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사랑과 평화 만들기
최주식 시인의 시세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아 오고 있는 세계와는 매우 다른 것 같다. 전쟁을 비롯해서 병과 죽음과 가난과 분노와 절망 등 모든 부정적 현실에 비해서 무대가 매우 밝은 조명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세계는 사랑과 웃음과 행복이 넘치는 밝은 세상의 언어들로 충만해 있다. 태극기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삼라만상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상징적 기호로서 음양 5행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면 최주식 시인의 시세계는 음양 오행이 그려진 대한민국이 아니며 또 이 세상 어느 곳도 이처럼 밝지는 않기 때문에 매우 의도적으로 밝게 그려진 세계가 된다,
음양이 해와 달이고 어둠과 밝음이고 여자와 남자이듯이 우주의 삼라만상은 이같은 양극의 대립 또는 상응과 조화일 수 있고, 최주식 시인의 시세계는 일반적으로 이와 달리 밝은 해만 뜨는 낮만 있고 행복과 평화만 있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인식의 편향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밝은 해만 떠 있고 웃음만 넘치고 예쁜 꽃만 만발하고 있다는 것은 그와 반대로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거부와 반발의 결과일 뿐이다. 그 반발과 저항과 거부의 몸짓이 사랑과 평화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문학은 ‘사랑과 평화의 언어’ 또는 ‘사랑과 평화 만들기’ ‘사랑과 평화의 향수香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한 동네 살면 이웃사촌인데
무심히 지나칠 때가 많다
시냇물은 졸졸졸
꽃은 방긋방긋 인사 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장벽을 허무는
인사가 없는 것은
슬픈 일
― 「인사」
최주식 시인은 이렇게 인사를 잘 한다. 원수를 만나도 웃으며 인사부터 할 것이다. 인사는 서로 만나는 사람끼리 이름을 통해서 자기를 소개하는 말이나 행동이다, 고개만 끄덕 해도 소통의 문을 열어주며 상대를 받아 주는 행위가 된다. 그 다음에 이름도 말해주고 직업도 밝히고 사는 곳도 밝히는 것이 따를 수 있다. 전쟁을 하다가도 휴전이나 평화회담의 첫째 단계가 노여움을 거두고 인사 하기다. 이런 작품으로서 「인사」는 평이한 문체로서 시적 기교가 의식적으로 많이 생략되어 있지만 선택된 주제는 오해와 미움과 경쟁상대로서의 불신과 경계와 갈등이 충만한 이 사회를 평화지대로 바꾸기 위한 첫째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다.
나는 누구나
얼굴 마주치면
설령 등을 보일지라도
인사를 한다
이 정도면 매우 의도적이다. 꼭 인사를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상대를 구별하는 차별과 선택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야 된다는 당위의 목적 의식이며 이는 소박하면서도 강한 평화운동이다. 이런 생각은 「성찰의 시간」 「일하며 사랑하며」 「평생소원」 「힘 낼 이유」 등 다수의 작품들의 핵심 주제가 되고 있다.
쉽지 않은
노인복지센터 자원봉사
나는 자원봉사 전문 지식이 부족해
배식 운반을 하고
식탁을 닦고
주변 청소를 하는
단순 노력 봉사를 한다
다른 봉사자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내 작은 정성과 땀방울이
어르신께 힘이 된다는 건
무엇보다 기쁜 일
어르신들을 만나는 날은
나를 닦고 씻는 날이다
―「성찰의 시간」
작자도 젊은이는 아니다. 성숙한 중년의 사업가이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로부터 어르신으로 대접 받을 위치에 있다. 그렇지만 그는 연장자들에게 인사말의 어르신 대접만이 아니라 ‘작은 정성과 땀방울’로 노력 봉사를 해드린다. 봉사에는 특별한 보상이 없다. 스스로 마음의 기쁨을 얻는 것이 봉사다. 이것은 크게 보면 사랑과 평화의 주제 속에 포괄되는 정신이다. 그것은 다음 시에서 ‘육체에 감정까지 더한 일’로 표현된다. 기쁜 마음은 감정이다. 땀흘림은 고달프지만 작자는 여기에 기쁨이라는 감정을 더해서 일한다. 고달픈데도 기뻐하는 것 역시 사랑이고 그것은 평화로 이어지는 행위다.
육체에 감정까지 더한 노동
낮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난 열심히 일하며
즐겁게 사는 노동자
버거울 때도 있지만
행복하다
꽃은 나를 싫어할지 모르지만
나는 꽃이라면 가시에 찔려도 좋다
철따라 제 몫을 다 하는
호박꽃 제비꽃 부추꽃을 사랑하고
어두운 절망 가운데
다시금 무릎 세우며
희망을 노래하는
벼랑에 핀 꽃을 사랑한다
― 「일하며 사랑하며」
땀흘리는 일을 기뻐하기 때문에 불만이 없고 그래서 평화의 정신이 되지만 그는 이에 대해서 ‘자주적’이란 말을 한다. 남이 시켜서 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을 자신이 스스로 하는 자주적 행위라 한다면 어떤 노력의 땀흘림도 모두 기쁨으로 한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는 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이 시 창작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어떤 힘겨운 일이라도 사동형태가 아니라 능동형태로서 그 일의 주인이 되고 이를 기쁨으로 하고 또 이것이 시가 된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평화의 시요 사랑의 시다.
「평생소년」에서 처럼 이 세상을 소년처럼 순수한 감정으로 만나서 늙지 않는다면 그는 천국에서 사는 셈이다. 그런데 이것도 지적 성장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소년과 같은 젊음의 의지로 그런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므로 누구나 늙는다는 숙명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다, 즉 우리는 누구나 늙어가며 오염되고 병들고 기운이 쇠잔해지며 불만도 많고 허망하게 흙으로 돌아간다는 필연적 운명을 절감하면서 이에 대해서 단호한 저항으로 맞서는 것이 「평생 소년」의 주제다.
이런 의지는 「부끄럽다」 「약속」 「행복할 수 없는 당신」 「예쁜 말」 등에도 나타난다. 작자는 이 세상을 거의 모두 아름답게 그리려 노력하고 있을 뿐 실제적 현실이 그처럼 아름답다는 것은 아니다. 「부끄럽다」에서는 친일 문제를 논하기도 한다. 더럽고 부끄러운 과거사를 논하는 것이므로 부정적인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는 해방 전의 과거사이지만 그 유산이 현실에도 이어지고 있는 이상 논쟁의 대화가 될 수 밖에 없다.
친일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서로 얼굴 붉힐 만큼
감정이 엇갈릴 때가 있다
친일 문학은 민족 반역 문학이라
단정하면
반골 기질로 탁월한 작품에
낙인을 찍지 말라고 한다
결국은 언성을 높여
논쟁으로 이어지고
다툼이 된다
‘탁월한 문학에 낙인을 찍지 말라’는 해방 후 한국문학사에서 주류를 이루고 아직 그 잔재가 문단 권력을 유지해 오고 있는 사실과 그 교주에게 오명을 씌우지 말라는 것이겠다. 가장 악랄한 민족반역의 친일문학을 남긴 사람이 그 시적 기교의 재능만으로 문단의 권좌를 누리고 그 밑에서 충성과 찬미를 다하는 무리와 만나면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다. 이같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은 「약속」에서도 나타난다. 부드러운 어조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실망이 표현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최주식 시인의 시세계는 이 세상 삼라만상이 음과 양의 대립 또는 상호 의존의 조화로 운영되어 나간다는 관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표면에 그려진 양상으로는 밝은 해를 노래하되 어둠은 초생달처럼 많이 가려져 있다. 이 세상을 밝게 봐야 한다‘ 또는 ’밝게 만들어나가야 한다‘라는 참여 의식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밝게 보고 밝게 만든다는 것은 궁국적으로는 사랑과 평화 만들기가 된다. ‘사랑과 평화 만들기’는 문학이 일반적으로 지향하고 또 지향해야 할 최고 최선의 사상이며 불교나 기독교나 천도교 사상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를 적극적인 참여 의지로 지향하고 있는 문예지로서 ‘창작산맥’도 있다.
이런 사상 운동이 적극적 의지를 지닌다면 그것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을 모두 포괄적 주제로 다루게 된다. 이런 방법의 다양성 속에 문학으로서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있고 매우 소박한 형태로서 최주식 시인의 시가 있는 셈이다. 최시인은 사랑과 평화를 직접적 구호로 외치듯 주제 전달의 의지가 강하다. 이와 달리 상징적 우화적인 형태로 사랑과 평화를 즉석 약물처럼 전하는 소설로서는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가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그르누이도 무조건적인 사랑의 향수를 뿌리며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살인죄로 고발되고 심판을 기다리는 광장에 나가는 자리는 무서운 증오와 호기심과 분노의 자리지만 그가 만들어 낸 향수를 뿌리자 고발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 사랑은 포옹하고 입 맞추고 성교까지 하는 사랑이다. 이 세상을 이렇게 사랑과 평화로 만드는 사람이라면 핵무기를 비롯한 온갖 살인 도구로 대결하며 멸망직전인 인류 사회를 구원하는 메시아라 할 것이다.
최시인도 이런 성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창작활동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실제적 삶에서 이를 실천하려고 애쓴다. 그는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 한다. 대상이 젊은 여성이라면 두 번 째, 세 번 째는 사랑한다는 말이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사귀자는 에로티시즘은 아니다. 또 그는 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이를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생활 언어에는 욕이나 상말이 없다. 감정에 증오와 질투와 원한이 없고 억울함을 간직하지 않기 때문에 웃음이 넘친다. 그것은 그르누이의 향수와 같다.
다만 그르누이의 그것이 최주식 시인의 사랑과 평화의 언어와 다른 것은 그 배경에 나타나는 어둠의 세계다. 쥐스킨트가 그르누이의 삶의 배경으로 그린 것은 너무도 힘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에 대한 타인들의 무관심과 잔인한 폭력이다. 그래서 그런 것을 모두 부정해 버리는 그르누이의 향수는 정당성을 지닌다. 우리 모두가 그것을 갈망한다. 에로티시즘으로서의 사랑이지만 그것은 그 이상의 상징으로서 오르가즘에 가까운 사랑과 평화다.
최주식 시인의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는 그런 점에서는 쥐스킨트의 문학이 지니는 강력한 의미 전달과는 다르다. 또 최주식 시인과 가장 대조적인 예술로서는 덴마크의 화가 뭉크가 있다. 그의 그림은 「절규」를 비롯해서 극단적인 불안과 공포와 절망이나 이와 유사한 어둠의 현실이다. 그늘만 있고 양지가 없는 셈이다. 이것도 그 부정적 세계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사랑과 평화에 대한 호소력을 지닌다.
최주식 시인의 시세계는 이와 다른 방법으로 밝은 세상을 지향하고 이를 위해 절규하는 셈이다.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호소력을 지니지만 「부끄럽다」 같은 작품에 나타나는 부정적인 세계도 강도를 높였으면 하는 독자가 많을 것 같다. 긍정적 세계는 은페된 부정적 세계의 얼굴을 노출시키고 정의감에 의한 분노에 의해서 더 확실하고 단호하게 동력을 얻는 경우가 많다. 이런 어둠 속에서 사랑과 평화를 말할 때 그것은 더욱 밝은 빛이 될 것이며 최주식 시인이 지향하는 값진 주제는 더욱 빛날 것이다.
- 金宇鐘(충남대, 경희대, 덕성여대 교수 역임, 문학평론가, 화가, 창작산맥 발행인, 은관문화훈장)
작가 소개
최주식
2007년 월간 『한맥문학』 시인 등단, 2015년 계간
『창작산맥』 평론 등단, 2020년 격월간 『서정문학』
수필 등단을 하였으며, 『어느 봄날의 달콤함』을
비롯한 다수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국제펜클럽 회원으로
전국시낭송대회 및 사진공모전에서 입상을 하였다.
YTN·서정문학 남산문학대회 시부문 심사위원장과
청량정보고 백일장 심사위원, 서정문학 시부문
심사위원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재능기부 문학나눔 활동을 하고 있다.
목 차
4 시인의 말
제1부 평생소년
12 평생 소년
14 일하며 사랑하며
16 첫 주례
18 선생님
20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그리운 사람일까
22 충분하다
24 첫눈에 반하다
26 힘차게 살자
28 사람으로 태어난 죄
29 부자가 좋아
30 건강한 돈
31 남는 건 사진 뿐
32 나의 옷차림
34 낭만에 대하여
36 염화미소
37 매년 소망
제2부 세월의 뒤통수에 왕소금을 뿌렸다
40 세월의 뒤통수에 왕소금을 뿌렸다
42 밥값을 하다보면
44 또 하나의 가족
46 무지개 마음
48 이러고 산다
49 호칭
50 하마터면 싸울 뻔 했다
52 살다가 보면
53 산다는 맛
54 명함
56 가시없는 장미꽃
58 늦공부
60 필연이 된 인연
62 전농동 살아요
64 생각은 현실이 된다
65 공감
66 지나고 보니
제3부 시집, 시집보내기
68 시인은 작품으로
70 인사
72 시집, 시집보내기
74 시인의 자격
75 새벽 창가에서
76 아자 아자 파이팅
78 살빼기
80 감성지수
81 하얀 거짓말
82 약속
84 두물머리
86 시낭송
87 몇번째 가을이던가
88 다독다독
90 시인이 할 일은 아니지
92 안부 전화
제4부 그렇게 또 한 번 봄 앓이를 했다
94 눈에 콩깍지
96 상남자 문기환
98 자기 모순
99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00 산
102 고향의 봄
104 군자란
106 꽃샘바람
107 지리산 조난 산악인 추모비
108 때로는 음악도 소음이다
110 양귀비
111 행복
112 그렇게 또 한 번 봄 앓이를 했다
114 성찰의 시간
115 꽃을 든 사람
116 둘레길
제5부 죽으라는 법은 없다
118 죽으라는 법은 없다
119 힘 낼 이유
120 인생은 꽃처럼
121 원 플러스 원
122 부끄럽다
124 화장실에서 시 읽기
126 임진각이 전하는 말
128 청일점
129 밥만 먹고 살 수 없어
130 동명이인
132 술
134 은하수
135 밥을 먹으며
136 꿈은 이루어진다
138 정말 몰랐습니다
140 예쁜 말
144 해설 사랑과 평화 만들기 | 金宇鐘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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