듯 우동이 계기가 되어 더 많이 들여다보게 된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음식과 건축 에세이 모음이다.
‘조선인’에서 한국인으로
지은이 남택(南沢)은 본래 건축학도다. 그저그런 건축사로 만족할 수 없다며, 서른 살에 아무런 대책 없이 맨손으로 일본에 갔다. 어학연수를 하며 목욕탕 청소, 종이컵 포장, 철거공사 현장 등 밑바닥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마침내 유명한 설계사무소에 들어가고 현상공모에 가작으로 뽑히기도 했으나, 정직원이 아닌 모형 제작 아르바이트 신분이었다. 건축사 자격은 결국 한국에 돌아와 취득했지만, 노숙자의 ‘무릎 아래 눈높이’부터 경험해 본 일본 생활은 그에게 천지개벽 같은 개안(開眼)의 경험을 안겨주었다. 전근대 ‘조선인’이 근대 ‘한국인’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어김없이 일본 관중의 ‘청소 DNA’가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다. 『우동, 건축 그리고 일본』에도 일본인의 청소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다. 한번은 저자의 ‘우동 스승’의 일화다. 스승 역시 제조업과 요식업 양쪽으로 성공했고, 청소는 경영자 시점이다.
히로타 상은 내게 우동 스승이지만 현재는 제조업 사업가다. 그가 내게 말해 준 자기 회사 사훈은 이렇다. 인사 잘하기, 청소 잘하기. 엥? 소학교 1학년 급훈만도 못하다.
“그것만 갖고 회사가 돌아가요?”
“나에게 인사를 안 하는 직원을 불러서 청소 상태를 봤지. 생각대로 잘 안 했길래 바로 해고시켰어. 며칠 뒤 노동부에서 부르더라. 해고된 직원이 사유를 모른다고. 그래서 가서 얘기했지. 인사 안 하고 청소 안 했다. 그랬더니 담당자가 그러더라. ‘그럼 뭐 어쩔 수 없군요’” (‘우동 스승 히로타 상’, 96쪽)
히로타 상은 한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학동에 갈치 고등어나 구워 주고 반(半)한식으로 회나 한 접시 내주는 제주 이름 붙은 식당만은 추천하면 언제나 콜이다.
“이 식당을 좋아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 집은 카운터가 깨끗해. 이런 집은 주인이 직접 관리한다는 뜻이니, 주방은 들여다볼 것도 없어. 이런 집이 한국엔 별로 없어.” (‘우동 스승 히로타 상’, 114쪽)
그리고 알게 모르게 제자는 스승을 닮아간다.
도쿄에서 페친인 최 박사와 만날 약속을 했다. 간다의 ‘야부소바’라는 집을 택했다. 같이 맛있게 소바를 먹었다. 최 박사가 물었다.
“어떠세요, 여기 소바?”
“도쿄에서 가장 깨끗한 유리를 가진 집이네요. 이렇게 유리 청소를 완벽하게 한 집은 처음 봤어요. 그렇다면 음식 맛은 말할 것도 없지요.” (‘맛집, 멋집’, 289쪽)
일본 좀 다녀 본 사람이라면 ‘맞아!’ 하고 맞장구칠 소소한 경험담과 깨달음이 책에 그득하다.
반일 광풍과 코로나에서 살아남기
건축을 하면서 식당에 눈을 돌리게 된 결정적 계기 하나는, 국수전문점 호면당의 인테리어를 맡았다가 그곳 경영자의 ‘신사들의 그릴’이라는 말에 꽂혀서다.
“남자는 고기야. 그런데 수트 입은 멋쟁이들은 직접 집게 잡기도 싫어하지만 고기 냄새가 옷에 배는 것도 아주 싫어하지. 그 니즈를 충족시킬 식당을 만들어 보자고.” (‘신사들의 그릴’, 88~89쪽)
의기투합해 준비한 ‘그릴 마켓오’가 무산되는 대신, 일본식 닭꼬치로 ‘남자들의 그릴’을 구현한 야키도리집을 가로수길에 열었다. ‘와라쿠’ 브랜드의 시작이다.
2011년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에 대지진이 일어나 며칠이나 통신이 끊기고, 일본 지인들의 안부가 궁금해 안절부절하던 지은이는 무턱대고 일본으로 날아간다. 오로지 안부 때문에 왔다는 한국인을 다시 본 ‘우동 스승’과의 운명적인 만남.
“남 상은 내 우동 좋아해?”
“네! 물론이죠! 최곱니다.”
“남 상, 내 우동을 줄게, 가져다 해. 어차피 내 우동집은 투병 때문에 닫기도 했고, 연말에 다시 우동집을 한시적으로 열 테니 그때 와서 배우도록 해.” (‘우동 스승 히로타 상’, 95쪽)
시멘트(건축)도 밀가루(우동)도 ‘물’을 만나야 완성되듯, 그 만남으로 ‘와라쿠샤샤’가 탄생했다.
입소문이 쌓여 방송을 타고, 공항과 백화점에 입접하고 승승장구할 때 문재인 정권의 반일 광풍에 이어 코로나19까지 연이어 직격탄을 맞았다. 제살깎기 하다시피 ‘겨울 산을 기어서 넘기’ 3년의 경험은 시장경제란 무엇인가, 정부는 경제 주체들의 디딤돌인가 걸림돌인가, 그 점에서 한국과 일본, 한국인과 일본인은 어떻게 같고 다른가 성찰할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나와 히로타 상 간의 이런 타협은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좀처럼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일본인인 그는 나에게 한국인처럼 굴었다. ‘그래도… 하지만…’ 이런 것이 통하는 그런 것 말이다. 반면에 나는 한국에서처럼 다짜고짜 사정사정하고 떼쓰기보다 최소한의 것을 지키고 원칙대로 할 각오로 그를 이해시키려고 했으니 어찌 보면 그의 눈에는 일본인처럼 굴었는지 모른다. 그는 일본인이지만 한국에 한 발짝 다가서고 나는 일본에 한 걸음 들어서는 매너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히로타 상과 나의 담판처럼 서로에게 한 발짝 다가가 푸는 것은 두 나라 사이에서는 안 되는 것일까? (‘겨울 산을 기어서’, 341~342쪽)
그 밖에 요식업 경영자의 애환(‘식당 소나타’ ‘식당 블루스’ ‘식당 엘레지’), 식재료와 음식과 맛집·멋집 이야기, 본업이었던 건축 이야기까지, 톡톡 튀는 얘깃거리가 그득하다.
작가 소개
남택
대전 생生
홍익대학교 건축과 졸卒
건축사
IDeA 건축사사무소 이사
일본 푸드애널리스트
와라쿠샤샤 니꾸벤 등 외식브랜드 운영
목 차
(책머리에) ‘을’이 돼서 배워 보니
I. 조선인 일본에 가다
남이 버린 대파
무작정 일본으로
셰프와 스폰서
지갑을 주우면
무릎 아래 세상
목욕탕 청소
나리타 공장
노가다로 대성할 뻔
오디오와 웅변대회
구류 건축설계사무소
건축과 음식
II. 와라쿠 이야기
우동과의 첫 만남
신사들의 그릴
히토가라
우동 스승 히로타 상
미쳐야 미친다 식당 소나타
식당 블루스
식당 엘레지
식자재 이야기
와라쿠 사람들
식당, 공간, 인간
(간주곡) 마음을 짓다 — 건축 이야기
III. 일본, 일본인
첫 만남
도쿄 밥집, 서울 밥집
맛집, 멋집
매력 잃는 한국 시장
음식의 국적
나는 일본이 무섭다
우리 가족 한일관계사
(쓰고 나서) 겨울 산을 기어서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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